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왕입니다만?! : 현대 힐링 라이프를 방해하지 마라

7화: 마왕의 중고거래
도현은 빈 컵라면 용기 옆에 검은 돌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화면에는 먹다 남은 국물 자국이 더 크게 나왔다.
"물건보다 그릇이 돋보이는군."
그는 용기를 치우고 돌을 흰 수건 위에 올렸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에 바닥이 납작한 광석이었다. 헬하임의 서재에서 바람에 문이 닫히지 않도록 받쳐 두던 물건이었다.
낡은 가방에는 깨진 장식과 돌붙이가 더 있었지만 이것이 가장 얌전했다. 칼날에 박았던 장식은 인간이 건드리면 손가락부터 얼어붙을 수 있었다.
협탁의 종이봉투를 밀어 치웠다. 마왕교의 조잡한 명령이 남은 검은 돌 조각까지 팔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을 남에게 넘겼다가 전기가 또 끊기면 자기 손해였다.
도현이 광석 표면을 쓸었다. 새어 나오던 마력이 돌 안쪽으로 눌렸다.
공유기 불빛이 한 번 흔들렸다.
그는 손끝의 힘을 줄이고 불빛이 일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사진 한 장 찍자고 와이파이를 희생할 수는 없었다.
[마나스톤 팝니다. 문받침으로 사용. 30,000원.]
주변 판매 글을 보고 붙인 가격이었다. 반짝이는 장식용 돌도 이만 원을 받는데 진짜 마력이 든 돌이면 삼만 원은 받아야 했다.
마계라는 출처는 빼고 장식용품 칸을 골랐다. 문을 받쳤으니 생활용품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감정. 확인 후 가격 협의. 직접 가지러 오십시오.]
다른 글에서 본 문구까지 덧붙였다. 게시 버튼을 누르자 곧 채팅이 왔다.
[태식마공: 원석 맞습니까? 감정서 있나요?]
[없다.]
[태식마공: 출력 확인도 안 된 거면 유리일 수도 있어서요.]
도현은 돌과 화면을 번갈아 봤다.
문은 삼백 년 동안 멀쩡하게 받쳤다. 그 긴 실적을 유리라는 한마디로 무시당했다.
[직접 보면 알 것이다.]
[태식마공: 시험기가 고정식이라 가게에서 봐야 합니다. 내일 열한 시 어떠세요? 북문 환승역 앞입니다. 유리면 안 삽니다.]
도현은 상대의 프로필을 눌렀다. 장비 수리 사진과 거래 후기가 줄줄이 떴다. 마지막 후기에는 '사장님 손은 느려도 가격은 정확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확인하는 데 돈을 받나?]
[태식마공: 그건 무료입니다.]
도현은 지도를 확대했다. 걸어서 십 분이었다. 집에 낯선 사람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나쁘지 않았다.
[시험도 십 분 안에 끝내라.]
[태식마공: 상태만 맞으면 쿨거래 가능합니다.]
그는 약속을 잡고 광석을 수건에 감쌌다. 삼만 원을 받을 물건이라 생각하니 바닥에 굴려 두기가 아까웠다.
다음 날 오전 태식마공 수리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도현이 문을 밀자 안쪽에서 금속이 달그락거렸다. 작업대에는 금이 간 방패와 손잡이 없는 검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이마켓?"
돋보기를 이마로 밀어 올린 중년 남자가 물었다. 앞치마에 정태식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돌을 가져왔다."
도현은 수건을 풀었다.
정태식은 장갑을 끼고 광석을 집었다. 납작하게 닳은 밑면을 보더니 끝이 무딘 탐침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진짜 문받침으로 썼어요?"
"바람이 심한 집이었다."
남자는 확대경으로 밑면을 들여다봤다. 측정 탐침을 대자 눈금 하나가 겨우 올라갔다.
"겉으로 나오는 마력이 거의 없는데. 장식품 아니에요?"
"나오는 걸 막아 둔 거다. 새는 물통이 좋은 물통인가?"
