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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의 스폰서가 되었다9화

성좌들의 스폰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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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경매장의 지배자

각성자협회 서부지부 1층 감정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리벽 너머의 강화 작업대 위에는 주먹만 한 검은 결정체가 놓여 있었다.

표면을 감싸고 흐르는 짙은 보랏빛 마력은 맥박처럼 고동치며 주변의 조명을 흐릿하게 왜곡했다. 강서 제3폐정수장 지하 게이트의 불법 관측 장치에서 계약 연결부를 끊어 낸 뒤 수거한 핵심 부산물인 ‘심연의 정제핵’이었다.

“이의 신청 기각 통지서입니다.”

서아린이 테이블 위에 단말기를 내려놓았다. 화면에는 아카샤 법무팀이 협회에 접수한 압류 신청서와 붉은색 기각 직인이 나란히 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한지민 계장이 서류를 훑어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아카샤 측에서는 이 결정체가 자사 설치 장비의 내부 부품이므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조사 결과 해당 장치는 협회 미등록 불법 구조물로 확인되었습니다.”

“협회 표준 규약 제14조 2항을 적용하면 됩니다.”

아린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공적 보증 게이트 내에 무단 설치된 불법 시설물은 전량 몰수 대상이고 긴급 점검 공략을 수행한 공인 길드가 적법하게 분리 회수한 자원은 전리품으로 인정받습니다. 소유권은 완벽히 아스트라에 있습니다.”

한지민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협회 법무과에서도 같은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아카샤의 반환 청구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단말기 화면을 두드려 승인 코드를 입력했다.

[강서 제3폐정수장 긴급 점검 전리품 소유권 확정]
[귀속 대상: 아스트라 길드]
[긴급 안전 보증금 2,000,000원이 반환 처리되었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성우의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아스트라 운영 준비금 계좌로 2,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현재 운영 잔액: 2,700,000원]

원래 납부했던 보증금이 온전히 돌아왔다. 하지만 아스트라의 이름으로 고위 던전 공략을 준비하고 길드 거점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성우가 유리벽 너머의 보랏빛 결정을 가리켰다.

“이 정제핵의 시장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지민이 감정서를 성우 앞으로 밀어 넣었다.

“수년간 게이트의 순수 마나를 압축하고 정제한 고밀도 촉매입니다. 대형 공방의 성좌 무구 제작이나 고위 마법진 연구에 쓰이는 극희귀 품목이에요. 협회 기준 감정 시작가는 최소 3억 원입니다.”

“3억.”

성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아린이 태블릿을 조작하며 덧붙였다.

“오늘 오후 서울 중앙 공인 경매소에서 고위 던전 부산물 정기 경매가 열립니다. 협회 보증을 거친 특수 출품물로 등록하면 즉시 감정가의 절반을 입찰 보증 한도로 당겨 쓸 수 있어요.”

“아카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한지민의 우려 섞인 말에 성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려고 들고 가는 겁니다. 자기들이 불법으로 모으던 마나 덩어리가 경매장에 공개 입찰로 올라가면 제일 목이 타는 쪽은 아카샤일 테니까요.”

성우는 감정 승인서에 지체 없이 서명했다.

[특수 위탁 출품 승인]
[물품명: 심연의 정제핵]
[중앙 경매소 즉시 한도 승인: 150,000,000원]

“출발하죠. 돈을 벌러 갈 시간입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각성자협회 중앙 공인 경매소는 수많은 헌터와 대형 길드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정장을 차려입은 기업형 길드의 임원들과 무기를 찬 고위 등급 헌터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우와 아린이 2층 로비로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이게 누구신가. 아스트라인지 뭔지 하는 칠십만 원짜리 구멍가게 대표님 아니십니까?”

회색 정장 차림의 김태식이 서류철을 든 채 다가왔다. 아카샤 운영전략실 팀장인 그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

“폐정수장에서 쥐새끼처럼 잔재주를 부려 감정서 하나 건졌다더군요. 겨우 그거 들고 이런 자리에 얼굴을 들이밉니까?”

아린이 냉랭한 눈빛으로 김태식을 쏘아보았다.

“김 팀장님은 경매 규정도 잊으셨나 봅니다. 출품 자격을 얻은 등록 길드의 대표를 모욕하는 행위는 경매장 퇴장 사유예요.”

