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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15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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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마수의 습격

새벽이 오기 전 에단의 천막 안에서 유리 긁는 소리가 났다.

카일이 천막을 젖히고 들어갔을 때 붉은 천 상자 위의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봉인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 안의 유리병에서 검은 실이 병 바닥과 벽을 오가며 좁은 틈을 만들었다.

“밖에서도 소리가 났습니다.”

배수로를 지키던 호위병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돌 밑을 긁는 소리입니다. 처음에는 쥐인 줄 알았지만 너무 컸습니다.”

레오나가 이미 검을 뽑은 채 천막 밖을 보고 있었다.

“사람의 발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카일은 병 속의 틈과 배수로 입구에 찍힌 현장 번호를 번갈아 보았다. 젖은 흙의 발뒤꿈치 자국은 그대로였다. 소리는 자국이 끝난 안쪽에서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배수로를 열어야 합니다.”

“증거를 훼손할 생각인가?”

“열지 않으면 증거가 우리를 열 겁니다.”

에단의 입술이 굳었다. 그는 상자의 봉인을 다시 확인하게 한 뒤 호위병을 불렀다.

“천막 안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다. 배수로 주변만 확인한다.”

레오나가 돌판 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판자를 들어 올리자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 어제 보았던 검은 선이 배수로 안쪽에서 더 굵어져 있었다. 흙바닥에는 발뒤꿈치 자국과 나란히 깊게 패인 긁힌 자국이 이어졌다.

“이건 사람이 남긴 자국이 아닙니다.”

레오나가 검끝으로 흙을 가리켰다.

안쪽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카일은 목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멸의 별이 정신 안쪽에서 천천히 몸을 뒤척였다.

―길 아래에 굶주린 것들이 있다.

‘몇 마리지?’

―수를 세는 동안 더 온다.

에단의 빛이 배수로 벽을 스치자 안쪽의 검은 가루가 물결처럼 떨렸다. 무언가가 빛을 피해 물러났다.

“사람들을 깨우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에단이 그를 보았다.

“아직 마수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 마수가 아니라는 가정으로 사람을 재우시겠습니까?”

잠깐의 침묵 뒤 에단은 호위병에게 손짓했다.

“치료 천막부터 깨워라. 아이와 환자를 우물 뒤쪽으로 옮긴다. 조리 막사는 잠그되 물 항아리는 그대로 둬라.”

카일은 마렌을 찾았다. 그녀는 잠에서 깬 주민들에게 횃불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마렌. 어제 그린 재의 선을 다시 이어. 우물과 치료 천막 사이에 사람을 세우고 이름을 적어.”

“마수가 오면 이름을 적을 시간이 있겠어요?”

“살아남은 사람의 이름부터 적어야 다음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압니다.”

마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렌은요?”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종을 맡겨. 대신 앞에 세우지는 마.”

카일은 배수로에서 이어진 검은 가루를 따라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루는 돌 틈 아래로 사라졌다가 작업장 뒤편의 무너진 벽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 벽 너머에는 오래된 환기구가 있었다.

에단이 황금빛을 환기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벽 너머에서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터졌다.

“온다.”

레오나가 몸을 낮췄다.

환기구를 막고 있던 봉인석에 금이 갔다. 금 사이로 검은 침이 흘러나와 흙 위에서 가느다란 길을 만들었다.

봉인석이 안쪽에서 튕겨 나왔다.

회색 털을 뒤집어쓴 짐승이 네 발로 기어 나왔다. 몸통은 광산 늑대와 비슷했지만 턱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등에는 젖은 돌껍질이 붙어 있었다. 목 안쪽에서 검은 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레오나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칼날이 짐승의 앞발을 베었다. 검은 피가 아니라 끈적한 재가 튀었다. 짐승은 쓰러지지 않고 몸을 비틀어 그녀의 허벅지를 물려 했다.

“왼쪽!”

카일이 외쳤다.

