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

1화: 멈춘 악단
김리원은 기계식 악단의 태엽을 세 번째로 감지 않았다. 놋쇠 손잡이를 당기자 축이 반 바퀴 움직였다가 딱, 하고 멈췄다. 금속을 갈아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어딘가에 걸리는 소리였다.
“더 돌리면 안 됩니다.”
뒤에서 공연기획자 정도윤이 말했다. 그는 무대 도면을 든 채 악단과 리원 사이에 서 있었다.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손은 손잡이에 다가와 있었다.
“저도 알아요.” 리원이 말했다. “그래서 멈췄습니다.”
“내일 시범 공연이에요. 이게 멈춰 있으면 악단을 빼야 하고, 그러면 공연 구성이 바뀝니다.”
“고장 원인을 모르면 빼야죠. 억지로 돌리면 톱니가 나갑니다.”
도윤은 손잡이에서 손을 거뒀다. 무대 위에 놓인 금색 장갑 한 짝을 집어 작업대에서 멀리 옮겼다. 수리 도구에 닿지 않게 하려는 듯했다. “그럼 얼마나 걸립니까?”
“열어 봐야 알아요.”
“오늘 안에요?”
“기계는 일정표를 읽지 않아요.”
도윤은 웃지 않았다. 리원은 장갑을 벗어 확대경을 눈에 붙였다. 기계식 악단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자동 연주 장치였다. 태엽통 세 개와 작은 금속 타인, 네 명의 목제 인형이 기어에 물려 있었다. 이번 복원 사업에서 작동부를 세척했지만, 부품을 교체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작업 기록에 적힌 마지막 장력 값을 확인했다. 누군가 잠금핀을 반만 뽑아 둔 흔적이 있었다.
“이 상태로 시범 연주를 해 보셨나요?”
“아니요. 어제 리허설 때는 첫 소절까지 나왔습니다.”
“그 뒤에 누가 만졌죠?”
“기술팀은 철수했고, 악단은 제가 잠금 덮개를 씌웠습니다.”
“그럼 덮개를 열기 전 기록부터 확인해야 해요.”
“지금 확인하면 공연 준비가 늦습니다.”
“확인 없이 열면 부품을 잃을 수 있어요.”
도윤은 무대 뒤쪽을 둘러봤다. 낡은 무도회장은 천장에 샹들리에를 달고 있었고, 관객석 대신 둥근 바닥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최근 보수한 목재가 짙은 색으로 남아 있었다. 주민대표 오말순은 그 자리에서 춤 교실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관람석 끝에서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기계가 멈춘 게 처음은 아니에요.” 말순이 말했다. “예전에도 곡 중간에 멈췄습니다. 그땐 사람들이 웃고 넘어갔어요.”
“언제였는지 기억나세요?” 리원이 물었다.
“작년 겨울. 그런데 그땐 바닥에서 이런 떨림이 없었어요.”
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보고를 받았는데, 공연 장비 문제로만 처리했습니다.”
리원은 그를 돌아봤다. “건물 진동은 확인 안 했습니까?”
“당시에는 기준을 넘는 진동이 없었습니다.”
“그걸 기록으로 보여 주세요.”
“문서가 있습니다.”
“기계 기록과 건물 기록을 같이 봐야 해요.”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안전 점검 파일을 열어 리원에게 건넸다. 그녀는 페이지를 넘겼다. 무도회장 바닥의 기준선은 있었지만, 악단을 가동한 상태의 진동은 측정하지 않았다.
“공연 때는 사람이 춤을 춥니다.”
“그때 하중을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시설 관리업체는 안전하다고 했어요.”
“누가 언제 확인했죠?”
도윤은 답을 찾지 못했다. 말순이 그의 옆에서 무대 바닥을 내려다봤다. “건물주가 재개장 전에만 검사한다고 했어요. 그 전에는 공연을 하지 말라고 했고.”
“그런데 내일 시범 공연은 왜 해요?” 리원이 물었다.
도윤은 손에 든 도면을 접었다. “계약상 홍보 행사가 잡혀 있습니다. 주민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냈고요.”
“안전 승인이 없으면 공연을 취소해야 합니다.”
“취소하면 재개장 예산이 줄어들 수 있어요.”
“사람이 다치면 예산보다 더 잃죠.”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연을 중지할 권한은 제게 없어요.”
“그럼 권한 있는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세요.”
“신고하면 건물주가 무대 전체를 폐쇄할 수 있습니다.”
“신고하지 않으면요?”
도윤은 무대 도면을 내려놓았다. “당신 말대로, 사고가 날 수 있겠죠.”
리원은 악단의 받침대 아래에 얇은 종이를 밀어 넣었다. 한쪽 모서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기계가 아니라 바닥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 확대경을 떼고 말순에게 안전한 위치로 이동해 달라고 했다.
“여기서 공연이 열리면 관객은 어디에 서죠?”
