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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새벽의 공작부인1화

두 번째 새벽의 공작부인

두 번째 새벽의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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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다시 열린 눈

세레나는 눈을 뜨자마자 종소리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창밖에서 네 번째 종이 울리기 전에 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 옆 촛대를 넘어뜨렸다. 촛대가 바닥에 떨어져 불이 꺼졌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손끝에 닿는 카펫의 자수와 창틀의 갈라진 부분은 기억과 같았다.

내일은 약혼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벨로르 공작가의 문장은 반역자의 표식으로 바뀔 것이다.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

문밖에서 리아가 물었다. 세레나는 대답하려다가 자기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꼈다. 그녀는 두 손을 이불 아래 감추고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악몽을 꿨어. 문 좀 열어 줘.”

리아는 촛불을 들고 들어왔다. 짧은 금발 끝에 잉크가 묻어 있었다. 밤새 필사 일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떨어진 촛대를 보고 곧장 세레나의 손을 살폈다.

“다치셨어요?”

“아니. 오늘이 며칠이지?”

리아는 잠시 망설였다. “약혼식 전날입니다. 아가씨가 어제도 같은 걸 물으셨어요.”

세레나는 굳은 목을 풀었다. 달력은 4월 12일, 약혼식은 13일이었다. 전생에서 벨로르 공작가의 창고가 불탔던 날은 15일. 왕실 조사단은 불이 꺼지기도 전에 공작가의 비밀 군량 장부를 찾아냈다. 장부에는 북부로 보낼 곡물을 빼돌려 반란군에게 지급한 기록이 있었다. 세레나는 그 장부를 본 적도 없었지만, 자신의 서명이 문서 아래에 있었다.

“리아, 어젯밤 네가 옮긴 필사본은 어디에 있어?”

“공작님 서재의 잠금 서랍에요. 그런데 그걸 왜…”

“서재로 가자.”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가야 해.”

세레나는 외투를 걸치고 복도로 나섰다. 걸음마다 몸이 살아 돌아온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계단 난간의 긁힌 자국, 복도 끝의 청동 시계, 아버지가 새로 주문한 초상화 액자. 전생에는 이것들을 하나씩 잃었다. 불탄 방에서, 압수된 저택에서, 마지막으로 왕실 감옥에서.

공작의 서재는 잠겨 있었다. 리아는 자신의 열쇠고리를 확인했다.

“제가 열쇠를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아버지를 깨우지 마.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어?”

리아가 눈썹을 들었다. “아가씨가 직접요?”

“아버지 서재 창틀은 걸쇠가 느슨해.”

세레나는 복도 창문을 열고 외벽의 발코니를 따라 걸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손바닥이 난간에 쓸렸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서재 창문 걸쇠는 예상대로 들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책상 서랍의 자물쇠를 확인했다. 잠금쇠 위의 작은 흠집은 전생에도 있었다. 리아가 얇은 필사 도구를 넣어 자물쇠를 열었다.

서랍 안에는 서리 장부의 사본이 있었다. 숫자 세 줄이 바뀌어 있었다. 북부로 보내야 할 밀가루가 중앙 창고에 남은 것으로 처리돼 있었다. 누군가 수량과 인수 날짜를 조작했다. 세레나는 장부를 펼쳐 서명을 찾았다. 자기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의 확인란에는 벨로르 가문의 새벽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인장, 아버님께서 찍으셨습니까?” 리아가 물었다.

“몰라. 전생에도 처음 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어.”

그 말이 입 밖에 나온 뒤 세레나는 굳어 버렸다. 리아는 그녀를 바라봤다.

“전생이라니요?”

세레나는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았다. 리아에게 진실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전부 말하면 리아가 믿을지, 위험에 끌어들이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장부의 숫자를 가리켰다.

“이 서명은 아버지의 필체가 아니야. 그리고 이 장부가 약혼식 다음 날 발견되면 우리 가문은 반역자로 몰릴 거야.”

“확실해요?”

“내가 그날을 봤어.”

리아는 침묵했다. 세레나는 카시안이 살아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리아, 카시안 로웬 변경백이 오늘 수도에 와 있나?”

