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23화: 수레 아래의 세 번째 종
세 번째 종소리가 성수 수레 안에서 울린 뒤에도 아무도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수레는 기록 천막과 환자 천막 사이에 놓여 있었다. 봉인끈은 그대로였고 매듭도 풀리지 않았다. 바닥 안쪽에서 울린 종소리만이 수레가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렸다.
“열어야 합니다.”
주민 하나가 수레 앞으로 나섰다.
“안에서 울린다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하지 않습니까?”
“안에 있는 것과 안에서 울린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에단이 봉인끈을 살폈다.
“끈은 건드려지지 않았습니다. 봉인을 열면 우리가 먼저 구분을 없애게 됩니다.”
카일은 수레의 바퀴 아래에 놓인 빈 철판을 바라보았다. 철판의 검은 선은 수레 바닥 아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한 가닥은 환자 천막 쪽으로 뻗었고 다른 한 가닥은 서쪽 돌틈 아래로 사라졌다.
“세 명이 봅니다. 레오나는 봉인끈과 매듭을 봅니다. 에단 사제님은 바닥과 바퀴축을 비춥니다. 마렌은 시간과 흔들림과 사람의 위치를 적습니다. 안쪽 재고를 확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안전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안전하다고 쓰지 않습니다. 건드리지 않았다고 쓰는 겁니다.”
마렌이 장부를 펼쳤다. 그녀는 사람의 이름을 쓰지 않고 수레의 표식과 위치부터 적었다. 기존 여유분 다섯 잔을 둔 수레와 감독 제조분 열한 잔을 둔 수레는 서로 다른 줄에 남았다.
“두 수레의 간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종소리는 북쪽 수레의 바닥 안쪽에서 들렸습니다. 봉인끈의 매듭은 세 번 모두 같습니다.”
레오나가 수레 하부를 살폈다.
“아래쪽 축에 검은 밀랍이 눌어붙어 있다.”
에단은 황금빛을 수레 바닥에만 얇게 흘렸다. 바퀴축 아래의 쇠테와 받침돌 사이에 세 갈래 홈이 파여 있었다. 홈 하나에는 가느다란 검은 실이 들어가 있었고 실 끝에는 작은 종의 손잡이처럼 보이는 쇠고리가 붙어 있었다.
“수레를 만들 때 난 홈은 아닙니다.”
“확정하지 마세요.”
카일이 말을 잘랐다.
“세 갈래 홈과 검은 선이 있다는 사실만 봅니다.”
쇠고리가 안쪽에서 한 번 당겨졌다. 종은 울리지 않았지만 수레 바닥이 아주 조금 떨렸다.
마렌이 적었다.
“바닥 진동 한 번. 봉인끈의 흔들림은 없습니다.”
“수레를 움직입니까?”
레오나가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무엇이 따라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카일은 로프 끝에 작은 철 조각을 묶었다. 이번에는 천 조각을 붙이지 않았다. 지난번 돌아오지 않은 천과 새 조각이 섞이면 출처를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도 기록입니다.”
레오나는 봉인끈 옆에 섰다.
“내가 보는 건 매듭과 끈이다. 에단은 쇠고리와 홈을 본다. 마렌은 사람의 손보다 시간을 적어.”
카일이 수레 아래로 철 조각을 밀었다. 쇠가 홈을 긁는 소리가 났다. 첫 번째 홈을 지나자 수레 안에서 짧은 종소리가 울렸다.
한 번.
곧바로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섯과 열한을 합치면 열여섯이다.”
주민들이 술렁였다. 두 수레의 수량은 장부에 적혀 있었다. 목소리는 그 숫자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열여섯을 확인하려면 봉인을 여십시오.”
목소리는 마렌의 말투와 닮았지만 끝음이 지나치게 고르게 가라앉았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섯과 열한은 합치지 않습니다.”
에단이 낮게 말했다.
“재고를 하나로 세는 순간 두 제조 조건의 검증이 무너집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카일은 철 조각을 멈췄다.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수레를 엽니다.”
이번에는 하렌의 기침 뒤에 들었던 낮은 음색과 가까웠다. 하지만 숨을 고르는 소리는 없었다.
레오나가 검자루를 잡았다.
“방향만 기록하세요.”
마렌은 목소리의 내용을 옮기기 전에 시간과 방향을 적었다.
“수레 아래쪽에서 들렸습니다. 발화자는 모릅니다.”
그 순간 쇠고리가 두 번 움직였다.
에단이 빛을 좁혔다.
“첫 번째 홈에서 두 번째 홈으로 넘어갔다.”
카일이 로프를 한 뼘 당겼다. 철 조각은 돌아오지 않고 로프만 가볍게 늘어졌다.
잠시 뒤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철 조각이 돌아왔다. 끝에는 검은 밀랍이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마렌은 번호를 붙였다.
“철 조각 반환. 밀랍 부착. 천 조각 없음. 봉인끈 변화 없음.”
“수레 안의 재고는요?”
주민이 물었다.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마렌이 대답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바깥의 매듭과 바닥의 반응은 봤습니다. 모르는 것과 보지 못한 것을 섞지 않을 겁니다.”
목소리가 웃었다.
“사람 셋. 수레 둘. 기록 하나.”
카일은 마렌을 보지 않고 말했다.
“들린 문장을 기록하세요. 누가 말했다고 적지 마십시오.”
마렌은 그대로 썼다.
수레 아래쪽에서 사람 수와 물자 수와 기록의 수량을 말하는 음성이 들림. 내용 일부는 실제 배치와 일치함. 발화자는 확인되지 않음.
