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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12화

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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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시련을 없애는 법

새벽 종이 울리기 전부터 치료 천막 앞에는 호위병이 서 있었다.

카일은 창날과 탁자 위의 잔을 번갈아 보았다. 감독 아래 남아 있던 여섯 잔이 전부였다. 조리 막사의 문에는 붉은 밀랍이 붙어 있었고 외부로 나가는 길은 두 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교주님.”

마렌이 낮게 불렀다.

“소년의 열이 다시 올랐습니다. 어머니가 한 잔만 더 달라고 합니다.”

카일은 천막 안쪽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올린 채 가늘게 기침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빈 병을 품에 안고 에단의 서기관 옆에 서 있었다.

“어제 숨은 안정됐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약을 찾지?”

“열이 오르고 기침이 깊어졌습니다.”

에단이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완치라고 적지 말라고 했지. 호전 뒤에도 경과를 봐야 한다.”

“그럼 한 잔을 쓰겠습니다.”

마렌이 재고표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다섯 잔입니다. 심문에서 보여 줄 몫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카일은 잔을 바라보았다. 약이 바닥나면 에단에게 끌려갈 구실이 생긴다. 소년을 돌려보내면 어제 쓴 구휼의 말이 장부 위에서 썩을 것이다.

“심문에 보여 줄 것은 병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카일은 소년의 어머니 앞에 앉았다.

“이 약을 마셔도 열이 전부 내린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기침이 남을 수도 있고 다시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도 마시겠습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도 눈을 떠 작은 손을 내밀었다.

에단이 서기관에게 말했다.

“복용 전 체온과 호흡을 적어라. 투약 뒤 한 시각마다 다시 확인한다.”

“신전에서 우리 아이를 실험하겠다는 겁니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일은 그녀와 서기관 사이에 잔을 내려놓았다.

“실험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다만 치료한 뒤의 상태를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소년이 천천히 물을 삼켰다. 잠시 뒤 가슴을 들썩이던 숨이 조금 느려졌다. 이마의 열도 내려갔지만 기침은 남았다.

마렌이 장부에 적었다.

‘호흡 호전. 열 일부 하강. 기침 지속. 완치 아님. 다음 확인 필요.’

에단은 그 문장을 읽고 카일을 보았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고쳤군.”

“고친 것이 아니라 기록을 바로잡은 겁니다.”

레오나는 천막 밖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카일이 심문을 앞두고도 남은 약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카일이 계산한 것은 소년의 숨과 교단의 체면이 동시에 끊어지는 최악의 장면을 피하는 일이었지만 레오나는 알지 못했다.

에단은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오늘 다시 확인한다. 움직일 수 있다고 광산에 보내면 안 된다.”

신전의 사제는 환자를 살피면서 섣부른 약속도 막고 있었다.


해가 협곡 벽을 넘어오자 임시 제단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에단은 제단 아래 의자에 앉았고 카일은 한 계단 위에 섰다. 양쪽에는 서기관이 한 명씩 앉았다. 마렌의 두 장부는 사람들 앞 탁자에 펼쳐졌다.

“이 심문은 성별교의 등록을 허가하는 절차가 아니다.”

에단이 말했다.

“성수의 효과와 위험을 확인하고 제조를 허용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자리다. 거짓 증언은 기록한다.”

주민들은 조용했다. 환자가 살아 있다는 기쁨과 약이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얼굴에 함께 남아 있었다.

에단이 교리문을 펼쳤다.

“성별교는 고통을 별빛을 증명하기 위한 숭고한 시련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너는 어젯밤 고통을 줄이는 물을 나누었다. 네가 받드는 별은 사람들의 고통을 원하는가?”

카일은 대답하기 전에 소년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아직 낫지 않은 숨이었다.

“아닙니다.”

짧은 말이 공터에 떨어졌다.

군중이 술렁였다. 에단의 펜도 잠깐 멈췄다.

“그럼 교리문이 틀렸나?”

