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68화: 대성당 개관식
개관식은 카일이 남길 마지막 공개 시험이었다.
황도 중앙에 세워진 대성당은 성벽 안쪽의 궁전보다 높았다. 전쟁이 끝난 뒤 각지에서 보내온 돌과 나무가 한 층씩 쌓였고 마지막에는 별 모양의 천창이 지붕을 덮었다.
오늘 이곳의 문이 열린다.
광장에는 수만 명의 신도가 모였다. 귀족 대표와 각 지방의 사제와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서로 다른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중앙 제단 위에 놓인 빈 의자에 향했다.
카일은 의자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저걸 치울까요?”
레오나가 물었다.
“치우면 사람들이 더 오래 봐. 그대로 둬.”
“교주님의 자리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야 오늘의 연출이 자연스럽지.”
카일은 제단 앞의 세 계단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가장 낮은 계단 아래에는 얇은 거울 조각이 묻혀 있었다. 천창으로 들어온 빛을 중앙으로 모으는 장치였다. 계단 뒤에는 불을 붙이면 연기를 빛처럼 바꾸는 가루가 숨겨져 있었다.
장소와 빛과 목격자가 있으면 환각은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계단 맨 아래에 낯선 홈이 있었다.
돌을 쪼갠 자국처럼 보였지만 홈은 제단 중앙이 아니라 지하로 이어졌다. 그 끝에는 열여섯 번째 판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이건 내 장치가 아니야.”
카일이 낮게 말하자 마렌이 붓을 들었다.
“발화자 카일. 대성당 중앙 제단 아래의 홈과 검은 점은 사전 설계 목록에 없음. 직접 관측.”
“공개 기록에는 넣지 마십시오.”
“왜요?”
“모르는 것을 퍼뜨리면 내가 만든 연출과 장치의 반응이 한 덩어리가 돼. 그러면 나중에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아무도 구분하지 못해.”
마렌은 장부의 비공개 관측 칸에 문장을 옮겼다.
“분리했습니다.”
레오나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선을 칼집 끝으로 그었다.
“이 선 안쪽에는 담당자 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교주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가 예외가 아니면 누가 나를 빼내지?”
“빼내지 않습니다. 범위만 확인합니다.”
광장 한쪽의 물거울이 열렸다. 황궁 지하 봉인실의 에단이 기록판을 들고 비쳤다. 그 뒤에는 라시안과 총서기관이 있었다. 총서기관의 손목에는 검은 선이 남아 있었고 황태자 동쪽 접견실의 문은 손가락 하나만큼 열려 있었다.
“황실 개관 문서를 낭독하겠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대성당의 운영과 교단의 대표 권한은 황실의 보호 아래 유지된다. 교주 셀레스티알은 영원한 대표로—”
“거기서 멈추십시오.”
카일이 손을 들었다.
“보호는 황실의 의사입니다. 영원한 대표 지정은 아직 제 동의를 확인하지 않은 문장입니다. 둘을 한 줄로 읽지 마십시오.”
총서기관이 물거울 너머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개관식에서 황실 문서를 거부하겠다는 뜻이오?”
“거부가 아니라 분리입니다. 동의하지 않은 문장을 제가 읽었다고 기록하지 마십시오.”
에단은 카일의 말을 두 칸으로 나눠 적었다.
라시안도 벽에 기대어 말했다.
“내가 이곳으로 이동하거나 누구에게 인계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항목도 함께 남겨라.”
“기록했습니다.”
에단의 붓이 움직이자 제단 아래의 검은 점이 한 번 뛰었다.
마렌이 그 반응을 보았다.
“황궁 기록과 제단의 반응 시각이 같습니다.”
“같다는 사실만 적어.”
첫 번째 종이 울렸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켰다. 대성당 안쪽의 벽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영웅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물자를 옮긴 사람과 부상자를 업은 사람과 밤새 장부를 지킨 사람의 이름도 같은 크기로 들어가 있었다.