“퇴장? 하하. 아린 씨, 당신이 데리고 있는 저 E급 각성자가 여기서 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오늘 경매는 아카샤의 주력 공략대가 쓸 물량을 쓸어 담는 날입니다. 잔돈 몇 푼 쥐었다고 기어오르지 마세요.”

김태식이 비웃음을 흘리며 VIP 전용석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로 거구의 사내 하나가 성우를 서늘한 눈빛으로 훑어보며 지나쳤다. 목덜미에 아카샤 정예 1공략대 표식을 새긴 사내였다.

성우는 김태식의 뒷모습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기세가 좋네요. 돈을 많이 들고 왔나 봅니다.”

“아카샤는 이번 분기 상급 마나스톤 조달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해외 레이드 계약이 위태로워집니다. 현금을 잔뜩 준비해 왔을 거예요.”

아린의 분석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용 입찰 단말기를 켰다.

“남의 돈으로 잔치를 벌여 주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죠.”

잠시 후 경매장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단상 위로 대형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단정한 턱시도를 입은 수석 경매사가 망치를 두드렸다.

탕! 탕!

“지금부터 제142회 고위 던전 부산물 및 마나스톤 특별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초반부에는 일반 C급 던전의 마수 가죽과 정제 광석들이 줄지어 나왔다. 길드 간의 잔잔한 호가가 오가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특수 출품 번호가 전광판에 붉게 떠올랐다.

[특수 경매 품목 07번: 심연의 정제핵]
[출품자: 아스트라 길드]
[시작가: 300,000,000원]

유리 진열장 안에 든 검은 결정체가 단상 중앙으로 올라왔다. 화면에 마력 파동 수치가 표시되자 객석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저 정도 순도면 S급 결계의 보조 동력원으로도 쓸 수 있겠는데?”

“출처가 어디야? 신흥 길드 아스트라?”

김태식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결정체에 새겨진 마력 문양은 아카샤가 수개월 동안 강서 폐정수장에 숨겨 두고 성좌 결사에 바치려던 핵심 수확물이었다. 저것이 다른 연구 기관이나 경쟁 길드의 손에 넘어가 성분 분석이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아카샤의 불법 행위가 낱낱이 해부될 판이었다.

김태식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찰 패들을 움켜쥐었다.

“무조건 되찾아야 해. 가격 따질 때가 아니다.”

수석 경매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호가를 시작합니다! 삼억 원!”

“삼억 이천!”

“삼억 오천!”

국내 유수의 연금술 연구소와 방어구 제작 공방들이 즉각 입찰에 뛰어들었다. 가격은 순식간에 5억 원을 돌파했다.

김태식이 벌떡 일어나며 패들을 높이 치켜들었다.

“팔억 원!”

객석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단숨에 3억 원을 건너뛴 폭력적인 호가였다.

경매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카샤 길드에서 팔억 원을 불렀습니다! 팔억 원, 더 없으십니까?”

어지간한 중소 길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금액이었다. 연구소 관계자들이 혀를 차며 패들을 내려놓았다.

김태식은 턱을 치켜들며 성우 쪽을 흘겨보았다. 자신들의 자본력 앞에 굴복하라는 무언의 과시였다.

하지만 성우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뒤편의 한 외국계 연구 법인이 손을 들었다.

“십억.”

김태식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들은 단순한 연구 목적으로 부른 것이겠지만 아카샤에게는 사활이 걸린 증거물이었다. 놓치면 끝장이었다.

“십이억 원!”

김태식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변의 헌터들이 숨을 들이켰다. 아무리 고밀도 촉매라 해도 12억 원은 시장 상한선을 아득히 뛰어넘은 금액이었다. 완벽한 출혈 매수였다.

“십이억 원! 더 없으십니까?”

경매사의 시선이 장내를 훑었다. 외국계 법인조차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탕! 탕! 탕!

“품목 07번, 아카샤 길드에 십이억 원으로 최종 낙찰되었습니다!”

김태식은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썼지만 증거를 인멸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는 성우를 향해 조롱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성우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확인하고 있었다.

[위탁 출품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낙찰 금액: 1,200,000,000원]
[경매 수수료 5% 공제: -60,000,000원]
[아스트라 경매 전용 계좌로 1,140,000,000원이 즉시 충전되었습니다.]

