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24화 술 빚는 자의 책임
백화전 의원실의 문턱을 넘자마자 살이 타는 냄새와 차가운 피 비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침상 위에는 북문 달무리 주막에서 실려 온 사내 둘이 누워 있었다. 한 사내의 입술은 서리 맞은 가지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고 다른 사내의 가슴팍은 붉은 반점이 돋아 거칠게 들썩였다.
백화전 전속 의원이 놋사발에 담긴 탕약을 급히 들이밀었다.
"화기를 돋우는 건양탕(乾陽湯)을 억지로라도 먹여야 합니다. 몸 안이 꽁꽁 얼어붙어 맥이 끊어지려 합니다!"
"멈추십시오."
준우가 의원의 손목을 가로막았다. 탕약에서 풍기는 짙은 유황과 부자 냄새가 환자의 입김과 부딪치며 날카로운 열기를 뿜어냈다.
"지금 열성 탕약을 부으면 뱃속에서 기맥이 찢어집니다."
"전주님! 사내의 손발이 이미 차갑게 굳어가고 있습니다. 한기를 몰아내지 않으면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합니다!"
"얼어붙은 게 아닙니다. 적염마근의 열기와 흑한초의 냉기가 서로 엉켜서 길목을 틀어막은 겁니다."
준우는 파랗게 질린 사내의 명치에 손을 얹었다. 겉은 차가운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명치 안쪽 깊은 곳에서는 불덩이 같은 고열이 꿈틀거렸다.
"억지로 열을 더하면 안쪽의 불이 밖의 얼음을 부수면서 내장을 태웁니다. 반대로 찬물을 부으면 겉의 얼음이 안쪽의 불을 가두어 단전이 터집니다."
의원이 멍하니 손을 멈췄다.
준우는 뒤쪽 구석에 포승줄로 묶인 채 꿇어앉아 있는 곽노를 돌아보았다. 늙은 전임 전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의 핏자국만 응시하고 있었다.
"곽노."
준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서늘했다.
"당신이 짠 가짜 술의 배합비를 말하십시오. 적염마근 가루와 흑한초 침출액을 어떤 비율로 섞었습니까."
곽노의 메마른 입술이 잘게 떨렸다.
"나…… 나는 모른다. 죽이려던 게 아니었소. 백화전에서 쫓겨나고 빚쟁이들이 어린 손녀의 목숨까지 위협했소. 돈을 준다는 자가 시키는 대로 병을 씻고 마개를 맞췄을 뿐이오."
"변명을 듣겠다는 게 아닙니다."
준우는 곽노의 멱살을 잡고 침상 바로 앞으로 끌어당겼다.
피를 토하며 경련하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가 곽노의 귓전에 닿았다. 사내의 손톱 밑이 검붉게 물들어 뜯겨 나가고 있었다.
"보십시오. 당신이 병을 씻고 마개를 닫아서 내보낸 결과입니다. 저 사람들이 마신 게 무엇인지 당신 손이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 나는……."
"살리고 싶지 않습니까? 여기서 고개를 돌리고 목이 잘리면 당신은 그저 사람을 독살한 파렴치한 죄인으로 남을 뿐입니다. 입을 여십시오!"
곽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가락을 떨며 더듬더듬 말을 뱉어냈다.
"적염마근 분말 셋…… 흑한초를 맹물에 하루 우려낸 즙 하나요. 거기에 묵은 탁주를 다섯 섞었소. 발효를 거치지 않고 그냥 가루를 술에 개어 넣었소."
"단맛을 감추려 무엇을 넣었습니까."
"마른 수수 엿을…… 엿을 태워 단내를 덮었소."
준우는 즉시 석덕을 돌아보았다.
"석덕아! 볶은 메밀을 빻아 차가운 청련근 수액에 타 오너라. 꿀이나 설탕은 일절 넣지 말고 매실 발효액의 맑은 윗물만 석 잔 섞어라."
"예, 전주님!"
석덕이 바람처럼 뛰어나갔다.
준우는 곽노의 포승줄을 단검으로 끊어 주었다. 설아가 검자루를 쥐며 경계했지만 준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손을 씻고 이 사발을 들으십시오."
"내, 내가 말이오?"
"당신이 빚은 독입니다. 당신 손으로 넘기십시오."
석덕이 가져온 메밀 청련근 액을 곽노의 떨리는 손에 쥐여 주었다. 볶은 메밀의 구수한 탄내와 청련근의 맑은 풀 냄새가 매실의 은은한 산미를 타고 피어올랐다.
준우는 사내의 턱관절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하고 곽노가 숟가락으로 천천히 액체를 흘려 넣도록 지도했다.
