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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13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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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밀랍 인형의 눈물

새벽의 첫 종이 울리자 조리 막사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에단은 붉은 밀랍 봉인을 손톱으로 훑었다. 봉인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만 가장자리의 작은 검은 점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박혀 있었다.

“기록해.”

신전 서기관이 고개를 숙였다.

“문 봉인 이상 없음. 검은 점 유지.”

에단은 호위병에게 자물쇠를 열게 했다. 두 병사는 막사 양쪽에 섰다. 한 명은 문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물 항아리와 약초를 지켰다.

카일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눌렀다.

‘이제 도둑질하려면 감시병 둘과 서기관까지 속여야 하는군.’

“물은 내가 고른다.” 에단이 말했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너는 마지막 의례만 맡아.”

“좋습니다. 대신 계량하는 손과 기록하는 손을 나누십시오. 한 사람이 모두 만지면 나중에 약효가 달라졌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책임을 벌써 나누려는 건가?”

“책임을 숨기지 않으려는 겁니다.”

에단은 대꾸하지 않고 두 번째 항아리의 물을 유리잔에 따랐다. 황금빛 손가락이 물 위를 훑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 번째 항아리도 마찬가지였다.

카일은 안도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시선은 항아리에서 임시 제단으로 옮겨 갔다.

제단 한가운데에는 작은 밀랍 인형이 놓여 있었다. 별 모양의 몸통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조잡한 조각이었다. 주민들이 꺼진 초를 바치며 남긴 밀랍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인형의 눈은 작은 구슬처럼 굳어 있었다. 그 뒤에는 카일이 밤새 파낸 가느다란 통로가 있었다. 낡은 붕대 속에 숨긴 물주머니와 연결된 통로였다. 제단 아래 촛불이 열을 내면 주머니 속 공기가 팽창하고 맑은 물이 눈으로 밀려나올 것이다.

카일은 이 장치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에단에게 열두 잔의 안전성을 계속 확인하게 하려면 환자의 호전만으로는 부족했다. 골짜기 사람들에게도 새로 고친 교리가 말뿐이 아니라는 표지가 필요했다. 약을 만들 때마다 고통을 제물로 바치는 집단으로 오해받으면 내일의 환자가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릴 터였다.

에단의 시선이 인형에 닿았다.

“저건 무엇이지?”

“신도들이 만든 상징입니다. 눈은 어둠을 보고 입은 살아남은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제조에 필요한가?”

“성수에는 필요 없습니다. 다만 환자 앞에서 약을 만들면서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요.”

에단은 인형을 한참 바라보다가 기록관에게 말했다.

“제단 장식도 목록에 넣어.”

카일은 웃었다. 감시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보는 것만 기록한다고 믿는다. 기록되지 않은 틈은 언제나 남는다.


불이 붙고 물이 끓기 시작했다.

에단은 산엉겅퀴를 직접 골랐다. 마렌은 저울을 들고 무게를 읽었고 신전 서기관은 그 숫자를 받아 적었다. 형광 이끼는 세 번 털어 먼지를 빼낸 뒤 별도의 천에 올려졌다.

“백설탕 두 국자.”

“한 국자 반입니다.” 마렌이 바로잡았다.

카일은 흘끗 그녀를 보았다. 마렌은 요즘 숫자를 틀리지 않았다. 환자 기록의 문장을 고친 뒤부터는 특히 그랬다.

끓는 물에서 약초 냄새가 피어올랐다. 천막 쪽에서는 기침이 이어졌다. 남쪽 갱도에서 실려 온 광부가 수레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에단이 그를 가리켰다.

“첫 환자는 저 사람으로 한다.”

광부의 동료가 달려왔다.

“이름은 하렌입니다. 밤새 숨이 더 가빠졌습니다.”

에단은 하렌의 손목을 잡았다. 황금빛이 피부 아래로 번졌다. 목을 타고 올라간 검은 줄이 잠깐 멎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의식은 있다. 호흡은 분당 서른여섯.”

