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69화: 빛 속으로
대성당의 모든 빛이 꺼졌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숨이 한꺼번에 멎었다. 천창도 제단도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만이 수만 명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레오나의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그녀는 제단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칼끝으로 바닥을 긁어 광장과 계단 사이에 선을 만들었다.
“제단으로 몰리지 마십시오. 앞사람을 밀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은 확인될 때까지 밟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팔을 붙잡았다. 누군가는 교주님을 외쳤고 누군가는 신이 응답했다고 말했다.
마렌은 등잔을 켜려다 손을 멈췄다. 불을 붙이면 사람들이 제단으로 몰릴 수 있었다.
“직접 확인된 상태를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은 천창 위의 빛의 형상입니다. 현재 제단 위에서 카일의 몸은 보이지 않습니다. 승천도 사망도 직접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천창 위에서 빛이 번졌다.
별 모양의 틈 사이로 카일의 형상이 떠올랐다. 옷자락에는 흰빛이 감겼고 얼굴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
환호가 퍼졌다. 레오나는 천창을 올려다봤지만 칼을 거두지 않았다.
“빛의 형상은 움직입니다. 그러나 저것이 실제 교주님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적을 부정하는 겁니까?”
“아니. 보인 것과 확인한 것을 나누는 겁니다.”
레오나는 마렌을 돌아봤다.
“그대로 적으십시오.”
“이미 적고 있습니다.”
마렌의 붓이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공개 관측: 천창 위 빛의 형상.’
‘카일의 실제 위치: 직접 확인 전.’
물거울 표면이 희미하게 빛났다. 황궁 지하 봉인실의 에단이 기록판을 들고 서 있었다. 라시안은 그 뒤에서 벽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황궁에서는 문이 아직 열려 있습니다. 라시안의 현재 위치는 황궁 지하 봉인실입니다. 황태자 동쪽 접견실로 이동하거나 누구에게 인계되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라시안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넘겨지지 않는다.”
총서기관이 인장을 찾으려 했지만 에단이 손을 막았다.
“인장에 손대지 마십시오. 지금은 문과 사람의 위치만 기록합니다.”
그 순간 제단 아래에서 낮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카일은 통로의 문턱 안쪽에 서 있었다.
광장의 소리는 돌벽에 막혀 멀게 들렸다. 천창의 빛도 등잔의 빛도 그의 발밑에는 닿지 않았다. 대신 금화 한 닢이 손바닥에서 뜨거워지고 있었다.
통로 안쪽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카일.”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카일의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한 음절씩 겹쳐 말하는 듯 높이가 달랐다.
“빛을 따라오면 된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판 위에서 검은 획이 움직였다. ‘다음은 빛을—’ 뒤에 짧은 선이 더해졌다.
마렌의 기록판도 떨렸다.
“문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일. 들으십니까?”
“발화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내가 대답했다고 적지 마.”
“확인했습니다.”
숨소리가 멈췄다. 통로 바닥에 가느다란 빛이 생겼다. 길처럼 뻗었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카일은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바닥의 돌에는 세 칸이 파여 있었다.
‘확인 위치.’
‘이동 위치.’
‘수령자.’
세 번째 칸만 비어 있었다. 카일이 문턱을 넘으려 하자 검은 선이 세 칸을 이어 붙였다.
―한 줄로 적어.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그러면 네가 어디에 있든 모두 네 것이 된다.
‘그래서 비워 둔다.’
카일은 허리 안쪽에서 낡은 인장 패를 꺼냈다. 첫 번째 칸에만 작은 점을 찍고 두 번째 칸에는 가장자리를 눌렀다가 뗐다. 선명한 글자가 아니라 끊긴 자국만 남았다.
“현재 위치는 여기다. 이동 위치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세 번째 칸에는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검은 선이 그의 손목을 감아 인장 패의 가장자리로 파고들었다. 관자놀이가 뜨거워졌다.
―수령자 칸을 채워라.
‘직접 동의가 없는 칸은 채우지 않는다.’
―네가 들어가면 네가 동의한 것으로 남는다.
‘들어가는 것과 넘겨지는 것은 다르다.’
카일은 사람과 장소를 이어 붙이려는 선 한 가닥만 손끝으로 집었다. 천천히 끌어당기자 팔 안쪽이 불에 데인 듯 아팠다.
검은 흔적이 뺨에서 관자놀이 쪽으로 번졌다. 카일은 이를 악물고 선을 끊었다.
통로가 흔들렸다.
광장에서는 천창 위의 형상이 한 걸음 올라섰다. 실제 카일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미리 세운 환각의 계단이 빛을 한 칸 더 만들었다.
“교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십니다!”
“영원히 우리를 지켜봐 주십시오!”
마렌은 군중의 외침을 한 문장으로 묶지 않았다.
‘발화자별 기도. 카일의 이동·인계 동의로 해석하지 않음.’
에단도 물거울 앞에서 붓을 움직였다.
“동쪽 접견실의 문과 대성당 제단 아래 통로가 같은 시각에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두 공간이 연결됐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대로 기록하십시오.”
카일은 통로 안쪽의 숨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목소리 없이 숨만 쉬었다. 문턱을 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일정한 숨이었다.
카일은 금화를 뒤집었다.
금화 가장자리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홈이 있었다. 자산을 나누던 밤에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작은 칼로 홈을 새겼다. 공용 장부와 연결되지 않는 짧은 이동 주문이었다.
주문이 향할 곳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황도 밖 북서쪽 도로의 부서진 이정표 아래에 미리 남겨 둔 장소 표식이었다. 카일은 그것을 몇 주 전부터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카일.”
마렌의 목소리가 어둠을 건너왔다.
“지금 위치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통로 안쪽의 목소리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일. 수령을 확인해.”