"한 번에 삼키게 하지 마십시오. 혀뿌리를 적시고 목구멍 안쪽의 열기를 메밀가루로 흡착시켜 넘겨야 합니다."
약물이 한 모금씩 넘어가자 사내의 경련하던 가슴이 점차 잦아들었다. 푸르스름하던 입술에 희미하게 핏기가 돌기 시작했고 거칠던 호흡이 길고 고른 숨으로 바뀌었다.
다른 침상의 사내에게도 같은 처방을 세 차례 반복하자 지독하던 열기가 가라앉으며 안정을 찾았다.
의원이 사내의 손목을 짚어보고는 감탄 어린 탄성을 뱉었다.
"맥이…… 기맥의 상충이 멎었습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곽노는 사발을 든 채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굳은살 박인 두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빚 때문에 눈이 멀었든 협박을 받았든 술을 다루는 자가 술의 무게를 잊으면 독사가 됩니다."
준우는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죽는 것으로 빚을 털 생각은 버리십시오. 당신은 살아서 이들이 완전히 완쾌될 때까지 병상을 지키고 신교 바깥에 퍼진 가짜 술을 단 한 병도 남김없이 회수해야 합니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소. 죗값을 치르게만 해 주시오."
곽노가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흐느꼈다.
그때 설아가 다가와 준우의 곁에 섰다.
"북문 마차에서 압수한 네 병과 주막의 여덟 병은 전량 회수되어 의원실 창고에 격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삼각 표식의 두 번째 경로가 남아 있습니다."
곽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장로회 물류선이오! 오늘 밤 자정에 북부 수로 선착장에서 보급선 한 척이 외곽 분타로 출항하오. 거기에 가짜 병입용 대수나무 마개와 원료 상자가 실려 있소!"
준우와 설아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출항까지 반 각도 남지 않았습니다."
설아가 칼집을 고쳐 쥐었다.
"가시지요. 장로회의 배라면 내 검이 길을 열어야 할 겁니다."
북부 수로 선착장은 검은 강물 위로 짙은 물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선착장 한편에 돛을 반쯤 올린 중형 평저선이 정박해 있었고 인부들이 횃불 아래에서 무거운 나무 상자를 분주히 나르고 있었다.
"서둘러라! 자정이 지나면 수문이 닫힌다!"
배의 갑판 위에서 장로회 특유의 흑색 비단 도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호통을 치고 있었다. 장로회 물류 집사 조우였다.
"멈추어라!"
설아의 서늘한 외침과 함께 서릿발 같은 검기가 선착장 바닥을 가르고 지나갔다. 짐을 나르던 인부들이 기겁하며 상자를 떨어뜨렸다.
조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난간을 짚었다.
"우호법? 한밤중에 장로회의 정기 보급선에 웬 무례요?"
"백화전의 유출 물품이 이 배에 실려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배를 수색하겠다."
"허튼소리! 이 배는 대장로전의 공식 인가를 받은 물류선이오. 백화전 나부랭이가 건드릴 권한이 없소!"
조우가 품에서 붉은 술이 달린 금속패를 꺼내 흔들었다. 대장로 혁련광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운송패였다.
장로회의 호위 무사 열두 명이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설아와 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착장의 공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준우는 무사들의 칼끝을 피하지 않고 갑판 아래 적재 구역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강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냄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비린 강물 냄새와 젖은 밧줄 냄새 속에서 미세하게 튀는 이질적인 향이 잡혔다.
모래 속에서 급하게 불로 구워낸 대수나무의 떫은 탄내.
그리고 밀폐된 궤짝 틈으로 새어 나오는 설익은 적염마근의 매캐한 훈연향이었다.
준우는 세 번째 짐칸에 쌓인 붉은 칠이 된 궤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궤짝들을 내리십시오."
조우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무슨 짓이냐! 저것은 남부 분타로 가는 고급 약재 상자다!"
"약재 상자에서는 마른 삼나무 향이나 백지 향이 나야 합니다. 하지만 저 상자에서는 불법 벌목한 대수나무를 모래에 볶아 만든 마개 가루 냄새가 납니다. 바닥 틈새로는 적염마근 가루가 기름에 젖어 썩어가는 냄새가 번지고 있습니다."
준우의 단호한 지적에 조우의 턱 밑이 파르르 떨렸다.
"냄새 따위로…… 억지를 부리지 마라!"
"억지인지 아닌지는 열어 보면 압니다. 만약 내 말이 틀리다면 백화전주의 직을 걸고 대장로님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겠습니다. 하지만 열지 못하겠다면 당신이 직접 가짜 술의 공범임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설아가 검끝을 조우의 목젖 바로 앞에 겨누었다.
