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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42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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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증거 상자의 열여섯 번째 칸

포로 보관실의 증거 상자 안에서 금속이 울렸다.

열세 번째 박자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열네 번째 박자에 상자 아래의 물그릇이 흔들렸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는 봉인끈이 아니라 상자 밑바닥의 나무가 한 번 들렸다.

열여섯 번째 박자.

안쪽에서 짧은 금속음이 났다.

“상자에 손댄 사람은 없었습니다.”

황실 경비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열쇠는 제 허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봉인끈도 그대로입니다.”

카일은 경비보다 상자 아래를 먼저 보았다. 선반 위 검은 상자의 양쪽 손잡이에는 붉은 봉인끈이 걸려 있었다.

겉면 표찰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다.

‘회수 처리 물품 1점.’

포획된 복구대의 장비와 벽 속에서 붙잡은 회수 담당자의 황동 명찰은 이미 다른 봉투에 들어 있었다. 이 상자는 그보다 오래된 회수 표식을 임시로 넣어 둔 물건이었다.

오르단이 경비 뒤에서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표찰보다 봉인끈 안쪽에 멈췄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이 상자와 관계가 없소.”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옛 증거품을 현행 전달관에게 묻는 이유가 무엇이오?”

오르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손에 찬 금속패가 소매 안쪽에서 미세하게 부딪혔다.

“상자의 반응을 확인합니다. 사람의 혐의와 물건의 움직임을 한 문장에 넣으면 둘 다 놓치게 됩니다.”

카일은 마렌에게 손짓했다.

“상자 주변을 비워. 봉인끈에는 닿지 말고 바닥부터 봐.”

마렌은 선반 주위의 상자를 치우게 했다. 레오나는 두 사람의 손을 관찰했고 세르단은 신성을 쓰지 않은 채 바닥의 이음새를 살폈다.

마렌이 빈 철판을 선반 아래에 밀어 넣었다. 그 위에 물그릇을 놓고 상자와 벽 사이에는 사각거울을 세웠다. 흰 재는 상자와 사람을 가르는 선으로만 사용했다.

“측정 준비가 끝났습니다.”

“열세 번째부터 읽어.”

마렌이 숨을 세기 시작했다.

열네 번째 박자에 물그릇 표면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열다섯 번째 박자에 선반의 못 하나가 울렸다. 열여섯 번째 박자에 상자 안에서 금속이 다시 한 번 떨렸다.

사각거울에 다른 것이 보였다.

상자 밑면의 얇은 판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들렸다. 안쪽의 금속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판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카일은 손을 뻗지 않았다.

“봉인끈은 그대로입니다. 상자 밑면이 들린 시각만 적어.”

마렌이 기록했다.

“금속음과 밑면의 상승은 같은 박자입니다.”

“원인은 미상.”

“적었습니다.”

오르단의 패 뒷면이 소매 밖으로 조금 드러났다. 숫자 16이 보였다.


마렌은 증거물 검수실로 장부를 가져왔다. 상자를 옮길 때도 봉인끈은 풀지 않았다. 선반째 밀어 옆방으로 옮겼고 황실 경비 두 명이 양쪽을 잡았다.

검수실 책상 위에 세 기관의 기록이 놓였다. 총서기관은 황실 원본을 먼저 펼쳤다.

“회수 처리 물품 1점. 인수 시각은 새벽 네 번째 종. 인수자는 보관 담당자.”

“이름이 없군요.”

마렌이 말했다.

“직책이면 충분한 경우도 있소.”

마렌은 다른 사본을 펼쳤다. 태양신전 대조용 목록에는 같은 물건이 ‘옛 회수 표식 1점’으로 적혀 있었다. 현행 증거 목록에는 단순히 ‘금속패 1점’이라고 되어 있었다.

“세 문서의 물건명이 다릅니다.”

“같은 물건을 기관마다 다르게 부른 것뿐이오.”

마렌은 세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현행 목록에는 봉인 교체 기록이 없습니다. 대조용 목록에는 ‘반환 전 대기’ 도장이 찍혔고 황실 원본에는 그 칸이 잘려 있습니다.”

세르단은 도장의 중심 문양이 비슷하지만 가장자리 표기는 현행과 다르다고 적었다.

