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6화: 금단 무사의 생수
편의점으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오전 여덟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서연주는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카운터 밖으로 나왔다. 이채원은 헬멧을 벗기도 전에 PDA부터 꺼냈다.
“언니. 3구역 빈 빌라 지하에서 사람을 발견했어요. 기억을 잃은 것처럼 보였고요.”
채원은 촬영한 라벨 사진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는 ‘성북 3구역 빈집 14호’와 ‘나래25 성북점’이 회수처와 수령지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다.
“구급대가 데려갔어?”
“네. 경찰에도 설명했습니다.”
연주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물류는 본사에 넘기고 너희 둘은 쉬어.”
“그럴 수가 없어요.”
채원이 PDA를 넘겼다.
“오늘 밤 23시 40분에 품목명 없는 반품이 이 점포로 들어와요. 원래 경로에도 없던 배송이고 수정자 이름도 비어 있어요.”
연주는 화면을 확대했다. 수동 등록 번호 아래에 수령 시각과 회수처만 남아 있었다. 발신지와 품목명은 공란이었다.
“품목명이 없는데 반품 접수가 돼?”
“누군가 수동으로 등록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번호는 제가 대조할 수 없어요. 배송 기사에게도 발신지는 보이지 않을 거예요.”
무진은 라벨 사진 한쪽의 검은 점을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먼지처럼 보였지만 상자 안쪽에 흑철광 분진이 묻어 있다는 감각은 선명했다.
연주는 작은 기록지를 꺼냈다.
“오늘 밤 받을 거면 규칙부터 정하자. 상자는 혼자 열지 않아. 운송장과 기사 얼굴을 같이 찍고 이상하면 바로 신고해.”
“점주님이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셋이 같이 움직이자는 거야. 내가 받고 채원 씨는 배송 기록을 남겨. 무진 씨는 옆에서 보고.”
무진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강호에서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가장 먼저 칼을 뽑았다. 연주는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주는 카운터 아래 수납함에서 생수 두 병을 꺼내 출입문 가까운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건 손 닿는 데 둬. 어지러운 사람이 들어오면 물부터 찾는 경우가 많아. 물을 마셔도 안 나아지면 119고.”
“생수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람이 숨을 못 쉬면 비급보다 물과 공기가 먼저야.”
무진은 그 말을 메모지 귀퉁이에 적었다.
그날 밤 채원은 근무가 끝난 뒤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데 오늘은 확인하고 가야겠어요.”
그녀는 PDA를 충전기에 연결했다. 배송 경로 화면에는 수십 개의 주소가 떠 있었지만 공란 반품의 줄만 검은 선으로 지워진 듯했다.
“수령 시각은 있는데 배차 기사 이름이 없어요. 자동 배차도 아니고요.”
연주는 카운터 위에 휴대폰을 세워 CCTV 화면과 출입문을 함께 담게 했다.
“상자가 오면 외관부터 확인해. 무진 씨가 이상하다고 해도 먼저 기록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싸우지 마. 유리문 또 깨지면 네 월급에서 뺄 거야.”
“유리문은 지키겠습니다.”
“사람도.”
23시 36분. 골목 끝에서 작은 냉동 탑차의 불빛이 나타났다.
방풍 재킷을 입은 기사가 검은 보냉 가방을 들고 내렸다. 가방에는 바코드가 없었고 겉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래25 성북점 맞습니까? 무기명 반품입니다.”
기사가 내민 운송장에는 품목명이 비어 있었고 수령인은 서연주로 적혀 있었다.
연주는 운송장과 기사의 얼굴을 차례로 촬영했다.
“접수한 사람과 발신지가 안 나와 있네요.”
“단말에도 회수 완료 후 점포 전달이라고만 뜹니다.”
채원이 PDA에 운송장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럼 반품을 들고 돌아가야 합니까?”
“확인 전에는 두고 갈 수 없습니다.”
