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상자에서 지문이 사라졌다

1화: 네 번 스캔된 상자
장혁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자는 이미 네 번 스캔된 상태였다.
새벽 4시 28분, 물류센터 야간 관리자 박주원이 강도 사건 현장 사진을 조사팀에 전달했다. 현관 앞에 놓인 회색 상자에는 배송 라벨이 붙어 있었고, 포장 테이프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지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은 상자를 열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배송 앱에는 물류센터 입고, 분류기 통과, 차량 적재, 배송 완료가 각각 기록되어 있었다.
“상자가 네 번 스캔되면 정상 배송 아닌가요?” 주원이 물었다.
“정상 흐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캔이 실제 이동과 같은 뜻은 아니에요.”
장혁은 장갑을 끼고 포장 상태를 관찰했다. 테이프의 겹침은 한 방향이 아니었다. 상자 한쪽 면에 눌린 자국이 있었고, 바닥 모서리에는 젖은 먼지가 묻었다. 현장 감식관 이채리가 사진을 찍은 뒤, 상자를 증거 봉투에 넣었다.
“지문이 없다는 건 닦아 냈다는 뜻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장갑을 꼈거나 애초에 표면을 잡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채리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고, 가방과 휴대전화가 사라졌다. 상자는 사건 발생 직후 문 앞에서 발견됐다. 누군가 미끼처럼 두고 갔을 가능성은 있지만, 배송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혁은 라벨 번호를 확인해 물류센터 시스템에서 원본 이벤트를 불러왔다. 첫 스캔은 02시 13분, 두 번째는 02시 16분, 세 번째는 02시 17분, 마지막은 04시 02분이었다. 앱 화면에서는 모두 정상 배송처럼 보였지만, 세 번째 스캔 간격이 너무 짧았다. 분류기에서 차량으로 옮기려면 최소 12분이 걸리는 동선이었다.
“같은 상자를 두 번 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코드가 복제된 건가요?” 주원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원본 분류기 로그를 봐야 합니다.”
물류센터로 돌아가자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새벽 물량을 정리하느라 장갑을 갈아 끼울 틈도 없이 상자를 옮겼다. 혁은 작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안전 구역 바깥에서 로그를 요청했다. 주원은 센터 시스템에서 해당 번호를 검색했지만, 화면에는 네 번의 스캔만 나타났다.
“원시 로그도 같은데요?”
“이건 앱에 넘어간 요약 기록입니다. 분류기 자체 저장값이 필요해요.”
주원은 분류기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했다. 원시 로그는 02시 13분에 한 번, 02시 14분에 두 번, 02시 16분에 한 번 읽혔다. 02시 14분 두 번째 스캔은 같은 바코드가 아니라, 라벨 아래에 덧붙인 작은 코드였다. 그 코드는 배송번호가 아닌 재분류 코드였다.
“왜 앱에는 일반 스캔으로 올라갔습니까?”
주원은 잠시 멈췄다. “우리 쪽에서 재분류 코드를 일반 스캔으로 매핑해 놨습니다. 오류 물량을 빨리 처리하려고요.”
“누가 설정했습니까?”
“센터 운영팀입니다. 저도 승인했습니다.”
혁은 그 사실을 기록했지만, 주원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재분류 코드는 파손이나 주소 오류가 난 상자를 다시 라인에 넣을 때 썼다. 문제는 실제 경로와 상관없이 앱에 정상 이동으로 표시된다는 점이었다. 배송 추적 화면만 보면 네 번 스캔된 상자가 한 번도 정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최나영은 사건 상자를 마지막으로 운반한 기사였다. 그녀는 차량 적재장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냈다. 앱은 배송 완료 시각을 04시 02분으로 표시했지만, 그 시간 그녀의 차는 아직 물류센터에 있었다. 나영은 작업복 소매를 걷고 스캔 기록을 보여 줬다.
“제가 누른 건 아닙니다. 휴대전화는 03시 40분에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어요.”
“그럼 배송 완료는 누가 처리했습니까?”
“모릅니다. 다른 기사가 제 계정으로 찍었을 수도 있어요.”
주원은 “대리 스캔은 규정 위반”이라고 말했지만, 나영은 그 관행을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배터리가 꺼진 순간부터 센터로 돌아와 충전할 때까지 앱이 꺼져 있었다. 그 시간에는 배송지에 갈 수 없었다. 차량 위치 로그는 회사 단말기에 남아 있었고, 그녀의 동료가 동승해 있었다.
혁은 휴대전화 전원을 켜 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수사와 무관한 개인 정보까지 열 필요가 없었다. 회사 단말의 운행 기록을 먼저 확인하고, 나영에게 필요한 시간 범위만 설명했다. 그녀는 차량 위치와 배송 업무 기록을 경찰에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나영은 상자가 어떻게 자기 배송번호에 연결됐는지 몰랐다. 그녀는 그날 배송 목록에 1203호가 있었지만, 주소 오류로 해당 물품이 반송 처리됐다고 했다. “상자가 제 차에 실린 적은 없어요. 앱에는 뜨지 않았고, 물건도 못 봤습니다.”
