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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왕관과의 계약2화

말없는 왕관과의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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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검은 문을 기록하다

아델이 황태자비가 되었다는 소식은 아침 식탁이 차려지기 전에 궁정에 퍼졌다. 축하는 빠르게 도착했지만, 축하를 건넨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를 물었다. 왕관의 기억을 공개할 것인가. 아델은 답을 미뤘다. 어제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기억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루시안은 서면으로 말했다. ‘오늘 백지 의식은 취소한다.’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 대신 기록부터 확인해요. 어제 본 장면을 다시 말해 주세요. 제가 기억한 것과 비교하겠습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손짓으로 장면을 재현했다. 검은 문, 흰 장갑을 낀 여인, 타는 종이 냄새, 깨진 잔. 그는 손을 세 번 문에 대고 한 번 뒤로 당겼다. 아델은 그 동작을 ‘잠그다’로 읽었다. 하지만 고궁수어에서는 손바닥을 안쪽으로 당기는 동작이 ‘봉인’일 수 있었다.

“문을 닫으려 한 건가요, 봉인하려 한 건가요?”

루시안은 둘 다 가능하다는 표시를 했다. 이어서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고 오른손을 바깥으로 뻗었다. 아델은 ‘내가 막겠다’라고 적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손바닥을 위아래로 뒤집었다. ‘누군가를 막았다.’ 주어가 달랐다.

아델은 통역 기록에 두 가지 해석을 나란히 적었다. “이건 왕관을 쓴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왕관이 보관한 장면일 수 있어요. 누가 누구를 막았는지 아직 몰라요.”

루시안은 종이에 ‘좋다’고 썼다. 기록의 여백에 그는 아델의 해석과 자기 감각을 따로 적었다. 그들은 기억을 재현할 때마다 관찰한 것과 추측을 다른 칸에 쓰기로 했다. 해석에 의견이 다르면 둘 다 남긴다. 왕실 기록관은 한 가지 정답을 요구하겠지만, 두 사람의 계약은 그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레크가 오래된 서류함을 들고 왔다. 그는 선대 황제의 서신 가운데 왕관과 관련된 것만 따로 보관해 왔다고 밝혔다. 공식 연대기에는 선대 황제가 병으로 죽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서신의 날짜는 사망 선언보다 사흘 뒤까지 이어져 있었다.

“왜 이걸 숨겼습니까?” 아델이 물었다.

“제가 숨긴 건 아닙니다. 폐기 명령이 내려왔지만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숨긴 것과 다르지 않아요.”

마레크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두 사람 앞에 펼쳤다. 글씨는 약해져 있었지만 반복되는 단어가 있었다. 검은 문, 백지 의식, 그리고 ‘증인’이라는 표현. 한 편지에는 “왕관은 계승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증인을 기억한다.”고 적혀 있었다.

루시안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그가 왕관을 쓸 때마다 보았던 여인은 계승자가 아니라 증인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 속의 장면은 선대 황제의 경험이 아니라, 왕관을 만든 사람들이 남긴 기록일 수 있었다.

아델은 서신의 봉인을 살폈다. 선대 황제의 인장 아래 아주 작은 손바닥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고궁수어의 오래된 표식이었다. 그것은 발언자가 자신의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진술을 옮겼다는 뜻이었다.

“이 편지는 황제가 직접 쓴 게 아니에요.”

마레크가 의자에 앉았다. “필체는 황제의 것이 맞습니다.”

“필체와 발언자는 달라요.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었을 수 있어요. 이 표식은 기록관이 증언을 옮길 때 붙였습니다.”

루시안은 아델에게 표식의 의미를 손짓으로 물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전에서 그 항목을 찾아 보여 줬다. 사전의 종이는 낡았고, 가장자리는 불에 그슬려 있었다. 그 페이지에는 표식의 방향에 따라 ‘직접 말함’과 ‘전달받음’이 구분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이걸 가르쳐 주셨나요?” 마레크가 물었다.

“어머니는 궁정 기록관이었어요. 공식적으로는 필사 일을 했지만, 실제로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옮겼습니다.”

