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22화: 두 사람이 증언하는 밤
교대표의 철판에서 금속 두드림이 두 번 울린 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렌의 이름 아래에서 갈라진 검은 선이 레오나의 북쪽 감시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은 실처럼 굳어 있었지만 언제든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소를 비워야 합니다.”
주민 하나가 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선이 위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레오나가 그곳에 있으면 붙잡힐 겁니다.”
“비우면 무엇이 남습니까?”
레오나가 검집을 눌렀다.
“표식만 남습니다. 저것이 사람을 따라가는지 위치를 따라가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에단이 교대표를 내려다보았다.
“확인하려고 사람을 세워 둘 수는 없다.”
“한 명만 세우지 않으면 됩니다.”
카일이 빈 철판과 로프를 집었다.
“한 명은 초소를 봅니다. 다른 한 명은 그 사람의 손과 발과 시간을 봅니다. 서로의 행동을 기록하는 겁니다.”
마렌이 펜을 들었다.
“이름은요?”
“부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철 조각은 초소의 위치를 표시하고 두 번째 고리는 관찰자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레오나가 카일을 보았다.
“내가 미끼가 되는 건 아니겠지.”
“미끼라면 혼자 세웠을 겁니다.”
카일은 북쪽 초소 아래로 이어진 검은 선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제가 끊을 수 있습니다. 움직이면 무엇을 끊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레오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쇠고리를 받아 들었다.
“내가 지키는 건 초소다. 네가 지키는 건 내 발밑의 선이지.”
“그렇게 나눠 두면 서로를 버렸다고 착각하지 않을 겁니다.”
“착각은 네가 잘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기록을 곁에 두는 겁니다.”
마렌은 장부를 두 권 펼쳤다. 하나에는 북쪽 초소의 돌과 로프를 적고 다른 하나에는 관찰자의 위치와 시각을 적었다.
레오나가 북쪽으로 걸었다. 카일은 이름 대신 첫 철 조각이 돌을 스치는 소리를 확인했다.
마렌이 적었다.
“철 조각이 북쪽 경사면에 닿았습니다. 사람이 하나 이동했습니다.”
에단은 두 번째 고리를 기록 천막 옆 말뚝에 걸었다.
“관찰자는 기록 천막 서쪽에 있습니다. 북쪽 초소를 직접 보지는 않습니다.”
“그게 더 안전합니까?”
마렌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카일이 대답했다.
“모르는 상태도 기록해야 합니다.”
그 순간 북쪽에서 마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오나를 불러 주세요. 환자 천막에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마렌의 손이 굳었다.
목소리는 그녀의 말투를 흉내 냈다. 그러나 진짜 마렌은 카일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들린 문장만 적으세요. 누가 말했다고 쓰지 마십시오.”
카일이 낮게 말했다.
마렌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과 시간만 적었다.
“북쪽 초소 방향에서 환자 천막의 위급함을 알리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음성에는 특정 사람을 부르는 말이 포함됐습니다.”
“빨리 오세요. 기록 천막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방 음성이 방금 마렌이 적은 문장을 따라 했다.
에단은 황금빛을 켜지 않았다. 빛이 번지면 초소 아래의 움직임을 놓칠 수 있었다.
“저것이 기록을 읽은 건가?”
“확정하지 마십시오. 방금 들은 말을 되돌려 쓰는 걸 수도 있습니다.”
카일이 대답했다.
북쪽에서 레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초소를 지키고 있다.”
모방 음성이 곧바로 이어졌다.
“나는 초소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진짜 레오나는 한 손으로 받침돌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검을 빼고 있었다. 갑옷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는 한 번만 들렸다.
두 번째 관찰자가 장부를 펼쳤다.
“왼손은 받침돌을 눌렀습니다. 오른손은 검자루에 닿았습니다. 발은 두 번째 돌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방 음성은 손의 움직임만 따라 했다. 발의 위치는 말하지 않았다.
카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들은 것과 실제 움직임이 완전히 겹치지는 않습니다.”
“한 번의 관찰이다.”
에단이 말했다.
“규칙으로 만들지 말고 사실로 남겨라.”
그때 초소 아래에서 돌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레오나의 발끝에 검은 선 하나가 닿았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레오나가 초소 아래의 주민들에게 말했다.
“초소가 무너지면 서쪽으로 뛰지 말고 로프를 따라 움직여라.”
그녀는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퇴로부터 만들었다. 쇠말뚝을 뽑아 로프를 두 번째 고리에 걸고 돌이 굴러갈 방향을 막았다.
“에단 사제님. 빛은 선의 양옆만 비춰 주세요.”
카일이 말했다.
황금빛이 초소 아래로 스며들었다. 검은 선은 돌틈을 따라 올라오다가 레오나의 부츠 앞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발목을 감으려던 선이 그녀가 서 있는 위치 전체를 둥글게 돌았다.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자리를 잡으면 사람이 빠져나올 때 따라붙겠지.”
레오나가 검을 돌려 받침돌과 선 사이를 눌렀다.
검은 선이 칼날을 타고 올라와 손등 가까이 닿았다.
“검을 놓으십시오.”
카일이 외쳤다.
“놓으면 초소가 내려앉는다.”
“초소보다 손이 중요합니다.”
“내 손 하나와 아래에 있는 셋을 비교하지 마라.”