“문장이 부족했습니다.”

카일은 교리문을 받아 들었다. 자신이 사람들을 묶어 두려고 만든 말이 이제 자신을 묶고 있었다.

“고통은 별이 바라는 제물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경보입니다. 경보가 울렸는데도 참고 견디라고만 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레오나의 눈빛이 깊어졌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시련은 제단이 아닙니다. 빠져나와야 할 길을 찾게 하는 표지입니다. 그래서 성별교의 첫 기둥은 구휼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두 번째는 증명입니다. 나아진 기록만이 아니라 실패한 기록도 남기는 것. 세 번째는 자립입니다. 교주가 곁에 없을 때도 서로를 살리는 방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마렌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토마스는 사람들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끼어들었다.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에게는 성수 값을 받지 않았나? 고통을 줄이는 일을 돈으로 바꾼 것은 방치가 아닌가?”

“재료와 병과 운반에는 값이 듭니다. 그래서 평상시 외부 공급가는 은화 반 닢이나 같은 양의 곡식과 약재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응급 환자에게 값을 먼저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다음 환자의 몫을 보태면 됩니다.”

카일은 마렌에게 고개를 보냈다.

“페르딘 상단의 다섯 병은 상인이 더 높은 값을 제시한 거래입니다. 독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복용 기록을 받기로 했습니다. 기록이 오지 않으면 효과가 확인된 거래로 적지 않을 겁니다.”

에단은 장부를 넘겼다. 페르딘의 줄과 소년의 기록 그리고 새 광부의 치료 기록이 차례로 드러났다.

“실패한 사람의 이름도 공개할 건가?”

“이름을 팔지는 않습니다. 상태와 경과는 남깁니다. 약이 듣지 않았는데도 기적이라 부르면 다음 사람의 목숨을 훔치는 일이니까요.”

주민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몇 사람이 장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믿으라는 말보다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 더 오래 남았다.

에단은 카일을 바라보다가 교리문을 접었다.

“네가 지금 교리를 고쳐 쓴다고 해서 힘의 출처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증명하자는 겁니다.”


에단이 손짓하자 서기관이 작은 유리병을 가져왔다.

병 바닥에는 검은 실 같은 찌꺼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 광부가 토해 낸 것과 비슷한 색이었다.

“본청에서 검출한 잔향이다. 네 성수에서 나온 흔적과 같은 계열인지 아직 모른다. 다만 정체 모를 힘이 사람의 몸에서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다면 그것을 계속 퍼뜨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카일은 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유리 너머의 검은 실이 물속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저것이 네가 먹은 것과 같은 냄새인가?’

―배고픔은 닮았다. 이름은 다르다.

악신의 대답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수의 재료를 공개하겠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물에 백설탕과 산엉겅퀴를 넣고 끓입니다. 식힌 뒤 형광 이끼를 걸러 빛을 냅니다. 조리 시간과 양은 장부로 남길 수 있습니다.”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지막 단계는?”

“교주가 별 앞에서 의례를 합니다.”

“기도가 약효를 만든다는 말인가?”

“그렇게 적으면 당신은 신앙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제안하겠습니다.”

카일은 군중과 에단을 번갈아 보았다.

“앞으로 사흘 동안 열두 잔만 만듭니다. 물과 재료는 에단 사제께서 직접 고르십시오. 마렌과 신전 서기관이 양과 시간을 각각 적습니다. 완성된 성수는 외부로 나가지 않고 등록된 환자에게만 동의를 받은 뒤 투약합니다.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그 기록도 같은 장부에 남깁니다.”

“너는 마지막 의례를 혼자 하겠다는 뜻이군.”

“의례를 치르는 동안 손을 떼지 않고 감독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어떤 믿음이 움직이는지까지 장부에 적을 수는 없습니다.”

에단은 유리병을 내려다보았다.

“열두 잔이 모두 오염되면?”

“중단하고 봉인하십시오.”

“한 사람이 죽으면?”

