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빚을 추심합니다

3화: 계약서에 남은 세 번째 이름
도하는 창고의 문을 닫지 않고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유품이 사라졌고 서명 위조 가능성이 있다면, 개인이 원본을 가져가서는 안 됐다. 나경은 어머니의 상자를 찾고 싶어 했지만, 서랍을 더 열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기로 했다. 태오는 창고 열쇠를 제출했다. 그는 자신이 계약서의 세 번째 이름으로 기록된 걸 보고도 그곳을 즉시 떠나지 않았다.
“제 어머니가 이 계약에 서명했을 리 없습니다.”
“그럼 누가 했습니까?”
“장례식장 직원이요. 어머니는 그때 병원에 있었습니다.”
도하는 날짜와 병원 기록을 확인하자고 했다. 태오는 자기 가족이 어떤 계약에 묶였는지 몰랐지만, 서명한 사람을 찾는 데 협조하겠다고 했다. 나경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회수원이었고, 여러 유품을 창고에 옮겼다. 태오가 모른다고 해도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수아는 창고 관리대장의 전자 파일을 복사했다. 최근 출입 기록 두 건은 같은 사용자 계정에서 삭제됐다가 복구된 흔적이 있었다. 계정은 폐업한 장례 대행 업체의 관리자 계정이었지만, 로그인 IP는 현재 운영 중인 상속 대행 사무소와 연결돼 있었다.
“계약서를 만든 곳이 아직 영업 중이라는 뜻인가요?” 나경이 물었다.
“IP만으로 사람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아가 말했다. “다만 두 곳의 연결은 확인해야 해요.”
도하는 장례식장 보관 계약의 원본을 요구했다. 업체는 개인정보를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절했다. 그는 법원에 증거 보전 신청을 준비했다. 신청이 인용되기 전까지 유품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창고의 선반이 흔들렸다. 가장 위에 놓인 빈 상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자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경아, 손거울은 버리지 마.” 나경은 그 목소리를 어머니의 것이라고 알아들었다. 태오는 즉시 상자를 닫으려 했지만, 도하가 멈춰 세웠다.
“아직 아무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어요. 원본을 보존해야 합니다.”
“그건 우리 어머니 목소리예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녹음인지, 계약의 잔향인지 확인해야 해요.”
나경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녀는 도하에게 상자를 열어도 되는지 물었다. 도하는 가능성을 설명했다. 내부 물건이 훼손되거나 서명으로 오인될 수 있고, 현재 계약 책임자에게 영향이 생길 수 있었다. 나경은 잠시 생각한 뒤, 수사관 입회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태오는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반지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계약을 끊기 위해서라면 반지를 포기할 수 있지만, 어머니가 그 물건을 남긴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도하는 유품을 돌려받는 것과 빚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태오는 그 차이를 이제야 이해했다고 했다.
수사관이 도착해 창고를 통제했다. 수아는 서랍 속 계약서 사본의 앞뒤를 촬영했다. 세 명의 이름이 같은 잉크로 적혀 있었다. 서명 필압도 동일했다. 나경의 서명과 태오 어머니의 서명은 글씨가 달랐지만, 누군가 한 번에 복사한 흔적처럼 보였다.
도하는 계약서 하단의 공증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는 당시 존재하지 않던 공증 사무소의 지점 번호를 포함하고 있었다. 문서가 나중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서명이 위조됐다고 단정하려면 원본과 필적 감정이 필요했다.
도하는 창고의 잠긴 문 앞에 서서 태오에게 계약 체결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태오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날, 장례 대행 업체 직원이 유품 보관 동의서를 내밀었다고 했다. 그는 반지를 잠시 맡기면 분실을 막아 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빚이나 책임 이전에 관한 말은 없었다.
“당시 녹음이나 안내문이 남아 있습니까?”
“병원 상담실에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옆에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서명할 수 있는 상태였나요?”
태오는 답을 피했다. 어머니는 진통제를 맞고 잠들어 있었다. 직원은 보호자인 태오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그는 본인이 서명했지만, 계약서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나경은 태오를 비난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도 비슷한 상황에서 서명했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결정을 했지만,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는 점은 같았다. 도하는 그 차이를 법적 책임과 도덕적 죄책감으로 나눠 기록했다. 가족을 돌본 사람이 모든 채무를 짊어져야 하는 건 아니었다.
수아는 계약서의 공증 번호를 검색해 발급기관을 찾았다. 번호가 등록된 사무소는 4년 전에 폐업했지만, 공증인 이름은 현재도 다른 곳에서 활동 중이었다. 그녀는 번호 사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공식 문의를 보냈다. 대답은 다음 주에 올 예정이었다.
