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같은 동네 학부모가 됐다

5화: 안도의 무게
아침 일곱 시의 공기는 서늘했다.
한서윤은 가스레인지 위에 뚝배기를 올리고 불을 켰다. 맑은 된장국이 천천히 데워지며 구수한 냄새가 작은 주방에 퍼졌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유나의 방 문을 열고 세 번은 흔들어 깨워야 했다. 유나는 잠투정이 심한 편이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오 분만 더 자겠다고 칭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거실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국자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유나가 스스로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유나는 이미 유치원 원복 상의와 짙은 남색 반바지를 챙겨 입은 상태였다. 노란 양말까지 제 발에 꼭 맞게 신겨 있었다.
상의의 단추는 세 번째 구멍과 네 번째 단추가 엇갈려 울퉁불퉁하게 잠겨 있었다. 유나는 거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팽팽하게 당기며 옷매무새를 다듬으려 애쓰고 있었다.
"유나야, 왜 벌써 일어났어? 더 자도 되는데."
서윤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유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서윤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뺨은 아직 아침잠의 온기로 발그레했지만 눈빛만큼은 어색할 정도로 또렷했다.
"엄마, 나 오늘 혼자 옷 입었어. 양말도 혼자 신었어. 잘했지?"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눈에 조바심이 옅게 스쳐 지나갔다. 서윤은 엇갈린 단추를 하나씩 풀어 바르게 채워 주며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었다.
"응, 우리 유나 혼자서도 잘하네. 그래도 아침에는 엄마가 도와줘도 되는데."
"아니야. 나 이제 일곱 살이니까 혼자 다 할 수 있어."
유나는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고 식탁 의자로 가 기어올라 앉았다. 서윤은 따뜻한 밥과 두부 된장국 그리고 유나가 평소 골라내던 버섯볶음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평소라면 버섯을 숟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투정을 부렸을 아이였다. 하지만 유나는 숟가락을 꼭 쥐더니 된장국에 밥을 말아 버섯 한 조각을 얹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볼이 미어지도록 우물거리며 삼키는 품이 억지로 목을 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나야, 버섯 안 먹어도 돼. 좋아하는 달걀 줄까?"
"아니야. 나 버섯도 잘 먹어. 골고루 다 먹을 거야."
유나는 기어이 밥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워 냈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단정하게 내려놓으며 서윤의 안색을 살폈다.
"엄마, 나 오늘 착하지?"
"응, 정말 잘했어."
서윤이 물을 따라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나는 컵을 양손으로 쥐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내가 아침에 투정 안 부리고 밥도 다 먹고 착하게 굴면…… 엄마랑 아빠 앞으로도 계속 안 싸우지?"
서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행주가 식탁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유나는 아무런 악의 없이 그저 약속의 확인을 바라는 순수한 눈으로 서윤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저녁 마트에서 마주쳤을 때 엄마와 아빠가 화내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게 울렸다. 그건 단순한 안도가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모가 헤어진 이유와 과거에 그토록 차가운 침묵과 날 선 다툼을 이어갔던 이유가 자신이 말을 듣지 않고 떼를 썼기 때문이라는 무거운 죄책감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윤은 목구멍이 턱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자신이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지친 기색을 보일 때마다 아이는 제 탓이라 여기며 숨을 죽이고 있었던 걸까.
"유나야……."
서윤이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유나는 서윤의 굳은 표정을 보자마자 당황한 듯 얼른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나 유치원 갈 준비도 다 했어. 신발도 제일 빨리 신을게!"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듯 더 밝게 소리치는 아이의 미소가 서윤의 가슴을 서늘하게 베어 냈다. 그 미소 뒤에 숨은 안도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고 버거워서 서윤은 차마 마주 웃어 주지 못했다.
오전 여덟 시 오십 분의 햇살나무 유치원 앞은 등원하는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적였다.
유나는 서윤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평소처럼 길가에 핀 꽃을 구경하거나 보도블록 틈새를 폴짝 뛰어넘지 않았다. 어른의 보폭에 맞추어 앞만 보고 또박또박 걸었다. 서윤은 아이의 손에 들어간 힘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유치원 정문 담장 옆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강도현은 민재의 공룡 가방을 든 채 민재의 비뚤어진 셔츠 칼라를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현장 관리를 하느라 작업복 차림인 도현의 눈가에는 옅은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아이를 챙기는 손길만큼은 조심스럽고 정확했다.
"민재야, 오늘은 교실 들어가서 실내화부터 갈아 신어야 해."
"응. 삼촌, 나 토끼 스티커 받으면 필통에 붙여도 돼?"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도현이 고개를 들었을 때 서윤과 유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도현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리며 허리를 폈다.
"왔어?"
평소 같으면 유나는 반갑게 달려가 도현의 다리에 매달렸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 유나는 도현의 코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아이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빠, 안녕하세요."
도현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눈을 깜빡였다. 무릎을 굽혀 유나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유나 안녕. 오늘 기분이 조용하네? 어디 아파?"
"안 아파요. 나 오늘 아침에 한 번도 안 울고 혼자 옷 입고 왔어요."