그 말은 카일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숨이 끝나는 지점이 달랐다.
카일은 피식 웃었다.
“내 목소리를 흉내 낸 발화자 없음.”
마렌이 그 문장을 적었다.
검은 선이 금화와 인장 사이를 연결했다. 카일은 그 선을 끊지 않았다. 이 선까지 없애면 이동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빛 속으로 들어간다.’
카일은 천창 위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 물거울 표면에는 그 형상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비쳤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내가 떠났다는 사실은 아무도 직접 보지 못한다.’
카일은 두 번째 칸에 인장 패를 세웠다.
“이동 위치는 사람으로 정하지 않는다. 장소로 정한다.”
그는 금화의 홈을 인장 패의 모서리에 맞췄다. 패에 남은 낡은 흠집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것이 외부 표식과 반응한 것인지 장치가 흉내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통로의 빛이 금화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도망치는구나.
‘이번에는 내가 정한다.’
―네가 정한 곳에 누가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모르니까 사람 대신 장소를 고른다.’
카일은 금화에 힘을 주었다.
“마렌. 마지막 기록을 부탁해.”
“말씀하십시오.”
“공개 관측은 빛의 형상. 실제 위치는 직접 확인 전. 내가 사라져도 수령자 칸은 비워 둬.”
마렌의 붓이 멈췄다.
“그 말을 유언으로 적을까요?”
“현재 발화로 적어.”
“알겠습니다.”
레오나가 제단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칼끝이 통로의 경계를 넘지는 않았다.
“교주님이 안에 계십니까?”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그렇게 기록하지 마.”
“그럼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지 마. 너도 들어오지 마.”
“명령입니까?”
카일은 잠시 침묵했다.
“부탁이야.”
레오나의 칼끝이 바닥에 닿았다.
“부탁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카일이 금화의 홈을 눌렀다.
대성당의 천창 위에서 빛의 형상이 두 팔을 펼쳤다. 얼굴에는 목소리가 없었다. 별빛의 계단이 형상의 발밑에서 연속으로 솟구쳤다.
광장의 사람들은 같은 방향을 올려다봤다. 누군가는 카일의 이름을 외쳤고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 이름을 불렀다. 서로 다른 말들이 뒤섞였지만 카일을 수령자로 만드는 한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릅니다. 공동 동의로 합치지 않습니다.”
마렌이 기록했다.
황궁에서는 동쪽 접견실의 문이 크게 흔들렸다. 대성당 제단 아래의 통로도 같은 순간 안쪽으로 당겨졌다.
에단이 라시안의 팔을 붙잡으려다 멈췄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움직이지 않는다.”
라시안은 문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나는 이 문으로 가지 않는다.”
두 검은 선이 물거울 위에서 하나로 겹쳤다가 갈라졌다. 라시안의 몸은 그대로였다.
에단은 그 사실을 먼저 적었다.
‘문 반응 확인. 라시안의 위치 변화 없음. 이동·인계 동의 없음.’
대성당의 빈 의자가 검게 물들었다.
‘수령 완료.’
그 아래에는 새 글자가 나타나려다 멈췄다.
‘다음 기록자:—’
마렌이 빈칸을 바라봤다.
“끝까지 쓰이지 않았습니다.”
“빈칸을 채우지 마.”
카일의 목소리가 통로와 물거울을 울렸다. 마렌은 고개를 들었지만 천창 위의 형상은 이미 빛의 계단 끝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카일의 실제 몸은 통로 안에 있었다.
금화가 뜨거워졌다. 인장 패의 글자가 흐려지고 발밑의 돌이 물처럼 흔들렸다.
카일은 문턱을 넘었다.
빛이 그를 삼키지 않았다. 먼저 소리가 끊겼고 이어서 냄새가 사라졌다. 대성당의 향과 젖은 돌 냄새가 멀어졌다. 손에 쥔 금화와 인장 패의 감촉만 남았다.
그는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떨어졌다.
앞에는 낮은 돌무더기가 있었고 그 너머로 황도 밖의 어두운 길이 이어졌다. 먼 곳에 작은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성별교의 깃발도 대성당의 별 문양도 없는 불빛이었다.
카일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손바닥의 검은 흔적이 관자놀이에서 뛰고 있었다. 금화의 가장자리에는 새로운 검은 획이 생겼지만 문장을 만들 정도로 길지는 않았다.
그는 금화와 낡은 인장 패를 확인했다.
새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이름을 버린다고 해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남긴 사람들과 장부와 빈칸은 언젠가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걸어야 했다.
카일은 성별교의 표식이 없는 길을 골랐다. 마을의 불빛은 오른쪽에 있었지만 그는 먼저 반대편 어둠으로 몇 걸음 옮겼다.
대성당에서는 마렌이 마지막 줄을 적고 있었다.
‘승천 관측: 빛의 형상.’
‘카일의 실제 위치: 직접 확인 전.’
‘수령자: 공란.’
‘이동·인계 동의: 확인되지 않음.’
레오나는 빈 제단을 바라보며 검을 거두지 않았다.
“교주님이 승천하셨다고 적지 않았습니다.”
“네.”
마렌이 대답했다.
“그럼 무엇을 적었습니까?”
“우리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입니다.”
물거울 너머의 에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록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찾는다는 말도 추정으로 적겠습니다.”
마렌은 붓을 내려놓았다.
천창 위에서 카일의 환각이 마지막 빛으로 흩어졌다. 광장에는 환호가 남았고 제단 아래에는 누구도 채우지 않은 빈칸이 남았다.
황도 밖에서 카일은 어둠 속에 선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금화가 한 번 더 뜨거워졌다.
이번에는 통로 안쪽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작은 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