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농장 막내는 번개를 수확한다

2화: 구름지주의 매입 제안
밭의 수분계가 영하 2도를 가리켰다.
나루는 계기판을 두드렸다. “고장 아니야. 열매를 따느라 뿌리에서 수분을 끌어 올린 거야. 오늘도 따면 아래 덩이작물이 얼어 죽어.”
“기온은 영상인데 뿌리가 얼어?”
“구름 흙은 수분이 사라지면 밤바람을 못 붙잡아. 낮엔 괜찮아 보여도 해 지면 열을 다 뺏겨.”
이슬은 작업대 위에서 절연 장갑을 말렸다. 손끝 감각은 조금 돌아왔지만 검지로 작은 나사를 집을 수 없었다. 그 손으로는 수확 칼을 쥐기 어려웠다.
“열매 목소리 녹음할 방법은 없어?” 나루가 물었다.
“열매가 깨져서 못 해.”
“목소리가 두 번 달랐다고 했지. 한 번은 팔고, 한 번은 팔지 말라고.”
“그래.”
“그럼 누군가 열매에 소리를 넣은 게 아닐 수도 있어. 번개가 주변 소리를 저장한 걸 수 있어.”
이슬은 첫 열매의 껍질을 살폈다. 안쪽의 무늬가 밭 아래 뿌리 모양과 비슷했다. “이 농장에 창고가 있어?”
“씨앗 창고? 예전엔 있었대. 지금은 지주 회사가 밭을 정리하면서 없앴다고 들었어.”
“아버지는?”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봐.”
정환은 농장 문 앞에서 구름지주 조윤과 얘기 중이었다. 둘 사이에 계약서가 펼쳐져 있었다. 조윤은 수확량 그래프를 손가락으로 짚고, 정환은 작은 글씨를 읽으려 눈을 찌푸렸다.
“제가 기준량을 못 채우면 매입이 시작된다고 하셨죠.” 이슬이 다가갔다.
“사흘 동안 기준량을 충족하면 계약을 다시 협의합니다.” 조윤이 말했다. “하지만 현재 밭의 수분 상태로는 수확량이 더 떨어질 수 있어요.”
“그럼 밭을 사는 게 아니라 살리는 제안을 해야죠.”
조윤이 계약서를 접었다. “제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예요. 매입 대금을 받고 이주하거나, 통로가 지나가는 구역만 일정 기간 임대하는 것.”
나루가 끼어들었다. “임대료는 얼마죠?”
“수확량의 삼 할.”
“구름 통로 때문에 수분을 빼앗긴 밭에서 삼 할을 더 가져간다고요?”
조윤은 대답 대신 풍향계를 펼쳤다. “통로를 열면 습기가 발전소 쪽으로 빠집니다. 대신 다음 계절에 인공 강우를 제공할 수 있어요.”
“다음 계절까지 작물이 버텨야죠.” 이슬이 말했다.
“그러니까 매각 조건에 이웃 농장까지 포함하는 안을 냈어요. 한 곳만 남겨 놓으면 구름이 그 밭을 돌아 나가며 더 큰 기압 차이를 만들 테니까.”
“그 말은 결국 세 농장을 한꺼번에 사겠다는 뜻이네요.”
“당장 강제로 빼앗겠다는 건 아닙니다.”
“농장주가 가진 빚을 알고, 수확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못 맞추면 살 수 없게 하는 게 강제 아니면 뭐예요?”
정환이 이슬의 팔을 잡았다. “그만해.”
“아버지가 답해요. 계약서에 우리 이름만 있어요? 나루네 밭도 들어가요?”
조윤은 문서를 돌려 보였다. 세 필지가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그중 나루의 밭 경계는 가장 얇은 붉은 선으로 그어졌다. 나루가 종이를 빼앗듯 받아 들었다.
“나한테는 이 계약서 안 보여 줬어요.”
“정환 씨가 가족과 이웃을 함께 보호하겠다고—”
“내 밭은 내가 결정해요.” 나루가 말했다. “이슬네 농장 빚을 갚는 조건으로 내 밭이 넘어가면 안 돼요.”
정환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조건인 줄은 몰랐다.”
조윤은 계약서에 적힌 문장을 짚었다. “공동 소작권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아직 서명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 서명하지 않으면 되겠네.” 나루가 말했다.
“서명하지 않으면 매입 절차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슬은 깨진 번개 열매의 무늬를 기억했다. 목소리가 농장을 팔라고 한 이유는 협박이 아니었다. 과거의 농부들이 이런 계약을 반복해서 겪으며 남긴 소리일지 모른다.
“수확 기준량은 누가 정했어요?”
“발전소와 지주 회사가 공동으로 정합니다.”
“수분 손실은 계산했나요?”
조윤은 풍향계를 접었다. “수확량에 반영된 수치입니다.”
“그 수치, 어느 고도에서 측정했어요?”
“표준 고도요.”
“이 밭은 표준 고도보다 아래에 있어요. 구름 통로가 지나는 곳도 밭의 남쪽이고요. 평균값을 쓰면 북쪽 밭까지 수분이 빠진 걸 놓쳐요.”
나루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열매가 갈라진 자리를 봤어. 뿌리 쪽부터 수분이 빠졌어.”
조윤은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측정할 수 있으면 이의 제기를 접수하겠습니다. 단, 사흘 안에 수치와 수확량을 제출해야 해요.”
“오늘부터 세 밭을 따로 측정하겠습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수확은 멈추겠다는 뜻인가요?”
이슬은 말없이 바구니를 봤다. 열매를 계속 따면 기준량은 채울 수 있지만, 밭을 잃을 수 있었다. “네. 뿌리작물을 먼저 살릴게요.”
정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올해 열매 수익은 포기하는 거야.”
