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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8화

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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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열혈 팬의 전용 무기

던전의 광석등이 모두 꺼진 뒤에도 카메라 구체의 붉은 렌즈만은 살아 있었다.

검은 화면 한가운데 문장이 떠올랐다.

[환영합니다. 다음 무대의 주연은 이아린입니다.]

이아린의 장막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검은 점들이 일제히 빛났다. 점 사이로 가느다란 선이 이어지며 푸른 장막을 거미줄처럼 묶었다.

“이거 떼어낼 수 있어요?”

“떼어내면 장막도 같이 찢어져.”

유진은 바닥에 떨어진 관측 장치를 뒤집었다. 검은 금속 안쪽에는 협회 문장도 성좌의 이름도 없었다. 낯선 채널 번호와 출연자 식별 코드만 번갈아 깜빡였다.

[출연자 식별: 이아린]

[출연 동의: 미확인]

[강제 예약: 유효]

“동의하지 않았는데 유효하다고 나와요.”

“예약과 계약을 같은 걸로 취급하는 모양이지.”

유진이 채널 번호를 누르자 숫자들이 명령문으로 분해됐다.

[채널 우선권 확보]

[출연자 생체 신호 고정]

[거부 시 연결 채널의 송출 제한]

마지막 줄 아래에 작은 경고가 붙었다.

[거부 시 보조 출연자의 마력 회로를 대체 신호로 사용합니다.]

이아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를 인질로 잡겠다는 뜻이네요.”

“네 마력을 방송 장치로 쓰겠다는 뜻이야.”

“그럼 부숴요.”

이아린이 손을 뻗어 검은 점 하나를 움켜쥐었다. 검은 선이 손목을 타고 올라오자 유진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잡아당기지 마. 먼저 누가 연결했는지 봐야 해.”

유진은 관측 장치에 마력을 흘려 보냈다. 협회 감시 요원들이 쓰는 통신 파장보다 높은 신호가 장치 안에서 내려왔다.

[상위 송신자 접속 유지]

[콘텐츠 이탈 방지 절차를 준비합니다.]

유진은 장치 안쪽의 채널 번호를 손톱으로 긁어냈다. 숫자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장막의 검은 점들이 흔들렸다.

“이 번호가 문고리야. 부수지 않고 당기면 누가 열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던전 입구 쪽에서 금속음이 울렸다. 협회 감시 요원들이 폐쇄된 통로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섯 명이었다.

“신유진 헌터! 미등록 장치를 즉시 제출하십시오!”

“누구 명령이지?”

“협회 비상 회수 명령이다.”

“비상인데 카메라를 먼저 설치했군.”

유진이 손을 들자 카메라 구체가 요원의 손목 밴드를 확대했다. 협회 회수 명령과 별개로 검은 신호가 작동하고 있었다.

[제3자 출연자 데이터 회수 시도]

요원들이 굳은 얼굴로 무기를 뽑았다. 이아린은 그 틈에 손목의 선을 장막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이 신호는 제 몸을 통과해야 원본 명령에 연결돼요.”

“그럼 네가 문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네.”

“바꾸는 동안은 제가 버텨야 하고요.”

유진은 장치 표면에 떠오른 두 줄을 번갈아 바라봤다. 출연자 식별은 확정되어 있었지만 동의 항목은 끝까지 미확인으로 남아 있었다. 시스템은 이아린을 주연으로 부르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동의했다는 기록은 만들지 못했다.

“여기 빈칸이 보이지?”

“동의 항목 말인가요?”

“그래. 저들은 널 무대로 끌고 갈 권한은 훔쳤지만 네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기록까지 만들지는 못했어. 그 빈칸에 우리가 문장을 넣으면 예약이 아니라 계약이 돼.”

이아린은 검은 선에 붙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손끝은 떨렸지만 시선은 장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아린은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검은 선이 다시 손목을 조였다.

“무서워요. 그래도 이번엔 제가 해 볼게요.”

그 순간 채널창이 폭발했다.

[구르는 은하가 120,000코인을 후원했습니다!]

[구르는 은하: 그 검은 줄부터 치워라. 내 방송의 주연은 네가 골라.]

[구르는 은하: 전용 무기 스크롤을 보낸다. 절대 뺏기지 마라.]

알림음이 폐물류센터 전체를 뒤흔들었다. 허공에 별가루처럼 빛나는 상자가 나타났다.

[보상 물품: 성좌 관측자의 절단검]

[등급: 전용 권한 장비]

[제공자: 구르는 은하]

[현재 보유 코인: 206,200개]

이아린이 상자를 경계했다.

“저것도 덫일 수 있어요.”

“그래서 포장부터 확인해야지.”

유진은 봉인을 건드리지 않고 세부 계약을 펼쳤다.

[전용 무기 사용 시 제공자의 관측 권한을 출연자 채널에 연결합니다.]

[주연 출연자의 동의가 없을 경우 장비 개방률은 10%로 제한됩니다.]

“역시 공짜는 아니군.”

[구르는 은하: 내 VIP 권한이 저 상위 채널의 우회로로 쓰였다. 네 동료에게 붙은 신호를 내 돈으로 잘라 내겠다.]

“상위 채널의 이름은 알고 있나?”

[구르는 은하: 모른다. 하지만 내 결제 계정이 도둑맞은 건 안다. 네가 무너지면 내 투자도 날아간다.]

“그 말은 팬이라는 뜻이야.”

[구르는 은하: 공동 투자자라고 해라!]