정태식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는 작업대에 고정된 금속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조금 뽑아 봐도 됩니까?"
"깨지만 마라."
광석이 상자에 들어갔다. 접점 두 개가 표면을 물었다. 정태식은 보호 덮개를 닫고 작은 작업등을 연결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하얀 불이 켜졌다.
그는 밝기를 한 칸씩 높였다. 공급량 숫자가 올라가는데도 바로 옆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바늘은 가만히 있었다.
정태식은 등을 끄고 벽에서 시험용 방패 하나를 내렸다.
테두리의 홈에 가느다란 선을 꽂자 반투명한 막이 표면을 덮었다. 망치를 내리치자 막이 움푹 꺼졌다가 곧 펴졌다.
쾅. 쾅. 쾅.
그는 강도를 높여 망치를 내려쳤다. 막은 곧바로 원래 모양을 되찾았다. 누적 사용량의 숫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정태식은 서랍에서 시험 기록을 꺼내 나란히 놓았다.
"같은 무게의 교체석은 여기서 벌써 출력이 꺾였는데……"
도현은 벽시계를 봤다.
"팔 분이다."
"잠깐만요."
정태식은 강도를 한 칸 더 올렸다. 곧 방패 쪽의 온도 경고등이 노랗게 켜졌다. 그는 스위치를 끄고 광석을 꺼내 받침에 놓았다.
돌에서는 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는 기록의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실측값을 그 옆에 적었다. 다시 대조한 뒤 고개를 숙여 광석의 밑면을 살폈다.
도현이 수건을 펼쳤다.
"십 분이 지났다."
"한 번만 더 확인하면……"
"문을 몇 번 닫아 볼 셈인가? 안 살 거면 돌려다오."
정태식이 받침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삼만 원에는 못 삽니다."
도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만큼 두드리고도 깎겠다는 건가?"
"반대예요. 이걸 삼만 원에 샀다가 다음에 무슨 낯으로 뵙습니까."
정태식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천이백 드리겠습니다."
"천이백 원이라니. 삼만 원이라고 적었다."
"천이백만 원이요."
도현의 손이 멎었다.
정태식이 계산기를 돌렸다.
[12,000,000]
도현은 영의 개수를 셌다. 다시 셌다.
휴대전화에서 치킨 가격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왕이 장사치 앞에서 먼저 동요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면 되겠군."
목소리는 차분했다. 수건을 접다가 모서리가 맞지 않아 세 번 다시 접었다는 것만 빼면 그랬다.
"왜 네가 값을 올리지?"
정태식은 서랍에서 지난 매입 내역을 꺼냈다. 비슷한 무게의 원석 옆에 천오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것보다 방금 뽑아 쓴 양이 많습니다.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지만 확인한 양만으로도 남아요. 다만 낡은 표면은 깎아야 하니까 손실하고 가공비는 뺐습니다."
그는 매입 내역 옆에 가공비 삼백만 원을 적었다.
"정식 감정서까지 붙이면 더 받을 수도 있어요. 그건 시간도 비용도 따로 들고요."
"이 값이면 된다."
"다음에도 이런 물건 나오면 저한테 먼저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정기 납품은 하지 않는다."
"가끔이어도 됩니다."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금지다."
"주소도 모르는데요."
상당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정태식은 종이에 품목과 금액을 적었다. 도현은 미감정 마나스톤 원석 한 점이라는 글자를 읽고 계좌번호를 적어 줬다.
잠시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태식 12,000,000원 입금]
[잔고: 12,031,400원]
도현은 화면을 끄고 다시 켰다.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입금됐습니까?"
"그렇다."
그제야 받침의 광석을 정태식에게 넘겼다. 남자는 작은 완충 상자 안에 돌을 눕혔다. 문 아래에서 먼지를 먹던 물건에 제법 과한 대접이었다.
"실례지만 대체 어디서 쓰시던 물건입니까?"
"말했을 텐데. 문 밑이다."
정태식이 입을 다물었다.
도현은 오이마켓에서 판매 완료를 눌렀다. 팔린 광석 사진 아래에 거래 후기를 부탁한다는 글이 떴다.
