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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45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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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두 번째 수취인의 빈칸

세 번의 두드림이 끝난 뒤에도 작은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카일은 봉투부터 보았다. 철문 틈에서 밀려 나온 봉투는 문턱에 걸린 그대로였고 봉인끈도 끊어지지 않았다. 오르단의 패는 철그릇 안에 놓였으며 기록고 레일의 열여섯 번째 홈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세 물건을 한곳에 두지 마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봉투는 철문 앞에 둡니다. 패는 철그릇 안에 둡니다. 레일은 현 위치에 둡니다. 이동한 사람과 확인한 사람도 따로 적습니다.”

총서기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문장 하나를 확인하려고 황실 보관물을 세 군데로 나누겠다는 것이오?”

“문장 하나가 아니라 책임 세 개를 나누는 겁니다.”

마렌은 세 장의 기록지를 펼쳤다. 첫 장에는 봉투의 위치를 그렸고 둘째 장에는 패를 놓은 시각을 적었다. 셋째 장에는 레일의 빈 홈과 철문 사이 거리를 표시했다.

레오나는 철문 앞에 흰 재를 뿌렸다.

“이 선을 넘는 사람은 이름과 역할을 말하십시오.”

“아직도 죄인을 찾는 줄 아시오?”

“죄가 아니라 위치를 찾습니다.”

레오나는 검집을 세웠다.

“위치가 없으면 책임도 사라집니다.”

카일은 봉투를 열지 않은 채 빈 철판 위로 밀었다. 사각거울을 바닥에 세우고 기록고 담당자에게 등잔을 낮추게 했다. 봉투 겉면에는 눌린 자국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안쪽에서 밀린 듯 둥글었고 다른 하나는 바깥 가장자리에서 문턱 쪽으로 길게 끌려 있었다.

“두 압흔의 방향이 다릅니다.”

마렌이 말했다.

“누가 눌렀는지는 쓰지 마. 방향만 적어.”

봉투 아래의 검은 습기는 종이의 결을 따라 가느다란 선을 만들고 있었다. 선은 어느 쪽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봉투 가운데에서 멎었다.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열면 압흔의 주인을 알 수 있다.

‘열면 안쪽에 있는 것이 먼저 우리를 알게 된다.’

―이미 네 손을 기억했다.

카일은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손목 안쪽의 검은 흔적이 꿈틀거렸다. 문을 열고 봉투를 확인하면 진실에 가까워질지도 몰랐다. 동시에 그 순간 자신이 ‘두 번째 수취인’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황궁의 책임과 별의 굶주림을 한꺼번에 떠안을 이유는 없었다.

“세 기관의 봉인함을 가져오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총서기관이 다가서려 하자 마렌이 붓을 들었다.

“누가 먼저 봉인을 풀었는지 적겠습니다.”

총서기관의 손이 멈췄다.

철문 안쪽에서 가죽막이 한 번 부풀었다.

카일은 문과 봉투의 거리를 다시 재게 했다.

“다음 박자부터 역할과 위치를 대조합니다.”


오르단은 문턱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미르는 그보다 세 걸음 뒤에 세웠다. 레오나는 둘 사이에 빈 철판을 세웠고 마렌은 발끝 위치를 기록했다.

“옛 절차는 순서가 중요하오.”

오르단이 말했다.

“그래서 순서와 위치를 나눕니다.”

카일은 열세 번째 박자부터 세게 했다.

“첫 번째 측정입니다. 오르단은 문턱 앞에서 ‘회수 담당자’라고 말하고 미르는 세 걸음 뒤에서 ‘기록 담당자’라고 말하십시오.”

“나는 회수 담당자요.”

오르단의 말 뒤에도 패는 움직이지 않았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봉투의 봉인끈이 떨렸고 열여섯 번째 박자에 가죽막이 부풀었다.

마렌이 기록지를 보았다.

