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7화: 빈칸의 담보
가게 밖에서 멀어지던 발소리가 사이렌에 묻혔다.
서연주는 젖은 전표 위에 투명 파일을 덮었다. 강무진은 출입문 쪽에 서서 골목을 보았다. 검은 우비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쥐고 나간 생수병만 떠올랐다.
“무진 씨. 입구 비워.”
무진은 쏟아진 컵라면을 출입문에서 발로 밀어 냈다. 누군가 급히 들어와 밟을 수 있었다. 배송 기사는 가방을 들고 온 손을 허공에 둔 채 서 있었다.
경찰 둘과 구급대원이 차례로 들어왔다. 연주는 신고한 시각과 남자가 도망친 방향을 먼저 말했다. 구급대원은 환자가 없는 매장을 둘러본 뒤 남자의 얼굴과 증세를 물었다.
“이름은요?”
연주가 무진을 보았다. 무진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천마라고 부른 남자는 정작 자기 이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첩에는 ‘성명 불상’이라는 네 글자가 적혔다.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숨이 가빠졌고 손이 계속 떨렸어요.”
“의식이 흐려졌습니까?”
“질문은 알아들었습니다. 물은 스스로 마셨어요.”
연주는 자신이 본 것만 골라 답했다. 무진은 생수를 건넨 경위와 남자가 다시 일어나 달아난 순간을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발견 즉시 다시 신고해 달라고 남겼다.
“물 마셨다고 나아진 건 아닙니다. 다시 쓰러질 수 있어요.”
구급대원이 그 말을 남긴 뒤 밖으로 나갔다. 무진은 남자가 달아날 때 비틀거렸던 오른발을 떠올렸다. 몸을 숨겼다 해도 오래 버티기는 어려워 보였다.
경찰은 바닥에 떨어진 컵라면과 물방울을 찍었다. 채원은 기사 단말기의 수동 배송 화면을 보여 주었다.
“송장 번호를 조회하면 없다고 나옵니다. 그래도 이 점포로 배차가 내려와서 기사님이 가방을 가져오셨어요.”
배송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단말기엔 수령인 이름만 있었습니다. 발신지는 없었고요.”
연주는 봉인 테이프를 자르기 전 찍어 둔 사진과 CCTV 저장 화면을 내밀었다. 경찰이 왜 가방을 열었는지 묻자 그녀는 남자가 가방 속 가루를 달라며 호흡이 무너졌다고 답했다.
경찰은 영상에서 남자의 손이 가방으로 향하는 순간을 멈췄다. 무진의 손은 남자의 손등을 밀어 냈을 뿐이었다. 연주는 앞선 장면으로 화면을 돌려 가방을 열기 전에 외부를 촬영한 시각까지 짚었다.
“위험한 물건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손댄 순서도 전부 영상에 남아 있어요.”
무진은 표찰이 든 투명 봉투를 가리켰다.
“남자가 저것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경찰이 봉투를 뒤집었다. 표찰 한쪽에는 선 두 개가 비스듬히 교차한 문양이 있었다. 뒷면에는 작은 홈이 있었고 홈 안의 금속만 유난히 희었다. 글자가 들어갈 자리를 문질러 지운 것처럼 보였다.
“이름이 있었던 자리입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원래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무진은 단정을 피했다. 경찰은 표찰과 빈 약병 그리고 지워진 전표를 각각 봉투에 넣었다. 연주는 인계한 시각을 수첩에 적었다. 채원은 그 수첩을 휴대폰으로 찍어 기사에게도 보여 주었다.
“영상 원본은 지우지 마세요. 사본도 따로 보관하시고요.”
경찰의 말에 연주는 매장 녹화 장치의 저장 목록을 열었다. 파일 이름을 신고 시각으로 고쳐 사본을 만들었다. 무진은 그동안 카운터에 서서 새 손님이 증거를 건드리지 않도록 안내했다.
카운터 위에서 물건이 하나씩 사라졌다. 무진은 쫓아갔다면 남자를 붙잡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연주와 기사에게 남겨진 가방을 누가 지켰을까. 그는 수첩에 적히는 시각을 보았다.
경찰차가 골목을 빠져나간 뒤 배송 기사의 단말기에서 짧은 알림음이 났다.
