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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27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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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마도상단의 계약

마차에서 내린 여인은 잿더미를 밟기 전에 은전부터 꺼냈다.

“지붕값입니다. 오늘 안에 결정하시면 내일 아침부터 기둥을 세울 수 있어요.”

마도상단주 당유리였다. 붉은 비단 장갑을 낀 손에서 은전이 가볍게 돌았다. 준우보다 먼저 무너진 갱도와 젖은 멍석 아래 웅크린 인부들을 살피는 눈이었다.

“연기를 보고 왔어요. 남은 술이 있다면 저희가 모두 사지요.”

“회생주라는 술이 있습니다. 서른 병 남짓입니다.”

당유리는 행수에게 계약서를 펼치게 했다. 빈칸에 회생주라는 이름이 적혔다.

판매금 열 가운데 일곱은 상단. 셋은 백화전.

준우의 손가락이 다음 줄에서 멈췄다. 자재비와 운송비는 백화전 몫에서 먼저 제하며 독점권은 앞으로 빚을 술에도 십 년간 적용한다는 문구였다.

“병을 사러 오셨습니까. 양조장을 사러 오셨습니까?”

“불탄 양조장에도 값을 쳐드리는 겁니다. 전주님의 다음 술을 믿으니까요.”

곁에서 노칠이 기침했다. 찢어진 신발 밖으로 붉게 부은 발가락이 나와 있었다. 저 은전 하나면 신발을 바꾸고 젖은 인부들에게 뜨거운 국을 먹일 수 있었다.

준우는 계약서를 끝까지 읽었다. 그의 몫에서 공사비를 빼도 모자라면 다음 술값에서 받겠다는 줄이 있었다.

숫자를 아무리 더해도 노칠의 몫은 나오지 않았다.

“위철 님. 식량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본산에서 보내온 마른 양식이 이틀치입니다. 잠자리는 석실 입구에 멍석을 더 깔면 됩니다.”

“어르신들은 안쪽으로 모셔주십시오. 저는 입구에서 자겠습니다.”

준우가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회생주는 이틀 뒤 경매에 냅니다. 오늘 드릴 독점권은 없습니다.”

당유리가 은전을 거두었다.

“상인은 부른다고 오는 사람이 아니에요. 특히 다시 불탈지도 모르는 곳에는.”

“물건을 보고도 싫다면 돌아가시겠지요.”

준우가 석덕에게 북문 교역소로 갈 채비를 시켰다. 당유리는 마차에 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행수에게 천막을 치라고 손짓했다.

“그럼 저도 어떤 물건인지 기다려 보지요.”


이틀째 아침에도 준우의 멍석 끝은 축축했다.

그는 뻣뻣해진 허리를 펴고 비상 석실로 들어갔다. 회생주를 떠 둔 시험병에는 밤새 새로운 거품이 솟지 않았다. 옆의 옹기도 열이 오르지 않았다.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을 건드리지 않도록 가느다란 대통으로 윗술을 받았다.

정량으로 채운 병은 서른 개였다. 한 병에는 비교 보관용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봉인하고 다른 한 병은 시음용으로 따로 놓았다.

“팔 것은 스물여덟 병입니다.”

위철이 장부에 수량을 적었다. 장덕은 그 옆에 기둥과 지붕을 다시 세울 견적을 펼쳤다. 종이 모서리에 탄 손자국이 묻어 있었다.

석덕이 데려온 사람들은 흑송상단과 청하상단의 대행수였다. 두 상단 모두 북문에 지점을 두고 있었다. 흑송은 북쪽 산길에 짐수레를 굴렸고 청하는 남쪽 수로에 창고와 배를 가졌다.

공개 경매 소식을 들은 객점 주인들도 천막 밖에 모였다. 장덕은 그들이 기대 선 기둥에 받침을 하나 더 댔다.

“탄 포도로 빚은 술이라지요?”

흑송의 대행수가 빈 잔을 들었다.

“굳이 우리를 불러놓고 재 맛을 팔 생각은 아니겠지요.”

준우는 대답 대신 당유리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짐에서 꺼낸 명주 두 병을 탁자 위에 올렸다.

“비교할 술은 내가 고르겠어요. 싼 술 옆에서 이기는 재주는 누구나 부리니까.”

