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5화: 검은 우비의 배송지
오토바이 엔진이 멈추자 이채원이 헬멧을 벗었다.
“무진 씨, 아직 안 가셨어요?”
“방금 나가려던 참입니다.”
“그럼 이것 좀 봐요.”
채원은 냉장고 쇼케이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는 검은 모래가 가느다란 선을 그리고 있었다. 냉장고 하단에서 시작한 선은 물류 밀차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출입문까지 이어졌다.
“제가 상자를 세워 놓고 나간 다음에는 아무도 이쪽에 안 왔어요. 밀차를 빼니까 바퀴 안쪽에 이게 찍혀 있더라고요.”
무진은 손끝으로 알갱이 하나를 눌렀다. 차가운 쇠 냄새가 났다.
연주가 카운터 너머에서 다가왔다.
“공사장 먼지 아니야?”
“그런 먼지는 한 줄로 따라오지 않아요. 그리고 3구역에서 본 우비 남자 발자국이랑 비슷해요.”
채원은 PDA를 펼쳤다.
“오늘 배송지 하나가 바뀌었어요. 원래 빈 빌라 302호였는데 지하 창고로 수정됐고 수정한 사람 이름은 안 남았어요.”
“연주 씨.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무진 씨는 퇴근해. 오늘 밤 또 근무잖아.”
“채원 씨를 혼자 보내는 편이 더 위험합니다.”
연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공사장 안쪽까지 들어가지는 마. 이상하면 바로 112에 신고하고.”
연주는 말하면서도 카운터 옆의 메모지를 찢어 채원의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무진은 그 모습을 보았다. 연주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손가락 끝이 종이를 두 번이나 접었다.
“점주님도 현장 사진을 보관하십시오.”
“내가 왜?”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필요한 기록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면 애초에 따라가지 말고.”
무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강호에서 부하들에게 출정을 명할 때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돌아오라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 들렸고 부탁에는 책임이 따라왔다.
“돌아오겠습니다.”
연주의 눈썹이 아주 조금 풀렸다.
“그 말은 지켜.”
채원이 여분 헬멧을 무진에게 내밀었다.
“뒤에 타세요. 이 동네는 걸어서 쫓으면 길을 세 번 놓쳐요.”
무진은 헬멧을 받아 썼다. 오토바이는 비에 젖은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채원은 큰길 대신 주택가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세탁소와 식당 사이를 지나자 철거를 앞둔 다세대주택들이 나타났다.
“저 우비 남자는 차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안에서 움직인 흔적은 계속 남았어요.”
“걸음이 빨랐습니까.”
“진흙길인데도 거의 미끄러지지 않았어요.”
무진은 사이드미러를 보았다. 오토바이 뒤쪽 골목에 검은 점이 움직였다.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였다.
“다음 골목에서 멈추지 말고 한 바퀴 돌아 앞을 막으십시오.”
“앞을 막는다고요?”
“길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채원은 망설이지 않고 핸들을 꺾었다. 오토바이가 펜스 뒤편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비 인물은 폐기물 더미 사이로 뛰었다.
채원이 반대편 골목으로 빠져나와 앞을 막았다.
“거기 서요!”
우비 인물이 주머니에서 검은 가루를 뿌렸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훑었다. 채원이 눈을 감고 물러나는 순간 무진이 소매로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 가루의 흐름을 꺾었다. 깊은 내공은 쓰지 않았다. 손끝이 저리고 심장이 한 번 무겁게 뛰었다.
우비 인물은 계단 아래의 철문으로 몸을 던졌다.
“무진 씨, 괜찮아요?”
“뒤로 물러나십시오.”
철문 안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려보내야 해…… 아직 덜 비었어……”
채원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이 있어요.”
무진은 문을 부수려던 손을 거두었다. 주변에는 낡은 건물과 주민들이 있었다. 힘으로 열면 안쪽 사람까지 다칠 수 있었다.
그는 계단 밑에 굴러다니던 철사를 집어 잠금쇠 틈에 넣었다. 쇠가 휘는 소리를 억누르며 걸쇠를 밀자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검은 모래가 쏟아졌다.
지하 창고에는 배송 상자 세 개와 노인 한 명이 있었다.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노인은 벽에 기대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원이 무릎을 굽혔다.
“어르신, 어디가 아프세요?”
“집에 가야 하는데…… 우리 집이 어디였지?”
무진은 노인의 맥을 확인했다. 느렸지만 일정했다. 머리 뒤쪽에는 차가운 기운이 엉겨 있었다.
“기억이 흐려진 상태입니다. 119에 연락하십시오.”
채원은 곧바로 신고했다. 무진은 상자 하나의 테이프를 풀었다. 안에는 낡은 작업복이 들어 있었고 소매에서 검은 모래가 떨어졌다.
상자 옆면의 배송 라벨에는 ‘성북 3구역 빈집 14호’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 회수처는 나래25 성북점이었다.