신전 서기관이 적었다. 마렌도 같은 수치를 다른 장부에 기록했다.

하렌이 눈을 떴다.

“약을 주시오.”

“완치를 약속할 수 없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숨이 편해질 수는 있지만 기침이 남을 수 있습니다. 오염이 다시 올라오면 다른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드시겠습니까?”

하렌은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숨을 쉬고 싶소.”

“그 대답을 기록하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환자가 동의했습니다.”

마렌이 그 문장을 적었다. 에단은 새로 식힌 물 한 잔을 직접 들고 하렌 앞에 앉았다.

“한 번에 마시지 마라. 삼키기 어렵다면 멈춘다.”

“신전 사제도 약을 권하는군요.”

“권하는 게 아니다. 네가 무엇을 마시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렌은 잔을 받아 조금씩 삼켰다. 카일은 손가락을 무릎 아래에서 꽉 쥐었다. 파멸의 별의 파동은 이미 식은 액체 속에 얇게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 새로 힘을 부르면 에단의 빛과 부딪힐 것이다.

―배고프다.

‘오늘은 기다려.’

―저 몸 안의 검은 것은 오래 굶었다.

‘네가 먹으면 환자가 쓰러질 수도 있어.’

하렌의 목이 크게 움직였다. 다음 순간 그가 몸을 접었다.

“커헉!”

검은 가래가 대야 안으로 쏟아졌다. 동료가 비명을 삼켰고 레오나는 수레의 바퀴를 붙잡았다. 에단의 손에서 황금빛이 번졌다. 이번에는 검은 줄이 잠깐 누그러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렌은 바닥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 서른여섯에서 스물아홉으로 감소.”

서기관이 말했다.

“호전이지 완치는 아닙니다.” 카일이 덧붙였다. “다음 확인 시간을 적으세요.”

군중에서 안도의 탄성이 흘렀다. 카일은 그 탄성이 기도로 바뀌기 전에 손을 들었다.

“오늘 살아난 것은 한 사람의 숨입니다. 아직 그 사람의 내일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에단이 그를 돌아보았다. 눈빛이 차가웠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성수가 담긴 잔들이 식탁 위에 줄을 섰다.

열두 잔 분량. 마렌은 끓인 시간과 식힌 시간을 적었다. 서기관은 에단이 고른 물 항아리의 봉인 상태와 재료의 무게를 대조했다. 기존에 남아 있던 다섯 잔은 별도 표식 아래 놓였고 새로 만든 열두 잔과 섞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카일이 제단 앞에 섰다.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할지 기다렸다. 에단도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카일은 밀랍 인형 앞에 작은 촛불을 놓았다. 미리 붕대 속에 숨겨 둔 물주머니의 위치가 손끝에 느껴졌다.

‘불이 너무 세면 눈이 아니라 입이 먼저 녹는다.’

그는 촛불 심지를 조금 잘랐다.

“오늘 우리는 시련을 바치지 않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아픈 사람에게 고통을 더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어둠이 깊어졌다면 별은 고통을 세는 대신 길을 밝혀야 합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밀랍 인형의 가슴에 새긴 별을 눌렀다. 손톱 끝이 얇은 밀랍을 건드리며 아래쪽 통로를 열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인형의 눈에서 맑은 물방울이 맺혔다.

처음에는 한쪽뿐이었다. 물방울이 턱을 타고 내려가자 반대쪽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주민들이 숨을 삼켰다.

“인형이 울고 있습니다.”

누군가 속삭였다.

카일은 놀란 얼굴을 만들었다. 속으로는 주머니의 압력이 맞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기적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그가 말했다. “눈물의 양과 시간을 먼저 기록하십시오. 증명 없는 찬양은 내일의 환자를 속일 수 있습니다.”

에단의 안경 너머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확인하겠다.”

그는 인형으로 다가와 눈가를 살폈다. 손끝에 부드러운 밀랍과 맑은 물만 닿았다. 눈물은 촛불이 약해진 뒤에도 한 방울 더 흘렀다.