“아니요. 가장자리 열매만 따서 발전소에 보내고, 안쪽 밭은 쉬게 할 거예요. 기준량보다 적겠지만 수분 손실을 측정할 수 있어요.”
“그걸 회사가 받아들일까?”
“받아들이게 해야죠.”
나루는 허리춤에서 작은 풍향계를 꺼냈다. “내가 각 밭의 바람을 기록할게. 대신 내 밭 수확은 내가 결정해.”
“좋아.”
조윤은 계약서에 메모를 남겼다. “이의 신청 기간을 하루 연장하겠습니다. 제가 약속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예요.”
“왜 도와줘요?” 이슬이 물었다.
“돕는 게 아니에요. 계약을 정확히 하려는 겁니다.”
“그 차이를 나중에 물을게요.”
조윤은 비행선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구두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밭에서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 더 많은 흙이었다.
이슬과 나루는 세 필지의 수분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구름 농장의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지 않았다. 남쪽 밭에는 습기가 남았지만 북쪽은 바람을 빼앗겼다. 수확량을 늘리려면 북쪽에 열매를 더 심어야 했지만, 그러면 남쪽의 뿌리작물이 마를 터였다.
“둘 다 살리는 방법은 없어?” 이슬이 물었다.
나루는 지도에 고도를 표시했다. “번개 열매를 낮은 줄부터 따지 말고, 높은 줄의 바람을 먼저 막으면 돼. 풍차 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습기를 땅에 붙잡을 수 있어.”
“그러면 열매 전하가 불안정해지잖아.”
“수확할 때만 전하를 빼면 돼. 농사랑 발전을 같은 날 할 필요는 없어.”
이슬은 풍차를 바라봤다. 날개는 구름 통로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지주에게 팔려 했던 건 땅만이 아니었다. 수확 시간을 정하는 권리까지 넘길 뻔했다.
이슬은 나루의 제안을 시험하려고 풍차의 보조 날개를 반대로 고정했다. 바람이 들기 시작하자 구름 흙의 표면이 부드러워졌다. 북쪽 밭의 수분계가 조금 올라갔다.
“돼.” 나루가 수치를 불렀다. “여기서 두 칸 더 돌리면 더 많이 붙잡을 수 있어.”
이슬은 풍차 축에 손을 댔다. 작은 진동이 손끝에 닿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줄 알았지만, 장갑 너머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무리하게 축을 밀었고, 날개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꺾였다.
구름이 밭 위에서 흩어졌다. 덩굴 하나가 난간 밖으로 넘어갔다. 나루가 손을 뻗어 끌어당겼지만, 뿌리 두 줄이 흙에서 드러났다.
“멈춰!” 정환이 외쳤다.
이슬은 축에서 손을 뗐다. 밭은 더 마르지 않았지만, 바람을 너무 세게 꺾어 구름이 빠져나갔다. 나루가 덩굴을 다시 묶으며 이슬을 노려봤다.
“너 지금 감각 없는 거 숨기고 있지?”
“조금 저릴 뿐이야.”
“손으로 못 느끼는데 풍차를 돌렸잖아. 그게 조금이야?”
“수확을 멈추면 밭이 살아날 줄 알았어.”
“밭을 살리려면 네 손도 살아 있어야 해.”
정환은 이슬의 장갑을 벗기려 했다. 이슬은 뒤로 물러났다. “아버지도 다리 아픈 걸 숨기면서 저한테만 쉬래요.”
“내 다리는 네 수확에 영향을 주지 않아.”
“아버지가 넘어지면 밭을 누가 맡아요?”
정환은 말이 없었다. 나루가 뿌리를 흙으로 덮고 임시 지지대를 세웠다. “둘 다 맞는 말 하면서 서로 듣지 않네. 이슬은 지금 결정하지 말고 손을 쉬게 해. 아버지는 계약서 조건을 우리한테 전부 보여 줘요.”
“그래.” 정환이 짧게 답했다.
이슬은 손을 쉬는 대신 수분 기록을 맡았다. 세 사람은 해가 지는 동안 각 밭의 기압과 수분 변화를 적었다. 풍차를 역회전시키자 북쪽 밭은 잠깐 회복했지만, 동쪽 밭의 습도가 떨어졌다. 한 곳을 살리는 조정이 다른 곳을 말리는 셈이었다.
“날개를 고정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나루가 말했다. “구름을 붙잡을 때 뿌리 쪽으로 수분을 보내는 길이 필요해.”
정환은 오래된 밭 지도를 꺼냈다. “네 할머니가 쓰던 종자 창고 밑에 물길이 하나 있었어. 내가 농장주가 된 뒤 막아 뒀지. 썩은 배수관이라고 생각했거든.”
“왜 이제 말해요?”
“다시는 열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창고엔 씨앗만 있는 게 아니야.”
정환은 낡은 창고 열쇠를 이슬에게 건넸다. “네 할머니가 쓰던 씨앗 창고야. 그 안에 구름 흙을 다시 살릴 물길이 있을지도 몰라.”
“아버지는 열어 본 적 없어요?”
“문 앞까지 갔지만, 내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 약속을 지키느라 아무도 못 들어가게 막았지.”
이슬은 열쇠를 받았다. 번개 무늬가 깨진 열매의 껍질과 같았다. “그럼 내일 나루랑 같이 열게요. 아버지도 와요.”
“그래.”
“안에 있는 걸 누구한테 넘길지는 같이 정해요.”
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루는 손에 묻은 흙을 털고, 풍향계와 수분 기록지를 챙겼다. 내일 창고를 여는 일은 농장주 한 사람의 과거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세 사람이 땅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열쇠가 이슬의 손바닥에서 한 번 울렸다. 밭 아래 어딘가에서 오래된 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