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49화: 성전 선포
아직 누구도 표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돌아갈 위치만 먼저 정해지고 있었다.
작은 철문 안쪽에서 세 번의 두드림이 끝나자 북쪽 배수 덮개 아래의 금속판도 세 번 떨렸다. 바깥에는 응답자가 없었다. 먼지 선만 안쪽으로 조금 더 끌려왔다.
총서기관이 말했다.
“이제는 열어야 하오.”
“아무도 열지 않는 게 확인 방법입니다.”
카일은 작은 철문과 배수 덮개 사이에 긴 철판을 세웠다.
“안쪽 관측자와 바깥 관측자와 물건의 위치를 따로 적습니다.”
총서기관이 반박하려던 순간 회랑 안쪽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황실 경비 부관이 흰 재 앞에서 멈췄다. 레오나가 검집을 들어 그의 발끝을 막았다.
“역할과 목적과 들어온 방향을 말하십시오.”
“황실 북문 경비 부관입니다. 긴급 보고를 전하러 왔습니다. 동쪽 계단으로 들어왔습니다.”
마렌의 붓이 움직였다.
“보고하십시오.”
부관은 검게 젖은 천 주머니를 철판 위에 내려놓았다.
“북쪽 외곽 보급소가 습격받았습니다. 곡물 수레 여섯 대가 뒤집혔고 물 저장통 셋이 깨졌습니다. 경비 두 명이 다쳤습니다. 민간인 행렬이 북문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습격자는?”
“열 명 이상입니다. 정확한 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낡은 태양신전 문양이 달린 망토를 입고 있었습니다.”
총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잔당이군.”
“그렇게 기록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끊었다.
“문양이 있었다는 사실과 소속은 다릅니다.”
부관은 주머니를 조금 열었다. 안에는 짧은 칼의 부러진 손잡이와 검은 가루가 엉겨 있었다. 손잡이 가장자리에는 세 갈래 절개가 남아 있었다.
“공격자 중 한 명이 ‘기록고로 돌아갈 것은 돌아간다’고 외쳤습니다. 그 뒤 검은 가루를 물통에 던졌습니다. 물 표면에 실 같은 검은 것이 퍼졌습니다.”
도렌이 숨을 삼켰다.
“돌아간다고 했습니까?”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만 말하십시오.”
카일은 주머니와 오르단 사이에 철판을 세웠다.
오르단이 다가왔다.
“그건 회수 표식이오. 내게 넘기시오.”
“발신자는?”
“옛 절차의 담당자요.”
“수령자는?”
오르단의 입이 닫혔다.
“반환 조건은?”
대답은 없었다.
그때 주머니 안에서 가는 마찰음이 났다.
검은 가루가 손잡이 안쪽으로 모였다.
열여섯 번째 박자였다.
북쪽 배수 덮개 아래의 금속판이 떨렸다. 작은 철문 안쪽의 가죽막도 한 번 부풀었다. 외부 인계표의 검은 선은 빈 귀환 위치 칸에서 북쪽 방향으로 조금 길어졌다.
마렌은 기록을 멈추고 카일을 보았다.
“세 반응이 같은 박자에 나타났습니다.”
“같은 물질이나 같은 원인이라고 쓰지 마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그 사실만 적습니다.”
주머니는 원본 인계표에서 세 걸음 떨어진 철판 위에 놓였다. 카일은 물그릇과 가는 실을 양쪽에 배치했다.
“열지 말아야 합니까?”
부관이 물었다.
“이미 열렸습니다. 안의 것과 손을 접촉시키지 않는 겁니다.”
오르단이 철판 너머에서 말했다.
“검은 가루를 흡수하면 북문을 살릴 수 있소.”
“당신은 명령서의 발신자와 수령자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회수 담당자요.”
“그렇게 말한 사람입니다.”
총서기관이 붉은 직인을 들었다.
“내 직인이 있소. 황궁의 명령으로 봉인하면 되오.”
레오나가 직인과 주머니 사이에 빈 철판을 세웠다.
“직인을 찍는 사람의 위치를 먼저 기록하십시오.”
총서기관이 이를 악물었다.
