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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같은 동네 학부모가 됐다2화

이혼 후 같은 동네 학부모가 됐다

이혼 후 같은 동네 학부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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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같은 모둠

유나를 유치원에 두고 돌아온 집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한서윤은 싱크대 위에 남은 컵을 씻었다. 물이 컵 안쪽을 한 바퀴 돌 때마다 현관 쪽을 돌아보게 됐다. 유나는 문을 나서기 전까지 토끼 인형을 가방에 넣었다 뺐다 했다.

이제는 교실에 있을 시간이었다.

서윤은 젖은 행주를 걸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상자를 밀었다. 이사 온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상자마다 유성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책, 겨울옷, 유나 방. 유나 방 상자에는 토끼 스티커가 비뚤게 붙어 있었다.

어젯밤 유나는 그 상자 앞에서 새 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불을 끄기 직전에 낮게 물었다.

‘내일도 엄마가 와?’

당연한 질문인데 서윤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오늘은 더 늦지 않으려고 알람을 세 개나 맞춰 뒀다.

노트북을 열자 출판사 메일함에는 수정 요청이 세 통이나 와 있었다. 서윤은 원고의 첫 문장을 고치다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화면이 켜질 때마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유나가 울면 선생님은 연락을 줄 것이다. 유나가 울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닐 수 있었다. 서윤은 그 사이 어디에도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열한 시가 조금 넘자 햇살나무 알림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앞에 아이들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교사는 바닥에 노랑, 파랑, 초록 종이 명찰을 펼쳐 놓고 있었다. 사진 가장자리에서 유나는 노란 명찰 하나를 들고 있었고 그 옆의 민재는 공룡 그림이 찍힌 도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유나가 자기 손등을 내밀고 있었다. 민재가 조심스럽게 노란 도장을 찍어 주려는 순간이었다.

서윤은 화면을 확대했다. 유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낯선 곳에서 긴장할 때 유나는 웃기보다 입술을 다문다. 저 표정은 적어도 지금은 괜찮다는 신호였다.

그 정도면 됐다.

서윤은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다시 끌어당겼다. 답을 빨리 정하려는 버릇이 아이에게까지 닿지 않게 하려면 오늘은 기다리는 쪽을 택해야 했다.


새싹반 교실에서는 화분 이름을 정하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선생님, 이 풀은 공룡이 먹어요?"

민재가 화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교사는 잎이 넓은 작은 스파티필름을 보다가 웃었다.

"공룡이 살던 때에는 이 식물이 없었을 수도 있지. 그래도 민재가 공룡이 먹을 만한 이름을 지어 주고 싶어?"

민재는 잠깐 생각했다. 책상 아래에서 두 발이 가만히 멈췄다.

"공룡풀이요."

"그냥 공룡풀?"

유나가 옆에서 물었다.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풀인데 공룡이 좋아할 것 같으니까."

유나는 화분 잎을 보다가 선생님에게 손을 들었다.

"공룡도 풀 먹는 애 있대요. 그러면 공룡풀 맞아요."

민재가 유나를 바라봤다. 안경 너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교사는 칠판에 큼직하게 ‘공룡풀’이라고 적었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이름을 보태는 동안 유나는 민재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우리 노랑 모둠 할래? 공룡풀 있는 데가 햇빛 잘 들어오잖아."

모둠 색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첫 주에는 아이들이 마음이 맞는 친구와 둘씩 짝을 지어 그림책 상자를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기로 되어 있었다. 민재는 앞에 놓인 명찰들을 보았지만 손을 뻗지 못했다.

"파랑도 공룡 같아."

유나가 말했다.

"응. 그런데 노랑은 햇빛 색이야."

민재가 천천히 노란 명찰을 집었다. 그러고는 유나에게 내밀었다.

"같이 하면 물을 너무 많이 안 줘도 돼."

유나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자기 명찰을 민재의 명찰 옆에 붙였다.