“북부 군량 협의 때문에 어젯밤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왕궁 부속관에 머무실 거예요.”

세레나는 서재의 벽지 뒤를 더듬었다. 전생에 아버지가 숨겨 둔 비상 편지함이 있었다. 작은 새벽 인장이 새겨진 열쇠를 꺼내 함을 열었다. 안에는 빈 편지지와 공작가의 봉인이 있었다. 그녀는 종이에 짧게 적었다. ‘약혼 의정서를 보류해 주세요. 오늘 새벽, 부속관 정문에서 뵙겠습니다. 벨로르 공작가의 생존에 관한 제안이 있습니다.’

“이걸 보내면 왕실도 알게 될 거예요.” 리아가 말했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게 할 수 있어?”

“부속관 마구간의 급사에게 맡기면 됩니다. 다만 카시안 경이 오실지는 장담 못 해요.”

“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가.”

리아는 편지를 접어 봉했다. 두 사람은 하녀의 외투를 빌려 입고 부속관으로 향했다. 수도는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왕궁 길목에는 교대하는 경비가 있었다. 세레나는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숙였다. 가면을 쓴 채 움직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전생에는 늘 약혼자와 가문의 이름 뒤에 숨었다.

부속관 뒷문에는 카시안의 마부가 서 있었다. 그는 세레나를 알아보고 손을 허리춤에 가져갔다.

“공작 영애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변경백을 만나야 해.”

“용건을 말씀하시면 제가 전하겠습니다.”

“그분의 군량 협의에 관한 일입니다. 왕실이 북부 배급표를 바꾼 흔적이 있어요.”

마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가 대답하기 전에 부속관 문이 열렸다. 카시안은 검은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머리는 정돈되지 않았고, 왼쪽 눈썹의 흉터가 새벽빛에 선명했다. 세레나는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동시에 전생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 손끝이 차가워졌다.

“세레나 벨로르.” 그가 말했다. “약혼식 전날 새벽에 날 찾아온 이유를 듣겠습니다.”

“왕실이 우리 가문을 반역자로 만들 겁니다.”

카시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근거는요?”

“서리 장부가 조작됐어요. 북부 군량의 날짜와 수량이 달라졌고, 새벽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그 문서를 가져왔습니까?”

“사본을 갖고 있어요. 원본은 공작가에 있습니다.”

그는 편지를 받아 읽었다. 곧장 믿지는 않았다. 세레나는 그 반응을 예상했다. 과거의 기억은 증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장부의 숫자와 바뀐 날짜, 약혼식 뒤에 일어날 조사를 설명했다. 그가 모르는 사실만 골라 말하려 했지만, 입술이 굳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압니까?”

“꿈을 꿨다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

“아닙니다.”

“그럼 확인하게 해 드릴게요. 오늘 정오에 왕실 회계원이 북부 군량 협의에 참석합니다. 이름은 에드릭 바스. 그는 회의록에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서명 대신 오른손 장갑을 벗어 책상 밑에 두죠. 잉크가 묻었기 때문입니다.”

카시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사실이어도,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계약 동맹입니다. 약혼을 보류해 주세요. 저는 벨로르 가문의 장부를 조사하고, 당신은 북부 군량권을 지키세요. 서로의 증거와 병력을 공유하되, 상대의 이름으로 명령하지 않는 조건으로요.”

“정략혼 대신 동맹이라. 왕실은 당신의 약혼을 승인한 상태입니다.”

“아직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어요. 오늘 보류 요청을 제출하면 시간이 생깁니다.”

카시안은 장갑 낀 손으로 편지를 접었다. 그는 병력이나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계약 조건을 물었다. 세레나는 그가 단순히 이용당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동맹 기간은?”

“첫 번째 의회 심리까지. 이후 양쪽이 원하면 갱신합니다.”

“비밀 유지 범위는?”

“서로 합의한 자료만 공유하고, 각자의 가족과 부하에게 알릴 범위도 협의합니다.”

“당신은 내게 무엇을 숨길 생각입니까?”