“0044화와 같은 발화인데 패 반응은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패가 놓인 거리와 사람의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그러니 같은 원인이 아니라고도 쓰지 마. 이번 조건에서 반응이 재현되지 않았다고만 적어.”

총서기관이 코웃음 쳤다.

“그렇게 쪼개 놓으면 아무 결론도 못 내리지 않소.”

“틀린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늦습니다.”

카일은 두 번째 측정을 지시했다.

“이번에는 미르가 문턱 앞에서 ‘확인자’라고 말하고 오르단은 세 걸음 뒤에서 ‘회수 담당자’라고 말합니다.”

미르의 얼굴이 굳었다.

“확인자는 문밖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이 규칙인지 증언인지 확인하는 겁니다.”

미르가 문턱 앞에 서서 역할을 말하자 철문 안쪽에서 숨처럼 들리는 소리가 한 번 흘러나왔다. 오르단의 회수 담당자 발화 뒤에는 패가 움직이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문턱 아래 금속 홈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앞선 측정과 다른 반응입니다.”

마렌이 말했다.

“위치가 달랐을 때 반응도 달랐다고 적어.”

오르단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건 수취 전 대기의 반응이오. 회수 담당자는 수취 전 대기를 거칩니다.”

“그럼 수취인은 누구입니까?”

카일이 묻자 오르단은 입을 다물었다.

파멸의 별이 낮게 웃었다.

―그의 입은 빈칸이다.

‘빈칸은 네가 채우지 않아.’

카일은 세 번째 측정에서 직접 문턱에서 두 걸음 물러섰다.

“수취인.”

열네 번째 박자에 물그릇의 수면이 흔들렸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레일의 빈 홈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는 철문이 아니라 북쪽 회랑 벽 쪽에서 금속음이 났다.

카일은 한 번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두 번째 수취인.”

봉투 바깥의 검은 습기가 한 점 더 젖었다. 철문 안쪽에서는 세 번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첫 번째보다 짧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의 간격도 달랐다.

총서기관이 뒤로 물러섰다.

“이제 장치가 그 말을 알아듣는다고 쓸 수 있겠소.”

“그 말을 한 뒤 검은 습기와 긁는 소리가 관찰됐다고 씁니다.”

카일은 다음 측정을 하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관측이 아니라 장치에 문장을 가르치는 일이 됩니다.”

철문 안쪽의 소리가 멎었다.


오르단이 봉투 앞으로 다가섰다.

“이제 충분히 확인했소. 회수 담당자가 가져가겠습니다.”

레오나의 검집이 그의 손목 앞을 막았다.

“역할과 권한을 말하십시오.”

“옛 명령서가 있소.”

“발신자와 수신자와 반환 조건이 적혀 있습니까?”

오르단은 찢긴 종이를 꺼냈다. 남은 문장에는 ‘회수’라는 글자만 보였다. 마렌이 사각거울을 기울여 뒷면을 확인했다.

“수신자 칸이 찢겨 있고 반환 조건은 없습니다.”

“그래도 옛 절차는 유효하오.”

미르가 급히 끼어들었다.

“유효한 것이 아니라 대기 중입니다. 수취인이 확인되기 전에는 회수 담당자도 봉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르단의 표정이 굳었다.

“그 용어는 어디서 배웠지?”

“기록고의 오래된 교육 문서에서—”

미르는 말을 멈췄다.

카일은 두 사람 사이에 세 가지 질문을 놓았다.

“누가 명령했습니까? 무엇을 수취합니까? 두 번째 수취인은 어느 위치에 섭니까?”

오르단은 첫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두 번째에는 봉투라고 답했고 세 번째에는 문밖이라고 말했다.

미르는 첫 질문에 기록고 담당자라고 답했지만 이름은 말하지 못했다. 두 번째에는 봉투와 확인 기록이라고 했고 세 번째에는 문턱 뒤라고 했다.

“문밖과 문턱 뒤는 반대 위치입니다.”

마렌이 말했다.

“기준점이 다를 뿐이오.”

오르단이 대꾸했다.

