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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25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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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불타는 샤토

폐광의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새벽바람은 서늘했지만 그 안에 실린 냄새는 몹시도 뜨겁고 날카로웠다.

준우는 말에서 내려 폐광 어귀의 돌무더기 앞에 섰다. 차가운 흙먼지 냄새 사이로 폐부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번져왔다.

정제 유황과 마른 쑥 그리고 암반 틈새에 숨겨둔 기름 먹인 짚단의 냄새였다.

"놈들이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준우의 낮은 경고에 설아가 말안장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녀의 손이 허리춤의 검자루에 닿자 서늘한 냉기가 새벽안개를 밀어냈다.

"술성의 정문 쪽은 조용합니다. 환기구 쪽인가요?"

"예. 불을 지르려면 산바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상부 통풍 갱도를 노릴 겁니다. 바람길을 타고 연기와 불길을 아래로 밀어 넣으면 숙성실 안의 사람들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질식합니다."

그때 갱도 입구 곁에 마련된 목책 안쪽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이익! 끽!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던 어린 화염 원숭이가 쇠창살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날뛰고 있었다. 붉은 꼬리 끝의 불씨가 파랗게 타오르며 허공을 어지럽게 갈랐다.

남부 분타에서 데려온 뒤 늘 구석에 웅크려 과일만 축내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털을 바짝 곤두세운 채 폐광 위쪽 환기 갱도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불길의 기운을 먼저 맡았구나."

준우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우리의 빗장을 뽑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붉은 털의 원숭이는 번개처럼 튀어나가 갱도 외벽을 타고 위로 치솟았다. 녀석의 꼬리에서 튀는 작은 불티가 어둠 속에서 선명한 궤적을 그렸다.

"따라오십시오!"

설아의 외침과 함께 백화전 호위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환기 갱도 비탈을 박찼다.

퍼엉!

그 순간 갱도 상부의 환기 통로에서 귀청을 찢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검붉은 화염이 새벽하늘을 향해 분수처럼 솟구쳤다. 흙과 자갈이 비 오듯 쏟아졌고 뒤이어 짙은 검은 연기가 거대한 뱀처럼 갱도 입구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름단지다! 불을 꺼라!"

"위쪽에 자객들이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환기구 주변 바위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불붙은 화살과 끈적한 발화유가 담긴 토기가 들려 있었다.

슈슈슉!

수십 발의 불화살이 술성 입구와 목재 적재장으로 비 오듯 쏟아졌다.

"물러서라!"

설아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허공에 서리 맺힌 얼음 장막이 펼쳐지며 쏟아지던 불화살들을 모조리 얼어붙게 만들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검풍에 휘말린 복면 자객 셋이 비명을 지르며 바위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하지만 이미 환기구를 통해 쏟아부어진 기름은 갱도 안쪽으로 활활 타오르며 번져 내려가고 있었다.

화르륵! 콰아앙!

바람길을 탄 불길이 갱도 벽의 건조한 삼나무 판재에 옮겨붙으며 순식간에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위철 님과 목수들이 아직 안에 있습니다!"

석덕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새벽 발효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위철과 노칠 그리고 통을 손보던 목수 장덕과 인부 열두 명이 중앙 숙성실 안쪽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겠다!"

설아가 얼음 같은 진기를 끌어올리며 갱도 안으로 몸을 던지려 했다.

"안 됩니다! 불길에 맞서 진기를 쏟으면 갱도 안의 산소가 먼저 타버려 안쪽 사람들이 질식합니다!"

준우가 설아의 소매를 낚아채며 제지했다.

그때 갱도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원숭이 울음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끼익! 쾅! 쾅!

원숭이는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기가 덜 찬 바닥 틈새를 기어 들어가 숙성실 안쪽 침소와 작업장 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불이다! 밖에서 불이 났다!"

"문이 막혔다! 숨이 안 쉬어진다!"

잠에서 깬 인부들의 비명과 기침 소리가 갱도 밖까지 새어 나왔다.