레오나는 몸을 틀어 턱을 흘려 보냈다. 검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며 짐승의 목을 갈랐다. 돌껍질이 부서지고 검은 핵이 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환기구 안쪽에서 두 개의 눈이 아니라 열 개의 눈이 켜졌다.

“한 마리가 아닙니다.”

서기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일은 열린 환기구를 바라보았다. 마수들은 레오나의 피 냄새보다 배수로에서 올라오는 검은 가루에 더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놈들의 머리가 전부 조리 막사와 치료 천막 쪽으로 향했다.

“막사로 바로 가지 못하게 길을 나누세요.”

에단이 물었다.

“무슨 길을 말하는 거지?”

“사람이 지나가는 길과 마수가 따라오는 길을 나눕니다. 흰 재를 더 뿌리세요. 검은 가루가 이어진 곳은 비워 두고 병목을 만드십시오.”

카일은 빈 광산 수레를 가리켰다.

“저 수레를 환기구 앞에 세우고 돌을 싣습니다. 마렌은 환자들을 우물 뒤로 옮겨요. 성수와 식량은 따로 움직이고 사람을 한곳에 쌓지 마세요.”

“교주님. 저것들이 재를 구분합니까?”

“구분하지 않아도 우리가 구분해야 합니다.”

마렌은 주민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렌이 기침을 참으며 종을 울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움직였다.

“환자부터 옮겨요. 이름을 부른 사람은 우물 뒤로 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식량 자루를 들고 북쪽 벽에 붙으세요.”

하렌의 동료가 그를 부축했다.

“너도 가자.”

“나는 여기서 종을 치겠소.”

하렌은 창백한 얼굴로 종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히면 두 번. 사람이 다치면 세 번 치겠소.”

―저것은 약한 몸이다.

‘그래서 더 앞에 세우지 말라고 했다.’

―약한 몸도 굶주림을 부른다.

‘사람을 먹이로 보지 마.’

―나는 네가 만든 길을 먹는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환기구에서 마수 세 마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레오나가 첫 번째의 머리를 베었고 두 번째는 에단의 황금빛 벽에 부딪혀 몸을 뒤집었다. 빛이 닿은 털이 타들어 갔지만 목 안의 검은 핵은 오히려 더 빠르게 뛰었다.

“빛이 핵을 못 막습니다.”

에단이 이를 악물었다.

“몸은 태울 수 있지만 안쪽의 잔향은 남는다.”

세 번째 마수가 수레 옆을 돌아 치료 천막 쪽으로 달렸다.

레오나가 뒤쫓았지만 이미 거리가 벌어졌다. 환자들이 비명을 질렀고 마렌이 침상을 밀어 길을 막았다.

“옆으로 비키세요!”


카일은 검은 가루가 이어진 바닥을 보았다. 마수의 발톱이 흰 재의 선을 지우며 지나갔다. 놈의 몸 안에서 검은 핵이 길의 방향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배수로 입구 옆의 젖은 돌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한 마리만. 길목에 있는 것만.’

―더 많은 배고픔을 열어라.

‘아니. 이 길만 닫아.’

파멸의 별의 힘이 손바닥 아래로 스며들었다. 검은 가루가 흰 재 사이에서 실처럼 꿈틀거렸다. 카일은 그 흐름을 마수의 발밑까지 좁게 끌었다.

마수가 치료 천막의 입구를 향해 뛰었다. 레오나가 뒤에서 칼을 던졌다. 칼날이 마수의 어깨에 박혔지만 놈은 멈추지 않았다.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검은 핵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배고픔이 입 안으로 쏟아졌다. 마수의 힘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갱도의 습기와 무너진 봉인의 공포와 누군가 남긴 분노까지 함께 끌려왔다. 카일의 시야가 잠깐 검게 물들었다.

―더.

‘한 마리면 충분해.’

―저들은 네 것을 먹으러 왔다.

‘그래서 네가 먹지 않는 거야.’

카일은 힘의 흐름을 꺾었다. 검은 핵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며 마수의 턱이 닫혔다. 놈이 천막 앞에서 굴러 바닥을 긁었다.