총서기관이 상자를 열자고 했지만 카일은 빈 칸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막았다.

마렌은 상자의 옆면을 사각거울로 비췄다. 바닥 판이 들린 틈은 한 손가락 너비였다. 그 틈으로 얇은 금속 테두리가 보였다. 테두리에는 작은 홈이 열여섯 개 파여 있었다. 열다섯 개의 홈에는 짧은 고정핀이 박혀 있었고 마지막 하나만 비어 있었다.

“열여섯 번째 홈이 비어 있습니다.”

세르단이 묻자 마렌은 상자 안쪽이 아닌 바닥의 고정 홈이라고 답했다. 홈의 간격은 16번 설비판 오른쪽 연결의 구리선과 비슷했지만 카일은 같은 설비라고 쓰지 않았다.

오르단이 낮게 웃었다.

“그 정도의 홈은 오래된 보관함에 흔하오.”

“열여섯 번째만 비어 있는 것도 흔합니까?”

카일이 물었다.

오르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르가 대신 말했다.

“수취 전 대기 칸일 수 있습니다.”

말이 떨어진 뒤 미르가 입을 다물었다.

오르단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 용어를 어디서 배웠지?”

“서기관 교육에서 들었습니다.”

“현행 교육에는 없는 용어입니다.”

세르단이 말했다.

카일은 미르를 보았다. 미르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두 번 두드렸다. 열여섯과 맞지 않는 박자였다.

“마지막 칸을 비우는 반환 절차도 교육받았습니까?”

카일이 오르단에게 물었다.

“옛 문서의 표현을 추측했을 뿐이오.”

“그럼 수취 전 대기 칸은요?”

“미르가 말한 것을 내게 묻지 마시오.”

서로의 답이 갈렸다.

마렌은 문장 사이에 선을 그었다.

‘오르단은 반환 절차를 옛 문서의 표현으로 설명함. 미르는 수취 전 대기라는 용어를 먼저 발화함. 출처 미상.’


열여섯 번째 박자가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상자를 움직이지 않았다. 물그릇의 물이 먼저 바닥 한쪽으로 모였다. 사각거울 속에서 상자 아래 구리선 하나가 팽팽해졌다.

미르가 몸을 숙였다.

“판을 들어 올리면 내부 연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의 손이 미르의 팔 앞을 막았다.

“기록되지 않은 손은 봉인선 안으로 들어오지 마십시오.”

“나는 장치를 회수하려는 겁니다.”

“회수 명령서와 대상이 먼저입니다.”

총서기관이 경비에게 판을 열라고 했지만 마렌이 책임자의 이름을 적겠다고 하자 손을 멈췄다.

카일은 상자와 바닥 사이에 빈 철판을 세웠다. 철판의 가장자리에 흰 재를 얹고 물그릇을 한 뼘 뒤로 옮겼다.

“누구도 판을 들지 마십시오. 열여섯 번째 박자까지 사람과 바닥을 나눕니다.”

세르단이 권능 여부를 묻자 카일은 이번에는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카일은 손바닥 안쪽의 통증을 느꼈다.

파멸의 별이 살갗 아래에서 웃었다.

―비어 있는 칸은 입이다. 열어라.

‘먼저 무엇을 삼켰는지 기록한다.’

열세 번째 박자.

상자 밑 구리선이 떨렸다.

열네 번째 박자.

철판 위의 흰 재 한 알이 선반 아래로 굴렀다.

열다섯 번째 박자.

바닥 판 아래에서 검은 습기가 얇게 번졌다. 16번 설비판에서 보았던 것과 닮았지만 카일은 같은 물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박자.

구리선이 상자 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금속 테두리 안쪽의 비어 있던 홈에서 낮은 울림이 났다.

검은 습기가 철판 가장자리를 타고 사람 쪽으로 번지려 했다. 카일은 손바닥을 대지 않고 철판을 발끝으로 밀었다. 흰 재의 선이 끊기며 습기의 방향이 상자 아래로 틀어졌다.

파멸의 별이 굶주린 목소리를 냈다.

―조금만 먹어라.

카일은 손을 주머니 안에서 움켜쥐었다.

“흡수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확인한 건 바닥 아래의 반응뿐입니다. 상자 속 물건과 같은 원인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마렌의 펜이 움직였다.