"그럼 민재가 알려 줘. 나는 꽃도 물 너무 많이 줬다가 엄마한테 혼났어."

교사가 두 아이의 명찰을 보며 말했다.

"노랑 모둠은 공룡풀 물 주기랑 창가 그림책 상자 맡을래?"

유나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유나가 끄덕이는 것을 본 뒤에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도요?"

"내일도. 모레도. 첫 주 동안은 노랑 모둠이 해 볼 거야."

민재는 명찰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종이가 떨어지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유나는 그 손등에 도장을 찍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우리 모둠 도장도 해야지."

민재가 도장을 꾹 눌렀다. 노란 원 안에 작은 공룡이 찍혔다. 유나는 손등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이제 진짜 같은 모둠이다."

민재는 자기 손등의 도장을 확인하고 아주 작게 말했다.

"약속이지."


오전 하원 시간의 유치원 현관은 아침보다 더 어수선했다.

보호자들이 문 밖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고 교사들은 가방을 하나씩 찾아 어깨에 걸어 줬다. 서윤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나의 토끼 가방을 먼저 발견했다. 유나는 가방보다 큰 걸음으로 현관을 뛰어 나왔다.

"엄마!"

서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낮췄다. 유나가 품에 부딪혀 오자 작은 정수리에서 햇볕 냄새와 물감 냄새가 났다.

"어땠어?"

"나 하나도 안 울었어."

유나는 자랑하듯 말하고는 곧바로 가슴의 종이 명찰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민재랑 같은 모둠이야. 노랑 모둠."

노란 원 안에는 유나가 서툰 글씨로 쓴 이름이 있었다. 그 옆에 작은 공룡 도장도 찍혀 있었다.

"공룡풀 물 주는 모둠이래."

"화분 이름을 정했어?"

"민재가 정했는데 내가 맞다고 했어. 공룡도 풀 먹는 거 있잖아."

유나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맞아. 유나는 정확히 기억했네."

그때 유나 뒤로 민재가 나왔다. 평소보다 한쪽 가방끈이 더 아래로 처져 있었다. 아이는 명찰을 손으로 가린 채 서윤을 보다가 유나가 손짓하자 가까이 왔다.

"민재도 노랑 모둠이야."

"알아. 유나가 사진으로 보여 줬어. 같은 모둠 된 거 축하해."

민재의 손이 명찰 위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바로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방은 내가 들게."

도현이었다.

그는 민재의 어깨에서 가방끈을 빼려다 아이가 고개를 젓자 손을 거뒀다. 민재는 자기 가방을 한 번 고쳐 멨다.

"내가 들 수 있어."

"그래. 무거우면 말해."

도현은 그 말만 하고 아이 옆에 섰다. 그의 시선이 서윤에게 닿았다가 두 아이의 명찰로 옮겨 갔다.

"둘이 고른 거야?"

"선생님이 색을 고르래서요."

민재가 또렷하게 답했다.

"유나가 노랑 고른다고 해서 나도 노랑 골랐어. 공룡풀은 햇빛 좋아하니까."

도현의 입가가 잠깐 풀렸다.

"그럼 잘 돌봐야겠네."

유나는 기다렸다는 듯 서윤의 손을 잡았다.

"엄마, 내일 민재랑 놀이터 가도 돼? 공룡풀 물 주고 나서."

서윤의 손가락이 유나의 작은 손을 감쌌다. 유나는 오늘 처음 만난 친구와 벌써 내일의 약속을 만들었다. 새 동네의 지도에 작은 점 하나를 찍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기쁨을 서윤의 불편함으로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하원 뒤에 가는 거면 엄마들이 시간을 확인해야 해. 민재도 삼촌한테 물어봐야 하고."

유나는 바로 도현을 올려다봤다. 민재도 말없이 그의 표정을 살폈다.

도현은 잠깐 멈췄다. 그가 곧장 된다고 말하면 서윤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민재 일정은 괜찮아."