“그분이 황실 기록에서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기록이 사라진 뒤 어머니도 궁정을 떠났어요.”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돌아온 날 문서를 태우고 이 사전만 남겼다. 그 뒤 왕실은 수어 기록을 금지했다.

루시안은 그 사전을 빌려도 되는지 물었다. 아델은 빌려주는 대신 함께 읽자고 했다. 한 사람에게만 맡기면 다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들은 페이지마다 사본을 만들어 마레크의 기록고와 아델의 개인 함에 나누어 보관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섭정대공의 비서가 찾아왔다. 그는 왕관의 기억을 열람하는 권한은 황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아델의 기록은 계약상 사적 문서라 공개할 의무가 없었다. 비서는 계약 자체가 의회에 등록되지 않았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했다.

루시안은 서류에 답을 적었다. ‘왕실이 확인한 혼인 의식과 등록된 서명은 효력이 있다.’

비서는 계승자가 직접 답할 필요는 없다며 종이를 밀어냈다. 아델은 계약서 원본을 펼쳐 보였다. 의회 서기관의 접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섭정대공은 결혼을 무효로 만들 수 없게 되자, 아델에게 기억 기록을 넘기면 통역사 길드를 보호하겠다고 제안했다.

“길드의 안전을 미끼로 제 해석을 요구하는 거군요.” 아델이 말했다.

“황실 질서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제가 기록을 넘기면, 길드의 어떤 사람도 안전해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비서는 대답 대신 계약서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델은 그 이름을 다시 읽었다. 계약서에는 왕태자의 서명이 있었지만, 섭정대공의 승인란은 비어 있었다. 그 빈칸은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동시에, 아직 누구도 약속을 완성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는 황태자 전하와 계약했습니다. 제 기록은 그 계약의 당사자와만 나눕니다.”

비서는 길드의 통역사들이 조사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떠났다. 아델은 흔들리지 않는 척했지만,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루시안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에 따뜻한 차를 놓고, 종이에 ‘당신이 원하면 기록을 중단하겠다’고 적었다.

“중단하면 기억이 사라져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계속할게요. 다만 제가 위험을 감당할지 결정하겠습니다.”

루시안은 종이에 ‘그 권리를 존중한다’고 썼다. 그의 손은 처음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대 황제의 서신에서 ‘검은 문’과 관련된 지명을 찾았다. 기록고 지도에는 황궁의 폐쇄된 서쪽 별관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은 황태자의 첫 의식 때만 문을 여는 방으로, 현재는 섭정대공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마레크는 그 방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자신의 직무상 보관함에 있다고 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습니까?” 루시안이 손짓했다.

“그곳을 열면 봉인 기록까지 공개해야 합니다. 저는 왕관의 비밀을 보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구의 명령입니까?” 아델이 물었다.

마레크는 오래된 문서를 꺼냈다. 선대 황제의 친필 명령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다른 필체로 덧붙여져 있었다. “기억은 계승자에게만 전달하고 증인은 제거한다.”

아델은 필체를 비교했다. 추가 문장은 선대 황제의 것이 아니었다. 잉크가 다른 종이에 눌려 번졌고, 봉인도 위에 덧붙여져 있었다. 누군가 원래 명령에 문장을 끼워 넣었다.

“왕관이 누구를 기억하는지 확인하려면 서쪽 별관에 가야 해요.”

루시안은 바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지키는 병사의 수, 별관에서 의식장까지의 거리, 기록고 열쇠의 보관 위치를 질문했다. 아델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마레크가 병사 교대 시간은 해 질 무렵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려면 허가가 필요했다.

루시안은 의회에 공식 열람 요청을 내자고 적었다. 아델은 반대했다.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기록이 옮겨질 수 있었다. 그들은 비밀리에 침입하는 대신, 황태자 계승 의식에 필요한 서류를 명목으로 문을 열 수 있는지 검토했다. 마레크가 황실 규칙집을 찾아왔다.

