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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빚을 추심합니다1화

죽은 사람의 빚을 추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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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사망자 명의의 청구서

윤도하는 청구서를 세 번 접어 쓰레기통에 넣으려는 의뢰인을 말렸다.

“종이는 버려도 사진은 남겨 두세요. 발신 번호와 접수 시각을 확인해야 합니다.”

최나경은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발신자는 채권 회수 회사였고, 수신인은 6개월 전 사망한 어머니 최명자였다. 청구 금액은 4,800만 원. 사유는 장기 보관료와 계약 위약금이었다. 나경은 어머니가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상속 포기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집을 정리하느라 아직 못 했어요.”

도하는 상속 포기 기간이 남았는지 확인했다. 사망일과 통지일을 비교하면 아직 선택할 시간이 있었다. 채권 회사가 상속인에게 직접 청구하지 않고 사망자 이름으로만 통지한 것은 이상했다. 그는 나경에게 서명하거나 돈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먼저 청구 근거와 계약서 사본을 요구해야 했다.

나경은 어머니의 유품을 사무실로 가져왔다. 작은 자개 상자, 금 간 손거울, 오래된 열쇠 하나. 상자를 열면 천 사이에 반짝이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장례식 전날 상자를 맡기며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게 왜 중요하죠?”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물건을 아끼는 분이 아니었어요.”

도하는 물건을 만지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법률사무소 직원 문수아가 보관 봉투를 가져왔다. 그녀는 상자 뚜껑 안쪽에서 작은 번호를 발견했다. 공증 번호처럼 보였지만, 숫자는 끝이 지워져 있었다.

“계약서에 나온 번호와 비교해야겠네요.” 도하가 말했다.

나경은 어머니의 집에서 발견한 계약서가 한 장 있다고 했다. 서류는 장례 대행 업체에서 받은 영수증 봉투 안에 있었다. 그녀는 그때 무슨 계약인지 읽지 않고 서명했다고 했다. 장례를 빨리 치러야 했고, 업체 직원은 보관함 이용 동의서라고 설명했다.

수아는 계약서 사진을 받아 번호를 확인했다. 공증 사무소 번호는 유효했지만, 해당 날짜에 문서가 등록된 기록은 없었다. 도하는 원본을 보존해 달라고 하고, 나경에게 당시 설명을 들은 사람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나경은 장례식장 직원 한 명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날 오후, 채권추심원 구태오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는 정식 위임장과 통지서 원본을 가지고 있었다. 채무자가 사망했으니 상속인에게 빚을 넘기겠다는 게 아니라, 유품 계약의 보관 책임자를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돈을 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럼 왜 청구서를 보냈죠?”

“물건이 보관 중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태오는 청구서의 금액이 실제로 갚아야 할 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장기 보관료가 누적된 값이며, 유품을 반환하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반환 장소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도하는 서류의 주소를 확인했다. 폐업한 장례 대행 업체의 옛 창고였다.

“원본 계약서가 있습니까?”

“보관소에 있습니다.”

“누가 계약 당사자인가요?”

“고인입니다.”

“고인은 사망했습니다. 유족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왜 이름을 적어 두셨죠?”

태오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경에게 유품 상자를 회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나경은 물건을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태오는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대신 상자의 보관 번호를 확인하고, 그 번호가 계약서와 연결돼 있다고 했다.

도하는 태오의 방문 기록을 남기고, 위임장 사본을 요청했다. 태오는 서류를 건네기 전에 상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경은 상자를 품에 안았다.

“이 물건을 가져가면 엄마가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아요.”

“아무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도하가 말했다. “다만 어떤 계약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태오가 돌아간 뒤, 수아는 공증 번호를 다시 조회했다. 같은 번호가 세 사람의 다른 계약서에 반복됐다. 모두 사망자 이름으로 된 청구서였다. 세 계약의 유품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보관 주소는 모두 폐업한 창고였다.

도하는 청구서의 발신 번호로 다시 전화했다. 상담원은 사망한 채무자의 가족에게 직접 납부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반복했다. 그럼에도 나경에게 채무 확인서를 보낸 이유는 담당자가 확인 중이라고 했다. 도하는 상담원이 화면에 표시된 문구를 읽는 동안 통화 녹음을 알리고, 회사의 등록 주소와 민원 담당자를 물었다. 상담원은 상속 책임을 인정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전자 문서에는 나경의 이름이 책임자 칸에 올라 있었다.

“서류와 안내가 다릅니다.”

“자동 발송이라 오류일 수 있습니다.”

“그럼 발송 중지를 요청하겠습니다.”

상담원은 접수 번호를 불러 줬다. 도하는 번호를 나경에게 적어 주고, 통화가 끝난 뒤 본인에게 문자로도 보내 달라고 했다. 나경은 어머니가 남긴 유품 상자를 사무실 책상 위에서 멀리 옮기고 싶어 했다. 그녀는 매일 밤 그 상자에 손을 얹고 잠들었지만, 이번에는 상자 곁에 앉지 않았다.