그는 서윤을 보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서윤 씨랑 유나가 괜찮으면 내일 열두 시쯤 십오 분만 놀이터에 들를 수 있어. 안 되면 다른 날로 해도 되고."

선택지는 서윤 쪽에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이 고맙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예전처럼 누군가가 정해 놓은 일정에 맞춰 뛰어야 한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열두 시 십오 분까지만이에요. 유나는 점심 먹고 낮잠도 자야 하니까."

"알겠어."

도현은 더 보태지 않았다. 민재는 유나를 보고 물었다.

"그럼 공룡풀 물 주고 바로 가는 거야?"

"응. 미끄럼틀도 한 번만 타고."

"두 번은 안 돼?"

"시간 있으면 두 번."

유나가 제안을 고치자 민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의 손뼉이 한 번 맞부딪혔다.


그때 유치원 지붕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현관 앞에 있던 보호자들이 처마 안쪽으로 한 발씩 물러났다. 서윤은 유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고 도현은 민재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민재가 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산 가져왔어?"

"두 개. 하나는 네가 들 수 있는 거."

도현은 접힌 노란 우산을 민재에게 내밀었다. 민재가 손잡이를 잡자 도현은 우산을 바로 펴 주지 않았다.

"혼자 펴 볼래?"

민재가 끙 하고 힘을 줬다. 우산살이 반쯤 벌어졌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유나가 옆에서 손을 뻗었다가 서윤을 바라봤다.

"도와줘도 돼?"

"민재가 좋다고 하면."

민재는 우산과 유나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유나 쪽으로 조금 밀었다.

"여기 잡아. 같이 하면 약속이야."

두 아이가 손잡이를 잡자 우산이 펑 하고 열렸다. 노란 천 아래로 둘의 얼굴이 잠깐 감춰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유나는 소리 내 웃었고 민재는 입을 다문 채 우산 안쪽을 올려다봤다.

"내일도 노랑 모둠이네."

유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일 와야 해."

민재의 말은 유나를 향한 것이었지만 서윤에게도 들렸다. 서윤은 아이들이 만든 노란 공간을 바라봤다. 내일 놀이터에 같이 간다는 일은 별것 아닌 약속처럼 보이면서도 유나에게는 이 동네에서 처음 가진 약속이었다.

도현이 휴대폰을 꺼냈다.

"내일 열두 시 전에 도착하면 문자할게. 혹시 유나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일정이 바뀌면 편하게 말해 줘."

서윤은 도현의 손에 들린 화면을 보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하겠다고 서로 정한 뒤로도 그의 연락처를 볼 때면 마음 한쪽이 먼저 굳었다.

그래도 오늘의 약속은 유나가 만들었다.

"문자 주세요. 저도요."

"응."

비는 오래가지 않았다. 골목 바닥에 고인 물이 햇빛을 받아 희게 반짝였다. 유나는 노란 명찰이 젖지 않게 두 손으로 감쌌다.

"민재야, 내일 공룡풀 목마르지 않게 하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돼."

"그건 민재가 알려 줘."

"알겠어."

서윤은 유나의 우산을 받아 들고 젖은 운동화 끈을 다시 묶어 줬다. 도현도 민재의 가방끈이 흘러내리지 않게 한 번 고쳐 줬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준비를 하던 순간 유나가 도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요."

민재도 손을 들었다.

"내일 봐."

도현이 서윤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 잠시 멈췄다. 불러도 되는 이름과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 사이에서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내일."

서윤은 노란 명찰을 바라보던 유나의 손을 잡았다.

"네. 내일 봐요."

낯선 인사는 끝났다. 그런데도 둘 다 처마 아래를 바로 벗어나지 못했다.

유나가 서윤의 손을 끌었다.

"엄마, 내일 늦으면 안 돼."

"안 늦을게."

서윤은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민재가 공룡풀은 물을 조금만 먹는다고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유나의 손등에 찍힌 노란 공룡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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