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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7화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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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첫 손님의 웃음

유리 지붕 위로 비쳐 든 아침 햇살이 차가운 공기를 비스듬히 갈랐다.

아델리아는 문가에 서서 손수 깎아 만든 나무 팻말을 정문 옆에 걸었다. 짙은 밤나무 판자에 정갈하게 새긴 글자가 아침 볕을 받아 또렷하게 드러났다.

‘베르데 글라스 - 온실과 차, 작은 과자.’

아직 화려한 간판도 없고 유리창 곳곳에는 덧댄 실리콘 자국이 완연했지만 마침내 정식으로 문을 여는 첫날이었다.

온실 안쪽에서는 갓 구운 과자 냄새가 고소하게 번져 나왔다. 낡은 주물 오븐을 달군 마리가 쟁반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사장님, 로즈마리 버터 사브레 첫 판 나왔어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죠?”

접시 위에는 황금빛 사브레가 소복이 담겨 있었다. 온실 한구석에서 자란 로즈마리 잎을 다져 넣은 덕에 버터 향 사이로 산뜻한 풀 내음이 감돌았다.

“향이 아주 좋아, 마리. 굽기가 완벽하네.”

“오븐 바닥에 벽돌을 덧댄 보람이 있어요. 별비단꽃 꽃가루 사브레도 딱 여덟 개만 구워 도자기 함에 밀봉해 두었어요. 그건 찾는 분이 있을 때만 꺼낼게요.”

마리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정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반짝이던 눈동자에 문득 옅은 불안이 스쳤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 손님이 한 분이라도 올까요? 외곽이라 인적도 드물고 폐쇄됐던 연구소 자리라 꺼리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조급해할 것 없어.”

아델리아는 창가 쪽에 마련한 네 개의 나무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테이블마다 손글씨로 적은 작은 카드가 놓여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드세요. 온실의 식물과 과자는 병을 고치는 마법 약이 아니라 지친 숨을 잠시 쉬어 가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팔지 않기로 했잖아. 손님이 몰려오지 않아도 괜찮아. 단 한 사람이라도 진짜 쉼이 필요한 이가 찾아온다면 그걸로 충분해.”

아델리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마리는 비로소 어깨의 힘을 풀었다.

“맞아요. 사장님 말씀이 백번 옳아요. 가격표도 시장 사람들 눈높이에 딱 맞췄으니까요!”

카운터 옆 칠판에는 단정한 글씨로 차림표가 적혀 있었다.

따뜻한 보리차 동화 두 닢.
로즈마리 허브 사브레 동화 세 닢.
마음잎 차 동화 네 닢.
별비단꽃 꽃가루 사브레 동화 닷 닢(수량 제한).

귀족들이 마법 식물에 금화 수십 닢을 부르며 독점하는 세상이었지만 아델리아는 평범한 이들이 동화 몇 닢으로도 온전한 쉼을 얻기를 바랐다.

창가 화분의 어린 마음잎이 아침 볕을 머금고 파르르 떨렸다. 아델리아의 귓가에 맑은 풀잎의 숨소리가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식물 또한 새로운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때 정문의 황동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딸랑.

차가운 바람과 함께 묵직한 발소리가 온실 바닥을 울렸다.


문가에 선 사내는 흙먼지가 묻은 두툼한 양털 외투를 입고 있었다.

손등은 트고 갈라져 있었고 손톱 밑에는 과일 물이 거뭇하게 배어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지만 며칠 밤을 샌 듯 뺨은 핼쑥했고 충혈된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온실 안의 푸른 잎사귀들과 햇살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문틀을 붙잡았다. 낡은 장화에서 녹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사내는 낯이 붉어져 발을 뒤로 뺐다.

“저…… 실례했소. 여기가 차를 파는 곳이 맞소? 유리집이 너무 번듯해서 잘못 들어온 모양이오.”

평민 시장 상인이 귀족들이나 드나들 법한 유리온실에 위축되는 것은 당연했다.

아델리아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귀족 특유의 거만한 기색은 전혀 없는 담백한 태도였다.

“잘못 찾아오신 게 아닙니다. 어서 오세요, 베르데 글라스입니다.”

마리도 얼른 다가와 활기차게 인사했다.

“바깥바람이 차갑죠? 바닥의 흙은 신경 쓰지 마시고 들어오세요. 여긴 원래 흙과 식물이 사는 온실인걸요!”

상인은 머뭇거리다 온실의 훈훈한 흙냄새와 로즈마리 향기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파는 피에르라고 하오. 조합 벽보 구석을 보고 반신반의하며 걸어왔소.”

