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30화: 열여섯 번째의 귀환
“열여섯 번째를…… 돌려보내라.”
점검구 안쪽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그 말은 복도에 남아 있었다.
황실 경비가 복도 양끝을 막았다. 총서기관은 봉인 끈을 풀며 점검구를 가리켰다.
“이곳은 황실 기밀 구역입니다. 황태자 전하를 다른 방으로 옮기고 점검구를 닫겠습니다.”
“옮기면 안 됩니다.”
카일은 침상 위 라시안을 보았다. 눈을 감은 황태자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르반이 맥을 짚었다.
“방금 목소리에 반응했습니다. 이곳에 계속 두는 것도 위험합니다.”
“다른 방의 바닥이 안전하다는 확인은 했습니까?”
“궁 안에 지하 통로가 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보고가 없다는 말과 통로가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라시안이 손가락으로 시트를 눌렀다.
“나를 옮길지는 내가 정한다. 아래를 확인하되 내 호흡을 먼저 보시오.”
카일은 침상 곁에 물그릇을 놓고 점검구 앞에 빈 철판을 세웠다.
“전하. 열여섯 번 숨을 세겠습니다. 점검구가 반응해도 숨이 흔들리면 바로 중단합니다. 조사에 동의하십니까?”
“기록하시오.”
마렌의 펜이 철판을 눌렀다.
“환자 동의. 조사 범위는 치료실과 점검구 입구. 상태 악화 시 중단.”
“하나.”
라시안이 숨을 들이마셨다.
세 번째 숨에서 점검구 안쪽의 공기가 밀려 나왔다. 물그릇 표면이 한쪽으로 꺼졌다.
“공기 이동. 오전 여섯 시 사십구 분.”
마렌이 적었다.
열두 번째 숨을 지나자 점검구 안쪽의 종추가 흔들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열셋.”
라시안의 호흡이 갈라졌다. 카일은 손을 뻗지 않았다.
“열넷. 열다섯.”
열여섯 번째 숨이 들어간 순간 점검구 안쪽에서 금속이 미끄러졌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안쪽 덮개가 한 치 움직였다.
마렌이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호흡 뒤 덮개 이동. 종소리 없음.”
“원인은 적지 마세요.”
카일은 종줄과 라시안의 가슴을 번갈아 보았다. 목소리가 숨의 수를 아는지 장치가 같은 수를 반복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혀 밑에서 파멸의 별이 웃었다.
―열여섯 번째를 아래로 밀어 넣어라. 그러면 입이 열린다.
‘사람을 넣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다.’
카일은 점검구 앞에 흰 재를 한 줄 더 그었다.
“이 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이름과 물건을 먼저 말합니다. 점검구를 당기거나 닫는 행동도 기록합니다.”
레오나가 경비를 노려보았다.
“허락 없이 들어오면 손부터 확인하겠다.”
총서기관은 입을 다물었다. 봉인보다 먼저 도면과 수리 담당자를 불러야 한다는 황태자의 명령이 이미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렌 수리감은 손바닥만 한 거울을 긴 철사 끝에 묶었다. 거울이 점검구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숨을 죽이고 방향을 조절했다.
“바깥 타일 아래에 석회층이 있고 그 안에 금속판이 한 겹 더 있습니다.”
“도면에는 한 겹뿐입니다.”
마렌이 현재 치수와 낡은 도면을 대조했다.
바렌은 측정 줄을 밀어 넣었다. 다섯 번째 매듭에서 줄이 걸렸고 이후에는 수평으로 미끄러졌다.
“수직 통로 뒤에 수평 통풍관이 있습니다. 동쪽으로 이어집니다.”
“끝은요?”
“거울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레오나가 검 손잡이를 눌렀다.
“내려가겠다.”
“아직은 안 돼.”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빈 통풍관일 수도 있어. 네가 내려가면 전하의 호흡을 볼 사람이 줄어든다.”
“아래의 목소리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무시하는 게 아니라 구분하는 거야.”
레오나는 불만을 삼키고 종줄 바깥쪽을 고정했다. 당기지 않았는데도 줄이 떨리자 안쪽에서 금속이 부딪쳤다.
톡.
라시안의 호흡이 열두 번째에서 짧아졌다.
“손을 놔.”
카일의 말에 레오나가 즉시 손을 뗐다. 종추가 멈췄다.
바렌은 거울을 돌려 안쪽의 얇은 설비판을 비췄다. 철사 끝이 판을 스치자 먼지와 함께 판 하나가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설비판에는 작은 홈이 열여섯 개 나란히 파여 있었다. 열다섯 칸에는 회색 먼지가 차 있었고 마지막 칸은 검은 밀랍으로 막혀 있었다.
마렌이 판을 받침대 위에 올렸다. 바렌이 뒷면을 닦자 희미한 글자가 드러났다.
‘16번 회수 대상 둘.’
총서기관이 손을 뻗었다.
“필체도 시점도 확인되지 않은 낙서입니다.”
카일이 손을 막았다.
“낙서인지 기록인지 확인하려면 남겨야 합니다. 회수 대상이 사람인지 물건인지도 지금은 모릅니다.”