에단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 순간 인형의 왼쪽 눈물에서 검은 실 한 올이 끊어져 나왔다.

맑은 물방울 안에 섞여 있던 실이 그의 손등에 붙었다.

에단은 즉시 손을 멈췄다. 황금빛이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와 검은 실을 감쌌다. 하지만 실은 타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원을 그리며 빛의 가장자리를 파고들었다.

―길이다.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내 장치에 어떻게 들어왔지?’

―네가 만든 길을 타고 왔다.

카일은 웃는 표정을 유지했다. 눈물은 자신의 연출이었다. 저 검은 실은 아니었다.


군중이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 성별의 이름을 불렀고 누군가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인형을 부수지 마.” 카일이 말했다. “눈물을 먼저 봉인해야 합니다.”

“이 눈물이 약효와 관계있다고 보나?” 에단이 낮게 물었다.

“그 판단은 사제님이 하셔야지요. 저는 환자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에단은 카일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기관에게 유리병을 가져오게 했다. 맑은 눈물을 병에 옮기자 검은 실이 병 벽에 달라붙었다. 작은 원과 가느다란 틈이 생겼다.

카일의 목 안쪽이 말라 갔다. 오염 항아리에서 보았던 모양과 닮았다. 하지만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눈물은 기적의 증거가 아니다.” 에단이 군중을 향해 말했다. “다만 이 안에 정체 모를 잔향이 있다는 증거다. 누구도 이 병에 손대지 마라.”

“그럼 성수도 전부 버립니까?” 마렌이 물었다.

에단은 남은 열한 잔과 하렌이 마신 첫 잔의 기록을 돌아보았다. 하렌은 천막 안에서 동료의 손을 붙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호흡은 느려졌지만 목의 검은 줄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니다. 제조 기록과 환자 상태를 계속 확인한다. 성수는 등록 환자에게만 투약한다. 다만 이 인형과 눈물은 신전이 보관하겠다.”

“제가 만든 인형을 가져가겠다는 겁니까?”

“검사 대상이다.”

“부수지는 마십시오. 구조를 확인하려면 원형이 필요합니다.”

에단의 눈썹이 움직였다.

“사기꾼답게도 물건의 가치를 아는군.”

카일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살리는 물건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합니다.”

에단은 인형과 유리병을 붉은 천으로 감쌌다. 서기관은 열두 잔 분량의 제조가 끝난 시각과 첫 투약의 경과를 두 장부에 나란히 적었다.

카일은 그 문장을 보며 숨을 내쉬었다. 허가가 취소되지 않았다. 환자도 살아 있었다. 사기극은 성공했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밤이 되어 사람들의 발소리가 사라진 뒤 카일은 임시 제단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에단은 인형을 봉인한 상자를 자신의 천막 안으로 옮겼고 호위병 둘은 조리 막사 앞을 지키고 있었다.

카일은 낮에 인형을 만들 때 남은 밀랍 조각을 집어 들었다. 별 모양의 조각 안쪽에는 자신이 파 놓은 통로가 선명했다. 물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 안에는 검은 실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럼 어디서 온 거지?’

―눈물은 네가 만들었다. 울음은 네 것이 아니다.

‘알아듣게 말해.’

―누군가 길을 보았다. 길이 열린 곳마다 굶주림이 들어온다.

카일은 조리 막사 쪽을 돌아보았다. 문 밀랍의 검은 점이 달빛 아래서 반짝였다. 봉인은 끊어지지 않았는데도 오염 항아리와 밀랍 인형에 비슷한 모양이 남았다.

멀리서 하렌이 기침했다. 짧고 거친 소리였다.

카일은 손바닥에 남은 밀랍을 움켜쥐었다.

내일도 열두 잔을 만들어야 한다. 에단에게는 다음 기록을 보여 줘야 하고 신도들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누군가 제단과 조리 막사 사이에 낸 길이 있는지 찾아야 했다.

그 길이 다시 열리면 다음 눈물은 밀랍에서 흐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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