피에르는 창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요 며칠 도로가 얼어붙어 물가가 뛰고 난리가 났소. 물건을 대려고 새벽마다 짐마차를 내리고 싸웠더니 가슴이 돌덩이처럼 콱 막혀 숨이 안 쉬어지더군. 밤에 누워도 심장이 방앗간 맷돌처럼 쿵쾅거려 나흘을 꼬박 못 잤소.”

피에르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을 쥐어뜯듯 주물렀다. 눈동자에는 지독한 피로와 절박함이 가득했다.

“벽보에 ‘가쁜 호흡을 쉬게 해 주는 차’가 있다길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소. 주인장, 그 차를 마시면 당장 잠이 쏟아집니까? 마법 약 같은 거요?”

아델리아는 ‘청록의 청음’을 통해 피에르의 가쁜 호흡을 느꼈다.

그의 주변 공기는 바짝 메마른 짚단처럼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생계에 대한 불안이 심장을 쥐어짜며 호흡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손님의 절박함을 이용해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피에르 씨. 저희 온실의 마음잎 차는 억지로 잠을 쏟아지게 만드는 수면제가 아니에요.”

피에르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기대감이 빠져나갔다. 그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역시…… 그저 흔한 헛소문이었군.”

“하지만 며칠 동안 쉬지 못해 가쁘게 뛰는 심장을 다독이고 어깨의 긴장을 덜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아델리아는 차분하고 단단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잠을 억지로 청하려 애쓰지 마세요. 따뜻한 볕 아래에서 굳은 어깨를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는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아델리아는 주방에서 갓 끓여 낸 마음잎 차를 흰 도자기 잔에 담아 건넸다. 은은한 연녹색 찻물 위로 맑고 시원한 풀 향이 피어올랐다. 옆에는 갓 구운 로즈마리 버터 사브레가 함께 놓였다.

피에르는 투박한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을 통해 스며드는 온기에 얼어 있던 손가락 마디가 스르르 풀렸다.


피에르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쌉싸름한 첫맛 뒤로 은은한 단맛과 서늘하고 맑은 풀 향이 혀끝을 감돌았다. 목을 타고 넘어간 온기가 가슴속 깊은 곳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음……?”

피에르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목을 조르듯 옥죄어 오던 가슴속 응어리가 신기하게도 느슨해졌다. 얼음판 위에 따뜻한 봄비가 내리듯 가슴을 짓누르던 긴장이 잦아들었다.

이어 바삭한 사브레를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한 버터 향과 향긋한 로즈마리 냄새가 입안 가득 번졌다. 새벽 시장의 찌든 냄새에 갇혀 있던 감각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피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길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후우.

가슴을 쥐어짜던 통증이 가라앉자 저절로 등이 펴졌다. 나흘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했던 거친 호흡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숨이…… 쉬어지는군.”

피에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슴팍에 박혀 있던 쇳덩이가 쑥 빠져나간 것 같소. 머릿속을 쾅쾅 울리던 소리도 멎었어.”

그의 험상궂던 얼굴 근육이 풀리더니 입꼬리가 완만하게 올라갔다. 핏발 선 눈가에 부드러운 안도감이 깃들었다.

“하하, 세상에. 약도 아니라더니 사람을 이렇게 편하게 만들어 주다니!”

피에르의 입에서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 깊은 곳의 짐을 잠시 내려놓은 이만이 지을 수 있는 편안한 미소였다.

마리의 얼굴에도 환한 기쁨이 번졌다. 아델리아 역시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딸랑.

다시 한번 정문의 종이 울렸다.

온실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주위를 압도하는 큰 체격에 짙은 먹빛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흑발 아래로 서늘한 은회색 눈동자가 온실 안을 찬찬히 훑었다.

카시안 헤르츠였다.

공작가의 기사나 수행원은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눈길을 걸어온 모습이었다.

피에르는 카시안의 범상치 않은 기운에 흠칫 놀라며 웃음을 거두었다. 평민으로서는 본능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서슬 퍼런 기백이었다.

하지만 카시안은 손님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문가에 조용히 멈춰 섰다. 아델리아가 못 박았던 규칙을 의식한 듯 그는 거만한 태도 없이 다른 손님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피에르는 마지막 남은 찻물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 정말 고맙소. 몇 주 만에 이렇게 숨을 편히 쉬어 보는지 모르겠소. 찻값이 얼마요?”

“마음잎 차 네 닢에 사브레 세 닢, 동화 일곱 닢입니다.”

피에르는 가죽 주머니에서 동화 열 닢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나머지는 거슬러 주지 마시오! 이 은혜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돈이오.”

아델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정확히 동화 세 닢을 집어 피에르의 손바닥에 쥐여 주었다.

“저희는 정해진 가격만 받습니다. 손님이 되찾으신 편안한 숨은 돈을 더 낸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피로가 쌓이면 언제든 숨을 고르러 오세요.”

