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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26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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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황도로의 여정

황도로 떠나는 수레에는 성수가 한 잔도 실리지 않았다.

카일은 출발 목록의 첫 줄에 그렇게 적었다.

여행 식량, 두 벌의 옷, 빈 철판 세 장, 성지 운영 문서 사본 세 부.

마렌이 그 아래에 덧붙였다.

“성수 없음. 기존 여유분 다섯 잔과 감독 제조분 열한 잔은 갈고리 골짜기에 별도 봉인 중.”

“가장 위로 올리세요.”

황실 호송관이 명부를 내려다보았다.

“호송 명부에는 성수 열여섯 잔과 교주 일행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수레를 확인한 사람이 있습니까?”

“골짜기에서 보고를 받았습니다.”

“보고와 확인을 같은 줄에 적으면 안 됩니다.”

카일은 빈 철판을 호송관 앞에 세웠다.

“우리는 성수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은 실물 미확인이라고 쓰고 수레를 본 사람은 수레가 골짜기에 남았다고 쓰면 됩니다.”

레오나는 수레 쪽으로 다가가는 짐꾼을 막아섰다.

“이쪽은 에단 사제와 주민 대표가 맡습니다.”

“황실 호송대가 봉인을 확인하는 것도 안 됩니까?”

“봉인끈과 매듭은 이미 세 명이 확인했습니다. 안쪽 재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마렌의 펜이 움직였다.

에단은 두 수레 사이에 서서 황실 봉인이 찍힌 사본을 접었다.

“나는 남겠습니다.”

카일이 그를 보았다.

“황도까지 같이 가야 설명하기 쉽습니다.”

“설명할 사람만 남으면 증거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두 수레와 폐갱도 봉인은 하나의 조사선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떠나면 황실은 이곳의 침묵을 자기들이 확인한 것으로 바꿀 겁니다.”

카일은 황도에서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을 모두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성지를 지키는 사람이 비면 보호령은 빈 껍데기가 된다.

“수레는 열지 마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세 명이 매 시각 봉인을 확인하고 검은 선이 움직여도 사람의 숨과 재고와 원본 장부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 말은 황도에서도 지킬 건가?”

“가능한 한.”

남쪽 수레 안에서 낮은 종이 울렸다.

한 번.

카일은 레오나가 수레로 향하려는 것을 손짓으로 막았다.

“소리는 기록할 일이지 문을 열 이유는 아닙니다.”

마렌이 적었다.

남쪽 수레 안에서 낮은 종 한 번. 봉인끈과 매듭의 변화 없음. 내부 상태와 발화자 미확인.

호송대가 북쪽 관문을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자 황실 깃발과 성별교의 깃발 사이에 두 성수 수레가 남아 있었다.

에단은 떠나는 카일보다 남겨진 수레를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은 그 시선을 따라가다 문득 알았다. 안전한 도망은 사람을 전부 데려가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돌아왔을 때도 같은 장부와 같은 봉인이 남아 있게 하는 일이었다.


첫 역참의 서기관은 마차보다 먼저 명부를 꺼냈다.

“성수 열여섯 잔 인수 예정. 교주 일행 세 명. 황실 보호 아래 황도로 운송.”

그는 카일의 짐을 가리켰다.

“모두 열어 보이십시오. 성수가 없으면 숨긴 것으로 적겠습니다.”

레오나가 검자루에 손을 얹었지만 카일이 막았다.

“열죠.”

마당에 옷가지와 말린 빵과 빈 철판이 차례로 나왔다. 마지막에는 세 기둥의 사본과 출발 목록만 남았다.

마렌이 물건마다 번호를 붙였다.

“옷 두 벌. 식량 열두 묶음. 빈 철판 세 장. 문서 사본 세 부. 성수는 없습니다.”

“열여섯 잔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호송대에는 없습니다.”

카일이 서기관의 붓을 보았다.

“그 문장을 먼저 쓰세요.”

“황실은 보고를 신뢰합니다.”

“그럼 실물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도 신뢰하십시오.”

마렌은 두 재고를 나눈 사본을 펼쳤다. 첫 줄에는 기존 여유분 다섯 잔과 위치가 적혔고 둘째 줄에는 감독 제조분 열한 잔과 위치가 적혔다. 두 줄 사이에는 합산 금지라는 문장이 있었다.

서기관이 황실 인장을 꺼냈다.

“인수 예정 확인서에 서명하십시오. 열여섯 잔은 황실이 보호하는 자산으로 기록됩니다.”

“실물을 보지 않았는데 인수하겠습니까?”

“황실은 보고를 근거로 판단합니다.”

“그럼 보고와 인수를 나눠 적으세요.”

카일은 빈 철판을 확인서 옆에 놓았다.

“이 호송대에는 성수 0잔이 있습니다. 두 재고는 골짜기에 별도 봉인 중입니다. 황실 인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 문장을 인장 아래에 넣으십시오.”

서기관의 붓이 멈췄다.

마렌은 역참 마부와 짐꾼에게 본 사실만 확인받았다. 성수는 찾지 못했고 두 수레는 역참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서기관이 마지못해 문장을 적는 순간 명부의 ‘열여섯’ 아래에서 먹빛이 번졌다.