도윤은 도면을 다시 펼쳤다. 춤추는 바닥 주변에 의자를 둥글게 놓는 배치였다. 출입구와 무대 사이의 통로가 좁았다. “입장 인원을 40명으로 제한합니다.”
“그 인원이 이 바닥 진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요?”
“아직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숫자를 정해 놓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네요.”
말순은 좌석 배치도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 자리에 앉으면 출입구가 안 보입니다. 예전에 어르신이 넘어졌을 때 밖으로 나가는 데 오래 걸렸어요.”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 사고도 기록에 있습니까?”
“병원에 간 사람은 없어서 보고하지 않았어요. 발목을 삐끗한 정도였으니까.”
“그때도 바닥이 흔들렸나요?”
“그때는 악단이 연주 중이었습니다.”
리원은 작업 장갑을 다시 꼈다. “먼저 악단을 안전하게 열고, 받침대 진동을 측정하죠. 공연 여부는 구조 점검 이후 결정해야 합니다.”
“내일 오전까지 다 확인할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확인을 시작할 수는 있어요.”
도윤은 휴대전화를 들어 시설 관리자에게 연락했다. 구조 기술자를 부르겠다고 했다. 그는 통화에서 공연 일정이 위험하다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뒤, 말순에게도 사고와 진동 기록을 추가로 받아도 되는지 물었다. 말순은 그 기록을 홍보에 쓰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리원은 악단 덮개를 열기 전에 각 모서리 사진을 찍었다. 잠금핀은 오른쪽에서만 긁힌 자국이 있었다. 표면에 남은 기름은 새것이었다. “이건 어제 제가 넣은 기름이 아니에요.”
도윤이 가까이 왔다. “누가 손댄 거죠?”
“아직 모릅니다. 손댄 흔적이 있다는 것만 기록합니다.”
“기계가 멈춘 원인은요?”
“열어 봐야 합니다. 지금은 잠금핀을 누군가 반쯤 빼고 기름을 더 넣었다는 사실만 확인됐어요.”
그녀는 덮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태엽통의 가장자리에 검은 가루가 끼어 있었다. 톱니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눌려 있었다. 계속 감았으면 빠져나온 톱니가 다른 부품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누가 수리하려다 망가뜨린 건가요?” 도윤이 물었다.
“수리하려 한 건지, 일부러 멈추게 한 건지 모릅니다.”
“공연을 막으려는 사람이라면?”
“그건 추측이에요.”
리원은 작업대 위에 빠진 금속 조각을 올렸다. 소리가 작게 났다. 도윤은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말순은 무도회장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 젊은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바닥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때는 음악이 멈춰도 사람들이 계속 춤을 췄어요.” 말순이 말했다.
“그럼 이번에도 음악 없이 공연할 수 있나요?” 도윤이 물었다.
“사람들이 원하면요. 하지만 바닥이 안전한지 먼저 알아야죠.”
리원은 부품을 작은 투명 봉투에 담았다. 떨어진 위치와 방향을 적어 두고 태엽을 손으로 고정했다. “기계가 다시 돌아가는 것과 공연을 열 수 있는 건 별개입니다.” 복원은 고장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어떤 상태로 멈췄는지 잊지 않는 일이었다.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악단보다 바닥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구조 기술자가 올 때까지 무대 위 출입을 막아 주세요.”
“그럼 리허설은 취소됩니다.”
“아직 취소가 아니라, 안전 확인 전까지 보류예요.”
도윤은 객석 입구에 임시 안내문을 붙였다. ‘무대 점검 중. 출입 금지.’ 그는 공연 취소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무대 뒤쪽에서 스태프들이 항의했지만, 그는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리원은 작업대를 정리하면서 그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안내문을 붙이고 돌아온 도윤은 손에 먼지를 묻힌 채 말했다. “이 공간을 다시 열고 싶다는 마음이 안전을 앞섰습니다.”
“알고 있으면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어요.”
“당신은 항상 다음 선택을 믿나요?”
“기계는 고장 난 뒤에도 상태를 보여 줍니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요.”
그는 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리원은 악수하라는 뜻인지 공구를 받겠다는 뜻인지 물었다. 도윤은 손을 거두며 웃었다. “공구를 받으려던 겁니다.”
“어떤 공구요?”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럼 손부터 내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무도회장 바닥에서 깊은 울림이 올라왔다. 악단은 멈춰 있었고, 전원도 연결되지 않았다. 울림은 무대 아래쪽을 지나 출입구 벽에서 사라졌다. 리원은 지면에 손을 대지 않고 진동계를 켰다. 수치는 기준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어제 기록보다 뚜렷하게 컸다.
“지금 누가 건물 안에 있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도윤은 스태프 명단을 확인했다. 한 사람이 지하 창고에 내려가 있었다. 그곳은 무대 아래와 맞닿은 공간이었다. 도윤은 그 사람에게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연락했다. 잠시 뒤, 천장 틈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리원은 기록을 저장했다. 멈춘 악단은 고장 났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아래에 있었다. 도윤은 공연장을 폐쇄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건물주가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