“이상한데요.”
기사는 화면을 연주에게 돌렸다. 나래25 성북점. 품목명 공란. 회수 대기. 회수지 담당자 칸에 다시 서연주의 이름이 있었다. 가져갈 곳은 비어 있었다.
“같은 가방입니까?” 무진이 물었다.
“코드는 새로 떴는데 주소와 신고 무게가 같습니다. 같은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새로 넣었나 봅니다.”
채원은 자신의 PDA와 기사의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오전에 확인한 반품 줄은 아직도 조회되지 않았다. 새 화면 역시 추적 가능한 운송장 번호가 비어 있었다. 대신 기사 단말기에만 내려온 배차 시각이 남아 있었다. 경찰차가 떠나기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물건은 경찰이 가져갔는데 회수하래요. 이걸 미인수로 남기면 기사님한테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어요.”
기사는 땀이 밴 손으로 헬멧 끈을 만졌다.
“가게에서 회수품을 내줬다고 확인만 해 주시면 제 배차는 끝납니다.”
연주는 카운터 아래에서 인계 시각을 적은 수첩을 꺼냈다.
“내주지도 않은 물건을 내줬다고 쓸 순 없어요. 경찰에 넘긴 사실과 시간은 적어 드릴게요.”
“본사에는 그걸로 안 될 수 있습니다.”
무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신의 이름으로 확인란을 채우면 기사의 문제는 끝날지도 몰랐다. 연주가 먼저 그의 소매를 잡았다.
“무진 씨. 여기선 이름 하나 잘못 쓰면 사람이 물건이 돼.”
기사는 무진을 힐끗 보았다. 무진은 펜을 내려놓았다.
채원이 기사에게 말했다.
“제가 이상 배차로 접수할게요. 기사님 화면하고 제 조회 오류를 같이 올리면 됩니다.”
“채원 씨 이름도 남잖아요.”
“그게 낫죠.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르는 물건이 제 경로에 계속 뜨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어요.”
채원은 화면에 뜬 시각과 공란을 촬영했다. 이어 배송 계정으로 오류 접수를 열어 ‘현장 경찰 인계. 물품 없음. 재회수 지시 확인 요청’이라고 썼다. 기사는 자신의 단말기에 미회수 사유를 같은 내용으로 남겼다.
접수 화면은 마지막에 기사 본인의 확인을 요구했다. 채원은 그가 망설이는 동안 자신이 촬영한 경찰 인계 시각을 다시 내밀었다.
“제 계정에도 남아요. 나중에 누가 틀렸다고 하면 같이 설명해요.”
기사는 화면을 눌렀다. 확인 표시가 떠도 공란의 발신자는 채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연락이 오면 이 번호로 이야기해요.”
채원은 접수 번호를 기사에게 읽어 주었다. 기사는 겨우 헬멧 끈을 잠갔다.
자동문이 닫히자 연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건이 없어졌는데도 다시 찾으러 온다는 거네.”
“아직은 누가 지시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진의 대답에 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름하고 시간부터 남기는 거지.”
채원이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의 검은 알갱이는 경찰이 채취한 자리를 빼고도 그릴 아래에 조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가루가 번진 범위를 사진으로 찍었다.
“이건 청소해도 돼요?”
“위치만 남기고 닦자. 손님 들어오면 밟겠어.”
연주는 청소 도구를 가져왔다. 무진은 그릴을 뜯으려다 손을 멈췄다. 냉장고를 분해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밤의 답이 아니었다.
그는 카운터의 휴대폰 화면을 열었다. 표찰 사진에 찍힌 두 교차선 아래로 하얗게 닳은 네모가 보였다. 검은 가루가 낀 홈 안에서 그 부분만 깨끗했다. 긁힌 자국인지 오래 매만져 생긴 마모인지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강호의 하급 무사들은 물건을 나를 때 패에 이름을 새기곤 했다. 잃어버리면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 추궁받았다. 이 표찰에도 이름이 있었다면 왜 지웠을까.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돌아왔다.
‘돈을 주고 이름을 가져가는 사람들.’
‘저 안에 있는 걸 돌려줘야 해. 그래야 다음 것을 받을 수 있어.’