얇은 검은 줄이 두 수량을 가로질렀다.

“변화가 시작된 시각을 적으세요.”

카일이 말했다.

“명부가 망가집니다.”

“망가졌다고 쓰지 마십시오.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카일은 검은 번짐을 흡수하지 않았다. 철판을 한 뼘 옮기자 번짐은 인수 문장 아래에서 멎었다.

마렌이 바로 적었다.

합산 수량이 적힌 문서에서 검은 번짐 발생. 철판 이동 뒤 반응 약화. 수레 하부 선과의 동일성 미확인.

인장은 문장을 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 아래에 찍혔다.

역참을 떠나며 카일은 호송 명부를 바라보았다.

성수는 골짜기에 남았는데 숫자만 먼저 길을 나서고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호송대는 산길 아래 나루터에서 멈췄다.

광산에서 내려온 환자 가족과 행상인들이 강가를 막고 있었다.

“열여섯 잔을 내놓아라!”

“황실이 성수를 빼앗아 간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이지?”

호송관이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길을 비켜라. 황실 호송대를 막으면 체포하겠다.”

카일은 마차에서 내렸다.

“성수는 이곳에 없습니다.”

“거짓말이다. 역참에서 열여섯 잔을 확인했다.”

“확인한 것은 성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렌이 사본을 들어 올렸다.

“두 수레는 골짜기에 봉인된 채 남았습니다. 다섯 잔과 열한 잔은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자가 창백한 아이를 부축해 앞으로 나왔다.

“말싸움은 나중에 하세요. 물부터 주세요.”

카일은 자신이 가진 물통과 식량을 보았다. 성수는 없었다.

“성수는 줄 수 없습니다. 이 물이 안전한지도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하다고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아무것도 못 해 준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눠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가 마렌을 돌아보았다.

“이름보다 먼저 적으세요. 물을 가진 사람과 그늘에 들어갈 사람과 다친 사람의 수를.”

레오나는 병사들의 창끝을 강 쪽으로 돌렸다.

“길을 막는 건 저 사람들이 아니다. 부러진 밧줄과 미끄러운 돌이다.”

그녀가 끊어진 밧줄을 새로 묶자 행상인 둘이 돌을 치웠다. 카일은 호송 식량 상자를 열었다.

“가족 대표가 수량을 세어 나눕니다. 남은 것은 호송대의 몫으로 따로 적습니다.”

“교주님이 직접 나누면 되잖습니까?”

“제가 없을 때 굶지 않으려면 직접 세고 나누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밧줄을 잡는 손과 물통을 옮기는 손이 늘어났다. 레오나는 아이를 업은 여자를 먼저 건너게 했다.

그 순간 낡은 행상 차림의 남자가 마차 뒤 문서 상자에 손을 뻗었다.

레오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무엇을 하려 했지?”

“성수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다.”

“문서 상자에는 성수가 없습니다.”

마렌이 다가와 그가 손을 뻗은 시각과 레오나가 막은 행동을 적었다.

호송관은 병사들에게 무기를 내리라고 명령했다.

마지막 사람이 강을 건넜을 때 해는 산 너머로 기울었다. 아이의 숨은 여전히 얕았다. 카일은 좋아졌다고도 나빠졌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이름과 상태를 적어 두세요.”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 없이 한 일도요?”

“그게 성지에서 배워야 할 일이라면요.”

호송대는 다시 황도로 향했다.


황도 외곽 성문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가까웠다.

성문 관리가 호송 명부를 확인했다.

“성수 열여섯 잔 인수 완료. 교주 일행 입성.”

“인수하지 않았습니다.”

“명부에는 완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 사실을 적으십시오.”

카일은 빈 철판을 성문 앞에 세웠다.

마렌이 문장을 새겼다.

이 호송대에 성수 0잔이 있음.

기존 여유분 다섯 잔과 감독 제조분 열한 잔은 갈고리 골짜기에서 별도 봉인 중.

황실 인수는 확인되지 않음.

호송관과 나루터의 주민 대표와 관문 서기관이 각자 본 문장에 서명했다. 인장은 글자를 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 아래에 찍혔다.

“이렇게까지 해야 입성할 수 있습니까?”

관문 관리가 물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엇을 입성시켰는지 아무도 모르게 됩니다.”

카일 일행은 성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안내받은 곳은 황궁이 아니었다. 호송관은 높은 담장의 귀족 회관 앞에 그들을 세우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내일 귀족들이 교주님을 위한 환영 연회를 엽니다.”

카일은 붉은 밀랍을 보았다. 봉투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성지 운영권과 성수 보관에 관한 의견 청취.

“환영은 맞습니다.”

호송관이 말했다.

“다만 황도에서 환영받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카일은 문서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성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황도는 이미 열여섯 잔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멸의 별이 목 안쪽에서 낮게 웃었다.

―이번에는 네가 먹히겠구나.

카일은 닫힌 귀족 회관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식탁에 앉기 전에 메뉴부터 확인해야지.’

황도에서 먼저 꺼내 든 것은 성수가 아니라 소유권을 묻는 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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