아린이 화면을 확인하고 성우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아카샤의 현금으로 우리 통장을 채웠습니다.”

“장사를 아주 훌륭하게 도와주는군요.”

성우의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김태식은 땀을 닦으며 입찰 목록표를 넘겼다.

정제핵을 되찾느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썼지만 본래 목적이었던 상급 마나스톤 매집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카샤의 명의로 아직 15억 원의 잔여 여신 한도가 남아 있었다.

“지금부터는 고위 던전 부산물 및 상급 마나스톤 묶음 입찰에 들어갑니다.”

단상 위로 거대한 철제 컨테이너 세 개가 운반되어 왔다. 뚜껑이 열리자 짙은 청색과 암적색을 띤 거대한 마나스톤들이 뿜어내는 마력이 장내를 압도했다.

[품목 15번: B급 상위 던전 희귀 청색 마나스톤 20과 묶음]
[시작가: 100,000,000원]

김태식이 거침없이 패들을 들었다.

“일억 오천!”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였다. 다른 길드들이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 순간 조용하던 2층 지정석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억 오천.”

김태식이 경악하며 고개를 돌렸다. 패들을 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성우였다.

“저 자식이 미쳤나? 이억 오천?”

단숨에 1억 원을 올려 부른 호가였다. 경매장의 시선이 일제히 성우에게 쏠렸다.

김태식이 이를 악물며 패들을 쳐들었다.

“이억 칠천!”

성우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패들을 쥐었다.

“삼억 오천.”

“삼억 오천! 아스트라 길드 삼억 오천만 원!”

경매사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청색 마나스톤 스무 개의 시세는 높아 봐야 2억 원 초반대였다. 3억 5천만 원은 자본력으로 상대를 완전히 압살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김태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직 다음 묶음들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무리하게 4억을 쓰면 뒤쪽의 대형 묶음을 놓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넘겨! 다음 걸 노린다.”

김태식이 이를 갈며 패들을 내렸다.

탕!

“품목 15번, 아스트라 길드에 삼억 오천만 원 낙찰!”

곧이어 다음 품목이 올라왔다.

[품목 16번: A급 변종 마수 코어 3과 및 정예 마나석 10과 묶음]
[시작가: 250,000,000원]

이번에는 아카샤 공략대의 주력 무기 강화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핵심 코어였다. 김태식은 마이크를 잡고 악을 쓰듯 외쳤다.

“사억 원!”

경매장이 술렁였다. 하지만 그 술렁임이 가라앉기도 전에 성우의 건조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육억.”

“육억 원이 나왔습니다!”

김태식의 턱이 덜덜 떨렸다.

육억이라니. 방금 전 3억 5천을 쓰고도 또 6억을 일시불로 부른단 말인가?

“말도 안 돼! 저놈은 고작 E급 각성자에 등록된 지 하루 된 신생 길드 대표다! 저 자에게 입찰 보증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김태식이 단상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수석 경매사가 단말기 화면을 확인하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스트라 길드는 방금 품목 07번의 매각 대금 십일억 사천만 원이 공식 예치되어 있습니다. 입찰 자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순간 김태식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품목 07번.

자신들이 증거를 없애겠다며 피를 토하듯 결제했던 그 12억 원.

자신들이 지불한 현금이 고스란히 적의 무기가 되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 오고 있었다.

“육억 원, 더 없으십니까? 육억 원, 낙찰!”

탕! 탕!

김태식의 다리가 풀렸다.

그리고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품목 17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품목 17번: A-S급 전조 균열 농축 마나석 3과]
[시작가: 150,000,000원]

수많은 길드가 군침을 흘리는 최고급 마나 원석이었다. 하지만 이미 성우의 압도적인 자본 쇼를 목격한 장내의 그 누구도 섣불리 손을 들지 못했다.

김태식은 남은 잔여 한도를 쥐어짜며 마지막 발악을 시도했다.

“일억 팔천!”

성우는 턱을 괴며 무심하게 패들을 들었다.

“이억 팔천.”

장내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더 이상의 경쟁은 무의미했다.

탕! 탕! 탕!

“품목 17번! 아스트라 길드에 이억 팔천만 원으로 최종 낙찰되었습니다!”

경매사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로써 오늘 상정된 상급 마나스톤 묶음 전량이 아스트라 길드에 독점 낙찰되었습니다!”

