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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21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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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이름을 증언하는 사람들

돌틈 아래에서 울린 종소리가 멎은 뒤에도 땅은 한동안 떨렸다.

마렌의 이름이 새겨진 빈 철판은 기록 천막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검은 글자는 잉크처럼 번지지 않았다. 금속 안쪽에서 파인 자국처럼 선명했다.

“철판을 부숴야 합니다.”

주민 하나가 곡괭이를 들고 다가왔다.

“저게 마렌을 붙잡고 있다면 없애야 합니다.”

“곡괭이를 내려놓으세요.”

마렌이 먼저 말했다.

마렌은 손목을 돌렸다. 방금까지 적던 숫자와 하렌에게 빌려준 붕대의 위치가 떠올랐다.

“저는 제 기억을 잃지 않았습니다.”

에단이 철판 가까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증거는 봉인해야 한다.”

“봉인 상자 안에 넣으면 마렌이 표본이 됩니다.”

카일이 말했다.

“사람을 치워 기록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레오나가 철판과 마렌 사이에 섰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주민이 물었다.

“이름을 지우지 않습니다. 이름이 혼자 움직이지 못하게 사실을 붙입니다.”

카일은 새 장부를 펼쳤다. 시간과 위치부터 적었다.

“마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말하세요. 철판에 새겨진 이름은 부르지 마십시오.”

첫 번째 주민이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새벽 종이 두 번 울렸을 때 마렌은 철판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마렌은 그 문장을 적었다. 철판의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주민이 뒤를 이었다.

“기록 천막 서쪽에 서 있었고 환자 천막으로 가는 수레를 막았습니다.”

검은 글자 아래에서 가느다란 선이 움직였다. 이름을 향해 올라오던 선이 중간에서 멈췄다.

세 번째 주민은 철판의 글자를 읽으려 했다.

“마렌은…….”

검은 선이 철판 가장자리에서 튀었다. 돌틈 쪽으로 가느다란 실이 뻗었다.

카일이 주민의 입을 막았다.

“그 뒤를 말하지 마세요.”

주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 천막 서쪽. 철판을 확인함. 이름을 읽으려는 순간 선이 움직임.

“이름을 없애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마렌이 말했다.

“이름을 읽으면 선이 움직입니다. 사실을 연결하면 멈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름을 숨기는 게 아니라 혼자 두지 않는 쪽이 맞습니다.”

마렌은 철판을 들어 올리지 않고 새 장부에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적었다.

그때 돌틈 아래에서 종이 다시 울렸다.

톡.

이번에는 한 번뿐이었다. 빈 철판의 검은 선이 서쪽으로 꺾였다.

카일은 환자 천막으로 이어지는 선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옮기지 않습니다. 주변의 돌만 확인합니다.”

레오나가 주민들에게 손짓했다.

“환자 천막과 수레에서 세 걸음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곡괭이는 두 자루만 가져온다.”

마렌은 이름 없이 역할을 적었다.


에단의 황금빛은 지면을 깊게 뚫지 않았다.

빛은 돌틈 가장자리에서 멈췄다가 틈 아래로 얇게 흘러 들어갔다. 그 안쪽에 빈 공간이 있었다. 사람이 기어갈 만큼 넓지는 않았지만 종줄 하나가 지나갈 정도는 되었다.

레오나는 돌의 무게를 살피며 나무 받침을 세웠다.

“여기서 더 파면 기록 천막이 내려앉습니다.”

“그럼 파지 않습니다.”

카일은 빈 철판을 돌틈 옆에 세웠다. 검은 선이 아래로 늘어지더니 갈라진 바닥 틈을 향했다.

“방향의 단서일 수 있습니다. 확정하지 않고 움직임만 봅니다.”

카일은 로프 끝에 작은 철 조각을 묶었다. 레오나가 그것을 틈 안으로 천천히 밀었다. 철 조각이 바닥에 닿자 안쪽에서 가벼운 금속음이 났다.

한 번.

잠시 뒤 멀리서 두 번이 돌아왔다.

“종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레오나가 느슨한 돌 하나를 손끝으로 밀어 냈다. 돌 아래에는 검은 밀랍 조각과 낡은 천이 끼어 있었다. 천에는 검붉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마렌의 손이 멈췄다.