“북문에서 같은 가루가 물통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물건을 옮기면 오염이 따라가는지 이곳에서 번지는지 확인하지 못합니다. 이름 없는 손으로 옮기면 둘 다 알 수 없게 됩니다.”
열세 번째 박자부터 마렌이 세었다.
열네 번째 박자에 가는 실이 주머니 쪽으로 기울었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검은 가루가 손잡이 안쪽에서 세 갈래로 갈라졌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검은 막 하나가 철판 틈을 타고 흘러나왔다.
레오나의 검이 반쯤 뽑혔다.
“뒤로.”
카일이 먼저 명령했다.
검은 막은 흰 재를 넘지 않았다. 대신 철판 가장자리를 따라 기어가며 부관의 장갑을 향했다.
카일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파멸의 별이 손바닥 안쪽에서 웃었다.
―저것은 네가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다는 말과 먹어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북문이 무너지면 네 신도들이 먼저 먹힌다.
카일은 주머니와 부관 사이에 철판을 하나 더 놓았다. 검은 막의 끝이 철판에 닿는 순간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검은 막을 빨아들였다. 막은 실타래처럼 꼬이며 몸부림쳤다. 카일의 팔 안쪽에 번진 흔적이 쇄골을 향해 한 줄 더 뻗었다.
카일은 전부 끌어당기지 않았다.
막의 절반이 손끝으로 사라졌지만 나머지는 철판 틈에 눌어붙었다. 검은 가루와 세 갈래 절개도 남았다.
마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흔적이 남았습니다.”
“제한 흡수라고 적으십시오.”
카일은 손을 감쌌다.
“주머니 안의 물질 전체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부관의 장갑에는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레오나가 카일의 손목을 보았다.
“더 하지 마십시오.”
“하지 않습니다.”
“북문으로 가야 합니다.”
“압니다.”
카일은 북쪽 회랑을 보았다.
“이번에는 나도 같이 말하겠습니다.”
황궁 북문 안쪽 집결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문밖의 피난민은 두 겹의 경비선 뒤에 서 있었다. 성별교 구휼 연락소에서 달려온 사람들은 빈 수레와 물그릇을 들고 있었지만 누구에게 넘길지 정하지 못했다. 총서기관은 성문을 닫은 채 군사만 배치하자고 주장했다.
“외곽은 이미 뚫렸소. 북문을 열면 반란군이 그대로 들어올 것이오.”
“열지 않으면 피난민이 문 앞에서 쓰러집니다.”
마렌이 대꾸했다.
“어느 쪽도 추측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카일은 광장 한가운데 빈 수레를 세웠다. 수레 앞에는 구휼 기록판을 놓고 뒤에는 전투 장비를 분리해 쌓았다.
부관이 보고를 반복했다.
“북쪽 외곽 보급소에서 곡물 수레 여섯 대가 뒤집혔습니다. 물 저장통 셋이 깨졌습니다. 낡은 태양신전 문양을 단 무장자들이 경비를 몰아냈습니다. 민간인 행렬이 북문에 도착했지만 인계 책임자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카일은 피난민 쪽을 향했다.
“문밖에서 본 사람은 역할과 위치만 말하십시오.”
지친 여자가 경비선 앞에서 손을 들었다.
“곡물 수레를 따라온 사람입니다. 북쪽 세 번째 길목에서 왔습니다. 가족이 뒤에 남았습니다.”
“공격자의 수를 봤습니까?”
“열 명보다 많았습니다. 문양은 봤지만 얼굴은 못 봤습니다. 검은 물이 번진 물통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마렌은 직접 본 사실과 추정을 나누어 기록했다.
총서기관이 사람들을 훑었다.
“문양을 달았으면 태양신전 잔당이오. 북쪽을 쓸어야 하오.”
레오나도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모두를 베어 길을 열면 됩니다.”
카일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아닙니다.”
“교주님.”
“문양을 단 사람이 민간인을 공격했다는 사실과 태양신전을 믿는 모든 사람이 적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카일은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파멸의 별이 낮게 속삭였다.
―문을 닫아라. 네가 지키는 것은 네 이름뿐이다.
카일은 검은 흔적이 남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은 아무도 수령하지 않은 명령서처럼 보였다.