장내의 모든 헌터와 기자들이 기립하며 웅성거렸다. 신흥 길드 아스트라가 국내 1위 길드 아카샤의 콧대를 돈으로 짓뭉개며 마나스톤을 통째로 싹쓸이한 초유의 사태였다.

성우는 단말기를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죠. 물건을 인수하러.”

아린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김태식을 차갑게 지나쳤다.

“정제핵 잘 쓰세요. 김 팀장님 덕분에 마나스톤을 편하게 샀습니다.”

김태식은 입술을 깨물며 피를 흘렸다.


지하 2층 특수 물품 보관소.

성우의 앞에는 세 개의 두꺼운 내화 합금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오늘 낙찰받은 상급 청색 마나스톤들과 변종 코어, 농축 마나석들이 푸른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성우가 손끝을 마나스톤 표면에 대자 귓가에 맹렬한 시스템 알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환산 가능한 고위 자원이 감지되었습니다.]
[B급 정예 마나스톤 20과, A급 변종 코어 3과, 전조 농축 마나석 3과를 확인합니다.]
[예상 신성 환산량: 4,350 신성]

4,350 신성.

기존 잔액 100 신성을 더하면 단숨에 4,450 신성에 도달하는 막대한 수치였다. 무신의 황혼 마켓에 올라와 있는 최상급 권능들을 쓸어 담고도 남을 자본이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푸른 시스템 창들이 요동쳤다.

[외부 성좌 채널의 관측자 다수가 당신의 자원 확보를 감지합니다.]
[‘어둠의 성역을 걷는 자’가 당신의 구매력에 흥미를 보입니다.]
[성좌 ‘무신의 황혼’이 VIP 전용 마켓 창을 격렬하게 흔들며 다음 결제를 재촉합니다!]

우주의 성좌들이 지구의 계좌 관리자가 벌인 자본의 위력에 술렁이고 있었다.

성우는 만족스럽게 상자를 닫았다.

“서아린 씨. 길드 차량 트렁크에 싣죠.”

“네, 대표님.”

아린이 운반 카트를 밀며 앞장섰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 주차장으로 내려섰을 때였다.

텅 빈 주차장의 형광등이 불길하게 깜빡거렸다. 서늘한 한기가 바닥을 타고 발목을 감싸 쥐었다.

“거기 멈춰라.”

주차장 기둥 뒤편의 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아까 경매장 2층에서 김태식의 뒤를 따르던 사내였다. 떡 벌어진 어깨와 흉터투성이의 목덜미. 그의 전신에서 피비린내 나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카샤 정예 1공략대 소속 A급 헌터 강태호였다.

강태호의 손에는 검붉은 가시가 돋친 전투용 건틀릿이 쥐여 있었다.

“그 마나스톤 상자들.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고 꺼져라.”

아린이 성우의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

“강태호 씨! 경매장 구역 내에서 낙찰품을 무단 갈취하는 건 협회 영구 제명 사유입니다!”

강태호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바닥을 짓밟았다. 콰득. 콘크리트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협회? 제명? 하, 아카샤가 뒤를 봐주는데 그깟 규정이 무슨 상관이지? 감히 회사의 돈줄을 건드리고 살아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나?”

그가 건틀릿을 맞부딪치자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얌전히 넘기면 손가락 몇 개 분지르는 걸로 끝내주지. 저항하면 여기서 시체도 못 찾게 짓이겨 버릴 테니까.”

A급 헌터 특유의 묵직한 살기가 주차장 공기를 짓눌렀다. 아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성우는 아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물렸다.

성우는 마나스톤 상자에 기댄 채 나직하게 웃었다.

“살아서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돈을 낸 사람이 정합니다.”

“뭐라고?”

“아카샤의 현금으로 산 물건입니다. 주인 행세는 돈을 내고 하셨어야죠.”

강태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건방진 E급 버러지 새끼가!”

콰아앙!

강태호가 바닥을 박차고 쇄도했다. 붉은 마력이 응축된 건틀릿이 성우의 턱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성우는 피하지 않았다.

검을 뽑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 한 손을 꽂아 넣은 채 차가운 눈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응시할 뿐이었다.

성우의 피부 아래에서 붉은빛의 신화급 장벽이 조용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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