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47화: 빈칸을 지키는 사람
북쪽 회랑 바깥의 먼지 선이 안쪽으로 더 끌려와 있었다.
발자국은 없었다. 흰 재는 문턱 아래에서 가늘게 떨렸고 철문 안쪽에서는 세 번의 두드림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북쪽 회랑 바깥에서 응답이 오지 않았다.
총서기관이 경비에게 손을 들었다.
“문을 열고 확인하시오.”
“열지 않습니다.”
카일은 북쪽 회랑으로 이어진 문 앞에 빈 철판을 세웠다.
“바깥에 누가 있든 역할과 목적과 들어온 방향을 먼저 말하게 하십시오.”
“사람이 죽어 있을 수도 있소.”
“그래서 함부로 열 수 없습니다.”
카일은 흰 재를 두 줄로 나누었다. 안쪽은 사람의 위치를 표시하고 바깥쪽은 물건의 위치를 표시했다. 레오나는 두 선 사이에 서서 경비들의 창끝을 아래로 눌렀다.
“선을 넘는 사람은 이름보다 역할을 먼저 말합니다.”
“황실 경비가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오?”
총서기관이 쏘아붙였다.
“자신이 어느 선을 넘었는지 기록할 사람에게요.”
마렌은 바깥 두드림 세 번과 안쪽 두드림 세 번을 적었다. 바깥의 세 번째 뒤에는 응답이 없었고 먼지 선만 안쪽으로 움직였다는 사실도 남겼다.
카일은 긴 철판의 끝을 문 아래로 밀었다. 철판 위에는 작은 물그릇과 가는 실이 붙어 있었다.
“열세 번째부터 셉니다.”
열네 번째 박자에 물그릇 수면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문 아래 먼지가 한 줄로 빨려 들어왔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북쪽 회랑 바깥에서 낮은 금속음이 났다.
“사람이 두드린 소리입니까?”
레오나가 물었다.
“금속음이 났다는 사실만 적습니다.”
카일은 사각거울을 문 아래로 밀었다. 닫힌 배수 덮개 아래에 손톱만 한 틈이 보였다. 틈 안쪽에는 얇은 금속판이 갈대처럼 휘어 매달려 있었다. 가운데에는 두 줄의 절개가 있었고 공기가 지나갈 때마다 조각이 떨렸다.
그 아래로 검은 끈이 지나갔다. 세 갈래 매듭 하나에는 회색 천 조각이 걸려 있었다.
마렌이 숨을 들이켰다.
“안쪽 철문 뒤의 천과 비슷합니다.”
“비슷하다고만 적어.”
카일은 거울을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천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도렌이 흰 재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건 대기선입니다.”
카일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출처를 말하십시오.”
도렌은 손목의 붉은 자국을 감쌌다.
오르단이 비웃었다.
“설비공이 옛 회수 표식을 알아볼 리 없소.”
미르가 곧바로 덧붙였다.
“오래된 회수 절차의 표식일 수는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설명이 다릅니다.”
카일이 말했다.
“도렌은 설비 표식이라 하고 오르단은 회수 절차라 합니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도렌. 대기선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다음 인계자가 역할을 말할 때까지요.”
“수취인은 누구입니까?”
“모릅니다.”
“그런데 왜 외부 인계자라고 했습니까?”
도렌은 철판 위의 인계표를 보았다.
“표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표에는 이름도 역할도 없습니다.”
도렌의 눈이 흔들렸다.
총서기관이 경비를 향해 턱을 들었다.
“이제 도렌과 표를 황실 심문실로 옮기시오.”
경비가 움직이자 레오나의 검집이 두 사람 앞을 막았다.
“멈추십시오.”
“황실 명령이오.”
“명령자의 이름과 이동 목적과 귀환 위치를 기록하겠습니다.”
“내가 명령했소.”
카일은 빈 이동표를 철판 위에 놓았다.
“그러면 수령자 칸에 직접 서명하십시오.”
총서기관이 노려보았다.
“황실 심문실이 받는다고 했잖소.”
“방의 이름은 수령자가 아닙니다.”
카일은 이동자·관측자·수령자·귀환 위치가 적힌 네 칸을 가리켰다.
“이름 없는 명령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돌려주지는 못합니다.”
“그대가 황실 행정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오?”
“행정을 완성해 드리는 중입니다.”
총서기관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순간 인계표의 검은 선이 꿈틀거렸다. 숫자 16 아래에서 뻗은 선이 도렌의 손목 쪽으로 향하다가 흰 재 앞에서 멎었다. 가느다란 가지 하나는 빈 이동표의 수령자 칸을 향했다.
마렌이 기록지를 들었다.
“검은 선이 수령자 칸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의미는 적지 마.”
카일이 말했다.
“이동 명령 직후였다는 사실만 남겨.”
오르단이 몸을 숙여 인계표에 손을 뻗었다.
레오나보다 먼저 카일이 빈 철판을 세웠다.
“회수 권한을 말하십시오.”
“옛 절차에 따른 권한이오.”
“명령서의 발신자는?”