“그 붕대와 같은 천입니다.”

“하렌의 것인가?”

에단이 물었다.

“제가 감아 준 조각과 무늬가 같습니다. 오른쪽 끝이 찢어졌고 잉크 자국도 있습니다. 하렌이 돌려주기 전에 제가 장부를 받치면서 묻은 자국일 수 있습니다.”

마렌은 천을 집으려다 손을 거뒀다.

“하지만 이 천만으로 안쪽에 하렌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없던 단서다.”

카일이 철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선 하나가 천 조각을 향해 기어갔다. 다른 선은 환자 천막 아래로 뻗었다. 세 번째 선은 폐갱도 첫 봉인문이 있는 북쪽으로 사라졌다.

“세 갈래입니다.”

“환자 천막 쪽을 먼저 끊어야 합니다.”

에단이 말했다.

“사람을 향하는 선은 놓아둘 수 없다.”

카일은 손바닥을 철판 가장자리에 가까이 가져갔다. 닫힌 입 모양의 문양이 뜨거워졌다.

카일은 천 조각에 붙은 선을 건드리지 않고 환자 천막 쪽으로 흐르는 연결만 눌렀다. 검은 선이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었다.

목 아래의 흔적이 한 치 더 올라왔다.

레오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손을 떼.”

“지금 떼면 환자 천막 아래로 갑니다.”

“그럼 내가 잘라 낸다.”

레오나가 검끝을 들이밀었다. 검은 선이 칼날에 닿자 연기가 솟았다.

에단은 황금빛을 선의 양옆에 비췄다. 빛은 선을 없애지 못했지만 선이 굽는 위치는 드러냈다.

카일은 환자 천막 쪽 선만 움켜쥐었다.

“사람의 숨은 먹지 마.”

손바닥의 문양이 오므라들었다.

검은 선이 잿빛으로 말랐다. 환자 천막 쪽 연결은 끊겼지만 천 조각과 첫 봉인문을 잇는 선은 남았다.

카일은 손을 거두었다. 입안에서 낯선 이빨이 다시 자란 듯한 감각이 지나갔다.

“두 갈래가 남았습니다. 하나는 하렌에게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마렌은 천 조각에 번호를 붙였다. 하렌의 붕대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보조 통로의 폭은 손가락 세 개가 나란히 들어갈 정도였다.

카일은 빈 철판을 로프에 매달아 틈 안으로 밀었다. 철판 앞쪽에는 작은 철 조각 세 개를 각각 한 매듭씩 묶었다.

“사람 셋. 로프 하나. 철 조각 셋. 문은 열지 않습니다.”

돌 아래에서 목소리가 돌아왔다.

“사람 셋. 로프 하나. 철 조각 셋. 문은 열지 않습니다.”

잠시 뒤 검은 선이 철판 위를 타고 움직였다.

“문을 엽니다.”

레오나가 로프를 움켜쥐었다.

“말을 뒤집었습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렌이 철 조각 하나를 철판 아래쪽에 묶었다. 이번 변화는 아무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에단이 빛을 좁혔다.

“목소리가 들은 정보만으로 따라 하기는 어렵겠군.”

마렌은 철 조각 하나를 철판 아래쪽에 묶었다. 두 번째 매듭만 새로 만든 이중 매듭이었다.

카일이 로프를 한 뼘 밀자 안쪽에서 한 번 당김이 왔다. 손을 놓자 로프가 두 번 연속 당겨졌다.

“하렌의 신호와 맞지 않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한 번은 대답이고 세 번은 부상 신호였습니다. 두 번은 이동에 가깝지만 간격이 너무 짧습니다.”

돌틈 가까이에서 목소리가 났다.

“철 조각 세 개. 아래 하나. 두 번째 매듭.”

안쪽 깊은 곳에서 마른 기침이 한 번 겹쳤다. 기침 뒤에 숨을 고르는 시간이 길었다.

에단이 낮게 말했다.

“가까운 목소리와 깊은 기침의 위치가 다르다.”

“하렌일 수 있습니까?”