“당신이 물어도 답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하지만 거짓 증거를 주지는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그 말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부속관 뒤쪽에서 마차 바퀴가 돌을 밟는 소리가 났다. 경비가 교대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세레나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문 옆의 돌기둥에 기대어 말했다.

“오늘 정오의 회의에서 회계원이 장갑을 벗는다면, 당신 말에 근거가 생깁니다. 그때까지 약혼 보류 요청은 제출하지 마십시오. 성급하게 움직이면 왕실이 당신을 감시할 이유를 얻습니다.”

“그럼 동맹을 받아들이는 겁니까?”

“검토하겠습니다. 조건을 적어 오십시오.”

그의 대답은 승낙도 거절도 아니었다. 세레나는 이번에는 과거의 감정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좋아요. 오늘 정오에 증거를 가져오겠습니다.”

“혼자 오지 마십시오.”

“리아와 함께 오죠.”

“그 시녀가 믿을 만합니까?”

세레나는 뒤를 돌아 리아를 보았다. 리아는 문서 봉인을 품 안에 넣고 경계하고 있었다.

“제가 선택한 사람입니다.”

카시안은 그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럼 그 선택을 지킬 방법도 준비하십시오.”

정오가 가까워지자 왕실 회계원 에드릭 바스가 공작저에 도착했다. 그는 북부 군량 협의 자료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 검은 장갑을 꼈다. 세레나는 그와 직접 대화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접견실로 들어갔다. 에드릭은 평범한 인사말을 건넸고, 그녀는 장부의 날짜가 지난달로 적힌 것을 지적했다.

“문서가 잘못 인쇄된 듯합니다.” 에드릭이 말했다.

그는 회의록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 장갑을 벗어 책상 아래에 넣지는 않았다. 세레나는 그의 손에 묻은 잉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과 달랐다. 일이 이미 바뀌고 있는 것인지, 기억이 틀린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 리아가 차를 가져왔다. 그녀는 쟁반을 내려놓다 일부러 물을 흘렸다. 에드릭이 손을 뻗어 문서를 옮겼고, 장갑 끝에 푸른 잉크가 번졌다. 그는 급히 장갑을 벗어 책상 아래에 숨겼다. 세레나는 숨을 들이켰다. 기억의 조각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장부 조작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에드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회의록에 서명을 요구했다. 세레나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원본 대조가 끝날 때까지 서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미소가 희미해졌다. “공작 영애께서 왕실 문서를 거부하시는군요.”

“문서가 맞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에드릭은 장갑을 주머니에 넣고 떠났다. 접견실 문이 닫히자 리아가 쟁반을 내려다봤다. 잉크는 차 얼룩과 섞여 검게 번져 있었다.

“보셨죠?” 리아가 말했다. “그는 장부를 확인하는 걸 두려워해요.”

“두려움은 증거가 아니야.”

“그럼 증거를 찾죠.”

세레나는 창밖의 시계를 보았다. 카시안과의 동맹은 아직 성립하지 않았다. 약혼 의정서는 내일 아침 서명될 예정이었다. 그녀는 리아와 함께 사본을 봉해 보관했다. 그리고 계약 조건을 적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쓴 문장은 ‘양측은 상대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다’였다.

해 질 무렵, 공작저 정문에 왕실 전령이 도착했다. 그는 약혼 의정서 원본을 가져왔고, 벨로르 공작의 서명을 요구했다. 그 아래에는 새로 추가된 조항이 있었다. 약혼식 전에 북부 군량 장부의 모든 사본을 왕실에 제출할 것.

세레나는 서류를 펼쳤다. 조항 끝에는 자신이 기억하는 그 새벽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문서는 전생보다 하루 빨리 나타났다. 전령은 왕실의 명이라고 말했다. 세레나는 서명란을 덮었다.

“내일 아침까지 답을 드리겠습니다.”

전령이 떠난 뒤 리아가 문을 잠갔다. 세레나는 새벽 인장을 바라봤다. 미래는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그 변화가 가문의 생존을 뜻하는지, 더 빠른 몰락을 뜻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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