오르단은 침묵했다.
“수취자는?”
다시 침묵.
“반환 조건은?”
오르단의 손가락이 굳었다.
“세 가지가 모두 없으면 당신은 회수 담당자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미르가 입을 열었다.
“수취 전 대기는 확인자에게 책임을 남기는 절차입니다.”
“확인자는 누구입니까?”
“문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은 누가 가르쳤습니까?”
미르도 대답하지 못했다.
카일은 도렌을 보았다.
“도렌은 증언자입니다. 수취인이 아닙니다.”
도렌이 고개를 들었다.
“저를 믿는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카일은 이동표를 그대로 펼쳐 두었다.
“당신을 먼저 옮기면 어디에 있었는지와 무엇을 보았는지가 지워집니다. 지금은 믿음보다 위치가 필요합니다.”
레오나는 이동표를 들어 경비의 창끝 앞에 세웠다.
“창을 들면 창을 든 사람의 위치를 적습니다.”
경비의 창이 멈췄다.
그때 철문 안쪽에서 구리관을 지난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미르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수취인은……”
“끝까지 말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막았다.
북쪽 회랑 바깥에서 세 번의 금속음이 이어졌다. 바깥에는 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렌이 간격을 재려 하자 카일이 손을 들었다.
“간격만 기록해. 연결이라고 쓰지 마.”
회색 천 조각이 움직였다.
먼지 선이 아니라 검은 끈 자체가 안쪽으로 한 뼘 끌려왔다. 배수 덮개 아래의 얇은 금속판이 떨리며 짧은 음을 냈다.
도렌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대기선은 제가 당겨야 합니다.”
“방금 대기자는 끈을 당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렌의 얼굴이 굳었다.
카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대기선의 뜻이 아니라 대기선에 묶인 사람의 역할을 알고 있군요.”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도렌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레오나가 그와 천 조각 사이에 철판을 세웠다.
“손을 보이십시오.”
도렌은 두 손을 펼쳤다.
“표를 발견했을 때 끌어왔습니다. 끈을 당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당겼습니다.”
“왜요?”
“제 손목에 같은 자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렌은 붉게 패인 자국을 내보였다.
“누군가 저를 인계자로 지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명령을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름을 봤습니까?”
“아닙니다.”
도렌은 고개를 숙였다.
“대기하는 사람에게 선택지는 없다고 배웠습니다.”
파멸의 별이 손바닥 안쪽에서 속삭였다.
―저자를 안으로 밀어 넣어라.
카일은 대답하지 않고 철문을 바라보았다.
“안쪽의 역할을 먼저 말하십시오.”
그는 문을 향해 차례로 물었다.
“보관 담당자.”
금속음이 한 번 났다.
“기록 담당자.”
가죽막이 짧게 떨렸다.
“회수 담당자.”
북쪽 배수 덮개의 금속판이 흔들렸다.
“확인자.”
철문과 배수 덮개에서 동시에 마찰음이 났다.
마렌이 펜을 들었다.
“동시 발생으로 적습니다.”
“좋아.”
카일은 마지막 질문을 바꾸었다.
“대기자.”
철문 안쪽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들린 것인지 긴 숨이 갈라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소리 끝에는 세 번의 짧은 긁힘이 붙었다.
도렌이 무릎을 굽혔다.
“그 역할은 안쪽에 있어야 합니다.”
“그 규칙의 다음 문장은?”
“없었습니다.”
“없었던 겁니까. 지워진 겁니까?”
도렌은 답하지 못했다.
회색 천의 끝이 빈 철판 가장자리에 닿았다. 천 표면의 검은 습기가 세 갈래 실밥을 따라 번졌다.
마렌이 거울로 뒷면을 비췄다.
“안쪽 천 조각과 유사한 간격과 절개가 보입니다.”
카일은 인계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빈 이름 칸 안쪽에 검은 선이 새로 생겨 있었다. 선은 도렌에게도 카일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빈 이동표의 수령자 칸을 향해 길게 이어졌다.
총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그 빈칸을 채우면 끝날 일이오.”
“누구의 이름으로요?”
이번에는 총서기관도 대답하지 못했다.
철문 안쪽의 가죽막이 크게 부풀었다.
구리관을 지난 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두 번째…… 대기……”
뒤는 금속 떨림에 잠겼다.
카일은 붓을 빈칸에 대지 않았다.
“이름은 쓰지 않습니다.”
도렌이 그를 보았다.
“그러면 누가 사라집니까?”
“아직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카일은 흰 재 선을 다시 그었다. 사람과 표와 천 조각 사이의 거리를 갈라놓았다.
“사라지게 만드는 건 이름을 안 쓰는 게 아닙니다. 누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록하지 않는 겁니다.”
철문 안쪽에서 세 번의 두드림이 났다.
이번에는 북쪽 회랑 바깥에서 응답이 없었다.
인계표의 빈 이름 칸 안쪽에서 검은 선 하나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누군가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선은 글자가 되지 못하고 멈췄다.
문 안쪽의 대기자는 아직 자신의 역할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