유나는 가방 옆주머니에서 소중하게 접어 온 분홍색 토끼 스티커를 꺼내 민재에게 내밀었다. 민재는 눈을 빛내며 주머니에서 티라노사우루스 카드를 꺼내 유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제 약속한 카드야."
"응. 고마워."
유나는 카드를 받고도 활짝 웃지 않았다. 아이의 시선은 곁에 나란히 선 서윤과 도현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유치원 현관 신발장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민재가 허둥거리다 실내화 한 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얀 실내화가 서윤의 구두 앞코 쪽으로 미끄러져 왔다.
민재가 굳은 표정으로 도현을 올려다보았다. 서윤과 도현 사이에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유나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 떨렸다.
유나가 얼른 달려와 바닥에 떨어진 실내화를 두 손으로 주워 민재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내가 주웠어. 민재 혼내지 마."
도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응? 혼내려는 게 아니라 주워 주려고 했어."
도현이 황망하게 대답했지만 유나는 안심하지 못했다. 유나는 도현의 재킷 자락을 조심스럽게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아빠, 나 오늘 아침밥도 버섯까지 다 먹었어. 나 착하지?"
도현은 유나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유나 대단하네."
칭찬을 들은 유나는 그제야 안도한 숨을 내쉬며 민재의 손을 잡았다. 두 아이는 선생님의 인도를 받으며 새싹반 교실 문 안으로 들어갔다. 유나는 교실로 들어가면서도 두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서윤과 도현이 그 자리에 나란히 서 있는지 확인했다.
아이들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 도현이 서윤을 돌아보았다.
서윤은 닫힌 교실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서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 손은 가방 끈을 부서질 듯 쥐고 있었다.
"서윤 씨."
도현이 낮게 불렀다. 서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짙은 슬픔을 마주하는 순간 도현의 심장도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서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치원 뒤편 정원 구석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은 초록 잎들이 바람에 바스락거리며 서늘한 그늘을 만들었다. 나무 아래 놓인 낡은 나무 벤치에 두 사람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출근 시간을 앞둔 골목은 한적했다. 멀리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도현은 서윤의 창백한 옆모습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나한테 무슨 일 있었어? 아침부터 애가 왜 그렇게 눈치를 봐?"
"도현 씨."
서윤이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어젯밤에 마트에서 헤어지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유나가 그러더라고요. 오늘 마트에서 엄마랑 아빠가 화 안 내서 너무 좋았다고."
도현이 멈칫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혼자 일어나서 원복을 챙겨 입고 좋아하지도 않는 버섯까지 다 삼키면서 나한테 물었어요. 자기가 아침에 투정 안 부리고 착하게 굴면 엄마 아빠 앞으로도 계속 안 싸우는 거냐고."
서윤의 목소리가 가늘게 갈라졌다. 참아 왔던 눈물이 차올라 서윤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도현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숨이 턱 막혀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나름대로 서로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했잖아요."
서윤이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 한 방울이 치마 위로 툭 떨어졌다.
"아이 앞이니까 큰 소리 안 내고 마주쳐도 차분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감정 드러내지 않고 선을 지켰죠. 그런데 유나 눈에는 그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보였던 거예요.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건 자기 행동에 달렸다고 믿고 있었어요. 자기가 조금이라도 떼를 쓰면 어른들이 다시 화를 내고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도현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에서 지난 일 년간의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쳤다.
격주 토요일마다 유나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도 반찬을 흘리지 않으려 조심했고 일요일 저녁 헤어질 시간이 되면 울지도 않고 순순히 가방을 챙겨 들었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유나가 참 의젓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고 안도했었다.
그게 안도가 아니라 아이의 절박한 생존 방식이었다는 것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자신이 조금이라도 말을 안 들으면 아빠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까 봐 엄마가 또 방에서 혼자 울까 봐 그 어린것이 온몸으로 버텨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도현의 목소리가 굵게 떨렸다. 도현은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정말 멍청했어. 유나가 의젓해서 그러는 줄 알았어. 정해진 날에 시간 맞춰 데리러 가고 맛있는 거 사주면 아빠 구실을 다하는 줄 알았어. 정작 유나가 어떤 불안을 안고 있는지 보려고도 안 했어."
도현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 늘 도면과 일정표만 들여다보던 자신의 오만함이 아이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뼈아프게 밀려들었다.
서윤은 젖은 뺨을 닦아 내며 도현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억지로 다시 같이 살거나 화목한 부부인 척 연기할 수는 없어요. 그건 거짓말이고 아이는 금방 눈치챌 거예요."
"알아."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유나한테 분명하게 말해 줘야 해요. 엄마 아빠가 헤어진 건 유나 잘못이 아니라고요. 우리가 서로에게 화내지 않고 존중하는 건 유나가 착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책임이고 약속 때문이라고요."
도현은 서윤의 떨리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눈빛에 단단한 결의가 실렸다.
"혼자 말하지 마. 둘이 같이 말하자. 오늘 하원할 때 나도 올게. 현장 미팅 일정 조정해서 두 시 반까지 유치원 앞으로 올게."
"도현 씨 일 바쁘잖아요."
"일보다 이게 먼저야. 내 딸 일이야."
