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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현장 청소팀장이 마지막 흔적을 본다1화

범죄 현장 청소팀장이 마지막 흔적을 본다

범죄 현장 청소팀장이 마지막 흔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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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도장을 찍지 않은 방

유태식은 작업복 지퍼를 올린 채 현장 인계서의 빈 서명란을 바라봤다.

아파트 현관 앞에는 경찰 테이프가 아직 붙어 있었다. 최도현 경위는 강력사건 현장을 확인한 뒤 청소팀을 불렀다고 했다. 방 안은 수사기관의 감식이 끝났고, 유족은 집을 비우기 전에 오염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인계서에는 경찰 서명도, 가족 동의도 없었다.

“현장 정리는 다 끝났습니다. 오늘 안에 바닥을 처리하면 됩니다.”

도현이 서류를 내밀었다. 태식은 받지 않고 서명란을 가리켰다. “구역과 제외 물품을 확인한 뒤에 인계받겠습니다. 이쪽 서명이 먼저 필요해요.”

“시간이 없습니다. 유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분들이 기다리는 것과, 제가 작업 범위를 모르는 건 별개입니다.”

팀원 정라희는 현관 밖에 공구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입 박성민은 보호복을 입은 채 계단 쪽을 바라봤다. 다른 층 주민들이 문을 열고 복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라희는 먼저 그들에게 현장을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청소 장비가 통로를 막지 않도록 동선을 확보했다.

“팀장님, 유족이 도착했습니다.” 성민이 말했다.

복도 끝에서 고은주가 다가왔다. 피해자의 누나인 그녀는 손에 병원 봉투와 작은 우산을 들고 있었다. “집을 비워야 하는데, 오늘 청소 못 하면 갈 데가 없어요.”

태식은 그 말을 듣고 인계서를 다시 봤다. 작업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허가되지 않은 물건까지 치우면, 유족이 지키고 싶은 기억을 없앨 수 있었다. 그는 은주에게 먼저 작업 범위와 소요 시간을 설명하고, 집 안에 남겨 둘 물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동생 물건은 거의 다 정리했어요. 침대 옆 서랍만 열지 말아 주세요. 안에 편지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서랍을 작업 제외 구역으로 표시할게요.”

“그런데 경찰은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했어요.”

도현은 “수사에 필요한 물건은 이미 수거했다”고 했다. 태식은 경찰 인계서의 첨부 목록을 요청했다. 은주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저는 동생이 숨긴 편지를 누가 읽는 게 싫어요. 그런데 방 전체는 깨끗하게 하고 싶어요.”

그녀는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하고 있었다. 작업을 빨리 끝내고 싶지만, 동생의 사적인 물건은 지키고 싶었다. 태식은 그 모순을 풀어 주려 하지 않았다. 경찰의 인계 목록과 유족의 제외 물품을 별도 기록으로 남기고, 작업 범위를 다시 정하자고 했다.

도현은 담당 감식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장 안에 남아 있는 증거 가능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길어지는 동안 성민은 보호복의 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끼었다. 그는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는 일이 답답해 보였다.

“팀장님, 감식 끝났으면 청소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감식이 끝난 것과 모든 물건이 인계된 건 달라.”

“그럼 유족이 서명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가족이 마음대로 치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작업자가 확인해야 할 경계가 있어.”

성민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빠른 복구가 가족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태식은 그 생각을 비난하지 않았다. 청소팀은 일이 늦어질수록 인건비와 장비 대여료를 더 쓰고, 유족은 더 오래 기다렸다. 그렇다고 서둘러 물건을 치우면 되돌릴 수 없었다.

도현은 경찰 서명과 인계 목록을 가져왔다. 현장 구역은 거실과 복도, 침실 입구까지였다. 침대 옆 서랍과 창고는 제외되어 있었다. 다만 작은 방 하나는 목록에 없었다. 도현은 그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고, 은주는 거기에 동생의 옷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방 안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태식이 물었다.

“감식은 안 했습니다. 출입하지 않았어요.”

“그럼 청소 범위에 넣으면 안 됩니다.”

도현은 경찰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작은 방은 현장 통제선 안쪽에 있었지만,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그는 담당 감식관에게 추가 확인을 요청했다. 은주는 “그 방은 동생이 잠을 잤던 곳인데, 왜 아무도 안 봤죠?”라고 했다.

“현장 범위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도현이 답했다.

태식은 작업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렸다. 라희는 복도에서 이웃들이 지켜보지 않도록 임시 가림막을 세웠다. 성민은 창고에서 추가 보호포를 가져오고, 이동 가능한 물건과 폐기 대상을 구분할 상자를 준비했다.

은주는 우산을 접었다. “동생이 마지막에 저한테 전화했는데, 제가 받지 않았어요. 회의 중이라서요. 나중에 다시 걸면 될 줄 알았어요.”

태식은 위로를 서두르지 않았다. “그때 통화 내용이 작업에 필요한지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이 방을 치우고 나면, 정말 끝나는 건가요?”

