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상자에서 지문이 사라졌다

3화: 분류기 오류의 새벽
장혁은 분류기 12번 라인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에 모든 물량을 정지하면 새벽 배송이 지연되고, 수백 명의 기사에게 손해가 돌아갈 수 있었다. 대신 해당 배송번호를 격리 표시하고, 같은 번호로 들어오는 새 상자를 별도 라인으로 보내도록 시스템을 조정했다.
물류센터 관리자 박주원은 그 조치가 현장 작업자들을 더 불안하게 할 거라 걱정했다. “사건이 터지면 모두가 우리를 의심할 겁니다. 센터 문을 닫을 수도 있어요.”
“상자를 찾고, 기록을 보존해야 합니다. 다른 물량을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감식관 이채리는 기존 상자와 새로 찍힌 배송번호의 출력물을 나란히 놓았다. 바코드 숫자는 같았지만, 재분류 라벨의 잉크 밀도와 프린터 자국이 달랐다. 새 라벨은 센터 안의 12번 라인 프린터에서 출력됐다. 출력 시각은 23시 48분, 사용자 계정은 전출 처리된 최민석의 것이었다.
“그 계정이 살아 있다는 건 확인했어요.” 주원이 말했다. “하지만 누가 썼는지는 모릅니다.”
장혁은 인사팀에서 최민석의 전출 기록을 확인했다. 새 센터에는 출근한 적이 없고, 휴대전화도 두 주 동안 꺼져 있었다. 기존 센터의 출입증은 반납 처리됐지만 실제로 회수한 사람의 서명은 없었다. 출입구 카드 로그에는 그가 전출된 이후에도 12번 라인 쪽 문을 통과한 기록이 두 번 있었다.
“출입증을 누가 사용했는지 얼굴이 찍혔나요?” 채리가 물었다.
“문 앞 영상은 저장 기간이 지나 일부가 지워졌습니다. 남은 건 멀리서 찍힌 뒷모습뿐입니다.”
장혁은 영상의 뒷모습을 확대하지 않았다. 화질이 낮아 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다. 걸음걸이와 키만으로 특정인을 지목할 수는 없었다. 그는 출입 기록과 분류기 사용 로그를 시간대별로 맞춰, 실제로 겹치는 구간만 좁혔다.
23시 48분, 7번 단말이 12번 라인에 로그인했다. 23시 52분, 라벨이 한 장 출력됐다. 00시 03분, 상자가 재투입됐다. 다음 스캔은 02시 13분이었다. 현장 사건 상자와 같은 번호로 보이는 두 번째 상자는 센터에서 2시간 넘게 보관된 셈이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 라벨을 다시 붙였을 가능성이 있네요.”
“그럴 수 있지만, 실제 상자와 동일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나영은 센터에 다시 왔다. 그녀는 자신의 계정이 사용된 경로를 알고 싶었다. 주원은 계정 접근 로그와 단말 보관 규칙을 설명했다. 나영은 전출 직원의 계정이 아직 살아 있었던 사실에 화를 냈다. “누가 쓰든 제 이름으로 배송 완료가 됐어요. 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제가 더 일을 해야 하잖아요.”
주원은 정정 요청을 바로 접수하겠다고 했지만, 나영은 구두 약속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회사 인사 담당자에게 서면으로 계정 접근 중지와 실적 정정을 요청했다. 주원은 요청이 처리될 때까지 나영의 새 계정을 임시 발급하고, 업무 배정이 줄어들지 않도록 확인서를 썼다.
장혁은 라벨 프린터의 소모품을 확인했다. 인쇄된 바코드의 아래쪽에는 희미한 열전사 자국이 있었다. 기존 상자의 라벨은 한 번에 출력된 것이 아니라, 투명 필름 위에 새 번호가 덧씌워진 형태였다. 누군가 원래 라벨을 떼지 않고 그 위에 얇은 라벨을 붙였다. 표면 지문을 지운 흔적은 아니었다. 포장 테이프를 닦은 세척제와 같은 냄새가 라벨에서도 났다.