카일이 직접 정한 배열이었다.
이름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는 카일의 계산이었다.
카일이 중앙 제단으로 걸어가자 귀족 대표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교주님께서는 오늘 하늘에 오르시어 영원히 저희를 다스리실 겁니다.”
환호가 터졌다.
남자의 손에는 금색 문서가 들려 있었다. 문서 맨 아래에는 이미 카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영원한 대표자. 모든 의식과 운영의 최종 수령자.’
수령자라는 단어가 검은 잉크처럼 번졌다.
카일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받아라.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네 이름 하나면 저 많은 손을 전부 묶을 수 있다.
‘그래서 받지 않는 거다.’
카일은 문서를 집지 않았다.
“작성자는 누구입니까?”
“각 지방 대표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서명자는요?”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카일은 문서를 마렌에게 넘기지 않고 광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뜻을 모았다는 말로 누구의 이름도 지우지 마십시오. 이 문장을 원하는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말하십시오. 제가 없어도 성별교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자기 이름으로 말하십시오. 둘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마렌이 사람들을 가리켰다.
“한 줄씩 말하십시오. 발화자와 서명자를 따로 적겠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겹쳐 알아듣기 어려웠다. 레오나가 사람들을 세 줄로 나누고 각 줄에서 한 명씩 말하게 하자 문장이 갈라졌다.
“교주님이 남아 주셨으면 합니다.”
“교주님이 떠나도 아이들이 치료받았으면 합니다.”
“누구도 우리 이름을 대신 팔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렌은 세 말을 서로 다른 칸에 적었다. 카일은 그 기록을 보며 목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오늘 의식은 내 이름을 넘기는 자리가 아닙니다.”
카일이 말했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여러분이 서로의 말을 확인할 수 있는지 보는 자리입니다. 나를 수령자로 만들기 위한 기도는 하지 마십시오. 각자 돌아갈 장소와 지킬 사람과 내일 필요한 것을 떠올리십시오.”
에단이 물거울 너머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선언은 공식 의식 문구가 아닙니다.”
“그러니 발화자 카일의 제안으로 적으십시오.”
“이미 그렇게 적었습니다.”
광장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수만 개의 입술이 동시에 움직였다. 주문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가족의 이름을 불렀고 어떤 이는 고향의 강을 떠올렸고 어떤 이는 내일 나눌 빵의 수를 세었다.
서로 다른 말들이 천창 아래에서 하나의 낮은 울림이 됐다.
카일이 손가락을 튕겼다.
계단 아래의 거울 조각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숨겨 둔 가루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천창의 별 모양 틈 사이로 빛의 계단이 솟았다. 광장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카일의 환각이었다.
그런데 빛이 제단 아래까지 스며들자 낯선 검은 점이 계단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카일은 웃음을 잃었다.
“마렌. 검은 점의 위치를 적어.”
“공개 기록에 넣습니까?”
“직접 관측 칸에. 뜻은 쓰지 마.”
레오나가 선을 밟지 않은 채 제단 아래를 살폈다.
“환각이 아니라면요?”
“그때도 먼저 범위를 확인해.”
“알겠습니다.”
빛의 계단은 하늘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카일은 그 끝에 자신의 형상을 올렸다. 실물과 똑같은 얼굴이 천창 너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환호가 커졌다.
카일은 장치가 자신의 얼굴을 흉내 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번 형상에는 목소리를 주지 않고 빈 의자만 바라보게 했다.
두 번째 종이 울리려는 순간 제단 밑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환각의 빛과 기도의 울림이 소리를 덮었다. 물거울 속 에단만이 분명히 들은 얼굴이었다.
황궁 동쪽 접견실의 문이 조금 더 열렸다.
“문이 움직였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총서기관이 인장을 집으려 했지만 라시안이 먼저 손을 뻗었다.