태오는 창고 열쇠를 수사관에게 넘겼다. 열쇠에는 작은 노란 리본이 감겨 있었다. 그 리본은 어머니가 반지 상자에 묶어 둔 것과 같았다. 그는 리본을 만지다 손을 거두었다. “제가 이걸 가져가면 계약이 제게 넘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도하는 계약서의 효력이 확인될 때까지 어느 쪽도 유품을 단독 보관하지 말자고 했다. 나경은 어머니 상자를 사무실에 두는 것도 불안하다고 했다. 그들은 수사기관의 보관함에 넣고, 인수·반환 시점마다 본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하기로 했다.
수사관이 창고 서랍을 봉인하자 문 안쪽에서 벨이 울렸다. 창고에는 전기가 끊겨 있었고, 전화선도 연결되지 않았다. 벨소리는 한 번,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태오는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쓰던 호출 벨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도하는 그를 문에서 떨어뜨렸다. “소리가 기억을 부를 수는 있어도, 실제로 누가 안에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아요.”
수아는 벨이 울린 위치를 녹음하고, 수사관은 창고 내부를 확인했다. 아무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다. 벨이 멈춘 뒤, 계약서 원본으로 추정되는 종이 한 장이 서랍 아래에서 나왔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오래됐지만, 서명 날짜는 최근이었다.
나경은 서명란을 읽지 않았다. 도하가 먼저 날짜와 서명 필압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도하의 아버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날짜는 아버지가 사망하기 사흘 전이었다.
“그분도 유품을 맡기셨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도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망 직전 주소는 이 창고와 같은 구역이었다.
수아는 공증 번호의 발급 시점을 확인했다. 번호가 만들어진 해에는 해당 사무소가 이미 폐업 상태였다. 더 이상 효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담당자가 없었다. 도하는 공증을 받았다는 문구만으로 문서의 진위를 인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식 공증 원부와 접수 기록을 확인할 때까지 서류를 보존해야 했다.
나경은 아버지의 계약서가 발견된 뒤에도 도하에게 법률 대리를 계속 맡길지 고민했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었다. 도하는 자신의 아버지 기록과 의뢰인 사건을 분리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변호사를 연결하겠다고 했다. 나경은 그가 사실을 먼저 말한 점을 고려해 함께 조사하되, 모든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문서가 나오면 당신도 당사자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이해관계를 숨기지 않겠습니다.”
도하는 자신의 가족 서류를 수아에게 맡겼다. 수아는 개인 파일과 의뢰인 자료를 별도 보관함에 나눠 넣었다. 두 사건을 같은 계약으로 단정하지 않으려면, 날짜와 원본의 이동 경로를 각각 따져야 했다.
태오는 계약서에 서명한 뒤 어머니에게 반지를 맡겼던 날을 기억해 냈다. 병실을 나오며 직원이 건넨 종이는 한 장뿐이었다. 그런데 창고의 원본은 두 장으로 눌러 찍힌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안내문과 계약서를 겹친 뒤 서명을 복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태오는 자신이 그때 동의한 것은 보관뿐이었다고 말했다. 도하는 진술을 받아 적되, 기억이 문서의 흔적과 맞는지 별도로 확인하기로 했다.
수사관은 태오에게 당시 병원 기록을 가져올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가족 기록을 제출하는 일이 어머니의 사생활을 드러낼 수 있다고 걱정했다. 나경은 필요한 범위만 요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태오는 진료 내용이 아니라 입원 날짜와 방문자 기록만 확인하는 데 동의했다. 그 작은 선택으로 계약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좁힐 실마리가 생겼다.
창고 안쪽에서 금속 선반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세 개의 물건이 동시에 움직였다. 빈 손거울, 반지 보관함, 열쇠 상자. 물건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지만, 표기된 이름은 전부 죽은 사람이었다.
나경은 어머니의 손거울을 찾았다고 생각해 한 걸음 나섰다. 도하는 그녀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물건이 어머니의 것인지 확인할 방법을 물었다. 나경은 거울 손잡이에 어릴 때 어머니가 긁어 둔 작은 별 모양이 있다고 했다.
그 별이 있는 거울은 선반 안쪽, 잠긴 문 너머에 있었다. 문에는 도하의 아버지 이름이 적힌 계약서가 꽂혀 있었다.
그는 나경은 도하에게 가족 사건의 기록을 의뢰인 자료와 같은 창고에 두지 말아 달라고 했다. 도하는 수아에게 별도 보관을 지시하고, 자신은 이해관계 충돌이 생기는 즉시 다른 변호사를 연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나경은 그 약속을 확인서에 남겨 달라고 요청했다. 도하는 말없이 서명했다.
태오는 창고 밖으로 나가기 전 뒤를 돌아봤다. 그는 어머니의 반지를 찾지 못했지만, 오늘은 상자 하나도 들고 가지 않았다. 그 선택이 계약을 끊지는 못해도, 다른 가족의 물건을 자신이 임의로 옮기지 않는 첫 행동이었다.
문서의 날짜를 보고 굳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기 3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