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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되었는데 용사가 내 제자2화

마왕이 되었는데 용사가 내 제자

마왕이 되었는데 용사가 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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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결투 전에 밥부터

"일단 그거 내려놓고 앉아."

도윤은 입에 물고 있던 숟가락을 뺐다.
소년은 목검을 더 높이 들었다. 칼끝이 코앞에서 잘게 흔들렸다.

"마왕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정정당당한 결투를 신청한다!"

"의자에 앉으라는 게 그렇게 사악한 명령이냐."

"방심시키려는 속셈은 안다!"

소년이 발을 내디뎠다.

부츠 앞코가 망토 자락을 밟았다. 목검이 코를 스치기도 전에 아이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이가 넘어지는 쪽에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도윤은 숟가락을 내던지고 소년의 망토를 붙잡았다.

"목! 목 졸린다!"

"그럼 발부터 빼!"

도윤이 옷깃 대신 겨드랑이를 받치자 소년은 버둥거리며 발을 뺐다.
목검 끝이 냄비 귀를 때렸다. 국물이 한 줄 튀어 도윤의 손등에 떨어졌다.

"아뜨!"

간신히 아이를 세운 도윤은 손등을 털었다.
소년은 목검을 끌어안은 채 화덕과 도윤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막을 수 있었다."

"그래. 냄비가 네 검을 잘 막더라."

도윤은 바닥의 숟가락을 집어 물통에 담갔다. 이번에는 벽 쪽 의자를 끌어내 화덕에서 멀찍이 놓았다.

"여기. 검은 들고 있어도 되니까 앉아."

소년이 침을 삼켰다. 냄비 쪽으로 눈길이 갔다가 급히 돌아왔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 용사는 굶주림 따위에……"

꼬륵.

도윤의 등 뒤에서 낮은 현악기 소리가 따라 울었다.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남의 배 속 사정에 반주까지 넣을 필요는 없었다.

"내 배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그럼 검이 배고픈가 보네. 일단 같이 앉아."

도윤이 그릇을 꺼내자 소년이 반걸음 물러섰다.

"그 안에 든 게 뭐지?"

"감자. 버섯. 소금은 거의 안 남아서 조금."

"사람을 홀리는 약은?"

도윤은 냄비 바닥에 들러붙은 감자를 국자로 긁었다.

"그런 거 살 돈이면 고기를 넣었지."


소년은 여전히 서 있었다.

도윤은 찬장에 남은 숟가락 하나를 꺼냈다. 국물을 떠서 불어 먹은 뒤 같은 냄비에서 작은 그릇에 한 국자 담았다.

"봤지?"

"마왕은 독을 먹어도 멀쩡할 수 있다."

그건 도윤도 몰랐다.
오늘 생긴 뿔조차 아직 어디에 부딪히는지 파악 중인데 독까지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윤은 그릇을 탁자 가장자리에 놓고 자기 의자를 뒤로 물렸다.

"먹을지는 네가 정해. 식으면 맛은 더 없어져."

소년의 시선이 그릇에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 목검을 탁자 옆에 기대고 의자 끝에 앉았다. 손을 뻗으면 검자루가 닿는 자리였다.

"식사 중에는 공격하지 않겠다."

"고맙다. 나도 식사 중에 죽는 건 싫어."

도윤이 씻은 숟가락을 건넸다.
소년은 두 손을 모았다. 아주 짧은 기도를 마친 뒤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목소리에 도윤이 눈을 깜빡였다.
감자 한 조각이 아이의 입에 들어갔다. 곧이어 눈가가 붉어졌다.

도윤은 가슴이 조금 먹먹해졌다.

"그렇게 배가……"

"뜨, 뜨거……"

도윤이 급히 물컵을 밀어 주었다.

"뱉어! 아무 데나 뱉어도 돼!"

아이는 끝내 감자를 삼키고 물을 마셨다. 혀를 내민 채 숨을 쉬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아무도 안 뺏어 먹으니까 조금씩 떠."

이번에는 숟가락 위의 감자를 잘게 갈랐다. 숨이 찰 만큼 후후 분 다음 입에 넣었다.
혀가 데지 않는 걸 확인하자 다음 숟가락이 빨라졌다.

도윤은 제 그릇에 국물부터 담았다.
한 사람 먹을 양이었다. 두 사람이 먹으려면 감자 개수보다 국물 높이를 보는 편이 마음에 좋았다.