“왜 지문이 안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겠네요.” 채리가 말했다. “새 필름을 덧붙인 뒤, 전체 표면을 닦았을 수 있습니다.”
“누가 닦았는지는 다른 증거가 필요합니다.”
채리는 새 상자를 임의로 열지 않았다. 경찰이 보관 중인 상자와 현장 감식 결과를 기다렸다. 대신 포장대 주변의 세척제 사용 기록을 확인했다. 세척제는 매일 작업대에 뿌려졌고, 여러 직원이 사용했다. 특정인에게만 유리한 흔적은 아니었다.
주원은 새벽 물량을 정리하려고 포장대를 닦았던 직원들을 확인했다. 작업자들은 테이프와 라벨을 붙이는 동안 장갑을 사용했고, 교대가 끝날 때마다 작업대를 세척했다. 장갑을 꼈다는 사실만으로 지문이 없는 이유를 특정할 수 없었다. 장혁은 청소 기록과 근무표를 받아 증거와 별개로 저장했다.
그날 오후, 경찰은 상자 안에서 발견한 장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장 피해자가 들은 경보음이 소형 위치추적기와 비슷할 수 있다고 알려 왔다. 수사팀은 상자와 장치의 연결을 확인 중이었다. 장혁은 물류센터 측에 같은 크기와 무게의 상자가 어디서 추가 출력됐는지 확인했다. 배송명세서에는 전자부품으로 적혀 있었지만, 원 발송 업체는 이미 폐점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소가 자동 수정됐다고 했죠.”
“네. 앱은 세대 번호 없이 공동현관으로 바꿨습니다.”
“그 주소 변환 요청은 어느 계정에서 시작됐습니까?”
주원은 배송 시스템에서 요청 원본을 찾았다. 자동 변환은 일반적이었지만, 해당 건은 수정 전에 ‘공동현관 앞’이라는 메모가 먼저 등록돼 있었다. 입력자는 최민석의 계정이었다. 그 메모가 배송 단계에서 추가된 건지, 주문 단계에서 들어온 건지 확인하려면 외부 발송 기록이 필요했다.
장혁은 폐점한 전자부품점의 세금계산서와 배송 의뢰를 조회하도록 경찰에 요청했다. 조사 결과, 해당 업체는 폐점 직전 창고 재고를 다른 유통사에 넘겼다. 전달된 재고 목록에는 위치추적기와 무게 센서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확한 수량은 맞지 않았다. 상자 안에 있던 것이 그 제품인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나영은 그 내용을 듣고 “배송 앱에 뜨지도 않은 물건이 제 계정으로 완료됐다는 게 이상해요”라고 했다. 장혁은 그 말이 사실을 정확히 요약한다고 생각했다. 앱 기록은 그녀가 상자를 받은 것처럼 보였고, 실제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다. 중간에 계정이 쓰인 사람과 물건의 실제 이동은 따로 추적해야 했다.
그들은 12번 라인 주변의 인계 동선을 다시 확인했다. 상자를 옮길 때는 스캐너를 들고 있는 사람과 운반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었다. 카메라 사각은 라벨 출력대 뒤편에 있었고, 그곳에는 직원 개인 사물함이 놓여 있었다. 사물함 열쇠는 작업조마다 같은 규격을 사용했다. 누가 열었는지 기록은 없었다.
주원은 사물함을 강제로 열지 않았다. 직원 대표와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나영은 조사에 동석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계정만 조사받길 원했다. 장혁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고, 사물함 확인은 경찰과 노조 안전 담당 오성규에게 맡겼다.
