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농장 막내는 번개를 수확한다

1화: 목소리 나는 첫 열매
“그 줄은 건드리지 마!”
나루의 외침이 바람에 찢어졌다. 백이슬은 이미 절연 장갑을 끼고 구름 덩굴에 매달려 있었다. 농장 가장자리의 번개 열매가 파랗게 부풀었다. 구름이 하루 종일 낮게 눌러앉은 뒤, 가장 먼저 익은 열매였다.
하늘섬의 밭은 땅보다 바람을 먼저 읽어야 했다. 바람 방향이 한 번 틀어지면 덩굴이 난간 밖으로 쏠리고, 열매를 놓치면 아래 구름층으로 떨어졌다. 이슬은 기압이 꺾이는 순간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지금은 따야 했다.
“한 번만 잡아 줘!”
나루가 밧줄을 당겼다. 이슬은 줄기에 절연 칼을 댔다. 번개 열매의 표면이 희미하게 떨렸다. 탁, 탁, 탁. 세 번째 떨림이 끝날 때 잘라야 껍질이 갈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슬이 칼을 눌렀다. 열매가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팔꿈치까지 전기가 타고 올라왔다. 장갑 안쪽이 뜨거워졌다. 이슬은 이를 악물고 수확 바구니에 넣었다.
그때 열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농장을 팔아.’
이슬은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열매는 구름 흙 위에서 한 번 튀고 멈췄다. 나루가 달려와 이슬의 손목을 붙잡았다.
“괜찮아? 감각 있어?”
“있어.”
“거짓말. 손가락 펴 봐.”
이슬은 주먹을 펴려 했지만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장갑을 벗자 검지와 중지에 감각이 없었다.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지만 화상처럼 아프진 않았다.
“첫 열매가 목소리를 냈어.” 이슬이 말했다.
나루는 열매를 귀 가까이 가져갔다. “아무 소리도 안 나.”
“농장을 팔라고 했어.”
“구름지주가 보낸 경고겠지.”
“열매 속에 음성이 들어갈 수 있어?”
“번개가 소리를 저장한다는 건 처음 들어.”
이슬의 아버지 정환은 밭 저편에서 넘어왔다. 절뚝이는 오른발이 구름 흙에 자꾸 묻혔다. 그는 이슬의 손을 확인하고 열매를 집었다.
“왜 바닥에 떨어뜨렸어?”
“목소리가 났어요.”
“열매는 전하를 저장하지 말을 하지 않아.”
“아버지는 직접 들었어요?”
정환은 답을 미뤘다. 그는 열매를 수확 상자에 넣고 덮개를 닫았다. “오늘 수확은 여기까지다. 나루, 남은 밭의 전하를 빼. 이슬은 작업실로 가.”
“아직 수확량이 부족해요.”
“손이 저려 있잖아.”
“괜찮아요.”
“네 손이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일이 커졌어.”
그 말은 이슬에게 더 아팠다. 아버지는 몸이 아픈 것을 숨기고 몇 달째 혼자 밭을 지켰다. 이슬은 농장을 지키려면 수확량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환은 농장을 팔면 가족이 더 이상 위험한 하늘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풍차가 크게 삐걱거렸다. 바람이 갑자기 북서쪽으로 돌아갔다. 나루가 밧줄을 놓쳤고, 덩굴 한 줄이 난간 바깥으로 넘어갔다.
“고정핀!” 나루가 외쳤다.
이슬은 감각 없는 손으로 밧줄을 잡았다.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열매 하나가 바구니에서 굴러 떨어져 구름 밭 경계로 향했다. 이슬은 몸을 던져 열매를 막았다. 발밑의 흙이 갈라지며 구름층 아래로 떨어졌다.
정환이 밧줄을 잡아당겼다. “이슬아!”
나루가 이슬의 허리띠를 잡고 반대편 고리에 묶었다. 이슬은 열매를 겨우 붙잡았지만, 장갑이 벗겨져 손끝이 맨살로 드러났다. 푸른 전기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또렷했다.
‘농장을 팔지 마.’
이슬은 몸을 뒤로 빼냈다. 정환과 나루가 그녀를 밭으로 끌어올렸다. 열매는 손에서 굴러 나와 흙에 부딪혔다. 껍질이 반으로 갈라지며 안쪽의 빛이 꺼졌다.
“이번에는 뭐라고 했어?” 나루가 물었다.
“팔지 말래.”
“방금은 팔라고 했다며.”
“그러니까 누군가가 일부러 소리를 넣은 거야.”
정환은 밭을 둘러봤다. “번개 열매를 더 따면 안 돼. 흙이 너무 마르기 시작했어.”
“올해 수확을 못 하면 지주가 밭을 가져가요.”
“내가 알아서 할게.”
“아버지는 매입 계약을 이미 받았잖아요.”
정환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말했어?”
“작업대 위 계약서 봤어요.”
“그건 아직 서명하지 않았어.”
“조건은 다 적혀 있던데요. 농장을 팔면 우리 빚은 갚을 수 있어도 나루 밭까지 같이 넘어가요.”
나루가 아버지를 봤다. “그게 사실이에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우리 밭을 빼 줄 방법은 없어요?”
“지주 쪽에서 구름 통로를 내겠다고 했어. 통로에 포함된 밭은 전부 매입해야 한대.”
이슬은 손끝을 움직여 보았다. 감각이 조금 돌아왔지만, 손바닥에 작은 떨림이 남았다. “그럼 우리가 열매를 많이 따면 통로를 넓히는 데 더 유리하겠네요.”