수아가 자개 상자의 뒷면을 살폈다. 오래된 경첩 아래에 작은 나사 두 개가 새것으로 교체돼 있었다. 상자는 최근에 수리된 게 아니었다. 나경은 어머니가 생전에 상자를 열지 못하게 잠가 둔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열쇠는 유품 중에 없었다.

태오는 그 열쇠가 보관 창고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즉시 회수해 주겠다고 했지만, 도하는 열쇠 위치를 알 수 없다면서도 보관소에 접근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태오는 유품을 옮기려는 게 아니라, 이 상자에 붙은 계약 번호와 창고 장부가 연결되는지 확인하려는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도하는 상자를 맡기지 않았다.

“열쇠를 찾으면 먼저 여기서 공개하겠습니다.”

“그걸로는 상자를 열 수 없어요.” 나경이 말했다.

“그럼 열지 않아도 됩니다. 계약의 효력은 상자 안의 내용물이 아니라 누가 보관했는지에 달려 있을 수 있어요.”

도하는 나경에게 상속 포기를 당장 권하지 않았다. 선택 기간이 남아 있고, 상속재산과 채무를 먼저 분리해야 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집과 예금이 얼마인지 모른다고 했다. 수아는 공적 조회 범위를 설명하고,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다. 나경은 어머니의 사망 뒤 통장과 집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하나씩 적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휴대전화와 서랍 속 우편물을 가져왔다. 최근 통지서에는 장례 대행 업체의 보관 서비스가 적혀 있었지만, 이용료는 0원이었다. 계약 번호는 청구서와 달랐다. 도하는 업체가 별도의 보관 계약을 숨겼을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나경이 그 계약을 읽거나 동의한 기록은 아직 없었다.

태오는 계약서를 직접 보관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매주 회수 목록만 받아 왔고, 회수 업무를 거부하면 담당 고객의 유품 위치가 사라졌다. 그는 두 달 전부터 같은 주소의 문서가 반복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위임장을 챙겨 도하를 찾아왔다.

“그럼 당신도 계약에 묶인 걸 모르고 있었군요.”

“아니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물건을 되찾으려고 들어왔어요.”

태오는 자신이 회수 업무를 계속한 이유가 어머니의 반지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물건을 하나씩 전달하면 계약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빚은 줄지 않고 이름만 늘었다. 그가 도하에게 온 건 법률 조언이 필요해서였다.

도하는 위임장에 적힌 고객 목록을 확인했다. 사망자 이름 아래 살아 있는 가족이 한 명씩 추가돼 있었고, 서명 날짜는 모두 사망 신고 뒤였다. 나경의 전자 문서는 그 목록에 새로 들어온 첫 번째 이름이었다. 도하는 바로 접수 번호를 회사에 보내고, 자동 발송을 중지하라는 보존 요청을 작성했다.

도하는 나경에게 채권 통지서를 받은 시각과 그 뒤의 행동을 차례로 확인했다. 그녀는 봉투를 열었고, 어머니의 유품을 사무실로 가져왔으며, 어떤 링크도 누르지 않았다. 수아는 그 과정이 채무 동의로 해석되지 않도록 기록했다. 나경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도하는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서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채무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자기 위임장의 고객 번호가 나경의 통지서에 적힌 번호와 다른지 확인했다. 번호는 두 자리만 달랐다. 그는 이를 보고 자신의 회사가 물건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계약자를 추가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의심했다. 회사가 직접 빚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군가 그 목록을 이용해 책임자를 바꿔 쓰고 있었다.

“왜 계속 회수 일을 하셨습니까?” 나경이 물었다.

“어머니 반지가 돌아오면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제 어머니 물건도 옮길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안 옮기겠다고 하는 겁니다.”

태오는 자기 말이 변명처럼 들리는 걸 알고 있었다. 도하는 그에게 회수한 물품의 목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태오는 목록을 내면 회사와의 계약을 위반하게 될 수 있다고 망설였지만, 결국 서명된 인수 내역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수아는 나경의 서류를 별도 폴더에 보관하고, 태오에게 위임장 원본을 돌려줬다. 나경은 어머니의 상자를 다시 품에 안으려다 멈췄다. 도하는 상자를 건드리기 전에 보관 장소를 정하자고 했다. 사무실 금고는 단기간 보관할 수 있지만, 업무 기록과 함께 봉인해야 했다. 나경은 금고에 맡기는 데 동의하고, 인계 시각을 확인서에 직접 적었다. 그녀는 물건을 맡긴 것이 빚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문구도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담원은 접수 번호를 문자로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통화가 끝난 뒤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도하는 시간을 적고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나경은 번호가 오지 않으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품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회사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때 나경의 휴대전화에 새 통지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사망한 어머니가 아니라, 나경 본인의 이름으로 된 채무 확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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