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59화: 확인자는 하나가 아니다
검은 별이 물거울 중앙에 박힌 순간 카일의 목소리가 끊겼다.
북부 초소에서 카일의 입술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물거울 너머로 나간 소리는 남쪽 역참에서 흘러나왔다.
“확인하라.”
마렌이 거울 곁의 은판을 뒤집었다.
“교주님은 방금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카일은 북부에서 직접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물거울을 건너간 순간 장치가 말투를 가져갔다. 목소리가 끊긴 게 아니라 출처가 끊긴 것이었다.
동쪽 창고의 거울에서는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확인자. 동쪽 창고 기록관.”
기록관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 검은 선이 가늘게 감겼다.
도렌이 이동표를 들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저 사람의 이름을 수령자로 적으려 합니다.”
“그렇게 쓰지 마십시오. 검은 선이 손목에 닿은 시각과 장치 추정 발화를 따로 적으십시오.”
마렌은 곧바로 은판에 글을 옮겼다.
‘동쪽 창고 기록관의 직접 발화 없음.’
‘장치 추정 발화: 확인자. 동쪽 창고 기록관.’
‘발화 뒤 손목에 검은 선 발생.’
카일은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이 웃는 장면을 보았다. 피곤한 눈과 갈라진 입술까지 그대로였다. 그 얼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륙 전체가 나를 확인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침묵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마렌이 그를 돌아봤다.
“지금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침묵을 명령하면 다음에는 침묵한 사람을 확인자로 만들 겁니다. 말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문장을 섞지 마십시오.”
그는 공동 기록판에 네 칸을 그었다.
‘이름.’
‘현재 위치.’
‘직접 본 사실.’
‘수령자.’
카일은 마지막 칸에 선을 그었다.
‘없음.’
유르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내 이름은 유르입니다. 나는 북부 초소 서쪽 돌담 아래에 있습니다. 물거울에 검은 별이 나타난 것을 직접 봤습니다. 나를 받는 수령자는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 검은 별의 가장자리에 작은 점 하나가 떨어졌다.
북부 생존자 중 한 여자가 유르의 문장을 따라 하지 않고 자기 기록을 읽었다.
“나는 북부 초소 서쪽 돌담 아래에 있습니다. 유르가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검은 별이 갈라지는 모습은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나도 누구의 수령자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검은 별의 반대편에 점 하나가 생겼다.
마렌은 두 문장과 발생 시각을 나란히 적었다.
“두 발화 뒤에 점이 나뉘었습니다.”
“두 현상이 함께 일어난 사실만 적으십시오.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레오나가 검을 뽑았지만 거울을 베지는 않았다. 칼끝은 북부와 연락망 사이의 얇은 물막을 겨눴다.
물거울 속의 카일이 같은 문장을 세 번째로 반복했다.
“대륙 전체가 나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카일은 입을 열지 않았다.
황궁 쪽에서 은판 하나가 붉게 달아올랐다.
황궁 지하 봉인실의 벽 안쪽에서도 라시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확인했다. 나는 동쪽 접견실로 돌아간다.”
라시안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총서기관이 문으로 다가갔다.
“전하의 목소리가 확인했습니다. 이제 동쪽 접견실로 옮기면 됩니다.”
에단이 문 앞을 막았다.
“그 음성은 장치 추정 발화입니다. 전하의 직접 진술이 아닙니다.”
“전하의 얼굴과 목소리를 모두 확인하지 않았나?”
“확인한 건 위치와 진술의 출처입니다. 이송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총서기관은 라시안의 팔을 잡으려 했다. 라시안이 손을 뿌리쳤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그는 세 개의 기록판을 앞으로 끌어왔다.
첫 번째 판에 직접 적었다.
‘이름: 라시안.’
‘현재 위치: 황궁 지하 봉인실.’
‘귀환 위치: 황태자 동쪽 접견실.’
‘수령자: 없음.’
두 번째 판에는 에단이 적었다.
‘직접 관측자: 에단.’
‘관측 내용: 라시안은 위 문장을 직접 작성하고 낭독함.’
세 번째 판은 장치 추정 발화를 위한 빈 칸으로 남겼다.
라시안은 빈 칸을 보며 말했다.
“나는 내 현재 위치만 확인합니다. 나를 누구에게 넘기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홈이 밝아졌다.
곧바로 같은 목소리가 벽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동의했다.”
총서기관이 입을 열었다. 에단이 손으로 막았다.
“그 문장은 라시안의 판에 옮기지 마십시오.”
에단은 세 번째 판에만 적었다.
‘장치 추정 발화: 나는 동의했다.’
‘라시안의 직접 발화 아님.’
라시안의 목 아래 검은 선이 조여 왔다. 그는 기침을 참으며 자신의 조건을 다시 읽었다.
“나는 황궁 지하 봉인실에 있습니다. 동쪽 접견실을 귀환 위치로 정했지만 수령자는 없습니다. 본인의 동의 없는 이동을 거부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봉인실 옆 벽에서 금속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철문 옆의 좁은 문틈이 열렸다. 틈 너머에는 지하실이 아니라 동쪽 접견실로 보이는 푸른 커튼과 빈 의자가 있었다.
총서기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귀환 위치가 열렸습니다.”
“문이 열린 사실만 기록하십시오.”
에단은 붓끝을 떨면서도 문장을 나눠 적었다.
‘라시안의 이동 확인 없음.’
‘황궁 지하 봉인실 옆 문틈에서 동쪽 접견실로 추정되는 공간 관측.’
‘발행자와 원인 미확인.’
라시안은 문틈 안쪽을 보며 물었다.
“내가 돌아갈 곳입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렇게 표기된 장소일 뿐입니다.”