피에르는 제 손에 놓인 동화 세 닢과 아델리아의 눈을 번갈아 보더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참으로 별난 주인이시군! 내 중앙시장 청과물 골목에서 과일을 파니 언제든 사과나 배가 필요하면 들르시오. 시장 동료들에게도 이 온실 얘기를 꼭 전하겠소. 숨이 턱턱 막혀 죽어가는 녀석들이 줄을 섰거든!”

피에르는 정중하게 모자를 숙여 인사한 뒤 가벼워진 걸음걸이로 온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종소리의 여운만이 맑게 감돌았다. 아델리아는 손님이 남기고 간 빈 잔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벅찬 보람을 느꼈다.

공작가 시절에는 결코 맛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이름과 노력으로 타인에게 쉼을 건넸다는 확신이 영혼을 채웠다.


“장사가 제법 그럴듯하군.”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온실의 정적을 깼다.

카시안이 창가 쪽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의 왼쪽 소매 아래로 굳은 손등이 살짝 드러났다.

아델리아는 카운터를 닦으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매일 오실 생각인가요, 카시안 씨.”

공작이라는 직함 대신 평범한 손님처럼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카시안의 은회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일렁였다.

“약속했으니까. 빈말은 하지 않는다.”

“주문하시겠어요?”

“어제 마셨던 마음잎 차 한 잔을 부탁하지.”

아델리아는 군말 없이 찻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찻물이 끓는 동안 카시안은 아델리아가 낡은 가죽 장부에 첫 매상을 적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피에르. 마음잎 차 1잔, 로즈마리 사브레 1개. 동화 7닢.’

그녀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북부 성의 차가운 회랑에서 늘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공작부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델리아는 김이 오르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카시안은 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시원한 향이 코끝을 스치자 왼쪽 어깨와 팔뚝을 쑤셔 오던 검은 상흔의 통증이 서서히 무뎌졌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머금고 아델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일손이 부족해 보이는군. 북부 상단을 통해 믿을 만한 고용인을 보내줄 수도 있다. 장작이나 식자재 수급도…….”

“카시안 씨.”

아델리아가 그의 말을 차분하게 끊었다. 단호하지만 모나지 않은 목소리였다.

“손님은 차를 드시고 가시면 됩니다. 그 이상 참견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돕고 싶어서 그런다.”

“도움이 아니라 침범이에요.”

아델리아는 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작가의 인력과 자본이 닿는 순간 이곳은 제 온실 카페가 아니라 헤르츠 가문의 부속 건물이 되어 버려요. 저는 제 힘으로 이 온실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쉼을 줄 겁니다. 그 선을 넘으실 거라면 내일부터는 오지 마세요.”

카시안의 턱 선이 굳어졌다. 거친 전장에서 수많은 적을 베어 넘겼던 그였지만 이 작은 여인의 확고한 신념 앞에서는 어떤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침묵 끝에 카시안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다. 내 참견이 경솔했군.”

카시안은 잔에 남은 차를 천천히 비워냈다. 그러고는 품에서 동화 네 닢을 꺼내 테이블 위에 단정하게 올려놓았다. 은화나 금화를 내밀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절제였다.

“차 맛은 여전히 좋았다. 내일 또 오지.”

“규칙을 지켜 주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카시안은 외투를 여미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잠시 스며들었다가 닫혔다.

마리가 주방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사장님. 저 손님은 올 때마다 온실 공기를 얼어붙게 만든다니까요. 그래도 사장님이 딱 잘라 말씀하시니까 군말 없이 따르는 게 신기해요.”

“규칙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중인 거야.”

아델리아는 카시안이 두고 간 동화 네 닢을 장부 위에 얹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며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첫날 영업의 매상은 크지 않았지만 장부에 적힌 손님들의 이름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결실이었다.

하지만 온실의 따스한 등불이 켜지는 순간 길 건너편 어둑한 골목길 모퉁이에 검은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다.

마차 창살 너머로 은빛 안경을 쓴 사내가 온실 간판을 서늘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사내의 손가락에는 왕실 식물청의 공식 문장이 새겨진 인장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폐쇄된 황실 연구소에서 무허가 마법 식물로 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라…….”

사내의 입술 사이로 비릿한 냉소가 흘러나왔다.

“꽤 건방진 싹이 트고 있군. 내일 아침 관리관들을 보내 짓밟아 주마.”

마차가 어둠 속으로 바퀴를 굴리며 사라졌다.

온실 안에서 아델리아는 문득 등 뒤를 스치는 서늘한 기운에 몸을 돌려 창 너머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았다.

창가 화분의 어린 마음잎이 찬 바람을 감지한 듯 잘게 떨리고 있었다.

베르데 글라스의 고요한 온기를 위협하는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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