“그럼 배송 완료 시각은 왜 당신 계정으로 올라갔을까요?”
“제 계정으로 스캔하면 실적이 맞춰져요. 하지만 저는 계정을 공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화가 묻어 있었다. 동료들이 대리 스캔을 부탁한 적은 있었지만 거절해 왔다. 그러다 보니 팀에서 고집 센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현재까지 자기 계정 비밀번호를 바꾸지 못했다. 비밀번호를 바꾸려면 관리자 승인 절차가 필요했고, 야간에는 담당자가 없었다.
혁은 주원에게 계정 변경 기록을 요청했다. 나영은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자기 이름으로 등록된 허위 배송을 바로잡고 싶어 했다. 그는 그녀에게 “지금은 용의자가 아니라 기록의 사용자로 확인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렇게 써 주세요. 제가 한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라고 답했다.
감식관 채리는 상자 테이프 표면에서 세척액 잔류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성분은 물류센터에서 쓰는 일반 소독제와 같았다. 상자를 닦은 게 아니라, 센터에서 작업대가 정기 청소된 뒤 포장되었을 수도 있었다. 채리는 상자의 압착 자국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확인하려고 포장 라인 CCTV를 요청했다.
그날 새벽 2시 13분 영상에는 상자가 컨베이어에서 멈추는 장면이 보였다. 작업자가 스캐너를 들고 상자를 뒤집었지만,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졌다. 잠시 뒤 다른 사람이 상자를 받아들고 화면 밖으로 가져갔다. 두 사람의 손에는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배송 앱은 첫 번째 사람이 스캔한 것으로 기록했어요.” 주원이 말했다.
“영상 속 작업자가 스캔했는지 확인하려면 분류기 원시 로그와 연결해야 합니다.”
혁은 02시 13분 기록을 확대했다. 스캔한 사람은 왼손으로 기기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이 상자를 옮길 때는 오른손으로 들었다. 라벨 아래의 재분류 코드가 그 순간 카메라에 잠깐 비쳤다. 누구도 화면상에서 코드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이미 테이프 가장자리가 들떠 있었다.
주원은 작업자 명단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혁은 명단 전체를 받지 않고 해당 라인에 있던 근무조만 요청했다. 채리는 경찰 감식 자료와 물류센터 영상을 시간대별로 맞췄다. 직원 얼굴을 무단으로 외부 공유하지 않도록 열람 기록을 남겼다.
나영의 동료는 그날 새벽 그녀의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대신 스캔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영이 배터리를 충전하러 간 뒤, 다른 사람이 그녀의 단말을 가져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단말은 충전대에 놓여 있었고 화면 잠금은 걸려 있지 않았다.
“누구나 쓸 수 있었나요?” 혁이 물었다.
“기본 설정이면요. 잠금은 근무 시작할 때 해제해 둡니다. 계속 화면을 켜야 해서.”
그 사실은 계정 접근 가능성을 열었지만, 나영이 배송을 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혁은 단말의 실제 접근 로그를 요청했다. 주원은 해당 장비가 자동 잠금 기능을 끈 지 두 달 됐다고 했다.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임시로 설정했지만, 복구를 놓쳤다고 인정했다.
경찰에서 현장 피해자의 상태가 안정됐다는 연락이 왔다. 피해자는 상자와 함께 누군가 복도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상자를 문 앞에 놓은 사람이 피해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문을 열자 상자 안에서 작은 경보음이 울렸고,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접근했다고 했다.
혁은 상자 안에 장치가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 사진에는 장치가 보이지 않았고, 경찰이 봉인했으므로 열 수 없었다. 채리는 상자 외부에 남은 눌림 자국과 배송 무게 기록을 비교하겠다고 했다. 상자의 무게는 물류센터에서 3.2킬로그램, 현장에서는 1.8킬로그램으로 기록돼 있었다.
“상자 안에서 무엇이 빠져나갔을 수도 있겠네요.” 나영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고, 계량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혁은 답했다. “저울 로그를 확인하기 전에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작업 교대가 끝날 때 주원은 네 번의 앱 스캔과 실제 원시 로그가 다르다는 걸 공식 보고서에 인정했다. 대리 스캔이 일부 라인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진다는 점도 밝혔다. 노동자들의 실적을 맞추려고 운영팀이 묵인했지만, 범죄와 연결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영은 보고서 사본을 요구했다. 자신의 계정으로 들어온 배송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확인되면, 회사에 정정 요청을 넣고 싶다고 했다. 혁은 수사자료를 바로 전달할 수 없지만, 본인의 운행 기록을 요청할 방법을 안내했다. 그녀는 그 안내를 받아들였다.
새벽 6시, 물류센터의 분류기에서 상자와 같은 배송번호가 다시 스캔됐다. 이번에는 12번 라인으로 보내지라는 코드가 붙어 있었다. 번호는 이미 경찰이 확보한 현장 상자와 같았다.
혁은 상자가 봉인된 상태로 감식실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럼에도 분류기 화면에는 같은 번호가 살아 있었다. 누군가 현장 상자의 배송번호를 복제해, 아직 센터 안에서 이동 중인 두 번째 상자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