준우가 잔과 병을 검사한 뒤 석덕이 가림막 안에서 표식을 가렸다. 세 술은 같은 물동이에 넣어 서늘하게 온도를 맞추었다. 잔 크기와 따르는 양도 같았다.

설아가 천막 입구에 섰다. 흑송의 대행수가 그녀의 검을 힐끗 보았다.

“값을 낮게 쓰면 목이 날아갑니까?”

“떠나는 수레도 지켜드리겠습니다.”

대행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설아는 바깥 경계를 호위에게 넘기고 준우 곁으로 왔다.

“약병을 건넨 자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포로 심문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품 안의 검붉은 밀랍 약병을 눌러 확인했다. 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에 내줄 은자도 지금 저 병들에서 나와야 했다.

그는 상인들 앞에 종이를 한 장씩 놓았다.

“이름을 보기 전에 사고 싶은 잔부터 적으십시오.”


첫 잔에는 마른 꽃향이 올랐고 둘째 잔에서는 짙은 꿀 향이 났다.

당유리는 두 잔을 내려놓으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셋째 잔을 코에 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넘기던 손이 조금 늦어졌다.

준우는 그 손을 보고도 입을 다물었다.

청하의 대행수가 셋째 잔을 마신 뒤 물을 찾았다. 혀를 씻은 그는 다시 같은 잔을 들었다.

“단데 목에 달라붙지 않는군.”

준우도 제 잔으로 입술을 적셨다. 서늘했던 술이 입안에서 풀리며 눌러 말린 체리의 단맛이 퍼졌다.

그 뒤로 삼나무의 달콤한 향과 마른 장작의 훈연이 길게 이어졌다. 재를 핥은 듯한 거친 쓴맛은 없었다. 혀 가장자리를 죄던 떫은맛마저 천천히 느슨해졌다.

흑송의 대행수가 코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빈 잔에서 아직도 과일 냄새가 나는군. 이건 어느 집 술입니까?”

준우는 종이가 뒤집힐 때까지 기다렸다.

세 사람 모두 셋째 잔에 표시했다.

석덕이 가림막을 걷었다. 셋째 병에는 회생주라는 먹글씨가 붙어 있었다.

천막 밖에 서 있던 장덕이 주먹을 꽉 쥐었다. 노칠은 웃다가 기침했고 옆 인부가 등을 두드렸다.

당유리는 잔을 기울여 마지막 한 방울을 살폈다.

“다른 포도를 그슬리고 판재를 구우면요? 비슷한 술을 더 만들 수 있나요?”

“시험은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맛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열매마다 마른 정도가 달랐고 버린 것이 건진 것보다 많았습니다.”

“그 실패값까지 살 생각은 없어요.”

“그래서 이 술에만 값을 매기시라는 겁니다.”

그녀는 빈 잔을 내려놓고 입찰 종이를 당겼다.

“그럼 스물여덟 병. 전부 내게 주세요.”

“북쪽 육로와 남쪽 수로에 열네 병씩입니다. 한 상단은 한 길만 맡습니다.”

“내가 둘보다 많이 쓰면요?”

“한 길입니다.”

준우는 운송로를 그린 종이를 폈다. 당유리는 북쪽 길을 손가락으로 누른 채 그를 보았다. 준우가 손을 치우지 않자 그녀가 먼저 물러났다.

“팔린 값의 여덟 몫은 백화전이고 두 몫은 상단입니다. 운송비는 상단 몫에서 내십시오. 오늘은 백화전에 선지급할 최소 보장액을 적는 겁니다.”

당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못 팔아도 그 돈은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예. 판매대금의 여덟 몫이 보장금을 넘으면 차액만 더 받겠습니다. 출고 후 스무 날에 장부와 남은 병을 함께 확인하지요.”

“같은 돈을 두 번 받지는 않으시고?”

“선지급금은 당연히 백화전 몫에서 뺍니다.”

흑송의 대행수가 계산을 고쳐 썼다. 청하의 대행수는 두 몫이라는 글자 밑에 운임을 적었다.

제조법과 종균은 양도하지 않는다. 판매권은 이번 물량에만 한정한다. 앞으로 빚을 빙화주와 처방주에도 어떠한 권리도 생기지 않는다.

준우가 마지막 조항을 읽자 당유리가 입술을 비틀었다.

