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73화: 받는 사람의 이름
카일은 장부가 다시 속삭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내일 받을 사람은…….”
끝나지 않은 문장이 술집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어젯밤처럼 술집 주인과 닮았지만 끝의 숨이 너무 길었다. 사람의 말이라면 그렇게 오래 끌 수 없었다.
카일은 빈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창고 쪽에서는 주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장부 아래의 열쇠 고리에는 어제 보았던 열쇠 네 개가 걸려 있었다.
그는 눈만 움직여 장부를 살폈다.
‘다음 기록자: 바렌—’
그 아래 새로 열린 칸에 검은 획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일 받을 사람은 주인—’
문장이 끝나기 전에 열쇠 고리 하나가 흔들렸다. 낡은 태그에는 세 줄과 16이라는 숫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카일이 손을 뻗자 검은 선이 장부에서 태그로 가늘게 뻗었다.
―받을 사람을 정해.
파멸의 별이 웃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면 충분하다.
카일은 손을 거두었다. 장부가 누구를 정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을 잡는 것은 눈을 감고 자기 목을 칼날에 대는 일과 같았다.
“거기서 뭐 해요?”
주인이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손에는 작은 등불이 들려 있었다.
“장부가 당신 목소리를 흉내 냈습니다. ‘내일 받을 사람은 주인’이라고 말했죠. 당신이 직접 말한 겁니까?”
주인은 장부를 보자마자 등불을 내려놓았다.
“아니요. 나는 누구에게도 받을 사람을 정한 적 없어요.”
“열쇠는 네 개였습니까?”
주인은 카운터 안쪽을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열쇠를 하나씩 짚었다.
“어제까지는 다섯 개였어요. 마차 보관소 열쇠가 없어졌어요.”
카일은 손님용 종이를 꺼냈다. 이름을 쓰는 칸은 만들지 않았다.
‘확인 시각: 해 뜨기 전.’
‘직접 본 사람: 술집을 여는 사람과 바렌.’
‘없어진 물건: 마차 보관소 열쇠 한 개.’
주인은 종이를 읽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주인이라고 적으면 안 돼요?”
“역할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름은 사라진다고 했죠.”
“그럼 나는 뭐라고 적어요?”
“지금 술집 문을 열고 열쇠를 확인한 사람.”
주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손가락을 눌렀다. 카일도 그 옆에 손가락을 찍었다.
장부 안쪽의 검은 선이 움찔했다. ‘주인’이라는 글자의 끝이 짧게 흔들렸다.
“서로 본 것을 나눠 적은 것뿐입니다.”
주인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혼자 장부를 상대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를 무렵 북쪽 다리 공사 감독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회색 먼지가 묻은 외투 뒤에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 둘이 따라왔다. 한 사람은 어제 일당을 받은 젊은 인부였다.
“어제 봉투를 받아 간 인부가 여기 있군.”
감독은 젊은 인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봉투는 공사장 공동 임금이다. 네가 개인 돈처럼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제 일당이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인부가 대답했다.
“네 이름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당이지?”
감독이 장부를 탁 쳤다. 빈칸이 검게 떨렸다.
“여기에도 받을 사람이 비어 있잖아. 비어 있는 사람에게 돈을 줄 수는 없다.”
카일은 감독의 손목을 보았다. 검은 선은 그의 손으로 향하지 않았다. 카운터의 열쇠 고리에서 나와 바닥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감독님은 그 돈을 누구에게 지급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까?”
“내 작업장 사람들에게.”
감독은 품에서 장부를 꺼냈다. 첫 장에는 사람 이름 대신 번호가 적혀 있었다.
“3-16번. 이 자는 명단에 없다.”
카일은 열쇠 태그의 세 줄과 숫자 16을 떠올렸다.
“명단에 없는 이유는요?”
“모른다. 그러니까 돈을 회수하겠다는 거다.”
감독은 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인이 먼저 봉투를 잡아 카운터 위에 올렸다.
“어제는 두 사람이 확인한 뒤 줬어요.”
“술집 주인이 공사장 임금을 판단해?”
“임금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누가 봉투를 받았는지만 확인합니다.”
카일이 봉투를 가리켰다.
“공사장 일의 사실은 증인이 말하게 하죠.”
젊은 인부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북쪽 다리 세 번째 기둥에서 일했습니다. 손잡이가 갈라진 망치를 썼고 해가 기울 무렵까지 망치질을 했습니다.”
“그걸 확인한 사람이 있나?”
감독이 비웃자 뒤의 사내 하나가 입을 열었다.
“망치의 철심이 빠져서 내가 다시 박았습니다.”
다른 사내도 말했다.
“어제 오후에 그 사람과 함께 흙을 날랐습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건 봤습니다.”
카일은 작업 장소와 도구와 상처를 서로 다른 종이에 적었다.
“여기까지는 세 사람이 직접 본 사실입니다. 감독님은 봉투가 공동 임금이라는 근거를 말해 주십시오.”
“내 장부에 그렇게 적혀 있다.”
“작성자는 누구입니까?”
감독의 얼굴이 굳었다.
“공사장 서기다.”
“서기가 이 자를 본 적 있습니까?”
“그건 서기에게 물어야지.”
“그럼 감독님은 봉투의 발행자도 수령자도 아닙니다.”
카일은 봉투를 컵 아래에 넣었다.