설비판 마지막 칸의 밀랍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홈이 있었다. 갈고리 골짜기 수레 아래에서 본 흔적과 닮았지만 카일은 같은 제작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유사한 홈 세 갈래. 동일 여부 미확인.”
마렌이 적었다.
바렌은 판을 바라보았다.
“이 표식은 수리공들이 쓰던 방식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썼습니까?”
“모릅니다.”
그 말만큼은 바렌도 숨기지 못했다.
설비판을 점검구 밖 바닥에 놓자 검은 선이 움직였다.
라시안의 목 아래에서 시작된 선 하나가 침상 아래로 내려갔다. 끊긴 줄의 잔향이 철판 가장자리를 타고 설비판 쪽으로 뻗었다.
도르반이 라시안의 손목을 잡았다.
“맥이 빨라집니다.”
총서기관이 경비에게 손짓했다.
“판을 치우고 점검구를 닫아라.”
“지금 닫으면 선이 전하 쪽으로 당겨질 수 있습니다.”
“열어 두면 궁의 안전이 무너집니다.”
레오나가 경비 앞을 막았다.
“명령한 사람의 이름부터 적어.”
카일은 빈 철판과 설비판 사이에 물에 적신 천을 걸었다. 천은 점검구 쪽으로만 펄럭였다.
“공기와 힘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마렌이 변화 시각을 적었다.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한 번만 삼키면 된다. 검은 선의 끝은 네 손 안에 있다.
‘사람의 숨과 기억은 먹지 않는다.’
카일은 손목의 뜨거운 흔적을 무시하고 설비판에 손대지 않았다.
“전하. 다시 열여섯까지 세겠습니다.”
라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점검구 안쪽에서 한 박자 늦게 같은 목소리가 따라왔다.
“하나.”
“둘.”
“둘.”
목소리는 라시안의 숨이 끝난 뒤에만 들렸다. 그러나 벽 어디에서 울리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열셋에서 라시안의 숨이 흔들렸다. 목소리는 그 수를 건너뛰지 않았다.
열다섯 번째 숨 뒤 설비판 마지막 칸에서 검은 가루 한 알이 떨어졌다.
열여섯 번째 숨이 이어졌다.
“돌려보내라.”
라시안의 맥이 빨라졌지만 목 아래의 선은 가슴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카일은 가루를 작은 봉투에 넣었다.
‘검은 가루 한 알. 16번 설비판 마지막 칸. 열여섯 번째 호흡 뒤 낙하.’
그는 설비판을 닫지 않고 흰 재로 현재 위치를 둘렀다.
“누구도 위에 물건을 얹지 마십시오. 이 상태를 보존합니다.”
라시안이 침상에서 말했다.
“황실이 무엇을 숨겼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총서기관은 더 이상 설비판을 빼앗으려 하지 못했다.
해가 진 뒤 서고에서 낡은 장부 세 권이 옮겨 왔다. 두 권은 표지가 온전했지만 16번 통풍구가 적힌 부분은 비어 있었다. 세 번째 장부는 등 쪽이 찢겨 나가 있었다.
바렌이 장부를 펼쳤다.
“20년 전 폐쇄 명령은 확인됩니다. 담당 부서는 황실 시설과입니다.”
“담당자의 이름은요?”
“페이지가 없습니다.”
총서기관은 오래된 행정 자료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라시안이 손을 들었다.
“치료 기록과 지하 장치 기록을 분리해 보존하라. 20년 전 폐쇄 장부와 당시 담당자 명단도 가져오시오.”
마렌은 설비판·검은 가루·검은 밀랍·천 조각의 수량과 위치를 세 부로 나누어 적었다. 카일은 ‘회수 대상 둘’이라는 문장을 해석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옮겼다.
“사람인지 물건인지 모른다는 문장도 남기세요.”
“그것도 기록합니까?”
“모르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쓰지 않았다는 기록이 필요합니다.”
점검구 안쪽에서 금속음이 울렸다.
톡.
도르반이 라시안의 호흡을 세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열여섯 번째가 아닙니다.”
카일은 침상 아래를 보았다. 검은 선이 침상 다리 근처에서 멈춰 있었다. 점검구와 설비판 사이의 잔향이 바닥 밑으로 옮겨 간 것처럼 보였다.
“점검구를 닫을까요?”
마렌이 물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에 사람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열린 장치를 그대로 두면 다음 반응이 환자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라시안이 먼저 말했다.
“나를 움직이지 마시오. 내 상태를 보면서 감시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오.”
카일은 침상과 점검구 사이에 철판을 세웠다. 흰 재로 침상 주위에 두 번째 선을 그었다.
“다음 소리가 나도 먼저 내려가지 않습니다. 환자와 기록을 확인한 뒤 움직입니다.”
레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갈 때는 내가 앞선다.”
“그때도 기록부터 확인해.”
라시안의 열세 번째 숨이 지나갔다. 열네 번째와 열다섯 번째도 이어졌다.
열여섯 번째 숨이 들어간 순간 점검구가 아니라 침상 아래에서 금속음이 한 번 울렸다.
톡.
점검구 안쪽의 목소리가 낮게 웃었다.
“돌려보내라.”
이번에는 카일의 발밑에서 검은 선이 움직였다.
황태자의 숨은 아직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궁 아래의 열여섯 번째는 이미 방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