레오나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일은 돌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묻지 않습니다. 안쪽에서 확인한 것만 말하십시오.”

가까운 목소리가 먼저 대답했다.

“이름을 말하면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공기가 좁습니다. 돌틈은 길이 아닙니다. 첫 문 아래에서 갈라졌습니다.”

가까운 목소리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공기가 좁습니다. 돌틈은 길이 아닙니다. 첫 문 아래에서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숨이 없었다.

“문을 엽니다.”

마지막 문장이 다시 뒤집혔다.

카일은 로프를 잡았다. 깊은 기침이 한 번 더 들렸다.

“안쪽 사람은 배치가 아니라 공기와 갈라진 위치를 말했습니다.”

마렌이 말했다.

“그것도 흉내일 수 있습니다.”

에단이 경고했다.

“그래서 말보다 물건을 보냅니다.”

카일은 철 조각 하나에 마렌이 찾은 천의 끝을 감았다. 새 매듭은 만들지 않았다. 천에 남아 있는 접힌 선을 그대로 두었다.

“돌려받으면 결과를 적습니다.”

“하렌이 돌려보냈다면 말이지.”

“그래서 증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첫 봉인문 쪽의 선이 움직이자 바닥이 낮게 울렸다.

에단이 즉시 빛을 거두었다.

“문 가장자리가 반응했다.”

“보조 통로만 건드립니다.”

“통로의 끝이 문 아래에 닿아 있으면 같은 일이다.”

레오나는 로프 끝을 잡고 있었다. 철 조각과 천이 묶인 쪽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끌어당길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사람을 끌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먼저 공기와 신호가 오가는지 확인합니다.”

그는 빈 철판을 조금 더 밀었다. 철판의 모서리가 돌에 걸렸다. 카일은 손을 대지 않고 로프만 당겼다.

안쪽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종이 한 번 울렸다.

돌틈 바로 아래에서 짧게 떨렸다. 하렌이 보냈던 대답 신호와 같은 횟수였다.

카일이 로프를 당겼다.

철 조각 하나가 먼저 돌아왔다. 천 조각은 그대로 묶여 있었다. 끝에는 검은 밀랍이 아주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철 조각만 돌아왔습니다. 천은 안쪽에 남았습니다.”

레오나가 말했다.

카일은 돌아온 철 조각을 손바닥 가까이 가져갔다. 문양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힘을 밀어 넣지 않았다.

“누군가 떼어 갔거나 선이 묶은 겁니다.”

돌틈 안쪽에서 하렌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났다.

“문을 열지 마십시오.”

마른 기침이 뒤따랐다. 거친 숨이 세 번 이어진 뒤 멎었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에단이 문 쪽을 가리켰다.

“선이 다시 움직인다.”

검은 선 하나가 철판에서 빠져나와 마렌이 적어 둔 새 장부로 기어갔다.

“제가 치우면 더 안전합니까?”

“모릅니다. 그래서 치우지 않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마렌은 장부에 적었다.

보조 통로에서 철 조각 하나가 돌아옴. 천 조각은 돌아오지 않음. 종 한 번과 기침 확인.

빈 철판의 표면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검은 선이 글자를 만들지 않았다. 마렌의 이름 아래에 가느다란 선 하나가 생겨 바깥 교대표로 뻗었다.

레오나가 교대표 앞에 섰다.

“내 북쪽 감시 위치 표시다.”

마렌이 말했다.

“그런데도 저쪽이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첫 봉인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에는 한 사람만 증언해.”

카일의 손바닥 문양이 벌어졌다.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위험했다. 목소리는 증언의 내용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카일은 교대표를 바라보았다. 기록을 끊으면 사람을 숨길 수 있지만 표적은 넓어질 수 있었다.

그는 마렌에게 펜을 건넸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적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표적이 될 겁니다.”

“그럼 더 많은 사람이 서로의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마렌은 펜을 받았다.

교대표의 철판 표식에서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이어졌다. 돌틈 아래가 아니었다.

카일은 레오나의 북쪽 감시 위치를 바라보았다.

빈 철판 위에서 그 위치를 가리키던 선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렌에게 닿는 길은 조금 열렸지만 목소리는 이미 다음 증언자를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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