도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윤은 그제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공기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그 밑바닥에는 부모로서 한 아이의 상처를 지켜내겠다는 단단한 신뢰가 싹트고 있었다.
오후 두 시 반 유치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은솔동 골목에 울려 퍼졌다.
현관문이 활짝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유치원 앞마당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유치원 앞 등나무 벤치 옆에 서윤과 도현이 나란히 서 있었다. 도현은 먼지 묻은 작업복 겉옷을 벗어 차에 두고 단정한 셔츠 차림으로 시간을 맞춰 도착해 있었다.
교실 문에서 나온 유나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발걸음을 멈칫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유나는 반가움에 달려오려 하다가도 이내 표정을 정돈하듯 입술을 다물고 걸어왔다. 아침의 그 억지로 꾸며낸 듯한 얌전한 태도였다.
"엄마, 아빠. 둘 다 기다렸어?"
도현과 서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낮췄다. 도현은 한쪽 무릎을 꿇었고 서윤은 유나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도현이 먼저 조심스럽게 유나의 작은 두 손을 제 커다란 손안에 담았다. 투박한 손끝이 아이의 온기를 느끼며 미세하게 떨렸다.
"유나야."
"응?"
"아침에 유나가 아빠한테 물어봤지? 유나가 착하게 굴고 밥도 잘 먹으면 엄마랑 아빠 계속 안 싸우냐고."
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비밀을 들켜 버린 아이처럼 유나는 당황하며 서윤의 눈치를 살폈다.
서윤이 유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유나야, 엄마랑 아빠가 오늘 유나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같이 기다렸어."
도현이 유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빠랑 엄마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건 유나가 말을 잘 들어서가 아니야. 어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기로 약속해서 그런 거야."
"약속……?"
유나가 눈을 깜빡였다.
"응. 어른들의 약속이야. 그리고 유나야."
도현의 목소리가 조금 잠겼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갔다.
"엄마랑 아빠가 따로 살게 된 것도 예전에 다퉜던 것도 전부 어른들이 부족하고 서툴러서 그런 거였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유나 때문이 아니야. 유나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써도 밥투정을 부려도 울고 화를 내도…… 그건 절대 유나 잘못이 아니야."
유나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윤은 아이의 보드라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서윤의 눈에서도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나야, 착한 아이 안 해도 돼. 엄마한테 심술부려도 되고 아빠한테 안아 달라고 칭얼거려도 돼. 유나는 일곱 살이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어리광 피워도 돼. 엄마랑 아빠는 유나가 어떤 모습이어도 유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유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이의 작은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진짜……? 내가 투정 부려도 아빠 안 가?"
도현은 유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와락 안았다. 아이의 작은 머리를 단단한 가슴에 묻으며 힘주어 말했다.
"절대 안 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는 영원히 유나 아빠야."
그 순간 유나의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앙……!"
아이는 서윤과 도현의 옷자락을 양손으로 꽉 쥐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 아니 어쩌면 부모가 헤어진 뒤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내지 못했던 크고 솔직한 울음소리였다.
그동안 작은 가슴속에 얼마나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두고 있었던 걸까.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엉엉 울며 서윤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 흐앙, 나 아침에 버섯 맛없었어……!"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첫 번째 솔직한 투정에 서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왈칵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맛없었지. 앞으로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나 오늘…… 미끄럼틀 세 번 타고 싶단 말이야……!"
"세 번 타자. 열 번이라도 타자."
도현이 곁에서 유나의 젖은 등줄기를 커다란 손으로 다정하게 토닥였다. 도현의 눈가에도 굵은 눈물 한 줄기가 소리 없이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하원하던 민재가 저만치서 가방을 메고 다가오다 유나가 우는 모습을 보고 멈춰 섰다. 민재는 놀란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도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하자 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치원 화단 앞 벤치에 얌전히 앉아 공룡 카드를 정리하며 기다려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유나는 딸꾹질을 하며 서윤의 품에서 얼굴을 뗐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아이의 표정은 아침의 그 위태롭던 긴장 대신 원래의 맑고 천진한 일곱 살 아이로 돌아와 있었다.
유나는 도현의 셔츠 소매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거렸다.
"아빠 옷에 눈물 다 묻었어."
"괜찮아. 빨면 돼."
도현이 유나의 콧물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번쩍 안아 올렸다. 유나는 도현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서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 하나가 마침내 굴러떨어진 것 같았다. 아이에게 완벽한 가정을 다시 줄 수는 없어도 죄책감 없는 일상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헤어진 어른들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진짜 책임이었다.
유나를 품에 안은 도현이 서윤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닿아 있었다. 자책으로 시작된 하루였지만 아이의 울음소리 끝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같은 부모로서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도현은 유나를 내려놓고 민재의 손을 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격주 주말에만 찾아오는 손님 같은 아빠로는 유나의 일상에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없었다. 은솔동이라는 같은 생활권 안에 머물게 된 지금 유나의 진짜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새로운 약속이 필요했다. 기존의 경직된 면접교섭 일정을 이 동네의 삶에 맞게 다시 조율해야 할 때였다.
놀이터로 향하는 골목길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번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