그는 짧게 남겼다.
[약속보다 오래 걸린다. 돈은 잘 준다.]
문밖으로 나오자 햇볕이 따뜻했다.
도현은 배달 앱을 켰다. 치킨 한 마리를 담았다가 수량을 두 마리로 바꿨다. 배달비까지 오만 천 원이었다.
결제 후에도 잔고는 11,980,400원이었다.
루시펠은 길 한복판에서 잠시 멈췄다. 결제창을 닫아도 더 싼 메뉴를 찾아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일 먹을 것은 내일 고르면 됐다.
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느긋하게 집으로 향했다.
원룸 계단을 오르자 윤서연이 복도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발밑에는 구급약과 로프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닳은 장갑의 실밥을 잘라 내다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밖에 나가셨네요?"
"물건을 팔았다."
"잘됐네요. 식사는 했어요?"
도현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치킨을 두 마리 시켰다."
"혼자요?"
"너도 먹어라."
서연의 가위가 멎었다. 도현은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현관문을 열었다.
"같은 맛을 두 번 먹기는 지루하다."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요."
"곧 지루해질 예정이다."
서연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복도 바닥의 장비를 돌아보자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고마운데 준비할 게 좀 남았어요. 내일 아침 공략이라서요."
도현은 열린 가방을 내려다봤다. 붕대와 지혈제 아래에 삼각김밥 하나가 눌려 있었다.
"그것을 먹고 마수를 잡으러 가나?"
"그건 오늘 점심이고요. 내일 도시락은 따로 챙겨요."
서연은 삼각김밥을 꺼내 구겨진 모서리를 폈다.
"어디로 가는데?"
"솔내 채석장에 열린 C급 게이트요."
그녀가 장비 밑에서 정찰 보고서를 꺼냈다. 첫 장에 이상 없음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종이를 넘기자 진입로와 퇴로에 다른 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나왔다.
"도윤 씨랑 지훈 씨도 동선을 확인했어요. 이번 정산이 들어와야 두 사람 수당을 맞출 수 있어서요."
그녀는 보고서를 넣고 장갑을 뒤집었다. 얇아진 손바닥 부분에 손가락이 비쳤다.
도현은 새 장갑을 사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어젯밤 은행 앱에 찍혀 있던 삼만 천사백 원이 떠올랐다.
"그럼 먹고 준비해라. 굶고 다니다 쓰러지면 네가 알려준 식당은 누가 데려가나."
서연이 도현을 올려다봤다.
"밥 사면서도 꼭 그렇게 말해야 해요?"
"들어올 건가?"
그녀는 가방 지퍼를 닫고 일어났다.
치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서연은 손을 씻고 바닥에 앉았다. 작은 상 위로 김이 올라왔다.
도현은 상자를 열자마자 집은 닭다리를 그녀 쪽에 놓았다. 서연이 바라보자 다른 상자에서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두 마리니까 네 개다."
"계산 잘하시네요."
"내일 저녁에는 와라. 오늘 산 것과 다른 맛도 있다."
"제가 돌아와서 살게요. 이번에는 수당도 나오니까."
"약속했다."
서연은 닭다리를 들어 그의 것에 가볍게 부딪쳤다.
"네. 약속."
도현은 게임 화면의 일시정지를 풀지 않았다. 바삭한 튀김을 씹는 소리만으로 방이 충분히 찼다.
같은 시각 솔내 채석장 게이트 안.
장갑 낀 손이 바위에 박힌 정찰 표식을 뽑았다. 이상 없음이라고 찍힌 흰 면이 흙바닥을 향했다.
표식이 있던 구멍에 검은 돌이 들어갔다.
원 안의 세 뿔이 붉게 빛났다. 동굴 깊은 곳에서 발톱 긁는 소리가 멎었다.
"아직 나오지 마라."
낮은 목소리에 커다란 등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이 들어온 다음이다."
흙에 묻힌 정찰 표식 아래로 붉은 선 하나가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