준우는 폐광 입구의 배수 홈을 짚었다. 손끝에 차가운 습기가 만져졌다.

"배수로입니다. 지난번 양조장을 지을 때 뚫어놓았던 북쪽 암반의 냉기 수맥 배수로를 따라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는 물이 흐르고 있어 연기가 차지 않았습니다."

준우는 젖은 멍석을 집어 들어 머리에 뒤집어썼다.

"전주님! 위험합니다!"

석덕이 말렸지만 준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가운 진흙 물이 흐르는 배수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설아 낭자는 밖의 환기구 화재를 제압하고 물길을 배수로 쪽으로 꺾어 주십시오! 내가 사람들을 끌어내겠습니다!"

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살아 나오셔야 합니다."

설아의 검 끝에서 차가운 빙한검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환기구를 포위하던 복면인들을 쓸어 담았다.

준우는 허리를 숙인 채 좁은 배수 통로를 기어갔다.

머리 위 천장에서는 암반이 열기에 갈라지며 투두둑 돌가루가 떨어졌다. 유황과 탄내 그리고 타오르는 삼나무의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지만 바닥으로 흐르는 차가운 지하수가 그나마 숨 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배수구 끝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중앙 숙성실은 이미 붉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며칠 밤을 새워 건조하고 벼락 대나무 테를 감아 만든 고대 삼나무 통들이 불길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통! 내가 만든 통이……!"

목수 장덕이 넋이 나간 채 불타는 숙성 통을 향해 맨손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장덕 씨 멈춰요!"

위철과 노칠이 그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지만 장덕은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 쳤다.

"저게 어떤 통인데! 저걸 다 태우면 우리는 어찌 살란 말이오! 저 안에는 천마께 올릴 원주가 들어 있단 말이오!"

그을린 포도즙이 담긴 시험용 항아리들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펑펑 터져 나갔다. 달콤하고 묵직한 적양포의 향기가 매캐한 연기와 섞여 기이하게 타올랐다.

준우가 달려들어 장덕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챘다.

찰싹!

매서운 손바닥 소리가 불길 속을 갈랐다. 장덕이 멍한 눈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정신 차리십시오!"

준우의 목소리는 타오르는 화마 속에서도 얼음처럼 차갑고 단호했다.

"술은 다시 빚으면 됩니다. 통도 다시 깎으면 됩니다. 하지만 당신들 목숨은 한 번 타버리면 어디서도 다시 빚어낼 수 없습니다!"

"전 전주님……."

"원주는 버립니다. 단 한 방울도 챙기지 말고 당장 내 뒤를 따르십시오! 사람부터 살아야 다음 술이 있는 겁니다!"

준우의 일갈에 울부짖던 장덕과 겁에 질려 있던 인부들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배수로 쪽으로 가십시오! 젖은 천으로 입을 막고 허리를 바닥에 붙여 기어가야 합니다!"

노칠과 위철이 앞장서서 부상당한 인부들을 부축해 차가운 물이 흐르는 배수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인부들이 차례로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는 사이 천장의 거대한 받침목 하나가 쩌적 갈라지며 불길을 머금은 채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쿠콰콰쾅!

"끼야아악!"

퇴로 한구석에 갇혀 있던 원숭이가 무너진 불기둥 너머에서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붉은 털이 불씨에 그을리고 있었다.

"적화야!"

준우는 망설임 없이 불타는 목재 더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옷자락에 불이 붙는 뜨거운 열기가 덮쳐왔지만 준우는 바닥의 차가운 진흙물을 끼얹으며 손을 뻗었다. 잿더미 속에 웅크려 떨고 있던 원숭이를 품에 안아 젖은 멍석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바로 위 천장의 거대한 암반이 불길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통째로 내려앉았다.

쿠구구구궁!

피할 곳이 없었다. 준우는 원숭이를 품에 꽉 끌어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솨아아아아!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빙설의 기운이 준우의 머리 위를 덮쳤다.