사물함 안에는 분류기 라벨 롤과 파손된 단말 케이스가 있었다. 둘 다 여러 직원이 쓰는 공용 물품이었다. 케이스 뒷면에는 7번 단말의 자산번호 일부가 남아 있었다. 최민석의 단말을 반납했다고 처리한 기록이 틀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스가 발견된 것만으로 단말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오성규는 현장 직원들이 계정 공유를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작업량이 밀리면 관리자들이 서로 스캔해 줬어요. 기록을 맞추려는 거였지만, 누가 언제 상자를 들었는지는 사라졌죠.”
주원은 그 관행을 보고서에서 누락한 일을 인정했다. “그런 관행이 범죄에 이용될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어도 기록은 남겨야죠.” 나영이 말했다.
그녀는 회사가 계정 보안과 노동 기록을 분리하지 않으면, 계속 다른 사람 이름으로 실적이 쌓일 거라고 했다. 나영은 조합에 공식 문제 제기를 하기로 했다. 이는 수사와 별도였지만, 앱 기록을 고칠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밤이 되기 전, 장혁은 새로 출력된 라벨이 붙은 봉투의 배송 경로를 복원했다. 봉투는 분류기 12번에서 나와 센터 외곽의 우편함으로 이동했다. 주소는 없고, 수취인 칸에는 ‘현장 확인’이라는 메모만 있었다. 봉투를 들고 나간 사람의 얼굴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다.
그는 미확인 경로를 지도에 점선으로 표시하고, 확정된 사실과 가설을 분리했다. 현장 상자는 배송 완료된 적이 없을 수 있고, 나영의 계정은 사용됐지만 그녀는 차량에 없었다. 복제 라벨은 분류기에서 출력됐다. 그리고 7번 단말은 반납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사물함에서는 그 일부가 발견됐다.
새벽 근무가 시작되기 직전, 센터 외곽 우편함에 봉투 하나가 더 놓였다. 그 안에는 새로 출력된 12번 라벨과 짧은 메모가 있었다.
‘다음 상자는 네가 직접 받아.’
메모에는 수신인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종이 뒤편에는 장혁의 차량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장혁은 봉투를 열지 않고 경찰에 연락했다. 현장 사진을 찍은 뒤 봉투를 보존 봉투에 넣고, 발견 장소와 시각을 적었다. 차량 번호는 센터 주차장에서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정확한 번호를 적어 둔 사람은 직원 출입 동선을 알고 있어야 했다. 주원은 외곽 우편함 주변 카메라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나영은 봉투를 보자 뒤로 물러섰다. “제가 이 배송을 받으라는 뜻인가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 이름도 없어요.”
“그래도 다시 제 계정으로 올릴 수 있잖아요.”
장혁은 그녀의 임시 계정이 잠겨 있는지 확인했다. 나영은 화면을 보며 잠금 상태를 직접 확인했고, 비밀번호를 새로 설정했다. 주원은 센터 책임자로서 계정 접근 기록을 인쇄해 그녀에게 사본을 주었다. 나영은 사본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다음에는 제가 한 일을 제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현장 상자의 두 번째 운반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알던 동료들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장혁은 그 점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조사에 필요한 질문과 무관한 이름은 기록에서 빼겠다고 했다.
외곽 카메라에는 우편함 앞에 다가온 사람이 찍혀 있었다. 얼굴은 후드에 가려졌고, 손에는 물류센터의 파란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지만, 작업자들의 장갑은 공동 비품이었다. 영상은 그 사람이 봉투를 놓고 서쪽 출입구로 나가는 것까지만 보여 줬다. 출입 카드 기록은 남지 않았다.
“다음 상자를 직접 받으라는 게 함정일 수도 있어요.” 채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물류를 멈추진 않겠습니다. 경찰과 함께 지정된 수령 장소를 만들죠.”
장혁은 우편함의 문을 잠그고, 실제 배송 절차는 유지하되 위험 물품이 들어오면 경찰에 먼저 통보하도록 했다. 주원은 모든 기사에게 계정 보안 안내를 전달했다. 나영은 다음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단말을 직접 수령하고, 자산번호를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