세르단은 외부의 선을 짙게 만들었던 빛을 쓰지 않았다.

레오나는 미르의 팔을 계속 막았다.

“당신들은 이걸 보관할 자격이 없소.”

미르가 낮게 말했다.

“자격을 확인하려고 기록하는 중입니다.”

카일은 사각거울을 더 낮췄다. 바닥 홈은 남쪽에서 시작해 상자 아래로 들어온 뒤 북쪽 회랑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16번 설비판에서 보았던 동쪽 연결과 같은 방향은 아니었다.

“북쪽 분기 확인.”

“최종 목적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대로 적어.”

열여섯 번째 박자가 지나자 검은 습기는 얇아졌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철판과 흰 재 사이에 눌린 채 느리게 떨렸다.


카일은 오르단과 미르를 빈 철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위치에 세웠다.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심문이 아니라 대조입니다.”

카일은 상자 아래의 빈 홈을 가리켰다.

“열여섯 번째 칸은 왜 비어 있습니까?”

오르단이 먼저 답했다.

“회수 대상이 돌아오기 전에는 칸을 비워 둡니다.”

미르가 곧바로 말했다.

“수취인이 확인되기 전까지 물건을 넣지 않는 칸입니다.”

오르단의 표정이 굳었다.

카일은 두 답을 마렌에게 적게 했다.

“대상은 아직 확정하지 않습니다.”

“확정하지 않은 것을 확정하지 않았다고 적는 게 기록입니다.”

카일은 상자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봉인 담당자에게 지시했다.

“상자는 현 위치에서 다시 봉인합니다. 증거 상자 속 금속패는 별도 봉투로 옮기되 봉인끈을 자르지 말고 외부 덮개만 분리하십시오. 오르단의 패와 정렬판은 서로 다른 방에 둡니다. 각 이동 시각은 열여섯 박자와 함께 적습니다.”

총서기관이 반발했다.

“황실 물건을 그대가 나누겠다는 것이오?”

“황실 물건이라서 나눕니다. 한 기관이 모두 가져가면 무엇이 먼저 울렸는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세르단은 옛 절차의 존재만 확인하고 이 표식이 공식 자격패였다고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렌은 황실 원본과 신전 사본과 성별교 기록에 같은 문장을 옮겼다.

‘증거 상자 밑에서 열여섯 번째 박자에 금속 반응과 검은 습기가 관찰됨. 봉인끈은 움직이지 않음. 상자 아래 홈과 구리선의 최종 연결은 미상. 증거품의 출처와 옛 절차의 공식성은 확정하지 않음.’

오르단은 그 문장을 읽고 카일을 보았다.

“모든 것을 모른다고 쓰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소.”

“모르는 것을 안다고 쓰면 책임질 사람만 바뀝니다.”

“그대는 책임을 피하려는군.”

“나는 책임질 범위를 나누는 중입니다.”

봉인 담당자가 마지막 매듭을 묶었다. 그 순간 상자 안쪽에서 금속음이 났다.

한 번 뒤 두 번째 금속음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상자가 아니었다. 열다섯 개의 고정핀이 박힌 바닥 테두리 옆에서 울렸다. 비어 있던 열여섯 번째 홈 안쪽이었다.

마렌이 사각거울을 들었다.

“홈이 비어 있습니다. 안쪽에는 금속 부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소리는 어디서 났습니까?”

총서기관이 물었다.

카일은 거울 속 바닥을 보았다. 검은 습기는 상자 아래에서 갈라져 북쪽 회랑 방향으로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오르단의 패는 조용했다.

정렬판도 조용했다.

비어 있는 칸만 다시 울렸다.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하나는 안에 있고 하나는 돌아온다.

카일은 그 문장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마렌에게 말했다.

“두 번째 금속음과 북쪽 분기를 따로 적어.”

“다음 확인 장소는요?”

카일은 포로 보관실의 북쪽 벽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황궁 기록고와 오래된 회랑이 있었다.

“기록고 아래입니다.”

그가 대답하자 북쪽 벽 안쪽에서 아주 희미한 긁는 소리가 났다.

열여섯 번째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쪽에서 누군가 그 빈칸을 두드린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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