“확인될 때까지 보관자도 아닙니다.”
감독이 손을 뻗는 순간 술집 문이 저절로 열렸다.
골목에서 목소리가 들어왔다.
“받는 사람은…….”
젊은 인부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목소리입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들었습니다.”
카일은 문밖을 살폈다.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 위의 발자국은 술집 문 앞에서 끊겨 있었다.
열쇠 고리의 빈 자리가 검게 빛났다.
감독은 남은 사람을 밀치고 봉투를 빼앗으려 했다.
카일은 싸움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감독의 어깨는 단단했고 뒤의 사내들도 방패처럼 서 있었다. 이곳에는 레오나도 신전의 기사도 없었다.
주인은 봉투를 품에 안고 물러났다. 젊은 인부는 문 쪽으로 움직였고 손님 둘이 그의 앞을 막았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카일이 말했다.
“누가 부르는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인부의 입술이 떨렸다.
“하지만 내가 가면 내 이름을 알려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한 손에 받아. 네가 수령자라 선언하면 이름도 봉투도 네 것이 된다.
검은 선이 빈칸에서 나와 카일의 손을 향했다. 관자놀이에서 눈 뒤까지 열이 번졌다.
‘받는 사람: 바렌.’
글자가 장부 표면에 생겼다가 지워졌다.
카일은 손을 들지 않았다. 바렌을 수령자로 만들면 싸움은 끝날지 모른다. 셀레스티알과 바렌 사이의 선이 하나로 묶일 뿐이다.
“봉투를 가운데 놓으십시오.”
주인이 봉투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이제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감독님은 가져갈 권한의 근거를 말하십시오.”
“공동 임금이다.”
“그건 서기의 기록을 반복한 겁니다.”
“내가 작업장을 책임진다.”
“책임진다는 말은 봉투를 수령할 권한과 다릅니다.”
카일은 빈 탁자 위에 봉투를 놓고 동전 두 닢을 양옆에 세웠다.
“봉투를 본 사람과 보관한 사람을 따로 확인합니다. 돈을 받는 순간도 다른 사람이 봅니다. 지금은 아무도 수령자가 아닙니다.”
주인이 물었다.
“내가 봉투를 보관했으니 받는 사람으로 적나요?”
“아니요. 보관한 사실만 남깁니다.”
젊은 인부가 봉투 앞에 섰다. 카일은 그에게 손을 내밀지 말라고 했다.
“감독님이 가져갈 권한을 직접 증명하지 못하면 당신이 받는 순간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봅니다. 그 방식에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그는 봉투를 집었다. 주인과 두 손님과 망치 손잡이를 보았던 인부가 동시에 손가락을 눌렀다. 감독은 끝내 손을 내밀지 못했다.
봉투를 감싼 검은 선이 얇아졌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손목으로 향하던 길이 중간에서 멈췄다.
―너는 또 하나를 놓쳤다.
파멸의 별이 낮게 울었다.
카일은 속으로 대꾸했다.
‘놓친 게 아니라 넘긴 거야.’
해가 지고 술집이 잠잠해졌을 때 주인은 낡은 항아리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아침에 사라졌던 마차 보관소 열쇠가 들려 있었다.
“내 침대 밑에서 찾았어요. 나는 거기에 넣은 적이 없는데.”
열쇠의 태그에는 세 줄과 16이라는 숫자가 선명해져 있었다. 뒤쪽의 작은 화살표는 북쪽을 가리켰다.
“북쪽 다리 아래 폐쇄 보관실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같다는 말로 적어 둘까요?”
“직접 가 보기 전에는 그렇게만 적으세요.”
주인은 열쇠를 항아리에 넣었다. 카일이 손을 내밀기도 전에 항아리를 손님들이 보는 탁자 위에 올렸다.
“내가 이 술집을 여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어요. 잠글 때는 저 손님이 보고 내일 열 때는 당신이 봐요.”
“저는 내일도 여기 있을지 모릅니다.”
“그럼 지금의 바렌이 봤다고 적으면 돼요.”
카일은 대꾸하지 못했다.
장부가 펼쳐지지 않았는데도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검은 글자가 빈칸에 떠올랐다.
‘수령 대기: 바렌.’
새로운 선이 셀레스티알이라는 흐릿한 글자와 바렌 사이를 한 번 연결한 뒤 북쪽으로 이어졌다.
―받아.
―네가 받으면 길을 알 수 있다.
카일은 빈 종이를 펴고 글자를 적었다.
‘수령자: 확인 전.’
‘열쇠 보관: 술집을 여는 사람이 직접 결정.’
‘확인 방법: 보관과 인계를 서로 다른 사람이 본다.’
주인은 이름 대신 손가락을 눌렀다. 카일도 그 옆에 손가락을 찍었다. 밤의 손님 둘은 열쇠 항아리가 탁자 위에 놓이는 것을 지켜봤다.
검은 선이 조금 더 약해졌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선 끝에서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보관실 3-16.’
카일은 빈 의자에 앉아 그 글자를 바라봤다. 오늘도 그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 권능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람들이 무엇을 직접 보고 무엇을 받았는지 나눴다.
그 방식은 술집 안에서는 통했다.
어둠 속에서 장부와 똑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받는 사람은 이미 왔습니다.”
문밖의 북쪽 길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울렸다.
세 번.
그리고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