“청소는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뒤에 남는 일까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은주는 우산 손잡이를 쥐었다. 그녀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 기록을 아직 지우지 못했다고 했다. 태식은 그것이 청소 대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서명란을 다시 읽었다.

감식관이 도착해 작은 방을 확인했다. 경찰은 방을 수색하지 않았고, 침대 주변에도 증거 표시가 없었다. 하지만 옷장 아래에 낡은 종이 봉투가 하나 보였다. 감식관은 사진을 찍고, 봉투를 증거물로 수거할지 유족에게 물었다. 은주는 “그건 동생이 제게 준 거예요. 제가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나요”라고 말했다.

봉투는 외부에 이름이 없었고, 겉면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감식관은 수사 관련 가능성을 확인한 뒤 보류 물품으로 표시했다. 은주는 내용을 열어 보지 않기로 했다. 태식은 봉투를 청소팀 구역에서 제외하고, 경찰 인계 번호를 확인할 때까지 봉인 보관하도록 했다.

“이제 청소를 시작해도 될까요?” 도현이 물었다.

태식은 인계서에 구역을 하나씩 표시했다. “제외 물품과 작은 방이 확인됐습니다. 유족의 작업 동의도 받았습니다. 이 구역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서명했다. 팀원들은 보호복을 점검하고, 이동 경로에 흡수포를 깔았다. 라희가 안전 체크를 읽었고 성민이 장비 번호를 확인했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물건을 옮기기 전에 태그를 붙이고, 유족이 보관할 것과 폐기할 것을 다시 확인했다.

작업을 시작하려던 순간, 청소 업체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안에 현장을 비우지 못하면 다음 예약을 놓쳐 장비 대여료를 더 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태식은 “인계 범위가 확인되지 않은 방은 제외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담당자는 작업 시간만큼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라희는 태식의 옆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성민은 청소차에 실린 장비를 다시 세었다. 그가 한숨을 쉬자 태식은 통화를 스피커로 바꾸지 않고 사무실과 직접 대화했다. “사고 현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물건을 치우고 나중에 원상 복구할 수 없습니다. 작업은 승인된 구역부터 진행하고, 추가 구역은 별도 일정으로 잡겠습니다.”

전화가 끝난 뒤 그는 팀원들에게 선택을 물었다. 오늘 작업을 마치지 못하면 야간까지 남을 수 있었고, 그만큼 수당과 피로가 늘어날 터였다. 라희는 안전 점검을 다시 하고 계획대로 하겠다고 했다. 성민은 처음엔 난처해하다가 “그럼 제가 제외 구역의 태그를 별도로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은주는 그 통화를 듣고 “저 때문에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작업 범위를 지키는 건 저희 일입니다. 비용 문제는 회사와 조정할게요.”

태식은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도 다음 주 정산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 걱정을 은주에게 얹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작업 시간을 정확히 적고, 현장 인계가 늦어진 이유를 회사 기록에 남겼다. 늦어진 시간은 누군가의 실수로 덮지 않고, 필요한 확인으로 기록됐다. 사무실은 작업 지연을 문제 삼았지만, 태식은 인계서 사본과 함께 답변을 보냈다.

침실 문 앞에서 은주가 태식을 불렀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은 청소해도 되지만, 액자는 제가 가져갈게요.”

“그럼 작업 시작 전에 직접 꺼내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지정한 상자에 넣고 확인받을까요?”

은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직접 가져가겠다고 했다. 라희는 그녀가 작업 구역에 들어오지 않도록 안전선 밖에 가방을 놓아 주었다. 은주는 액자를 천으로 감싸 안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지만, 액자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태식은 그날 청소의 범위와 제외 구역을 다시 읽었다. 서명된 인계서에 작은 방이 명시됐고, 보류 봉투에는 경찰이 붙인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작업은 시작됐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성민은 제외 구역을 다시 확인한 뒤 작업대를 문밖으로 옮겼다. “제가 먼저 보고했다고 해서 치우지 않겠습니다.” 그는 장갑을 새것으로 바꿔 끼웠다.

“그래. 먼저 본 사람은 멈출 수 있어야 해.” 태식은 기록지에 그의 확인 시각을 적었다.

오후가 되자 감식관이 봉투를 가져가며 현장 사진과 인계 번호를 대조했다. 그는 방을 나서다 침대 아래를 보고 멈췄다. “여기에도 물건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태식은 청소 도구를 내려놓았다. 침대 아래에서 나온 것은 작은 나무 열쇠고리였다. 경찰 목록에도, 유족의 제외 물품에도 없었다. 표면의 먼지는 깨끗하게 닦여 있었고, 고리 안쪽에는 방금 전 청소팀 장갑과 다른 종류의 섬유가 끼어 있었다.

태식은 열쇠고리가 놓인 위치를 사진의 눈금과 대조했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 촬영한 기록에는 그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감식이 끝난 뒤 방에 들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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