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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왕관과의 계약3화

말없는 왕관과의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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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봉인된 증언

섭정대공은 의식실의 문을 잠그고 기록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의 뒤에는 왕실 경비대원 셋이 서 있었다. 아델은 기록지를 옷 안쪽에 넣은 채 두 손을 보였다.

“기록은 아직 해석 중입니다.”

“황실 물건을 허가 없이 기록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할 수 있소.”

“황태자 전하의 기억을 기록하라는 건 전하의 요청이었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권리도 있습니다.”

대공은 서류를 탁자 위에 던졌다. “통역사의 계약은 황실 계승권보다 아래요.”

루시안은 대공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왕관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렸지만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손짓으로 ‘내 기억’이라고 말했다. 대공은 그 손을 보지 않는 척했다.

“전하께서는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루시안은 고개를 들었다. 목의 흉터 아래 근육이 굳었다. 그는 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델은 그가 숨을 삼키는 걸 보았다. 말하려고 할 때마다 통증이 밀려오는지 그는 목을 움켜쥐었다.

아델은 그를 대신해 해석하지 않았다. 루시안은 손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기록하겠다.’

대공은 경비에게 왕관을 가져가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마레크가 문 앞을 막았다.

“이 방의 열쇠는 제 책임입니다. 경비가 들어오려면 기록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당신은 직무를 넘은 지 오래요.”

“직무 인계 기록에는 제가 아직 이 열쇠를 보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공의 얼굴에 짧은 짜증이 지나갔다. 그가 경비에게 물러서라고 손짓한 사이, 아델은 기록지를 책상 밑 서랍에 넣었다. 원본을 감추는 대신, 지금까지의 해석을 한 장씩 복사해 세 사람의 소지품에 나눠 넣었다. 누군가 한 사람을 수색해도 기록 전체를 가져갈 수 없었다.

대공은 서랍을 직접 열어 보았다. 기록지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문서를 압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서랍에 남은 것은 빈 종이였다. 아델은 그가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록장에 적었다.

“아직도 기록할 생각이오?”

“기록은 본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확인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대공은 문을 열고 나갔다. 경비대가 그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자 루시안은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마레크는 찻잔을 가져왔고, 아델은 그가 손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렸다.

“제가 대신 말해도 되나요?” 그녀가 물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손짓으로 ‘아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종이에 천천히 문장을 썼다. ‘목소리를 잃은 날, 선대 황제의 기록을 열었다. 기억 속의 여인이 내 목을 잡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아델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그때 왕관의 기억을 본 거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기억을 보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깨어났을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적었다.

마레크는 그날의 공식 기록을 꺼냈다. 황태자가 목소리를 잃은 이유는 열병 뒤유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의식에는 왕관을 쓰지 않았다고도 적혔다. 그런데 루시안은 왕관을 썼고, 그 직후 쓰러졌다. 기록이 의도적으로 바뀐 것이 분명했다.

“누가 당시 의식을 주관했습니까?” 아델이 물었다.

“선대 황제와 섭정대공입니다.” 마레크가 말했다. “그리고 통역사가 한 명 있었지만 이름은 기록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델은 어머니의 수어 사전을 펼쳤다. 고궁수어의 표식에는 발언자와 전달자의 구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표식은 ‘말할 수 없어 대신 손짓함’을 뜻했다. 사전 옆에는 어머니의 작은 주석이 있었다. ‘그들의 말은 묻힌 것이 아니라 기록에서 빠졌다.’

“그 통역사는 제 어머니였을 수 있어요.”

마레크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선대 황제의 편지를 더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델은 어머니가 위험에 놓였을 가능성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어머니의 행방만이 아니었다. 왕관의 기억 속 여인이 누구였는지 확인해야 했다.

세 사람은 섭정대공보다 먼저 서쪽 별관에 들어갈 방법을 찾았다. 열람 요청은 허가됐지만 참관 조건이 붙었다. 마레크는 원본 허가서를 확인하기 위해 기록관장의 옛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카시안은 아직 궁정에 없었다. 아델은 계약서의 동맹 조항을 떠올리고 북부에서 증인을 부를 수 있는지 검토했다.

루시안은 더 이상 왕관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아델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기록을 이어 가려면 기억의 반복이 필요했다. 그녀는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세 가지 선택지를 적어 그에게 건넸다. 오늘 중단한다. 기록을 먼저 정리한다. 혹은 짧은 의식만 진행한다.

루시안은 세 번째 항목에 표시했다. 그가 선택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는 의식실에 들어가기 전 왕관을 살폈다. 금속 안쪽에는 오래된 긁힘이 있었다. 아델은 손가락을 대지 않고 빛의 각도만 바꿔 흔적을 읽었다. 긁힘은 왕관의 안쪽에만 있었고, 칼이나 도구가 아니라 손톱으로 긁은 듯 가늘었다.

