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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지 계약 연애2화

봄까지 계약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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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계약서에 없는 손잡기

수정 계약서는 다음 날 오전 도착했다. 해주는 꽃집 카운터에서 계약서를 펼쳤다. 민혁은 행사장 사무실에서 쓰던 서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홍보 활동은 주 2회, 회당 세 시간 이내. 사진과 영상은 사전 동의 후 공개. 사적인 연락과 만남은 의무가 아니며, 당사자 중 누구든 24시간 전에 계약을 끝낼 수 있다. 꽃 장식 납품은 별도 견적서로 처리한다.

그녀는 문장을 두 번 읽고 빨간 펜으로 고쳤다. 촬영물 삭제 요청을 받으면 게시물만 내리는 게 아니라 원본 파일도 보관 기간 뒤 삭제할 것. 연애 관계의 설정은 홍보 촬영에 한정하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사실을 숨기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 계약 종료 뒤에는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을 것.

민혁은 오후에 꽃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수정을 읽고 모서리를 맞춰 놓았다.

“원본 파일 삭제는 행사 기록 때문에 어렵습니다. 대신 홍보물 제작 파일과 원본 촬영본을 분리하고, 공개하지 않은 원본은 30일 뒤 삭제할게요.”

“촬영한 사람도 그 조건에 동의해야 해요.”

“동의서 받아 오겠습니다.”

“그리고 월세 지원금은 꽃집 일당과 상계하지 말아 주세요.”

“별도 지급으로 적겠습니다.”

해주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민혁도 바로 서명했다. 둘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왔지만, 그것은 모두 금지하거나 공개 범위를 정할 때뿐이었다. 연인 역할은 일의 일부였다. 그 사실을 분명히 한 뒤에야 해주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첫 촬영은 예식장 앞 벚꽃길이었다. 꽃집에서 만든 작은 꽃다발을 들고 나란히 걷는 장면. 카메라를 든 촬영 기사는 두 사람에게 서로를 보며 웃으라고 했다.

“웃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민혁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웃지 않는데 저만 웃으면 더 이상하죠.”

“그럼 제가 먼저 웃을게요.”

민혁은 웃으려다 실패했다.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가 금세 내려왔다. 해주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카메라 셔터가 연속으로 눌렸다.

“지금 표정 좋아요. 그 상태로 걸어 주세요.”

두 사람은 꽃길을 걸었다. 민혁은 한 걸음 앞서다가 보폭을 줄였다. 해주는 그가 카메라 위치를 살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촬영 기사가 다른 장면을 준비하는 사이, 그는 꽃다발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손을 뻗어 줄기를 잡아 주었다.

“이건 계약에 있는 행동이에요?”

“꽃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그럼 괜찮아요.”

그는 손을 거뒀다. 카메라가 다시 켜지자 해주는 민혁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 끝이 재킷 소매를 눌렀다. 계약서에는 신체 접촉 조항이 없었다. 민혁은 몸을 굳히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촬영이 끝난 뒤 그는 바로 팔을 빼고 거리를 두었다.

“불편하지 않았어요?”

“아뇨. 당신은요?”

“괜찮았습니다.”

해주는 그의 답을 그대로 믿지 않기로 했다. “다음 촬영 전에는 접촉 장면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촬영 후 소라 대표가 두 사람을 불렀다. 그녀는 홍보 영상 초안을 보고 있었다. 영상에는 둘이 꽃길을 걷고, 해주가 민혁의 팔을 잡는 장면이 편집돼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올봄, 예식장 플래너와 꽃집 사장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 문구는 계약서에 없어요.” 해주가 말했다.

“광고 문구는 제가 결정합니다.” 소라가 답했다. “연인 콘셉트가 관심을 끌어요. 이미 내부 검토에서 반응도 좋아요.”

“홍보 콘셉트에 동의했지, 실제 연애를 암시하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시청자가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구분할 수 없으면 더 명확히 써야죠. 촬영을 위해 연인 역할을 한다고요.”

소라의 입술이 얇아졌다. “그럼 재미가 떨어집니다. 민혁 씨도 괜찮다고 했어요.”

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문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 조건대로 초안을 다시 만들겠습니다.”

그 말에 해주는 놀라 민혁을 보았다. 그는 촬영 당시 어떤 문구가 붙을지 몰랐다고 설명했다. 행사팀이 이미 게시 일정을 잡았지만, 게시 전이라 수정할 수 있었다. 소라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식장은 분위기를 파는 곳입니다. 지나치게 정확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저희는 꽃과 진행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관계를 꾸며서 팔기로 한 건 아닙니다.” 민혁이 말했다.

“그런 원칙이 계약보다 중요해요?”

“계약에 적힌 원칙이라서 지키는 겁니다.”

소라는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영상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빼겠다고 했다. 대신 장식 업체로 해주화원을 소개하지 않고 행사장 자체 콘텐츠로 올리겠다고 했다. 해주는 그것도 계약 범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촬영에 참여한 대가로 업체 소개를 받기로 했으며, 콘텐츠에 상호를 넣어 달라는 조항이 있었다.

“그 조항을 빼고 싶으면 계약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민혁이 말했다.