“이건 반품 상자예요?”
“그런 표시와는 다릅니다.”
무진은 라벨 위에 붙었다가 떼어진 종이 자국을 살폈다. 손가락으로 검은 가루를 털자 흐릿한 글자가 드러났다.
‘기억 회수 완료 후 냉장 보관.’
그 아래에는 검은 매듭 표시가 있었다. 무진은 강호에서 본 매듭과 닮았다는 것만 알아보았다. 아직 그 의미를 단정할 수는 없었다.
노인이 몸을 떨었다.
“검은 사람…… 차가운 문을 열었어. 안쪽에서 바람이 불었어.”
“어떤 문입니까?” 채원이 물었다.
“모르겠어. 아내가 기다려…….”
노인은 무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당신도 그곳에 있었나?”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노인의 말에서 강호의 성벽 아래 불던 바람이 겹쳐 들렸다.
그때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났다.
우비 인물이 철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짧은 쇠막대가 들려 있었다.
“그 사람은 반환 물품입니다. 건드리지 마십시오.”
채원이 노인 앞을 막아섰다.
“사람을 물품이라고 부르지 마요.”
“비워야 살 수 있습니다.”
쇠막대가 낮게 휘둘러졌다. 무진은 채원과 노인 사이에 몸을 넣고 팔꿈치로 궤도를 틀었다. 막대가 벽을 때렸다.
우비 인물이 통풍구 쪽으로 달아났다. 무진이 손목을 붙잡았지만 상대는 작은 병을 바닥에 던졌다.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채원이 기침했다.
“노인부터요!”
무진은 통풍구 안으로 사라지는 우비 인물을 쫓지 않았다. 노인을 업어 계단 위로 옮겼다. 등에 닿은 몸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구급대가 도착한 뒤 채원은 발견 장소와 상자 라벨을 설명했다. 무진은 통풍구와 쇠막대가 놓인 위치를 알려 주었다.
경찰도 곧 도착했다. 철거 구역에 무단으로 들어간 경위와 노인을 발견한 상황을 묻자 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배송 중 이상한 흔적을 봤고 사람이 쓰러져 있어 들어왔다고 했다. 무진은 검은 가루를 발견한 위치와 우비 인물이 도망친 방향만 덧붙였다.
경찰은 상자와 작업복을 증거 봉투에 넣었다. 검은 모래는 그들에게 공사장 분진으로 보였지만 무진은 정정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말을 꺼내면 노인의 구조 기록까지 의심받을 수 있었다.
채원이 경찰차가 떠난 뒤 낮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었죠?”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잡았어요?”
“노인을 먼저 옮겨야 했습니다.”
“맞는 선택이었어요.”
채원은 한숨처럼 웃었다.
“그래도 잡고 싶었을 텐데.”
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망친 발소리는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손목을 붙잡았을 때 느낀 움직임은 무공을 배운 사람의 것이었고 그 손은 사람을 물건처럼 불렀다. 놓친 대가를 치르는 일은 익숙했다. 익숙하다고 해서 이번에도 옳은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들것에 오르기 전 무진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문이…… 가게 뒤로 이어져…….”
노인의 손이 풀렸다.
채원은 배송 단말기를 켜서 기사들끼리 공유하는 메모를 확인했다.
“이분, 지난주에도 3구역 14호 앞에서 발견됐대요. 다른 노인 두 명도 같은 곳에서 봤고요.”
“같은 주소입니까.”
“네. 전부 멍하게 서 있었다고 해요.”
무진은 지하 통풍구에서 흘러나온 바람을 느꼈다. 방향은 편의점이 있는 남쪽이었다. 냉장고 뒤 배관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연주 씨에게 말해야 합니다.”
“무진 씨가 직접 말해요.”
“저는 이것을 기록하겠습니다.”
무진은 검은 매듭과 배송 라벨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사진 속 모래는 평범한 먼지처럼 보였지만 손바닥의 장부 인장은 낮게 뛰었다.
채원이 화면을 넘기다 얼굴을 굳혔다.
“잠깐만요. 오늘 마지막 배송지가 나래25 성북점으로 찍혀 있어요.”
“무슨 물품입니까.”
“품목명이 비어 있어요. 수령 예정 시각은 23시 40분.”
무진은 검은 매듭이 달린 금속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배송은 혼자 받지 마십시오.”
“그럼 같이 받아 줄 거예요?”
“오늘 밤 근무가 있습니다.”
“같이 있겠다는 뜻이네요.”
무진은 대답 대신 언덕 위의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빛 아래에서는 골목도 가게도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검은 모래는 냉장고에서 지하 통풍구로 이어졌고 다시 가게의 주소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오토바이 엔진이 다시 울렸다. 무진은 채원의 뒤에 올라탔다.
“점주님께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좋아요. 이번엔 영웅 놀이 금지예요.”
오토바이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무진의 손안에서 검은 매듭이 미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