에단은 라시안의 세 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은판에 옮겼다. 손이 떨렸지만 문장을 줄이지 않았다.
북부 연락망으로 은판의 표식이 넘어가는 순간 물거울에서 카일의 얼굴이 사라졌다.
카일은 각 수반에 남은 붉은 점을 하나씩 눌렀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던 환각의 막이 걷히자 물거울 앞에 세워 둔 공동 기록판이 선명해졌다.
“내 얼굴을 끄겠습니다.”
레오나가 그를 바라봤다.
“연결을 포기합니까?”
“연결은 이미 장치가 가져갔습니다. 얼굴까지 남겨 두면 거짓말을 말할 입만 늘어납니다.”
마렌이 남쪽 역참의 기록판을 들어 올렸다. 그곳의 기록관은 자기 이름과 현재 위치를 읽었다. 동쪽 창고의 기록관은 검은 선이 손목에 닿은 시각만 읽고 자신의 이름은 적지 않았다.
북부 마을에서는 글을 모르는 노인이 기록판의 마지막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옆 사람이 그의 말을 받아 적었지만 ‘수령자 없음’이라는 뜻은 노인이 직접 확인했다.
문장들은 서로 달랐다. 카일의 입에서 나온 공통 명령처럼 묶을 수 없었다.
도렌이 이동표를 세었다.
“전달한 사람은 기록관입니다. 수령자 칸은 비어 있습니다.”
“전달한 사람과 받는 사람을 섞지 마십시오. 말을 옮긴 사람은 수령자가 아닙니다.”
마렌은 각 기록판의 시각과 장소를 확인했다.
“검은 별이 한 점으로 붙지 않습니다. 각 거울 아래에 작은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적으십시오. 성공이라고 쓰지는 마십시오.”
카일은 북부 통로를 바라봤다. 열다섯 개의 금속판 위에서 검은 점들이 느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하렌으로 불린 남자가 목을 움켜쥐었다.
“첫 번째 수취인. 하렌. 미도착.”
목소리는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돌담 안쪽의 열여섯 번째 판이 그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었다.
검은 선 하나가 하렌의 목 아래로 기어갔다. 레오나가 그의 앞에 서서 칼날을 선과 목 사이에 세웠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저건 내가 아닙니다.”
하렌의 대답은 짧았지만 문장 끝이 흐려지지 않았다.
카일은 흰 재를 손가락 사이에 묻혀 하렌의 발밑과 공동 기록판 사이에 선을 그었다.
“전체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파멸의 별이 정신 안쪽에서 웃었다.
―이미 네 이름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까지 먹어라.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렌에게 붙으려는 한 가닥만 골라 손목의 검은 흔적으로 끌어당겼다.
선이 살을 파고들기 전에 떨어졌다. 카일의 손목에서 가슴 쪽으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검은 흔적이 심장 아래에서 한 번 크게 뛰었다.
레오나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더 하지 마십시오.”
“더 하지 않습니다.”
카일은 손을 거두었다. 하렌의 목을 감던 선은 공동 기록판의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장치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지만 남자의 몸에는 닿지 못했다.
마렌이 시간을 적었다.
‘하렌으로 불린 남자에게 접근한 선 한 가닥을 카일이 제한 흡수함.’
‘흡수 뒤 카일의 검은 흔적이 가슴 가까이 번짐.’
‘장치 전체의 약화 여부는 확인하지 못함.’
열여섯 번째 종이 울렸다.
각 물거울의 검은 별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하나의 별이 작은 점들로 나뉘었다.
유르가 숨을 삼켰다.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사실만 기록하십시오.”
카일은 얼굴이 사라진 물거울을 바라봤다. 이제 그의 말은 거울을 통하지 않아도 됐다. 각 장소의 사람들이 자기 문장을 들고 서 있었다.
북부 통로의 금속판에 글자가 올라왔다.
‘확인자: 독립 기록.’
그 아래에는 새로운 줄이 생겼다.
‘수령자: 없음.’
카일은 그 문장을 보며 웃지 않았다.
“이겼다고 쓰지 마십시오.”
마렌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무엇을 적습니까?”
“장치가 하나의 확인자를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 다음 반응 대기.”
그가 말을 끝내자 열여섯 번째 판이 다시 울렸다.
‘귀환 위치 확인.’
같은 문장이 북부와 황궁의 판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카일은 동시 발생 시각을 적게 했다. 원인이나 연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황궁의 문틈이 더 넓어졌다. 라시안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에단의 팔을 잡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으십시오.”
“이미 적었습니다.”
“다시 적으십시오. 문이 열린 것과 내가 들어간 것은 다른 일입니다.”
에단은 즉시 은판에 그 문장을 옮겼다.
총서기관은 문틈 너머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없던 그림자가 푸른 커튼 뒤에 서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발밑이 없었다.
총서기관이 뒤로 물러났다.
“안에 누가 있습니다.”
라시안이 물었다.
“누구인지 확인했습니까?”
총서기관은 입을 다물었다.
에단이 기록판을 들었다.
“모습은 관측했습니까?”
“그림자만 보았습니다.”
“이름은요?”
“없습니다.”
그림자가 커튼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발은 여전히 바닥에 닿지 않았다.
북부 통로의 열여섯 번째 판에서 검은 글자가 번졌다.
‘다음 확인자.’
카일은 공동 기록판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동쪽 접견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단. 확인하라.”
에단의 손에서 붓이 떨어졌다.
카일은 즉시 말했다.
“그 이름을 에단의 동의로 적지 마십시오.”
그러나 북부의 열여섯 번째 판은 이미 다음 줄을 새기고 있었다.
‘귀환 위치: 황태자 동쪽 접견실.’
문틈 안쪽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라시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에단. 확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