카일은 입을 다물었다.
레오나는 무모한 충성이 아니라 계산으로 버티고 있었다. 자신이 버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카일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고리와 북쪽 철 조각을 연결한 로프를 잡았다.
“첫 번째 돌. 두 번째 매듭. 왼손에 검. 사람의 숨은 먹지 마.”
손바닥의 닫힌 입 모양이 뜨거워졌다.
파멸의 별이 가슴 안쪽에서 몸부림쳤다.
―그 자리를 통째로 삼키면 된다.
‘사람이 서 있잖아.’
―사람이 아니라 위치다.
‘위치에 사람의 숨이 붙어 있다.’
카일은 검은 선을 바라보았다. 선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첫 봉인문 쪽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서쪽 돌틈의 천 조각으로 향했다. 마지막 하나는 환자 천막 아래로 파고들고 있었다.
카일은 마지막 선만 잡았다.
검은 힘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팔꿈치에 머물던 흔적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목 아래가 타는 듯 뜨거워졌다.
에단의 빛이 선의 양옆을 붙잡았다.
“지금이다.”
“사람의 숨은 먹지 마.”
카일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환자 천막으로 향하던 선이 잿빛으로 말랐다. 레오나의 발밑을 돌던 선은 크게 떨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카일의 무릎이 꺾였다.
레오나가 그를 붙잡으려 하자 카일이 손을 밀어 냈다.
“선이 당신에게 붙을 수 있습니다.”
“이미 붙었다.”
레오나의 버클에 검은 밀랍이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선이 닿았던 흔적이었다.
카일은 이를 악물고 로프를 당겼다. 환자 천막 쪽에서 끊어진 선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왔다.
첫 봉인문 쪽 선과 천 조각으로 향한 선은 그대로였다.
“한 가닥만 끊겼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레오나의 자리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요.”
“그래도 끌려가지는 않습니다.”
카일은 손을 거두었다. 입안에서 낯선 이빨이 자란 감각이 들었다. 목 아래의 검은 흔적은 쇄골을 넘어 올라와 있었다.
레오나는 버클을 내려다보았다.
“다음에는 네가 말하기 전에 내가 판단한다.”
“그게 맞습니다.”
카일이 대답했다.
“교주 명령보다 눈앞의 사실을 먼저 보십시오.”
레오나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돌이 멎은 뒤에도 마렌은 기록 천막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철판 옆에 쪼그려 앉아 두 장부를 나란히 펼쳤다.
“첫 번째 기록입니다. 북쪽 초소의 사람은 왼손으로 받침돌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검을 잡았습니다.”
다른 주민이 뒤를 이었다.
“두 번째 기록입니다. 그 사람이 서 있는 동안 기록 천막 서쪽의 관찰자는 두 번째 고리를 잡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에단은 레오나의 버클을 살폈다.
“검은 밀랍이 눌어붙었다. 돌틈에서 본 조각과 색은 비슷하지만 같은 물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번호와 시간을 붙이세요.”
카일이 말했다.
“범인을 붙이지 말고 모양을 붙이십시오.”
마렌이 기록하는 동안 서쪽 돌틈 아래에서 금속 긁히는 소리가 났다.
카일이 로프를 당겼다.
보조 통로에서 철 조각 하나가 돌아왔다. 천 조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철 조각의 끝에는 검은 밀랍이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안쪽에서 누군가 잡아당긴 건가?”
레오나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선이 묶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마렌은 두 가능성을 나누어 적었다.
“천 조각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합니다.”
“철 조각이 돌아왔다는 사실도 적으세요.”
카일이 덧붙였다.
“작은 물자가 이동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단서입니다. 하렌이 돌려보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돌틈 안쪽에서 마른 기침이 들렸다.
기침 뒤에는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소리처럼 들렸다.
마렌의 펜 끝이 멈췄다.
“기침 한 번. 뒤에 긴 호흡.”
“그대로 적으세요. 누구의 기침이라고 적지는 마십시오.”
가까운 곳에서 같은 기침이 바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숨을 고르는 시간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흉내다.”
레오나가 검을 들었다.
“둘 다 흉내일 가능성도 남겨 둡니다.”
에단이 대답했다.
“다만 두 소리 사이에 공기의 흐름 차이는 있습니다.”
카일은 돌아온 철 조각을 빈 철판 옆에 놓았다.
철판의 검은 선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마렌의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선은 북쪽 초소의 위치 표식을 지나 기록 천막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성수를 보관한 수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재고 수레를 가리킵니다.”
마렌이 숨을 삼켰다.
“수레는 봉인되어 있습니다. 외부로 옮긴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카일이 일어섰다.
“사람을 두 명 세웠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키는 위치를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철판 아래에서 금속이 두 번 울렸다.
이번에는 북쪽 초소가 아니었다.
성수 수레의 바닥 안쪽에서 종이 울렸다.
레오나가 수레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열까?”
카일은 봉인끈과 철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잠가 둔 재고였다. 그러나 소리를 무시하면 검은 연결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열지 않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이번에는 셋이 봅니다. 한 사람은 봉인끈을 보고 한 사람은 수레 바닥을 보고 한 사람은 기록을 봅니다.”
수레 안에서 세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마렌의 장부에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빈 철판의 새 선은 수레 바닥 아래에서 틈처럼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