기사는 난처하게 휴대폰을 들었다. 통화가 끝난 순간 보냉 가방 안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무진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가방은 카운터 안쪽에 두십시오. 연락처를 남기고 잠시 기다리십시오.”
연주가 단호하게 말하자 기사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검은 알갱이 두 개가 떨어졌다.
그때 자동문이 열렸다.
검은 우비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빗물을 털지도 않고 두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과 마른 입술이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그의 시선은 보냉 가방에 박혔다.
“돌려줘.”
연주가 한 발 물러섰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는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심하게 떨렸다. 한 걸음 더 내딛던 몸이 갑자기 앞으로 접혔다.
“숨이…….”
그는 카운터 모서리를 붙잡았다. 어깨가 빠르게 오르내렸고 숨이 목에서 걸렸다.
“채원 씨. 출입문을 열어 두십시오. 연주 씨는 119에 신고할 준비를 하십시오.”
“아까 그 우비 남자 맞죠?”
“맞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가루가 필요해. 그 안에 있어.”
그가 가방을 움켜쥐려 하자 무진은 손목을 꺾지 않고 손등만 밀어 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휘둘렀지만 힘이 끊겨 허공을 갈랐다.
“공격하지 마십시오.”
“놔! 이걸 못 받으면…….”
남자의 무릎이 꺾였다. 무진은 그를 바닥에 눕히지 않고 카운터 옆 벽에 기대게 했다.
연주가 생수병을 집었다.
“물을 먹여도 돼?”
“조금씩 주십시오.”
무진은 병뚜껑을 열어 남자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한 모금만 드십시오. 급하게 삼키지 마십시오.”
남자는 떨리는 입술을 병에 댔다.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숨이 잠시 멎었다.
“더…….”
“셋에 들이쉬고 다섯에 내쉬십시오. 제가 세겠습니다.”
무진은 남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내쉬십시오. 하나, 둘, 셋, 넷, 다섯.”
남자는 첫 호흡에서 숨을 끊었다. 두 번째에는 다섯까지 버텼다. 세 번째 호흡에서 어깨의 떨림이 조금 줄었다.
연주는 신고 화면을 띄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119 연결할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무진은 남자의 눈을 보았다. 그 안에는 가게를 공격하러 온 사람의 기세보다 무언가를 잃고 굶주린 사람의 절박함이 더 컸다.
“이 가루를 얼마나 끊었습니까.”
“반나절…… 어제부터.”
“가루를 먹으면 호흡이 돌아옵니까.”
“비어 있던 게 덮여. 손이 멈추고 숨이 붙어.”
“그게 약입니까.”
“약이면 이렇게 무섭지 않지.”
남자는 가방을 노려보았다.
“저 안에 있는 걸 돌려줘야 해. 그래야 다음 것을 받을 수 있어.”
“무엇을 돌려줍니까.”
“사람들.”
연주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을 어떻게 반품해요?”
남자는 냉장고 쪽을 바라보았다.
“비어 버리면 사람은 가벼워져. 이름도 집도…… 전부 내려놓으니까.”
그의 호흡이 다시 흐트러졌다. 무진은 생수병을 손에 밀어 넣었다.
“저를 보십시오. 가방을 보지 마십시오.”
“나는 돌아가야 해.”
“어디로 갑니까.”
“문이 있는 곳으로.”
무진의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그는 인장을 숨기려고 주먹을 쥐었다.
“당신이 멈추면 누가 옵니까.”
“그들이 나를 회수해.”
남자는 생수병을 움켜쥔 채 무진을 보았다. 호흡은 조금 안정됐지만 손끝의 떨림은 남아 있었다.
“무진 씨. 가방을 확인해야 해요.”
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진은 남자에게 먼저 물었다.
“열어도 되겠습니까.”
남자는 눈을 감았다.
“열면 가루가 나와. 그걸 보면 다시 가져가야 해.”
연주는 장갑을 끼고 가방 외부와 봉인 테이프를 촬영했다.