"열어라."
조우는 설아의 서슬 퍼런 살기에 짓눌려 침을 꿀꺽 삼키며 손짓했다.
인부들이 겁에 질려 붉은 궤짝의 뚜껑을 뜯어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리자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약재가 아니었다. 규격에 맞지 않게 조잡하게 깎아낸 수백 개의 벌림 대수나무 마개와 흑한초와 적염마근을 함부로 짓이겨 담은 밀랍 단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호위 무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 집사. 대장로전의 운송패를 들고 이런 독극물을 실어 나른 연유가 무엇인가?"
설아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조우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소, 소인은 모릅니다! 며칠 전 대장로전의 직인을 찍은 서찰과 거액의 금표를 든 사내가 찾아와 이 궤짝들을 남부 분타 인근의 폐창고로 옮겨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대장로님의 명인 줄 알고……!"
"사내의 얼굴을 보았느냐?"
"얼굴을 깊게 가리고 있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매 안쪽에 푸른 실로 짠 매화 자수가 얼핏 보였습니다!"
준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푸른 실…… 매화.'
장로회 시음당에서 보았던 혁련광의 빈 잔, 그리고 지하 준비실 자객의 어금니에 새겨져 있던 흔적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고리로 이어졌다.
새벽 세 시, 백화전 본관 심문실.
압수한 선적 명부와 곽노가 보관하던 장부 조각, 그리고 조우가 받았던 은화 주머니가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졌다.
설아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대장로가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대장로전의 명의를 도용해 장로회와 백화전의 싸움을 붙이려 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준우는 조우가 받았다는 비단 주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이 주머니에서는 묵은 궤짝 냄새와 함께 마른 쑥, 그리고 유황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유황?"
"예. 가짜 술을 만들어 파는 자들이 쓸 재료가 아닙니다. 불을 지르거나 화약을 다룰 때 쓰는 정제 유황의 잔향입니다."
준우는 삼각 표식이 찍힌 장부들을 바닥에 펼쳐놓았다.
"삼각 표식의 첫 번째는 북문 주막을 통한 가짜 술 유통이었습니다. 백화전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사망자를 내어 신교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는 미끼였지요."
"두 번째는 장로회 물류선을 이용해 자재를 빼돌리며 대장로파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함정이었고."
설아가 말을 받았다. 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경로는 어디겠습니까?"
심문실 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곽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사내가…… 내게 마지막으로 돈을 건네며 이런 말을 했소. 조만간 백화전의 모든 양조 시설이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가 될 터이니 그전에 원주를 빼돌릴 수 있으면 열 배의 값을 쳐주겠다고."
설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북부 폐광의 술성……!"
"예. 저들의 진짜 목표는 가짜 술 몇 병을 파는 게 아닙니다. 가짜 술 소동으로 우리의 시선과 경계 병력을 북문과 장로회로 분산시켜 놓은 뒤 신설 양조장인 술성을 통째로 불태우려는 겁니다."
준우의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긴장감이 서렸다.
술성은 천마의 주화입마를 다스릴 빙화주와 향후 신교의 치료주를 생산할 핵심 거점이었다. 그곳이 불타면 수개월간의 모든 노력이 잿더미로 변하고 만다.
석덕이 다급히 외쳤다.
"전주님! 그럼 지금 당장 술성으로 가야 합니다!"
"서두르되 당황해서는 안 된다."
준우는 차분하게 상황을 정돈했다.
"곽노는 북문 주막 피해자들의 구휼과 가짜 술 전량 폐기 작업을 맡겨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감시관을 붙여 속죄의 기회를 다하게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전주님."
곽노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준우는 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 낭자, 술성 주변의 방화 수로를 즉시 점검하고 외곽 경계를 최상급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놈들은 우리가 가짜 술을 수습하느라 방심한 지금 이 새벽을 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직속 호위대를 즉시 술성으로 이동시키지요."
동쪽 하늘이 잿빛에서 옅은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시각.
준우와 설아는 말을 달려 북부 폐광의 술성 어귀에 도착했다.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새벽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공기 속에 아주 미세한 이질감이 섞여 있었다.
마른 볏짚 냄새.
그리고 돌 틈새에 숨겨진 기름 먹인 천의 냄새.
준우는 말에서 내려 폐광 입구의 바람길을 응시했다.
진짜 빙화주 첫 병이 잠들어 있는 봉인실은 아직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뒤편 산 그림자 속에서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양조장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술을 탐욕과 파괴의 도구로 쓰려 한다.
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술 항아리가 아니라 그 술을 함께 빚고 마실 사람들의 삶이었다.
산바람 속에서 마른 불씨의 냄새가 짙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