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46화: 문밖의 수취인
닫힌 철문 너머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북쪽 회랑 바깥에서도 세 번의 두드림이 돌아왔다.
총서기관이 경비에게 손을 들었다.
“문을 열고 바깥을 확인하시오.”
“아직 열지 않습니다.”
카일은 북쪽 회랑으로 이어지는 문 앞에 빈 철판을 세웠다. 레오나는 그 앞에 흰 재를 가늘게 뿌렸다.
“선을 넘는 사람은 역할과 목적과 들어온 방향을 말합니다. 이름은 나중에 기록합니다.”
“바깥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을 시킬 셈이오?”
“말하지 않는 것도 관측입니다.”
마렌은 기록지 왼쪽에 기록고 안쪽을 그렸고 오른쪽에 북쪽 회랑의 문과 흰 재 선을 표시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두드림 사이의 간격은 같습니다. 바깥쪽 세 번째 간격이 조금 짧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두드린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지금 확인한 건 간격뿐입니다.”
레오나는 문에 귀를 대지 않고 바닥을 살폈다. 흰 재 바깥의 먼지에는 안쪽으로 끌린 선이 하나 있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마렌이 사각거울을 바닥에 밀어 넣었다.
“선은 북쪽 벽 하단까지 이어집니다. 중간에서 한 번 꺾였어요.”
카일은 벽 아래의 배수 덮개를 보았다. 덮개의 모서리에는 세 갈래 절개가 남아 있었다. 서쪽 문 밖에서 본 흠집과 비슷했지만 같은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덮개를 열지 말고 아래를 비춰.”
거울의 각도가 바뀌었다.
금속이 먼지를 밀고 흰 재 앞까지 미끄러져 나왔다. 레오나의 검집이 즉시 그 앞을 막았다.
“손을 대지 마십시오.”
“손은 없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금속 조각은 낡은 인계표처럼 보였다. 중앙에는 오르단의 패와 닮은 문양이 있었고 가장자리는 세 군데 비스듬히 잘려 있었다. 뒷면에는 숫자 16이 눌려 있었다.
오르단의 얼굴이 굳었다.
“대기표요.”
카일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 말의 출처를 말하십시오.”
오르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렌의 펜이 종이를 긁었다.
“오르단이 인계표를 대기표라고 지칭함. 용어의 출처는 미상.”
카일은 철판 끝으로 금속 조각을 끌어 올렸다. 인계표가 철판 위에 놓이자 가장자리에 검은 점이 맺혔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검은 점이 뒷면의 빈 이름 칸으로 한 줄 번졌다.
철문 안쪽에서 세 번의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마렌이 숨을 삼켰다.
“두 반응이 같은 시각입니다.”
“그 사실만 적습니다.”
카일은 인계표와 철문 사이에 두 번째 철판을 세웠다.
“같은 원인이라고 쓰지 마십시오.”
파멸의 별이 손바닥 안쪽에서 낮게 웃었다.
―빈 이름을 네 이름으로 채우면 안쪽의 주인을 볼 수 있다.
‘그 표의 주인이 되는 거겠지.’
―이미 네 선언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
카일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인계표는 별도 철판에 둡니다. 봉투와 닿게 하지 않습니다.”
총서기관이 다시 경비를 보았다.
“바깥 문을 열어야 하오.”
“문을 여는 사람의 이름과 목적과 귀환 위치를 기록하신다면 가능합니다.”
총서기관의 손이 멈췄다.
그때 배수 덮개 안쪽에서 끈이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레오나가 검집을 세웠다.
“역할과 목적과 방향을 말하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낡은 숨소리만 한 번 새어 나왔다.
마렌이 기록했다.
‘질문 뒤 응답 없음. 배수 덮개 안쪽에서 숨처럼 들리는 소리 한 번 관찰.’
카일은 인계표에 연결된 가느다란 끈을 사각거울로 따라갔다. 끈은 벽 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있었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덮개 옆의 낡은 철판이 안쪽으로 밀렸다.
회색 설비복을 입은 남자가 몸을 접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른쪽 손목에는 인계표와 같은 폭의 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레오나가 그의 어깨 앞에 검집을 세웠다.
“선을 넘지 말고 역할을 말하십시오.”
남자는 흰 재 앞에서 멈췄다.
“외부 인계자입니다.”
“목적은?”
“수취 전 대기입니다.”
“진입 방향은?”
“북쪽 설비 틈입니다.”
마렌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총서기관이 경비를 불렀다.
“무단 침입자로 묶어 심문실로 옮기시오.”
“이름과 소속을 먼저 확인합니다.”
“소속도 이름도 말하지 않는 자요.”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록합니다.”
카일은 남자의 양손을 빈 철판 위에 올리게 했다. 레오나는 손목을 묶었지만 인계표가 놓인 철판과는 닿지 않게 했다.
“현재 소속.”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외부 인계자라는 역할을 부여한 사람.”
“모릅니다.”
“수취 전 대기는 누가 가르쳤습니까?”
“오래된 설비 교육입니다.”
오르단이 낮게 말했다.
“그런 교육은 폐지된 지 오래요.”
남자가 오르단을 돌아보았다.
“폐지됐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오르단의 표정이 굳었다.
미르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오래된 보관 절차에서만 쓰입니다.”
“문장 끝까지 말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미르를 막았다.
“당신의 역할과 위치부터 말합니다.”
미르는 입을 다물었다.
카일은 회색 설비복의 오른쪽 소매와 왼쪽 장화를 살폈다. 소매에는 검은 먼지가 묻었고 장화 밑창에는 세 갈래 홈이 파여 있었다.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확인자가 정해지기 전에는 이름을 남기지 않습니다.”