그는 가루를 받기 위해 무엇을 내놓았을까. 패에 적힌 글자를 지워도 사람 머릿속의 이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순히 신분을 숨기려 한 것이라면 남자는 왜 ‘이름을 가져간다’고 말했을까.
남자는 빈 사람이 이름과 집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3구역에서 발견한 노인도 자기 집을 잊었다. 가방 전표에는 ‘기억’이라는 글자가 남았다. 가루를 끊자 몸이 비고 숨이 조인다는 말까지 있었다.
무진은 표찰 사진과 전표 사진을 번갈아 넘겼다. 금속과 종이는 가게에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건넸는지 적는 도구였다. 그런데 이 거래에는 물건 이름도 사람 이름도 없었다. 남자를 다시 일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쥐고 있어야 할까.
무진은 수기 장부를 펼쳐 두 줄을 썼다.
확인: 표찰 뒷면 마모. 전표에 ‘기억’ 일부. 남자, 검은 옷이 이름을 가져간다고 진술.
추정: 검은 옷의 사람들이 기억을 담보로 일을 시켰을 가능성.
무진의 머릿속에 오래된 이름이 떠올랐다. 흑야회. 그들의 손이 이 골목까지 뻗었다면 남자의 기억도 그들이 붙든 담보일지 몰랐다. 그러나 검은 옷과 닳은 표찰만으로는 누구의 짓인지 증명할 수 없었다.
글을 다 쓰고 무진은 손바닥을 폈다. 인장은 더는 뜨겁지 않았다. 남자의 이름도 약속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사라질 줄이 없었다.
채원이 장부를 힐끗 보았다.
“기억을 담보로요? 무슨 뜻이에요?”
“남자가 자기 이름을 잊은 듯했습니다. 가루를 받으려면 무엇인가 돌려줘야 한다고 했고요.”
“약 때문에 기억이 흐려진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확인하려면 그 사람부터 찾아야겠네요. 이 상태로 또 배송에 끌려 나가면 큰일이고요.”
채원은 경찰에게 받은 연락처를 자신의 휴대폰에도 저장했다. 길에서 우비 남자를 다시 보면 혼자 붙들지 않고 위치와 상태를 알리기로 했다.
연주는 걸레를 빨아 쥐며 말했다.
“신고서에는 우리가 본 것만 적자. 네 추측은 따로 두고.”
“예.”
무진은 추정 줄 아래에 밑줄을 그었다. 남자가 한 일은 사람을 실어 나른 것이었다. 그가 기억을 잃었다 해도 그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잃어 가며 움직이는지 알아야 다시 사람을 데려갈 때 막을 수 있었다.
새벽 한 시를 넘기자 매장에는 냉장고 소리와 POS의 짧은 알림만 남았다.
연주는 도시락 폐기 시간을 확인하고 보관함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하진이 오면 이것만 주자. 매장 쪽은 아직 어수선해.”
채원이 카운터의 사진들을 한 폴더에 모았다. 운송장, 경찰 인계 시각, 표찰의 앞뒷면. 무진은 휴대폰을 잠그려다 연주의 수첩 옆에 남겨 둔 표찰 사진을 보았다. 선 두 개가 교차한 낡은 문양이 화면을 거의 채웠다.
“저 화면은 접어 둬. 하진이는 호기심 생기면 끝까지 물어.”
연주가 당부했다. 무진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경찰에게 건넨 물건이라도 사진은 가게에 남았다. 그 사진 한 장이 누구의 눈에 들어갈지까지 생각해야 했다.
자동문이 열렸다.
“누나, 나 왔어. 도시락 아직 안 나갔지?”
유하진이 가방 끈을 고쳐 잡으며 들어왔다. 연주가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거 챙기고 바로 가. 밤길 조심하고.”
“예예. 손님 취급 너무하네.”
하진은 봉투를 받으러 다가왔다. 냉장고 앞에 붙은 출입 금지 메모를 보더니 카운터로 눈을 돌렸다. 채원이 정리하던 사진 목록 맨 위에 낡은 문양이 열려 있었다. 두 선이 교차한 자리가 하진의 시선에 걸렸다.
“어? 저거 뭐야?”
무진은 채원의 화면이 켜져 있는 걸 그제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