정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농장 위로 회색 구름이 갈라지며 접이식 비행선 한 척이 내려왔다. 구름지주의 수확 감독 조윤이 갑판에서 내렸다. 회색 외투 자락에 진흙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구두를 닦지 않고 밭으로 걸어왔다.
“첫 수확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예상량보다 적군요.”
“열매가 아직 덜 익었어요.” 나루가 말했다.
“오늘 안에 열매를 따야 구름 통로의 계약 효력이 생깁니다.”
이슬이 물었다. “누가 정한 계약이에요?”
조윤은 서류철을 꺼냈다. “농장주 백정환 씨가 임시 조건에 동의했습니다. 수확량이 기준에 못 미치면 매입 절차가 시작됩니다.”
“아버지는 서명 안 했어요.”
“이해관계자 서명은 있습니다.”
정환이 앞으로 나섰다. “아직 최종 계약은 아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사흘을 드리겠습니다. 세 농장의 열매를 합쳐 기준량을 채우면 매각 조건을 다시 협의하죠.”
“세 농장?” 나루가 물었다. “우리 밭까지 계약에 들어갔어요?”
조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슬은 깨진 열매를 내려다봤다. 안쪽에서 빛이 사라졌지만, 열매 껍질에 작은 소용돌이 무늬가 남아 있었다. 발밑의 흙에도 똑같은 무늬가 있었다.
“그 밭의 계약은 누가 시작했어요?” 나루가 물었다.
조윤은 서류를 다시 펼쳤다. “지주 회사가 수확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제안했습니다. 밭을 합치면 발전소에 번개 열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요.”
“그럼 왜 소작 밭까지 사야 해요? 통로만 지나가게 만들면 되잖아요.”
“구름층이 흔들리면 밧줄 다리와 풍차가 위험해집니다. 보상 없이 통로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나루가 웃었다. “보상은 농장을 사는 값보다 적겠죠.”
조윤은 계약서를 접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제가 정한 액수는 아니에요.”
“그럼 당신은 왜 여기 왔어요?” 이슬이 물었다.
“수확 감독은 기준량을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열매를 팔지 못하면 발전소가 계약을 취소할 수 있어요.”
“그럼 당신도 일자리를 잃겠네요.”
“그런 계산은 하지 말아요. 농장 계약과 제 고용은 별개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슬은 구름 농장에 사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만 조윤의 손실은 계약서에 적히지 않을 뿐이었다.
아버지 정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슬은 그를 따로 불러 밭 가장자리로 갔다. “사흘 뒤 매각되면 나루네 밭도 넘어가요.”
“알아.”
“그런데 왜 계약서를 받아 뒀어요?”
“빚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아. 네 손이 다치고, 풍차를 수리하고, 종자를 다시 사려면 농장을 팔아도 남는 게 없어.”
“그럼 팔아서 뭘 지켜요?”
“너희를.”
“우리는 농장에서 나가고 싶다고 한 적 없어요.”
정환은 절뚝이는 발을 구름 흙에 고정했다. “네가 어릴 때는 바람만 불어도 무서워했어. 여긴 너를 계속 다치게 할 거야.”
“무서운 건 알아요. 그런데 그걸 아버지 혼자 결정하면 안 돼요.”
정환은 계약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대답 대신 이슬의 손을 가리켰다. “감각부터 돌아오는지 봐. 농장은 그 다음이야.”
그녀는 감각 없는 손으로 구름 흙을 눌렀다. 흙은 바짝 말라 있었다.
나루는 손삽으로 표층을 걷어 냈다. 아래쪽 뿌리는 검게 갈라져 있었다. 번개 열매를 따려고 전하를 빼낸 자리마다 수분이 마르고 있었다.
“올해 기준량을 맞추려면 이 밭을 다 따야 해.” 나루가 말했다. “그러면 다음 달에 뿌리작물이 못 버텨.”
“그럼 기준량을 바꾸는 방법을 찾자.” 이슬이 답했다.
“사흘 안에?”
“사흘 안에.”
이슬은 손이 저린 채로 삽을 잡았다. 감각은 없었지만 흙이 갈라지는 소리는 들렸다. 더 따지 않겠다는 결정은 당장 매입을 막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말라 가는 뿌리를 지킬 수는 있었다.
“사흘 동안 무리해서 따면 밭이 죽어요.” 이슬이 말했다. “수확량을 맞추는 대신, 구름 통로의 바람을 다른 데로 돌리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조윤이 눈썹을 올렸다. “견습이 계약 조건을 바꾸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농부로서 조건을 다시 읽겠다는 거예요.”
정환은 이슬을 막지 않았다. 나루는 부러진 덩굴을 들어 올렸다. 조윤은 계약서를 닫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사흘 후에 다시 오죠. 그때까지 이 밭을 살릴 방법을 보여 주세요.”
비행선이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이슬은 손끝을 오므렸다. 아무 감각도 없었다. 바구니 속 첫 열매는 빛을 잃었지만, 갈라진 껍질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목소리는 아버지나 나루의 말투가 아니었다. 이슬은 바구니를 놓지 않았다. 손은 아직 저렸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열매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다가갔다. 다시.
‘창고 문을 열어.
이슬은 열매를 들고 창고 쪽으로 갔다. 문고리가 안쪽에서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루가 그녀의 뒤를 막아섰지만, 이슬은 문을 열지 않은 채 물었다. 누구 목소리야. 대답 대신 오래된 빗장이 한 칸 밀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