“여기서 다치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확인해야 해.”
테이프를 자르자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안에는 빈 약병과 작은 금속 표찰 그리고 지워진 배송 전표가 들어 있었다. 약병 안쪽에는 검은 가루가 얇게 붙어 있었다.
금속 표찰에는 선 두 개가 교차한 낡은 무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남자의 소매가 밀려 올라가자 같은 문양이 손목 안쪽에 드러났다.
무진은 그 문양을 강호의 변방에서 문서를 나르던 하급 무사들의 표식과 닮았다고만 판단했다. 어느 문파인지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이 표찰은 어디서 났습니까.”
“내가 달고 있었어. 그들이 떼어 갔다가 돌려주는 물건이지.”
“그들이 누구입니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돈을 주고 이름을 가져가는 사람들.”
채원이 숨을 삼켰다.
“이름을 가져간다고요?”
“내가 얼마나 옮겼는지 묻지 마. 다 기억나면 숨이 막혀.”
남자는 표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진은 손바닥으로 표찰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 막았다.
“당신은 사람들을 어디로 옮겼습니까.”
“3구역. 빈집과 지하 창고. 가끔 이 가게로 돌아오는 물건도 있었어.”
“그 노인들도 당신이 옮겼습니까.”
남자의 입술이 굳었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어. 시키는 대로 들고 온 것뿐이야.”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연주가 119와 경찰에 연락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안 돼.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알면…….”
무진은 그를 억지로 붙잡지 않고 출입문과 남자 사이에 섰다.
“신고는 당신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도 결국 나를 넘길 거잖아.”
“당신이 한 일은 기록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쓰러지게 두지는 않겠습니다.”
남자의 눈에 잠깐 오래된 무사의 자존심이 떠올랐다.
“천마…….”
무진의 인장이 뜨거워졌다.
“그 이름은 부르지 마십시오.”
남자는 카운터 옆 진열대를 밀쳤다. 컵라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진이 손을 뻗으면 모두 잡을 수 있었지만 그는 남자의 생수병부터 받쳤다.
그 짧은 틈에 남자는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무진 씨!”
무진은 발을 내디뎠다가 멈췄다. 남자는 무기를 들지 않았고 점포 안에는 연주와 배송 기사가 남아 있었다.
자동문이 닫힌 뒤 연주가 바닥의 컵라면을 주웠다.
“왜 안 쫓아갔어?”
“지금은 기록이 남는 편이 중요합니다.”
“이번에는 나 때문에 멈춘 거야?”
“점주님과 배송 기사님을 두고 갈 수 없었습니다.”
연주는 더 묻지 않고 CCTV 화면을 저장했다. 남자의 얼굴과 생수병 그리고 가방을 여는 장면이 모두 남아 있었다.
채원이 젖은 전표를 뒤집었다.
“전표 뒷면에 글자가 있어요.”
검은 가루가 묻은 종이 위로 지워진 문장이 드러났다.
회수 완료 후 빈칸 유지.
그 아래에는 찢긴 글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기억…….
무진의 장부 인장이 금속 표찰에 닿은 순간 낮게 울렸다. 연주와 채원은 젖은 전표만 보고 있었다.
무진은 표찰을 투명 봉투에 넣고 기록지에 적었다.
금단 증세를 보인 남자. 생수 섭취 후 호흡 안정. 도주. 낡은 무사 문양 확인.
연주가 바닥의 물방울을 닦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물부터 건네고 경찰도 같이 부르자.”
“예.”
“네가 오늘 사람을 살린 건 알겠어. 하지만 물건을 부수고 도망간 사람을 그냥 두는 건 해결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무진은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생수병을 쥔 채 사라졌다. 그의 걸음은 처음보다 불안정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가방 안쪽의 검은 가루가 천천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지워진 전표의 마지막 글자가 물기에 젖어 조금 더 드러났다.
회수 완료 후 빈칸 유지.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