레오나가 달려와 칼을 뽑고 목을 내리쳤다. 돌껍질이 깨지며 마수가 움직임을 멈췄다.

카일의 손바닥에는 검은 선이 실핏줄처럼 올라와 있었다.

에단이 그 손을 보았다.

“네가 한 건가?”

카일은 곧장 손을 소매 안으로 숨겼다.

“길을 끊었습니다.”

“무슨 힘으로?”

“지금은 마수를 더 막는 게 먼저입니다.”

에단은 추궁하지 않았다. 환기구 쪽에서 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렌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서쪽 벽에도 검은 가루가 나타났습니다. 배수로가 하나가 아니에요.”

카일은 환기구와 서쪽 벽을 번갈아 보았다. 검은 길은 하나의 통로가 아니었다. 폐갱도 아래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골짜기를 감싸고 있었다.

“호위병을 서쪽으로 보내.”

레오나가 말했다.

“보낼 병사가 없습니다.”

에단이 대답했다. “남은 사람은 환자 천막과 막사를 지켜야 한다.”

카일은 주변을 살폈다. 주민들은 돌과 빈 자루를 들고 떨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약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수레를 밀어 길을 막고 있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사람만 싸우게 하지 마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물을 나르는 사람은 물을 나르고 돌을 드는 사람은 돌을 듭니다. 다친 사람이 생기면 이름을 세 번 부르세요. 듣지 못하는 사람을 버려두면 뒤에서 마수가 아니라 공포가 길을 엽니다.”

마렌이 주민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하렌의 종이 두 번 울렸다.

카일이 돌아보았다.

치료 천막 뒤쪽의 흙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환자 천막 아래입니다!”

마렌이 소리쳤다.

레오나가 달려가 침상을 끌어냈다. 바로 그 자리에 검은 발톱이 솟았다. 흙이 갈라지고 앞서 나온 것보다 훨씬 큰 마수가 몸을 밀어 올렸다.

놈의 등에는 깨진 광산 수레 바퀴 같은 뼈가 솟아 있었다. 두 갈래 턱 사이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울음이 끓었다.

에단이 황금빛을 쏘았다. 빛이 마수의 머리를 눌렀지만 놈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레오나가 검을 세워 막았다. 거대한 앞발이 칼날을 후려치자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 박혔다.

“레오나!”

카일이 외쳤다.

“뒤를 보지 마십시오. 명령을 내리세요.”

레오나는 이를 악물고 칼을 밀어 올렸다.

“교주님. 길을 말해!”


카일은 마수의 가슴을 보았다. 검은 핵이 세 갈래로 뛰고 있었다. 그것들은 배수로에서 올라온 길과 북쪽 환기구와 서쪽 벽을 동시에 물고 있었다.

한 마리를 먹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이 길 전체를 끊으려면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카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빛이 산등성이를 핥고 있었지만 그 위에는 별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북쪽 폐갱도에서 낮은 울음이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산비탈의 어둠 곳곳에서 눈이 켜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열도 아니었다.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눈들이 검은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에단이 숨을 삼켰다.

“저 숫자를 상대할 수 없다.”

“숫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카일은 떨리는 손을 소매 안에서 움켜쥐었다.

“저것들은 검은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늘을 열어라.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그러면 내가 모두 먹겠다.

‘대가는?’

―이번에는 네가 굶주림을 내놓아라.

카일은 환자 천막과 조리 막사를 바라보았다. 마렌은 침상을 옮기며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렌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종을 놓지 않았다. 레오나는 거대한 마수의 발을 붙잡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에단의 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평범한 성수와 좁은 길로는 더 버틸 수 없었다.

카일은 빈 새벽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좋아.”

그가 처음으로 별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내려오는 모양은 내가 정한다.”

검은 산비탈의 눈들이 동시에 골짜기를 향했다.

카일은 하늘에 아직 없는 별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다음 순간부터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이 밤을 속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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