“잡지 마라.”
“전하의 안전을 위해—”
“내가 동의하지 않은 문을 네가 열 수는 없다.”
에단은 두 사람의 말을 나누어 기록했다. 그 순간 대성당 제단 아래의 검은 점이 황궁 쪽을 향해 길게 늘어났다.
마렌이 숨을 삼켰다.
“두 장소의 선이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였다는 데서 멈춰.”
카일은 제단 가장자리의 검은 선을 잡았다. 전체를 먹어치우면 수령자를 확인할 방법이 사라진다. 그는 가장 얇은 한 가닥만 잡았다.
통증이 손바닥에서 팔로 올라왔다. 검은 흔적이 뺨을 타고 관자놀이 쪽으로 번졌다.
―한 손이면 충분하다.
‘한 손으로 만들지 않는다.’
카일은 선을 끊지 않고 세 갈래로 나눴다. 하나는 빈 의자로 향하게 했다. 하나는 제단 아래로 묻었다. 마지막 하나는 세 기둥의 기록판으로 흘려보냈다.
“레오나. 선이 사람에게 닿으면 막아.”
“범위만 확인하겠습니다.”
“그 말이 맞아.”
“마렌. 지금부터 교주님의 선언도 의견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도렌은 어디 있지?”
“북쪽 통로에서 물자 수량을 확인 중입니다.”
마렌이 대답했다.
그때 제단 아래에서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수령 완료.’
마렌의 붓이 멈췄다.
“수령자가 비어 있습니다.”
“그대로 적어.”
“성공으로 해석할까요?”
“아니. 표기가 생겼다고만.”
카일은 빈 의자를 보았다. 그 위에 자신의 그림자가 앉아 있었다. 환각인지 천창의 각도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빛의 계단 위에 선 카일의 가짜 형상이 한 걸음 올라갔다.
광장 사람들은 그것을 승천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카일은 실제로도 한 걸음 물러섰다. 제단 뒤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개관 직전까지 막힌 벽으로 기록된 자리였다. 지금은 차가운 공기가 손등을 스쳤다.
“교주님.”
레오나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뒤쪽 통로가 열렸습니다.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지 마.”
“누구를 보내실 겁니까?”
주머니 속 금화 한 닢이 뜨거워졌다.
황궁의 열린 문과 제단 아래 통로가 동시에 어둠을 넓혔다. 물거울 표면에는 카일이 만든 빛의 계단과 실제로 열린 검은 틈이 겹쳐 보였다.
파멸의 별이 숨을 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가 선택하면 된다.
‘선택하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선택한다.
카일은 주머니 속 금화를 세게 움켜쥐었다.
기록과 돈과 권한을 나눈 것은 떠난 뒤에도 서로를 확인하게 하려는 준비였다. 무대 위와 실제의 자신을 동시에 남겨야 했다.
“마렌.”
“네.”
“내가 빛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지금 내 위치는 별도로 기록해.”
마렌의 눈이 커졌다.
“제단 뒤로 적으면 됩니까?”
“직접 본 것만 적어.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요청이야.”
마렌은 곧장 적었다.
‘카일의 요청. 환각 속 형상과 실제 위치를 분리 기록할 것.’
에단도 물거울 너머에서 같은 문장을 받아 적었다.
“황궁에서도 문과 위치를 분리하겠습니다.”
세 번째 종이 울렸다.
하늘에 떠 있던 카일의 형상이 빛을 두른 채 천창 위로 솟구쳤다.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카일은 제단 뒤의 어둠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 통로 안쪽에서 누군가 숨을 쉬었다.
카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열여섯 번째 판 위에는 새 문장이 생겼다.
‘다음은 빛을—’
문장은 거기서 멈췄다.
카일은 금화를 움켜쥔 채 어둠의 문턱 앞에 섰다.
대성당의 모든 빛이 한순간 꺼졌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금화 한 닢만이 별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