“술보다 안 파는 것이 많군요.”

“스물여덟 병이나 팝니다.”

장덕이 헛기침으로 웃음을 삼켰다.

청하의 대행수가 지도에 남쪽 창고 두 곳을 표시했다. 당유리도 북문 지점의 인수처를 적었다. 자재와 포도를 올려 보낼 귀로의 운임은 따로 정하고 운반할 때마다 백화전의 인수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첫 목재와 기와는 이틀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장덕의 요구도 들어갔다.

당유리는 행수가 건넨 장부를 훑었다. 붓을 들었다가 내려놓은 그녀가 흑송의 빈 입찰서를 보았다. 대행수는 자기 종이를 팔로 가렸다.

그제야 그녀의 붓끝이 움직였다.


입찰서는 서로의 인장으로 봉한 뒤 한꺼번에 열었다.

북로에는 흑송이 은 이백십 냥을 썼다.

위철의 입에서 짧은 숨이 샜다. 기둥값과 지붕값을 합친 숫자를 이미 넘었다.

마도상단은 이백사십 냥이었다.

“남로는 청하상단. 백팔십 냥.”

준우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두 길을 합쳐 사백이십 냥. 위철은 숫자를 두 번 더했다.

마도상단의 행수가 당유리에게 몸을 기울였다.

“열네 병뿐이면 북문 연회장 세 곳에도 모자랍니다.”

“그 세 곳에 한 병도 못 넣는 것보다는 낫지. 잔으로 팔면 몇 잔인지부터 계산해.”

그녀가 새 계약서를 당겼다. 붉은 장갑을 벗은 손가락에 오래 붓을 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술은 인정하겠어요. 다음 거래에서도 이런 조건을 받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세요.”

“다음 술이 나오면 다시 맛보십시오.”

인장이 찍히자 은자가 든 상자 두 개가 열렸다.

계약금은 합쳐 백 냥. 나머지 삼백이십 냥은 술을 출고하기 전에 치르기로 했다. 준우가 받아볼 판매 장부에는 병마다 팔린 값과 거래처를 적도록 했다.

“우리도 목재는 팔 수 있겠지요?”

낙찰받지 못한 흑송의 대행수가 물었다.

장덕이 그가 가져온 견본의 단면에 손톱을 눌렀다.

“이만큼 마른 놈이면 됩니다. 젖은 나무를 섞으면 수레째 돌려보냅니다.”

흑송의 목재는 장덕이 검수한 뒤 별도 대금으로 사기로 했다. 운송은 북로를 맡은 마도상단이 기한 안에 책임졌다. 청하는 남쪽 창고의 기와를 배에 싣기로 했다.

당유리가 웃었다.

“여기는 목수도 계약을 하는군요.”

“그분이 세울 지붕이니까요.”

위철이 상자에서 은자를 꺼내 재건에 나설 인부들의 이름 옆에 놓았다. 오늘 저녁 먹을 곡식값과 내일부터 시작할 품삯이었다.

노칠은 제 몫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장덕은 목재 명세를 가슴에 넣은 뒤 굽은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못을 펴는 망치 소리가 다시 폐광에 울렸다.

설아가 준우에게 물잔을 건넸다.

“오늘도 입구에서 주무시겠습니까?”

“마른 멍석 한 장부터 사야겠습니다.”

그는 물을 들이켰다. 술을 따를 때는 모르던 갈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때 당유리의 행수가 작은 종이를 가져왔다. 밖에서 경매를 지켜보던 객점 주인이 귀빈을 대신해 넣은 선주문이었다.

당유리가 금액을 읽더니 준우에게 종이를 돌려 보였다.

회생주 한 병에 은 오십 냥.

바로 아래에는 아직 가격도 없는 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빙화주. 출고할 수 있는 만큼 전량 선매 희망.

준우가 종이를 접으려는 순간 한 인부가 다가왔다. 연기를 마신 탓에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전주님. 그 술이 몸을 풀어준다니…… 산 아래 제 아버지께도 한 잔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인부는 방금 받은 품삯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종이에 적힌 한 병 값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다.

준우는 은자를 받는 대신 인부의 손을 닫아 주었다.

“아버님이 어디가 편찮으신지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다른 손에 들린 선주문서가 구겨졌다. 빙화주 옆의 빈 가격 칸에 먹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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