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2화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

AD
스폰서 광고

2화: 숨겨진 철거안

오말순은 주민회의에 입장권 뭉치를 가져왔다. 무도회장 회원들이 모여 합창과 춤을 연습할 때 쓰던 종이표였다. 한 장마다 날짜와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정도윤은 회의실을 원형으로 배치하려 했지만, 리원이 의자를 출입구 쪽으로 돌려 놓았다.

“무대를 바라보는 자리가 아니라 나가는 길부터 확인하자고요?” 도윤이 물었다.

“안전 점검이 끝나지 않았어요. 넘어져도 출구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민들한테 불안만 주는 것 아닐까요?”

“위험을 말하지 않는 게 안심은 아니죠.”

말순은 두 사람 사이에 입장권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공연 찬반보다 이 공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말할 겁니다. 노인들이 춤추는 곳만은 아니었어요. 젊은 사람들 연습도 하고, 동네 아이들 비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실에는 주민 열세 명이 모였다. 한 주민은 벽에 금이 간 걸 봤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그 금이 오래된 줄눈이라고 반박했다. 리원은 누가 맞는지 바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 금이 있는 벽면 사진과 위치를 받아 구조 기술자에게 넘기기로 했다. 도윤은 공연 취소를 걱정하는 대신 좌석과 출입 동선을 다시 그렸다.

“이렇게 하면 무대 앞을 비워 둘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인원을 줄여도 바닥의 하중은 계산해야 합니다.” 리원이 답했다.

“도면이 없어요.”

“기존에 등록된 건축 도면을 구해야 합니다.”

말순이 오래된 장부를 펼쳤다. “건물주가 보수 자료를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공연장 폐쇄 얘기가 나왔어요.”

도윤은 표정을 굳혔다. “이번 복원 사업에서는 그런 얘기를 못 들었습니다.”

“당신이 받은 자료에 없었다고 해서 없었던 건 아니죠.”

말순은 입장권 뒤에 적힌 날짜를 보여 줬다. 17년 전, 무대 바닥을 급히 보수한 날이었다. 그날 공연에서는 누군가 넘어졌지만, 병원 기록은 남지 않았다. 당시 관리자 이름은 도윤의 아버지와 같은 성이었다. 도윤은 장부를 덮었다.

“제 아버지는 여기서 시설 관리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사업 제안서에 썼어요. 하지만 사고 얘기는 몰랐습니다.”

“모르셨다는 걸 확인하는 게 지금 할 일이에요.” 리원이 말했다.

회의가 잠시 중단됐을 때, 도윤은 복도 끝에서 전화했다. 건물 소유 법인의 담당자는 철거 계획이 없다고 했다. 무도회장은 복원 사업이 승인됐고, 공연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통화가 끝나자 말순이 리원에게 낡은 보수 장부를 건넸다. “무대 아래를 확인해 주세요. 그날 바닥을 뜯었다고 적혀 있어요.”

무대 아래 공간은 낮은 문으로 막혀 있었다. 리원은 안전모와 조명을 가져오고, 구조 기술자가 도착할 때까지 내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도윤은 문 앞에서 기다리다 먼지가 쌓인 서랍을 발견했다. 무대 관리용 문서함이었다.

“그 안에 도면이 있을지 몰라요.”

“문서함은 열어도 괜찮겠죠.”

그는 잠금장치에 손을 대지 않고, 관리 열쇠가 있는지 말순에게 확인했다. 열쇠는 회의실 책상 아래 봉투에 있었다. 문서함을 열자 오래된 무대 배치도와 점검표가 나왔다. 가장 최근의 파일은 지난달 복원 사업의 예산서였다. 표지에는 ‘무도회장 복합개발 사전검토’라고 적혀 있었다.

도윤이 문서를 집어 들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죠?”

리원은 표지를 촬영했다. “먼저 위치와 발견 시각을 기록하고, 넘기기 전에 내용이 누구 소유인지 확인해요.”

“법인 문서면 가져가도 되겠죠?”

“그건 제 판단이 아닙니다.”

말순은 문서 첫 페이지의 도면을 보자 손가락을 멈췄다. 건물 전면은 보존 대상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내부 무도회장 바닥은 철거 후 상업시설로 바꾸는 계획이었다. 날짜는 복원 사업의 주민설명회보다 두 달 앞섰다. 문서 하단에는 ‘기존 무대 진동 및 바닥 균열을 유지비 증가 요인으로 활용’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진동이 있어서 철거하겠다는 게 아니라, 철거할 근거로 쓰려는 건가요?” 말순이 물었다.

“문서만으로 의도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리원이 답했다. “다만 복합개발 검토가 있었고, 안전 문제를 사업 근거로 분석했다는 사실은 확인됐어요.”

도윤은 문서를 쥔 손을 떨었다. “공연 승인 자료에는 복합개발 계획이 없었어요.”

“당신이 그 자료를 못 받은 건지, 확인하지 않은 건지부터 말해야 해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서를 내려놓았다. “제가 복원 사업을 받아야 공연장을 다시 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약서에 재개발 검토 조항이 있는 걸 보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말순이 그를 노려봤다. “그럼 주민들에게 복원이 확정됐다고 말한 건요?”