“치료를 멈추고 사망 원인을 기록하십시오. 기적이었다고 우기지 않겠습니다.”

마렌이 놀란 얼굴로 카일을 보았다. 레오나는 그 말에서 책임을 떠안겠다는 결의를 읽었다. 카일은 속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은 장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이름이 자신을 제일 먼저 찾아올 것이다.

에단은 처분서를 꺼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제조를 허용할 수 있다. 외부 판매와 반출은 계속 금지한다. 네가 치료소 밖으로 나갈 때는 호위병이 따라간다. 약을 만든 뒤에도 신전의 검사를 거부하면 허가는 즉시 취소한다.”

“서명하십시오.”

카일은 펜을 가리켰다.

“저도 제 조건을 적겠습니다. 환자의 동의 없는 투약 금지. 원본 장부의 현장 보관. 신전이 가져가는 시료는 수량과 목적을 기록할 것.”

에단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공개된 자리에서 서로 책임을 묶자.”

그가 붉은 인장을 눌렀다.


조리 막사의 문 앞에서 호위병 둘이 밀랍과 자물쇠를 확인했다.

봉인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만 문 가장자리의 밀랍에 손톱만 한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카일은 그 점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달큰한 설탕 냄새와 눅눅한 이끼 냄새가 섞여 나왔다. 선반 위에는 산엉겅퀴 자루와 마른 형광 이끼가 놓여 있었다. 물 항아리는 세 개였다.

카일은 첫 번째 항아리의 마개를 들었다.

물 표면에 검은 실 하나가 떠 있었다. 실은 곧게 뻗지 않고 둥글게 휘어 작은 원을 만들고 있었다. 원 한쪽에는 갱도 봉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가느다란 틈이 있었다.

―열지 마라.

파멸의 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웃지 않았다.

‘네가 먹으면 되잖아.’

―이것은 물이 아니다. 길이다.

카일은 마개를 다시 닫았다.

“이 항아리는 쓰지 않겠습니다.”

에단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유를 설명해.”

“성수는 어둠을 빼내는 물입니다. 이 안의 것은 어둠이 아니라 어둠이 들어온 흔적입니다.”

카일은 자신이 너무 많이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단의 시선이 항아리 안쪽으로 향했다.

“네가 그런 것을 어떻게 구분하지?”

“수십 번 물을 끓이면 색과 냄새가 달라집니다. 제조자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에단은 직접 황금빛을 손끝에 모았다. 빛이 항아리 표면을 스치자 검은 원이 잠깐 조여 들었다. 물은 흔들렸지만 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서기관의 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염 의심 항아리 하나. 제조 시험에서 제외. 별도 봉인.”

에단은 호위병에게 항아리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병사가 마개를 밀랍으로 덮는 순간 검은 금이 항아리 안쪽에서 한 번 더 번졌다.

카일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막사의 봉인은 멀쩡했다. 누군가 문을 열지 않고도 물에 손을 넣었거나 물 자체가 이미 어딘가에서 오염된 것이다.

“허가서는 그대로입니다.”

에단이 말했다.

“다른 두 항아리와 재료만 사용한다. 내일 새벽 열두 잔을 만들고 첫 잔은 내가 고른 환자에게 투약한다.”

“오늘 밤부터 물을 지키는 사람을 두 명 더 세우십시오.” 카일이 말했다. “한 명은 문을 보고 다른 한 명은 재료를 봐야 합니다.”

“명령하려는 건가?”

“기적을 검증하려면 누가 무엇을 만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에단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호위병에게 추가 경계를 지시했다.

―이미 냄새를 맡은 자들이 있다.

악신의 속삭임이 카일의 귓속을 긁었다.

카일은 봉인된 항아리를 바라보았다. 신전의 사냥개를 겨우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고 생각했는데도 누군가는 그 테이블 아래에서 먼저 칼을 갈고 있었다.

내일은 성수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이 물에 길을 낸 자가 누구인지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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