“종료할 생각은 없어요.” 해주는 답했다. “다만 서로 정한 조건을 바꾸려면 먼저 협의해야 합니다.”

소라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영상은 재편집하기로 했다. 촬영장은 정리되었고, 해주는 다시 꽃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그녀는 오래된 임대차 계약서를 꺼내 집주인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가게를 비우겠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인상 이유와 조정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계약으로 받은 지원금을 보증금에 보탤 수는 있었지만, 월세가 오른 뒤에도 버틸 수 있는지는 계산해야 했다.

민혁은 촬영 일정표를 보내며 내일은 예식장 상담 장면만 찍겠다고 했다. 해주는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가능합니다. 다만 촬영 전 설명을 부탁합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뒤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제 말을 대신하지 않고, 제 동의가 없는 문구를 막아 줘서 고맙습니다.

해주는 한참 고민하다가 답했다.

당신도 제 이름이 빠지는 걸 그냥 두지 않았어요. 서로 지킨 겁니다.

민혁은 웃는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연인처럼 보이기 위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해주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가게 문을 닫았다. 골목의 벚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몇 송이가 먼저 피었다가 밤바람에 떨어졌다. 그녀는 떨어진 꽃잎을 쓸어 담으며 다음 주 주문 수를 셌다.

집주인에게 답이 온 것은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임대료 인상은 건물 전체 리모델링 계획 때문이며, 조정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이번 주 안에 계약 연장 의사를 확정해 달라고 했다. 해주는 종이를 책상에 놓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한 달 지원금으로는 보증금 일부만 충당할 수 있었다. 꽃집을 옮기면 단골을 잃을 수 있고, 새 자리를 찾는 동안 생화 손실도 커진다. 계약 연애가 해결책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장부에 숫자를 적고, 옮기는 비용과 유지 비용을 나눴다. 마지막 줄에서 펜이 멈췄다. 자신은 가게를 지키고 싶은 걸까, 엄마가 지킨 가게를 포기한 사람으로 남기 싫은 걸까. 두 질문은 같지 않았다.

둘째 촬영 전 해주는 민혁에게 고객 상담 대본을 다시 써 보자고 했다. 예식장 홍보 영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꿈같은 하루’와 ‘완벽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실제 상담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예산, 일정 때문에 고민했다. 둘은 고객 이름이나 구체적인 사연을 쓰지 않고, 흔히 나오는 질문만 모아 장면을 구성했다.

“예산이 정해져 있는데 부모님이 원하는 꽃이 많으면 어떻게 해요?” 해주가 물었다.

“필수와 선택을 나눠 여쭤볼 겁니다. 부모님 취향을 존중하되, 당사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요.”

“두 사람 의견이 다르면요?”

“그 자리에서 결론을 재촉하지 않고,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장면을 먼저 묻겠습니다.”

촬영 기사가 질문과 답을 계속 이어 갔다. 이번에는 소라 대표가 중간에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촬영 뒤 그는 작은 회의실에서 해주와 민혁에게 계약 수정안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영상 아래에는 ‘촬영을 위해 연인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꽃집 상호와 예식장 상담 정보를 함께 넣었다.

“이렇게 하면 조회 수가 덜 나올 수 있어요.” 소라가 말했다.

“사람들이 실제 상담 내용을 보고 문의하면 좋겠습니다.” 해주가 답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다만 행사장 성과 보고에는 반응도 들어가요.”

“성과를 숨길 필요는 없죠. 어떤 문구에 반응했는지도 기록하면 되니까요.”

민혁은 영상 공개 뒤 문의가 얼마나 왔는지 업체별로 나누어 보자고 제안했다. 소라는 그것도 받아들였다.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덜 방어적이었다. 해주는 소라가 처음부터 악의를 품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예식장 이미지와 계약 관계를 관리하고 있었고, 빠른 홍보가 결과를 만든다고 믿었다. 다만 그 믿음이 다른 사람의 동의보다 앞서면 안 됐다.

촬영을 마친 뒤 해주는 소라에게 별도의 꽃장식 견적을 보냈다. 깨진 화병을 대신한 꽃병과 로비 동선 안내용 작은 장식, 그리고 설치·철거 시간까지 적었다. 소라는 금액을 한 번 낮춰 달라고 요청했다. 해주는 재료를 줄이는 안과 작업 시간을 줄이는 안을 각각 제시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기존 견적이 유지된다고 했다.

“가격을 그냥 깎아 주면 안 되나요?” 소라가 물었다.

“작업 시간을 빼면 설치 품질이 달라져요.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함께 고르는 게 낫습니다.”

소라는 작업 시간을 유지하고 꽃 종류를 조정했다. 해주는 그 선택을 확인서에 반영했다. 꽃집 거래는 계약 연애와 별개의 실제 일로 남았다.

그날 밤, 민혁은 촬영을 위해 사용한 팔짱 장면을 영상에서 빼도 되는지 물었다. 해주는 이미 공개 동의를 했지만, 꼭 그 장면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면 제외하자고 답했다. 그는 편집자에게 해당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주는 그가 자신의 경계를 지켰다는 사실을 기억했지만, 그것을 마음의 빚으로 삼지는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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