“성전은 복수의 이름이 아닙니다.”
카일이 말했다.
“사람을 되돌려 보내기 위해 세우는 길입니다.”
총서기관이 헛웃음을 흘렸다.
“설교를 하겠다는 것이오?”
“작전 명령을 합니다.”
카일은 기록판 앞에 섰다.
“강제 개종을 금지합니다. 문양을 단 사람이라고 해서 주민을 적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마렌의 붓이 움직였다.
“약탈과 민간인 징발을 금지합니다. 식량 수레는 구휼 기록에 먼저 올립니다. 전투원과 피난민과 포로의 위치를 따로 기록합니다.”
도렌이 고개를 들었다.
“수령자는요?”
“현장에 도착한 사람이 임의로 수령자가 되지 않도록 귀환 위치와 책임자를 함께 적습니다.”
도렌은 손을 펼쳤다.
“저도 기록을 돕겠습니다. 표는 잡지 않겠습니다.”
“공동 기록 보조자입니다. 수령자도 회수 담당자도 아닙니다.”
도렌이 고개를 숙였다.
레오나가 물었다.
“공격 명령은 어디까지입니까?”
“첫 목표는 북쪽 보급소와 끊긴 피난 행렬입니다. 북쪽 전체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태양신전의 모든 시설을 불태우지도 않습니다.”
“적이 먼저 오면요?”
“사람을 살려 데려올 수 있을 때까지 막습니다. 살해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레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곧 허리의 검을 고쳐 매고 구휼 수레 앞으로 이동했다.
“저는 수레를 지키겠습니다.”
“그게 첫 번째 임무입니다.”
해가 성벽 아래로 내려갈 무렵 북문 앞에 성별교의 깃발이 세워졌다.
검은 천 위의 별은 등불 세 개와 젖은 천 한 장으로 만든 흐릿한 빛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별이 흔들렸다.
총서기관이 물었다.
“성전이라는 이름을 공식 기록에 올리겠소?”
“제가 선포했습니다.”
“실패하면 그 이름도 그대의 것이오.”
“성공해도 그렇습니다.”
카일은 출정 기록판에 직접 적었다.
‘목적: 북쪽 보급소와 피난 행렬의 확인 및 귀환. 이동자: 카일. 관측자: 마렌. 호위 및 차단: 레오나. 구휼 수령: 성별교 연락소 대표. 귀환 위치: 확인 전까지 북문 안쪽 대기선.’
수령자 칸은 비워 두었다.
총서기관이 빈칸을 보았다.
“아직도 수령자를 정하지 않소?”
“현장에 도착한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건 아니니까요.”
외부 인계표를 보관한 철판 쪽에서 낮은 금속음이 났다.
열세 번째.
북문 아래의 돌이 떨렸다.
열네 번째.
성벽 바깥에서 검은 불빛 하나가 켜졌다.
열다섯 번째.
두 번째 불빛이 북쪽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작은 철문 안쪽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가……”
이번에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누가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외부 인계표의 검은 선이 빈 귀환 위치 칸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었다. 선 끝이 가리킨 곳에서 세 번째 검은 불빛이 켜졌다.
마렌이 기록했다.
“북문 바깥 불빛 세 개. 표의 선 확장. 같은 박자입니다.”
“같은 원인이라고 쓰지 마.”
카일은 손을 감싼 천을 조였다.
북쪽 도로의 불빛은 사람의 등불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오나가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
“교주님. 출발합니까?”
카일은 북문을 보았다.
닫힌 문 안쪽에서 아무도 표를 받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누군가 돌아오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사람인지 장치인지 오염인지 그는 아직 몰랐다.
그래도 이번에는 대답해야 했다.
“문을 엽니다.”
카일이 말했다.
“성별교의 성전을 선포합니다.”
북문이 열렸다.
카일과 레오나와 마렌과 구휼 수레가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도렌은 기록판을 품에 안고 그 뒤를 따랐다.
북쪽 도로의 세 불빛 사이에서 낮은 종이 울렸다.
한 번.
그리고 열여섯 번째 박자에 검은 불빛들이 동시에 사람의 눈처럼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