세 번째 종소리는 더 크게 울렸다.
이번에는 환자 천막 안쪽에서 쇠그릇 하나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기침이 이어졌고 누군가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빈 철판에서 검은 선이 뻗어 나왔다. 수레 하부의 홈을 따라가던 선이 환자 천막 아래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사람 쪽입니다.”
에단이 말했다.
“수레를 옮기면 선도 끌려갑니다.”
레오나가 바퀴를 보았다.
“그대로 두면 천막 밑으로 들어간다.”
카일은 선을 살폈다. 세 갈래 중 하나는 서쪽 돌틈으로 향했고 하나는 첫 봉인문이 있는 북쪽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선만 환자 천막 아래를 파고들었다.
―수레를 통째로 먹어라.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안에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어.’
―안에는 병과 물만 있다.
‘네가 모르는 걸 내가 믿을 이유는 없어.’
카일은 레오나를 보았다.
“바퀴를 받치세요. 수레를 굴리지 말고 축만 고정합니다. 주민들은 환자 천막에서 두 걸음 물립니다.”
레오나는 받침돌을 끼웠다. 주민 둘이 그녀의 손과 발과 시간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받침돌을 왼쪽 축 아래에 넣었습니다.”
“오른손은 로프를 잡았습니다. 발은 바퀴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렌은 그 말을 두 장부에 따로 적었다.
에단의 빛이 검은 선 양옆을 비췄다. 선은 환자 천막 아래로 들어가면서 가늘어졌다. 수레 하부의 홈 하나가 환자의 숨이 끊기는 자리마다 떨렸다.
“사람과 연결된 건 분명합니다. 숨을 먹는다고는 아직 확정할 수 없습니다.”
카일은 손을 철판 위에 올렸다.
“사람의 숨은 먹지 마.”
검은 힘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어깨를 지나 목 아래로 흔적이 올라왔다. 입안에서 이빨이 자라는 듯한 감각이 퍼졌다.
레오나가 그의 팔을 보았다.
“더 올라갔다.”
“보고만 하세요.”
“당신이 무너지면 선을 누가 끊지?”
“그래서 지금 끊는 겁니다.”
카일은 환자 천막으로 향한 한 가닥만 움켜쥐었다. 검은 선이 수레 아래 두 홈을 잡아당겼고 빈 철판이 돌바닥을 밀려갔다.
에단이 빛으로 철판의 가장자리를 고정했다.
“왼쪽 홈은 돌틈으로 갑니다. 북쪽 홈은 첫 봉인문 쪽입니다.”
“둘 다 남깁니다.”
카일이 이를 악물었다.
“사람 쪽만 잘라요.”
환자 천막 아래로 뻗은 선이 잿빛으로 말랐다. 안쪽에서 급하게 들리던 숨이 잦아들고 쇠그릇도 멎었다.
하지만 북쪽과 서쪽으로 향한 선은 그대로였다.
카일은 무릎을 꿇었다. 레오나가 손을 뻗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 부르지 마.”
레오나는 손을 거두고 로프만 더 단단히 잡았다.
“두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손을 거둬.”
카일은 간신히 힘을 거두었다. 목 아래가 타들어 갔다. 수레 안쪽의 종은 아직 멎지 않았다.
환자 천막의 호흡이 안정된 뒤 마렌은 기록을 세 묶음으로 나누었다.
“첫째. 봉인끈과 매듭은 처음과 같습니다. 둘째. 하부 쇠테에 세 갈래 홈과 검은 밀랍이 있습니다. 셋째. 환자 천막으로 향한 선은 끊겼지만 북쪽과 서쪽으로 향한 선은 남았습니다.”
에단은 검은 밀랍을 작은 유리병에 넣었다.
“수레에서 나온 별도 표본입니다. 버클과 돌틈의 조각과 같은 물질이라고 적지 않습니다.”
“그럼 수레는 안전합니까?”
주민이 물었다.
“모릅니다. 다만 봉인을 열지 않았고 내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카일은 두 수레 사이의 간격을 확인했다. 다섯 잔과 열한 잔은 여전히 서로 다른 표식 아래 있었다. 빈 철판의 선은 두 표식 사이를 스쳤지만 수량을 하나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것도 적겠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그때 첫 봉인문 쪽에서 무거운 종이 울렸다.
한 번.
수레 아래의 쇠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쪽 돌틈도 조용했다.
첫 봉인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둘은 증언했다.”
말이 끊겼다. 이어지는 숨은 없었다.
“하나는 아직 안쪽에 있다.”
마렌의 펜이 멈췄다. 레오나는 수레와 북쪽 폐갱도를 번갈아 보았다. 에단의 빛이 문 가장자리를 붙잡았지만 검은 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일은 수레를 열지 않은 채 빈 철판을 들어 올렸다. 철판 위의 선 하나가 수레 하부의 세 번째 홈으로 이어졌다.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하렌이라는 이름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가 말했다.
“누가 안쪽에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확인한 건 선과 종과 사람의 호흡뿐입니다.”
첫 봉인문 안쪽에서 낮은 웃음이 들렸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따라 하지 않았다.
수레 안에서 종이 네 번째로 울렸다.
카일은 봉인끈을 바라보았다. 매듭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수레 아래 세 갈래 홈 중 비어 있던 마지막 홈에서 검은 선 하나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 선은 봉인끈이 아니라 두 수레 사이에 놓인 기록 장부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