“그럼 기준점을 먼저 기록해야 합니다.”

카일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당신들은 같은 절차를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은 물건을 회수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은 확인 기록을 보류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누가 봉투를 책임지는지는 비어 있습니다.”

총서기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황실이 책임지면 될 일이오.”

“황실의 어느 사람이 책임집니까?”

카일이 기록지를 내밀었다.

총서기관은 받지 않았다. 레오나가 봉투 쪽으로 한 발 움직이자 경비의 창끝이 올라갔다.

레오나는 칼을 뽑지 않고 봉투와 사람 사이에 철판을 세웠다.

“창을 들면 경비의 이름을 쓰고 검집이 열리면 제 역할을 쓰십시오.”

경비들이 서로를 보았다. 총서기관의 명령은 즉시 실행되지 않았다.

카일은 그 틈에 말했다.

“봉투는 지금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습니다. 세 기관의 외부 봉인함이 오면 그때 옮깁니다.”


잠시 뒤 기록고 담당자와 황실 경비와 세르단이 각각 봉인함을 가져왔다. 세 봉인함은 서로 닿지 않게 철문 앞에 놓였다.

카일은 봉투를 옮기기 전에 외부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두 압흔 중 문턱 쪽 자국이 조금 짙어져 있었다. 새로 생긴 것인지 등잔빛이 달라진 것인지 판정하지 않았다.

“두 시각의 모양이 달랐다고만 적어.”

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가 첫 번째 봉인함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가죽막이 부풀었다. 카일은 손을 멈추게 했다.

“열세 번째 박자부터.”

열네 번째 박자에 철문 안쪽에서 마른 마찰음이 났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레일의 빈 홈에서 검은 점이 솟았다.

열여섯 번째 박자.

구리관을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말처럼 들렸지만 뒤는 가죽막의 떨림에 묻혔다.

미르가 숨을 들이켰다.

“두 번째 수취인은 문밖에—”

“그 문장을 완성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막았다.

마렌은 방금 들린 소리를 그대로 적었다. 구리관을 거친 음이 ‘두 번째’처럼 들렸고 뒤 음절은 판별하지 못했다. 미르가 문장을 완성하려 했으나 중단했다는 사실도 남겼다.

그때 북쪽 회랑 바깥에서 세 번의 두드림이 났다.

첫 번째는 낮았다. 두 번째는 조금 높았고 세 번째는 철문 안쪽의 마지막 긁는 소리와 비슷했다.

레오나가 몸을 돌렸다.

“문밖에 누가 있습니다.”

총서기관이 경비를 불렀다.

카일은 철문을 더 열지 않고 회랑 쪽 바닥에 흰 재를 긋게 했다.

“문을 열기 전에 바깥 위치를 기록합니다. 이름을 묻지 말고 역할과 목적과 들어온 방향을 확인하십시오.”

파멸의 별이 살갗 아래에서 웃었다.

―두 번째가 돌아왔다.

‘아직 돌아온 건 없어.’

―문밖의 빈칸이 네 쪽으로 오고 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기관의 봉인끈이 차례로 걸렸다. 봉투의 원래 봉인끈은 그대로였다. 카일은 마지막 기록 문장을 불렀다.

“봉투 외부 압흔 두 방향 관찰. 오르단과 미르의 절차 설명 불일치. ‘두 번째’로 들린 음과 북쪽 회랑 바깥 세 번의 두드림 관찰. 두 소리의 동일성은 미상.”

총서기관이 물었다.

“이제 무엇을 확인하겠소?”

카일은 북쪽 회랑의 닫힌 문을 보았다.

“문 안쪽이 아니라 문밖이 먼저 역할을 말하게 합니다.”

철문 안쪽에서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이번에는 북쪽 회랑 바깥에서 응답이 없었다. 대신 흰 재 바깥의 먼지 한 줄이 안쪽으로 길게 끌렸다.

누군가 들어온 흔적인지 바람의 움직임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카일은 선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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