"너 이름은?"

소년이 허리를 세웠다.

"성검의 계시를 받은 용사 루안 베르다!"

감자 부스러기가 입술에 붙어 있었다.
도윤이 제 입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루안이 서둘러 닦았다.

"그래. 루안. 밥 먹을 때는 그냥 이름만 말해도 돼."

"……알겠다."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야?"

"아침에 빵을 먹었다."

"점심은?"

루안이 숟가락 끝을 입에 문 채 눈을 굴렸다.

"멈췄다가 기운을 놓칠까 봐."

도윤은 아이 쪽으로 더 기울어졌던 냄비를 바로 세웠다.
이쪽은 제 집에서 감자를 삶고 있었는데 저쪽은 한 끼를 굶어 가며 달려온 셈이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뭘 놓쳐."

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루안은 대답 대신 숟가락을 움직였다.

루안의 숟가락이 빈 그릇 바닥을 긁었다.
아이는 그 소리에 놀란 듯 손을 멈췄다.


"몇 살인데 혼자 다녀?"

"열셋이다."

도윤은 국자를 쥔 채 잠시 서 있었다.

"같이 온 어른은?"

"없다. 마왕의 기운이 느껴져서 먼저 왔다."

"그럼 널 찾겠네. 어디로 가면 돼?"

루안의 손이 탁자 아래로 내려갔다. 목검의 손잡이를 찾는 동작이었다.

"돌아가지 않는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연락이라도 하지."

"신전 고아원. 하지만 마왕을 베기 전에는 안 돌아간다."

아이의 엄지가 검자루를 문질렀다.
도윤은 빈 그릇을 가리켰다.

"더 먹을래?"

루안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용사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 굶는 것도 참을 수 있다."

"아까는 감자가 뜨겁다고 눈물 나더라."

"그건 뜨거워서……"

"배고픈 건 배고파서 힘든 거고."

국자가 냄비 바닥에 닿았다.
루안은 남은 감자 두 조각을 보다가 도윤의 그릇을 보았다. 맑은 국물에 버섯 조각 하나가 떠 있었다.

"마왕은 감자를 먹지 않나?"

"먹어. 아주 잘 먹어."

도윤은 대답하고 나서 혀를 찼다. 아이가 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겨 감쌌다.

"이만하면 됐다. 싸울 수 있다."

"먹었다고 바로 싸우면 토해. 그럼 또 청소해야 하고."

도윤은 국자를 내려놓았다.
침상 밑에 감춰 둔 금화 주머니로 눈길이 갈 뻔했다. 돌려줘야 할 돈이었다. 설령 그걸 쓴다고 해도 지금 냄비에 감자가 생기지는 않았다.
루안은 도윤의 손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은 강도윤이야. 아르그렌 말고."

"계시에서는 마왕을 베라고 했다."

"이름까지 바꾸라고는 안 했잖아."

루안은 반박할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도윤이 식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던전에서 청소 일을 했어. 네 망토에서 떨어진 흙 보니까 일 끝난 기분도 안 든다."

루안의 발이 의자 아래로 오그라들었다.

"마왕이 청소를?"

"안 하면 누가 해 줘."

루안은 바닥의 흙자국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마왕을 못 베면…… 용사를 잘못 뽑았다고 할까?"

도윤의 손안에서 컵이 기울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어?"

"그런 건 아니다. 다들 내가 사람들을 구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빨리 해야 한다."

도윤은 컵을 탁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루안이 벌써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컵 바닥이 소리 없이 탁자에 닿았다.

"네가 잘못 왔다는 말은 아니야."

도윤은 목소리를 낮추고 국자를 다시 들었다.

"오늘 네가 구해야 할 사람에 너도 넣어."

루안이 눈을 들었다.

"나는 용사인데."

"그러니까 용사도 먹어야지."

도윤은 남은 감자를 하나씩 나눠 담았다.
제 그릇에도 건더기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루안의 손이 조금 풀렸다.

"더 먹어도…… 되는 건가?"

"응."

"먹으면 뭘 해 줘야 하지?"

"없어. 식비로 목숨 달라는 집 아니야."

루안은 그릇을 밀어 주었다.
도윤은 아이 쪽에 남은 국물을 부었다. 루안이 양손으로 따뜻한 그릇을 감쌌다.