눈을 뜨자 푸른빛의 서릿발 검막이 무너져 내리던 거대한 바위와 불기둥을 얼려 붙인 채 공중에 멈춰 세우고 있었다.

설아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 위로 식은땀과 선혈이 흘러내렸다. 위장병의 내상을 억누른 채 극한의 빙한검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서 나가십시오!"

설아의 입술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설아 낭자!"

준우는 원숭이를 안은 채 설아의 허리를 부축했다.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불기둥 사이를 뚫고 마지막으로 배수 통로를 빠져나왔다.

쿠콰콰콰쾅!

그들이 갱도 밖으로 몸을 던지자마자 술성의 중앙 숙성실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와 검은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폐광 앞마당을 뒤덮었다.


아침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붉게 떠오를 무렵 사납게 날뛰던 불길은 마침내 잦아들었다.

백화전 호위대와 인부들이 외곽 방화 수로의 물을 끌어와 잔불을 모두 껐지만 눈앞에 남은 것은 참혹한 폐허였다.

신설 양조장 술성의 선별장과 제1 숙성고는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산비탈에 흩어진 복면 자객 일곱 명은 설아의 검과 호위대의 활에 제압되어 포박되거나 사살되었다.

인부들은 타버린 갱도 입구에 주저앉아 멍하니 잿더미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 타버렸어…… 수개월 동안 피땀 흘려 깎은 오크통도 잘 익어가던 적양포 원주도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어……."

장덕이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준우는 그을음투성이가 된 얼굴로 인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맥과 호흡을 살폈다.

화상을 입거나 연기를 마셔 기침을 하는 자는 있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지 마십시오 장덕 씨."

준우는 장덕의 어깨를 단단히 쥐었다.

"우리가 지켜낸 것은 가장 소중한 밑천입니다. 당신의 두 손이 살아 있고 위철 님의 눈이 살아 있고 노칠 님의 발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이 남아 있다면 양조장은 내일이라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준우의 차분하고 힘 있는 목소리에 흐느끼던 인부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준우는 품 안에서 떨고 있던 작은 원숭이를 내려놓았다. 털이 군데군데 그을렸지만 녀석은 준우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작은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우리를 살린 것은 바로 이 녀석입니다."

준우는 원숭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너의 이름은 적화(赤火)다. 오늘부터 너는 백화전의 소중한 식구다."

적화가 알아들은 듯 갸르릉 소리를 내며 준우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때 설아가 피 묻은 소매를 부여잡고 다가왔다.

"자객들의 품에서 나온 물건들입니다."

설아가 건넨 것은 반쯤 불탄 단검과 은화 그리고 검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작은 약병이었다.

준우는 약병의 마개를 조심스럽게 열고 냄새를 맡았다.

순간 준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매캐한 불내음 뒤편으로 끈적하고 비릿한 피 냄새와 사람의 체온에서 썩어가는 듯한 기괴한 발효취가 흘러나왔다.

단순한 무림의 독약이 아니었다.

'피를 발효시킨 약재…….'

인간의 피와 내공을 착취해 술을 빚는다는 어둠의 비사 속 흔적이 불길의 잔해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우는 서늘하게 식어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타버린 숙성고의 잿더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발밑에서 깨진 항아리 조각과 숯이 된 삼나무 판재들이 바스락거렸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끝장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잿더미 한가운데 주저앉은 준우의 코끝으로 아주 기이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화마의 열기에 까맣게 그을려 터져버린 적양포의 짙은 당분.

그리고 불에 타면서 속살의 송진을 뿜어낸 삼나무의 짙은 훈연향.

두 기운이 잿더미의 열기 속에서 엉겨 붙으며 지금껏 중원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독특하고 깊은 스모키 빈티지의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준우는 그을린 포도 한 알을 주워 손가락으로 으깼다.

손끝에 묻어나는 검붉은 즙에서 쌉싸름한 훈연의 탄닌과 응축된 과실의 단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준우가 잿더미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아침 햇살과 같은 단단한 불꽃이 타올랐다.

"이 불길 속에서 가장 위대한 술이 태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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