채팅창에 별 모양 이모지가 쏟아졌다. 빛나는 훈수왕도 한마디를 보탰다.

[빛나는 훈수왕: 큰손이 드디어 인정했네.]

유진은 스크롤을 이아린 쪽으로 밀었다.

“네 동의가 없으면 10%만 열린대.”

“그럼 열지 말죠.”

“무기가 아니라 문을 여는 열쇠일 수도 있어.”

“열쇠를 쥐는 순간 또 누군가 제 이름을 가져가면요?”

“이번에는 네가 조건을 쓰면 돼.”

[강제 예약 확정까지 00:00:41]

감시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유진은 이아린에게 눈짓했다.

“시간을 벌어.”

“당신은요?”

“팬에게 받은 선물 포장을 뜯어야지.”

유진이 스크롤의 첫 봉인을 찢었다.


봉인 안쪽에서 빛으로 된 칼날이 솟아났다. 표면에는 수천 개의 작은 화면이 흘러갔다.

[성좌 관측자의 절단검]

[개방률: 10%]

[기능: 관측 신호의 연결부 절단]

[부가 기능: 후원자 채널의 역송출]

유진이 허공의 손잡이를 움켜쥐자 빛의 칼날이 손목을 타고 올라온 신호를 먼저 잘랐다. 장막에 붙어 있던 검은 점 세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결부 3개 절단]

[출연자 이아린의 마력 회로 보호]

“세 개뿐이에요?”

“개방률이 10%라서.”

이아린은 장막을 세 겹으로 펼쳤다. 첫 번째 장막은 요원들의 발을 늦췄고 두 번째 장막은 카메라의 시야를 고정했다. 마지막 장막은 손목에 감긴 선을 반사해 명령문을 허공에 밀어 올렸다.

“지금 입력할 수 있어요.”

이아린이 문장을 썼다.

[본 출연자는 시민 대피가 완료되기 전까지 전투 무대에 입장하지 않는다.]

[조건 불일치. 주연 출연자는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거절됐어요.”

“거절한다고 쓰지 마. 지시할 권한을 정하겠다고 써.”

이아린은 문장을 지웠다. 요원 하나가 장막의 틈을 파고들었다. 유진은 절단검으로 요원의 밴드에서 검은 신호만 베어 냈다.

“다음.”

이아린이 새 문장을 입력했다.

[주연 출연자는 시민 대피, 원본 송출, 임의 편집 금지, 동료의 강제 전투 금지를 조건으로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조건을 기록합니다.]

[출연자 동의가 부분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상위 채널의 편집 권한이 제한됩니다.]

이아린의 눈이 커졌다.

“통했어요.”

“동의한 게 아니라 협상한 거야.”

“그래도 제 이름으로 쓴 조건이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해.”

감시 요원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아린은 이번에는 유진을 보지 않았다. 장막을 비스듬히 세워 요원들의 발밑만 굴절시켰다. 다섯 명의 움직임이 엇갈리며 컨테이너 벽에 부딪혔다.

“열둘까지 묶어 둘게요.”

“충분해.”

유진은 절단검을 뒤집었다. 칼날에 비친 화면 하나가 거꾸로 흐르며 검은 채널 번호를 드러냈다.

[역송출 경로 확인]

[목적지: 외곽 정거장 4번 중계지]

[관리 표식: 폐쇄된 탑 방송망]

상위 송신자가 화면을 덮었다.

[계약 위반 감지]

[주연 출연자를 다음 무대로 전송합니다.]

폐물류센터 중앙의 게이트가 검게 변했다. 게이트 너머로 별빛도 지구의 하늘도 아닌 거대한 금속 통로가 나타났다.

이아린의 발밑에 붉은 원이 생겼다.

[다음 무대: 외곽 정거장 4번 중계지]

[주연: 이아린]

유진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들어간다.”

“조건에 동료의 강제 전투 금지가 들어갔어요.”

“전투는 안 해. 카메라만 부술 거야.”

“그것도 강제 전투로 판정될 수 있어요.”

이아린은 게이트 너머를 바라봤다. 얼굴에 공포가 스쳤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럼 제가 먼저 말할게요.”

그녀가 붉은 원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검은 선이 손목을 조였지만 이번에는 이아린이 먼저 선을 잡아당겼다.

[주연 출연자의 선택이 확인됩니다.]

[임시 계약이 성립합니다.]

화면 속 문장이 흔들렸다.

[환영합니다. 다음 무대의 주연은 이아린입니다.]

이아린은 허공의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환영은 됐어요.”

떨림이 남은 목소리였지만 말끝은 흐려지지 않았다.

“다음 무대의 조건은 제가 정합니다.”

유진의 손에 남은 절단검이 낮게 울렸다. 칼날 표면에 구르는 은하의 후원 문장이 새로 떠올랐다.

[후원자 채널 역송출 준비 완료]

[다음 출연자 계약 열람 권한을 후원자에게 공유합니다.]

[구르는 은하: 저놈들이 네 말을 무시하면 내 채널에서 전부 보이게 만들자.]

유진은 검은 게이트를 바라보며 웃었다.

“열혈 팬이 하나 생겼군.”

게이트 너머의 금속 통로에서 수백 개의 카메라가 동시에 켜졌다.

[다음 무대의 주연은 이아린입니다.]

문장이 한 번 흔들리더니 그 아래에 새로운 줄이 덧붙었다.

[단 출연 조건을 선택할 권리는 주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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