이번에는 숟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빈 그릇 두 개를 포개자 루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다. 강도윤."

"식사 인사는 그 말투로 배우진 않았을 텐데."

"잘 먹었습니다."

허리를 굽힌 아이가 목검을 집었다.

"그러면 이제 결투를…… 아야."

손잡이를 쥔 손이 움찔했다.
나무가 갈라진 곳에서 가시 하나가 삐죽 나와 있었다. 엄지 아래에 붉은 점이 맺혔다.

도윤은 손을 내밀었다.

"줘 봐."

루안이 검을 뒤로 뺐다.

"빼앗을 생각인가?"

"고칠 생각이다. 네 검은 주인부터 찌르잖아."

루안은 목검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칼날 부분을 잡고 손잡이를 내밀었다.

도윤은 잡역용 칼로 거스러미를 얕게 깎았다.
목검에는 새로 생긴 상처보다 손때가 깊이 밴 흠집이 더 많았다. 손잡이를 바꾸려면 도구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찬장 밑에서 깨끗한 헝겊을 꺼내 길게 찢었다.

"아주 세게 쓰면 또 갈라져. 오늘은 이 정도만."

천을 감는 동안 루안이 문가로 갔다.
문을 닫으려 했지만 빗장 받침이 찢어진 나무에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밀 때마다 아래쪽이 바닥에 긁혔다.

루안이 양손으로 문짝을 들었다.

"이건 내가 했다."

"그건 나도 봤어."

"고치겠다."

도윤은 천 끝을 끼워 넣고 일어났다. 목검은 루안의 손이 닿는 탁자 위에 놓았다.

"혼자 들지 말고 옆으로 비켜. 손 끼인다."

문을 함께 들어 올리자 빠져나왔던 아래 경첩이 제자리에 걸렸다.
도윤이 망치로 못을 두드리는 동안 루안은 문짝을 받쳤다. 이번에는 망토 자락을 한쪽 팔에 걷어 올리고 있었다.

찢어진 빗장 받침은 고치지 못했다.
도윤은 문을 밀어 보았다. 적어도 바닥에는 걸리지 않았다.

"이제 되나?"

"내일 받침은 새로 달아야 해. 오늘은 살살 닫고."

루안은 문을 다 고쳤다는 말을 기다리는지 손을 떼지 않았다.
팔이 조금씩 내려가는데도 다시 힘을 주어 버텼다.

"이제 놔도 돼."

그제야 손을 뗀 아이가 팔을 망토 안으로 감췄다.
도윤은 열린 문 너머로 어두워지는 숲을 보았다. 길에서 또 쉬지 않고 걷겠지. 누구도 멈춰도 된다고 해 주지 않으면.

오늘은 혼자 돌려보낼 수 없었다.

"신전에 돌아가는 얘기는 쉬고 나서 하자."

루안의 시선이 탁자 위 목검으로 갔다.
도윤은 잠깐 눈을 감았다. 잠자리를 마련하기 전에 저 검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일단 네가 검 들고 서는 것부터 보자."

"결투를 받아 주는 건가?"

"아까는 네가 냄비를 노린 건지 나를 노린 건지도 모르겠더라."

루안이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휘두르지 말고 밖으로 나와. 가까이서 볼 테니까."

도윤이 먼저 문턱을 넘었다.
문턱 너머 흙마당에는 도끼질하던 나무 밑동이 하나 있었다. 그는 밑동 옆에 쪼개 둔 장작을 치워 자리를 만들었다.

루안이 목검을 들고 따라왔다. 손잡이에 감긴 천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다."

"휘두르지는 말라니까. 발부터……"

목검의 닳은 끝에서 가느다란 흰빛이 새어 나왔다.

도윤의 말이 멎었다.
루안이 검을 놓칠 뻔했다. 천을 움켜쥔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이 혼자 펴져 있었다.
가시에 찔린 엄지가 아니었다.

"손이 왜 그래?"

"괜찮다. 가끔 저리는 것뿐이다. 힘을 더 주면……"

흰빛이 한 번 길어졌다.

도윤은 아이의 팔꿈치를 받쳤다.

"힘주지 마. 검 내려놔."

루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검을 쥔 손은 펴지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목검 끝의 빛은 한 뼘 더 뻗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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