“누군가 이걸 벗으려 했어요.”

루시안은 왕관을 내려놓았다. 그가 손으로 ‘여인은 왕관을 빼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델은 전날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여인은 루시안의 어깨를 밀어냈다. 입 모양은 ‘뒤로’였다. 여인이 왕관을 벗기려 했다면 공격이 아니라 구조였을 수 있었다.

“기억 속에서 당신을 구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루시안은 그 해석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때 나는 그녀를 공격자로 기억했다’고 적었다. 왕관의 기억은 장면을 보여 줘도 감정과 순서를 모두 전하지 않았다. 둘은 그 차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짧은 의식이 시작됐다. 루시안이 왕관을 쓰고 아델은 손짓을 따라 적었다. 이번에는 검은 문이 아니라, 문 옆의 벽에 걸린 초상화가 보였다. 초상화에는 황태자와 비슷한 눈을 가진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목에는 왕관을 닮은 금속 장식이 걸려 있었다.

루시안은 손으로 ‘누나’라고 했다.

마레크가 움직임을 멈췄다. 선대 황제에게는 기록되지 않은 딸이 있었다. 공식 연대기에는 황태자 외에 다른 자녀가 없었다. 아델은 화면을 적으면서도 이름을 물어야 할지 망설였다.

“전하가 기억하는 이름은요?”

루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다만 초상화의 여인이 검은 문 앞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손짓은 ‘내가 증인이다’라는 뜻이었다.

아델은 기록에 적었다. ‘초상화 속 여성. 황태자의 누이일 가능성. 이름 미상. 손짓은 증인.’

의식이 끝나자 루시안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숨이 막히지 않았지만, 손이 심하게 떨렸다. 아델은 물을 건넸다. 그는 잔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잔이 넘어지지 않도록 아래에 손을 받쳤다.

그 순간 마레크가 기록실 문을 잠갔다. 그는 황제의 마지막 서신을 펼쳐 놓았다. “이제 공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서신에는 오래전 계승 의식의 증언자가 누구인지 적혀 있었다. 이름은 ‘엘리아 아르덴’, 선대 황제의 맏딸이자 루시안의 누이였다. 공식 기록에는 태어난 적조차 없는 사람. 마지막 줄에는 왕관을 봉인하기 위해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바쳤다고 쓰여 있었다.

아델은 문장을 읽고 숨을 멈췄다. 왕관의 기억 속 손짓은 누이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잃은 증인을 기억해 달라는 요청일 수 있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누군가 열쇠를 꽂았다. 마레크는 서신을 감추려 했지만 아델이 손을 들었다. 기록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문이 열리자 섭정대공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황실 계승 기록의 압수 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그 서신을 내놓으시오. 엘리아 아르덴이라는 이름은 황실 기록에 존재하지 않소.”

루시안은 종이에 ‘그럼 왜 두려워하십니까?’라고 적어 대공에게 보였다.

대공은 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델은 기록장을 가슴에 안았다. 그녀가 번역한 문장은 이제 왕관의 기억에만 남아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의 증언과 두 장의 사본이 같은 이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공은 서신을 빼앗지 못했다. 대신 기록실을 봉쇄하고, 아델과 마레크를 황실 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루시안은 손을 들어 명령을 멈추려 했지만, 경비대가 이미 복도를 막고 있었다.

아델은 계약서 사본을 펼쳐 루시안에게 보여 줬다. 그 안에는 기록과 해석을 각자가 보유할 권리가 적혀 있었다.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공개 심리에서 엘리아의 이름을 증언하기로 했다. 대공이 서신을 없애기 전에, 왕관의 기억을 의회 기록으로 옮겨야 했다.

심리가 열릴 때까지 기록을 보호할 방법도 필요했다. 아델은 기록을 한 군데 보관하지 않고, 마레크에게 서신의 사본을 맡겼다. 루시안은 의회 서기관에게 왕관 기억의 독립 기록을 등록하겠다는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에는 통역자의 해석이 원본 기억과 다를 수 있다는 문구도 넣었다. 그 차이를 지우지 않는 것이 증언의 신뢰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마레크는 서명을 마친 뒤 잠시 펜을 놓지 못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이 이름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아델은 그에게 책임을 면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 기록에 남기면 됩니다. 숨긴 이유도 함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침묵의 경위를 기록했다. 루시안은 문서를 읽은 뒤 승인 표식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잘못을 같은 장에 적었지만, 용서 여부는 적지 않았다. 용서는 증거와 다르게 한 번의 서명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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