규칙에는 황태자가 계승 전대의 기록을 열람할 권리가 있었다. 단, 통역사 한 명과 기록관 한 명을 동반할 수 있었다. 섭정대공은 이 규칙을 의도적으로 공표하지 않았다. 루시안은 해당 조항을 찾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정식으로 요청하면 내일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아델이 말했다.

마레크는 고개를 저었다. “요청서가 섭정대공에게 먼저 올라갈 겁니다.”

“그래도 거절하면 거절 기록을 남길 수 있죠.”

그들은 열람 요청서를 작성했다. 아델은 요청 사유에 왕관 기억의 번역을 위한 고궁수어 표식 대조라고 적었다. 루시안은 황태자의 권한 조항을 인용하고 서명했다. 마레크는 기록관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요청서를 제출한 지 두 시간 뒤, 답변이 돌아왔다. 열람은 허가되었지만, 기록물은 섭정대공의 참관 아래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허가서는 서명과 봉인이 완벽했다. 그러나 아델은 인장 자국이 문서 아래쪽에서 희미하게 두 번 찍힌 것을 알아차렸다. 같은 문서의 사본을 만들 때 압력이 달랐다는 뜻이었다.

“이 허가서는 원본이 아니에요.”

“도장이 같아 보이는데요.” 마레크가 말했다.

“도장은 같아요. 하지만 종이 섬유가 눌린 방향이 다릅니다. 누군가 원본 위에 새 종이를 올리고 문질러 옮겼어요.”

누가 허가를 허락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섭정대공이 허가서를 위조해 자신을 참관자로 넣었을 수 있었다. 또는 황태자의 권한을 인정한 다른 관리가 몰래 사본을 보냈을 수 있었다.

루시안은 문서 뒷면을 살폈다. 손가락을 종이 가장자리에 대고, 짧은 수어를 했다. ‘손바닥 표식.’ 아델은 고궁수어 사전에서 같은 표식을 찾았다. 그것은 전달받은 명령을 옮긴 사람이 문서에 남기는 표시였다. 서명자는 명령을 내린 사람이 아니라 전달자였다.

허가서의 서명은 황실 기록관장 이름이었다. 아델은 그 이름을 알아봤다. 이사벨이 남긴 편지에 등장한 마지막 기록관이었다. 마레크는 기록관장이 이미 10년 전 퇴직했다고 했다. 그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 서명은 누가 지금도 그 이름을 사용한다는 뜻이에요.”

그날 밤 루시안은 왕관을 다시 쓰겠다고 했다. 아델은 의식실에 기록지를 준비하고, 그의 동의 없이 질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첫 장면을 그린 문서를 건넸다. 검은 문, 장갑을 낀 손, 바닥의 왕관.

그림 속 여인의 손은 문이 아니라 루시안의 어깨를 밀고 있었다.

“그 여인이 전하를 막은 건가요?”

루시안은 대답 대신 왕관을 썼다. 그의 손은 곧 떨렸고, 숨이 가빠졌다. 아델은 기록을 준비했다. 기억 속에서 여인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입은 움직였지만 소리는 없었다. 아델은 입모양만으로 ‘뒤로’라는 단어를 읽었다.

루시안이 왕관을 벗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손으로 말했다. ‘그녀가 나를 밀었다.’

아델은 기록지에 적었다. ‘손이 황태자에게 닿음. 공격인지 구조인지 미정. 입 모양은 뒤로일 가능성.’

루시안은 기록을 읽고 자신의 해석을 옆에 적었다. ‘그녀는 나를 구하려 했다.’

두 기록은 달랐지만 모두 남았다. 그 순간 의식실 문이 열렸다. 섭정대공이 허가서 사본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열람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델은 두 허가서를 나란히 놓았다. 원본과 사본의 인장 압력은 다르지만, 손바닥 표식은 똑같았다. 누군가 섭정대공의 명령을 옮기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대공은 기록을 압수하라고 했다. 루시안은 왕관을 두 손으로 들고 아델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델은 기록지를 접어 자신의 옷 안에 넣었다. 왕관의 기억을 공개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해석을 빼앗기게 둘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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