“제가 잘못 전달했습니다. 복원 예산이 승인된 것과 공간이 보존되는 건 다릅니다.”

리원은 그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주민에게 어떻게 알릴지 도윤이 선택해야 했다. 문서는 문서함에 그대로 두고, 사진과 발견 기록만 남겼다. 법인에 공식 자료 열람 요청을 보내기로 했다.

그때 무대 아래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벽에 세워 둔 금속 막대가 쓰러졌다. 도윤은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리원이 팔을 막았다.

“거기 들어가지 마세요.”

“소리가 아래서 났어요.”

“안전 기술자가 오기 전까지 접근 금지입니다.”

“누군가 안에 있을 수도 있어요.”

말순이 문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리원은 즉시 건물 관리자에게 연락해 무대 아래 공간을 비웠는지 확인했다. 명단에 실내 작업자는 없었다. 금속 막대는 진동에 넘어졌을 뿐이었다. 도윤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에서 물러났다.

“당신이 막지 않았다면 들어갔을 겁니다.”

“그럼 다쳤을 수도 있어요.”

“고맙습니다.”

“고마움보다 다음에 똑같은 판단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후 늦게 구조 기술자가 도착하기 전, 말순의 춤 모임에 다니는 청년 조은별이 운동화를 든 채 들어왔다. 그는 장애인 무용 수업을 보조하며 오늘 저녁에 연습하려고 했다. 무대에 출입 금지 안내가 붙은 걸 보고 걸음을 멈췄다.

“다른 데서 연습할 공간이 없어요. 여기 바닥이 휠체어가 돌기에 제일 넓습니다.”

도윤은 바로 대체 장소를 약속하지 못했다. “오늘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안전 확인이 필요해요.”

“그럼 언제까지요?”

“아직 모릅니다.”

은별은 운동화를 가방에 넣었다. “저희가 여기서 연습하면 공간을 쓸 권리가 있다는 걸 보여 줄 수도 있잖아요.”

“무대가 안전하지 않다면 그걸 증명하는 방식이 되면 안 돼요.” 리원이 말했다.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은별은 그들이 일정을 망쳤다고 화내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당장 연습해야 했고, 공간이 막히면 참가자들에게 연락해야 했다. 도윤은 무도회장 옆 회의실이 바닥 하중 확인을 마쳤다는 걸 떠올리고 관리인에게 물었다. 회의실은 좁았지만 휠체어 회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은별은 그곳에서 오늘 수업을 진행하고, 다음 장소는 주민들과 다시 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춤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연습할 수 있는 게 목적이에요.” 은별이 말했다.

말순은 그에게 입장권 뭉치 하나를 건넸다. “옛날 공연 표야. 오늘 수업은 네가 새 표를 만들어.”

은별은 웃지 않았지만 종이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번에는 무대가 안전한지 우리가 같이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점검 참관 신청을 넣겠습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그제야 은별은 회의실로 향했다. 리원은 그가 휠체어와 함께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임시 경사판은 미끄러웠고, 직원이 고무 패드를 덧대자 바퀴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무대가 닫혀도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의 일정은 계속됐다. 그 사실이 도윤의 도면에 작은 빈칸을 만들었다.

구조 기술자는 벽의 균열을 사진으로 남기고, 무대 하중을 임시로 계산했다. 무대는 출입 통제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시범 공연은 승인되지 않았다. 금속 막대가 떨어진 진동은 외부 공사 차량이 지나간 시각과 겹쳤지만, 원인을 확정하려면 추가 측정이 필요했다.

도윤은 주민회의를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무대 중앙에 서지 않고 출입문 옆에 섰다. “복원 사업의 예산은 승인됐지만, 내부 공간을 상업시설로 바꾸는 사전검토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계약 검토 때 확인하지 않았고, 주민에게 복원이 확정된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건 제 책임입니다.”

“그럼 공연은요?” 누군가 물었다.

“안전 승인 전까지 무대 공연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 확인된 정보와 점검 일정은 공개하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법인에 자료를 함께 요청해 주세요.”

“그걸로 공간을 지킬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리원은 그가 자신의 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책임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회의가 끝난 뒤, 그녀는 문서함에 있던 오래된 스프링 악보를 살폈다. 악단의 태엽통을 고정하던 홈 안에 얇은 종이 조각이 끼어 있었다. 한 줄이 읽혔다. ‘해체 일정은 안전 판정 전까지 외부에 공개하지 말 것.’

그 종이는 누군가가 기계 안에 숨긴 듯 접혀 있었다. 리원은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

“공연을 막으려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까요?” 도윤이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몰라요.”

“그럼 공개하지 말아야 하나요?”

“확인되지 않은 의도를 말하지 않고, 문서가 발견된 사실을 알려야죠.”

도윤은 주민 대표들에게 전화하기 전에 리원을 바라봤다. “당신도 같이 와 주겠습니까?”

“제가 본 기계 상태와 기록만 설명할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리원은 그에게 동의했다. 복도에 늘어선 의자 사이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무대는 폐쇄됐지만, 무도회장은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중요한 문서를 보여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