“당신이 확인자입니까?”
“아닙니다.”
남자는 잠시 철문을 보았다.
“도렌입니다.”
그가 낮게 말한 이름을 마렌이 적었다.
‘본인이 도렌이라고 진술함. 현재 소속과 명령자는 확인하지 못함.’
총서기관이 표를 가리켰다.
“당장 표를 회수하시오.”
도렌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지면 수취인으로 기록됩니다.”
“표를 끈으로 끌어온 건 누구요?”
“제가 했습니다. 하지만 회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를 누가 정했습니까?”
도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일은 그의 손을 보았다. 묶인 손가락이 인계표 쪽으로 향하지 않으려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그때 철문 안쪽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렌의 목이 움찔했다.
“당신이 신호를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두 번째 수취인입니다.”
인계표 가장자리의 검은 선이 조금 더 길어졌다.
카일은 오르단과 미르를 각각 다른 선에 세웠다.
“세 사람 모두 역할만 말합니다. 오르단.”
“회수 담당자.”
“미르.”
미르는 잠시 망설였다.
“기록 담당자.”
“도렌.”
“외부 인계자.”
세 사람의 발화가 끝난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철문 안쪽에서 둔탁한 울림이 났다. 인계표의 검은 선도 같은 시각 한 뼘만큼 길어졌다.
마렌이 기록지를 들여다보았다.
“세 발화 뒤에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단어를 이해했다고 쓰지 마십시오.”
카일은 도렌의 손과 인계표 사이의 거리를 재게 했다.
“손은 닿지 않았습니다.”
“표는 손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도렌이 낮게 말했다.
“수취인이 정해지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누가 정합니까?”
도렌은 입을 다물었다.
파멸의 별이 웃었다.
―빈칸은 네 쪽으로 기울었다.
‘기울어진 건 검은 선이다.’
―그 선은 네 선언도 기억한다.
카일은 손목의 열기를 눌렀다.
“표를 떼지 않습니다. 사람의 신분과 장치의 책임을 한 번에 흡수하지도 않습니다.”
총서기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렌을 황실 심문실로 옮기면 될 일이오.”
“지금 옮기면 그가 표의 책임에서 벗어났는지조차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자는 죄인일 수 있소.”
“죄인인지 증인인지 아직 모릅니다.”
카일은 레오나에게 도렌의 발목 위치를 다시 표시하게 했다. 인계표와 철문에서 같은 거리가 되도록 흰 재 선을 하나 더 그었다.
도렌이 숨을 삼켰다.
“첫 번째가 안에 있으면 두 번째는—”
“끝까지 말하지 마십시오.”
카일의 말이 떨어지자 철문 안쪽의 가죽막이 크게 부풀었다. 말처럼 들리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문장인지 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마렌은 음절을 추측하지 않고 공명음으로 기록했다.
“누가 그 문장을 가르쳤습니까?”
카일이 물었다.
“문장이 아니라 작업 규칙입니다.”
“첫 번째는 사람입니까 물건입니까?”
도렌은 답하지 않았다.
오르단이 대신 말했다.
“옛 절차에서는 대상을 구분하지 않소.”
“당신은 대기표라고 부르고 미르는 수취 전 대기라고 부릅니다.”
카일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같은 문서를 읽은 게 아니군요.”
미르의 얼굴이 굳었다.
“추측입니다.”
“그래서 더 읽지 않습니다.”
카일은 인계표 아래에 빈 철판을 밀어 넣었다. 손을 대지 않고 표의 뒷면을 사각거울로 비췄다.
숫자 16 아래에 긁힌 문장이 있었다.
‘첫 번째가 안에 있으면 두 번째는—’
뒤는 녹과 검은 습기에 가려져 있었다.
카일은 문장을 완성하지 않았다.
“물그릇을 표 옆에 둡니다. 문을 열지 않고 표를 만지지 않는 조건에서 한 번만 셉니다.”
마렌이 열세 번째부터 세었다.
열네 번째 박자에 물그릇이 흔들렸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북쪽 벽 안쪽에서 가느다란 금속음이 났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기록고 레일에서 한 번 울림이 돌아왔다.
인계표의 선은 더 길어지지 않았다. 봉투가 든 세 봉인함도 움직이지 않았다.
카일은 기록 문장을 불렀다.
“도렌의 외부 인계자 발화와 인계표의 검은 선 확장은 시간적으로 겹쳤습니다. 도렌의 손은 표에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북쪽 벽과 기록고 레일의 금속음이 뒤따랐습니다. 봉투 봉인함의 이동은 없습니다.”
마렌이 받아 적었다.
도렌은 흰 재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인계표의 빈 이름 칸에 검은 선이 한 줄 더 생겼다. 선은 도렌 쪽으로 뻗다가 중간에서 꺾여 철문 방향으로 돌아갔다.
레오나가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표가 움직입니다.”
“아니요. 표면의 검은 점이 늘어난 겁니다.”
카일은 인계표와 자신의 발 사이에 철판을 세웠다.
“아직 당신을 수취인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기록고 레일의 열여섯 번째 빈 홈에서 봉투와 무관한 금속음이 한 번 울렸다.
철문 안쪽은 조용했다.
카일은 도렌을 보며 낮게 말했다.
“다음 역할을 말하는 사람은 문밖이 아니라 문 안쪽입니다.”
닫힌 철문 너머에서 세 번의 두드림이 이어졌다.
바깥에서는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