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3화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

고장 난 무도회장의 파트너

AD
스폰서 광고

3화: 어긋난 박자의 춤

시범 공연 날 아침, 리원은 기계식 악단의 태엽통을 작업대에 올렸다. 구조 기술자가 무대 출입을 금지한 뒤라 악단은 홀에서 분리되어 수리실로 옮겨졌다. 태엽은 풀린 상태로 고정했으며, 기어를 돌리지 않았다. 무대 안전 검토는 오후에 끝날 예정이었다. 공연팀은 관객이 도착하기 전까지 공연을 취소할지 결정해 달라고 했다.

“태엽을 한 칸만 감아 보면 안 될까요?” 도윤이 물었다.

“안 됩니다. 축이 고착되면 파편이 튈 수 있어요.”

“그럼 관객에게 들려줄 음악이 없어요.”

“기계가 정상 작동한다는 걸 입증할 수 없어요.”

그는 이마를 문질렀다. “어제 주민에게 사실을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공연도 취소해야겠죠.”

“저는 공연을 열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전 승인이 없다는 사실은 알려야 해요.”

도윤은 공연 취소 안내문을 작성했다. ‘기계식 악단 고장 및 구조 안전 확인 중’이라고 적은 뒤, 리원에게 보여 줬다. 그녀는 ‘구조 점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무대에 출입할 수 없다’는 문장을 추가해 달라고 했다. 고장 원인을 건물 균열로 단정해서도, 악단만의 문제로 축소해서도 안 됐다.

“오늘 공연은 취소하지만, 관객과 주민에게 설명 자리를 열겠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설명회에서 문서함에 있던 개발 검토안도 공개할 건가요?”

“법인 문서라 제 마음대로 배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발견 사실과 열람 요청을 공개하세요. 내용을 숨겼다고 오해받지 않게.”

“제 계약에도 그 법인이 들어 있습니다.”

“알아요.”

그는 리원을 바라봤다. “계약을 잃어도요?”

“그건 당신이 선택해야죠.”

도윤은 안내문을 출력했다. 리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관객들에게 직접 알리도록 그를 따라갔다. 입구 앞에는 무도회장 회원들과 외부 손님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공연 취소에 항의했고, 누군가는 무대 안전을 묻고 있었다. 말순은 안내문을 읽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공연이 취소된 건 아쉽지만, 안전 확인 전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 회의에서 확인된 자료를 보여 주세요.”

관객 사이에서 박수가 한 번 났다가 멈췄다. 홍보팀 직원이 휴대전화를 들고 리원의 작업대를 촬영하려 했다. 리원은 손을 들어 중단을 요청했다.

“부품 상태 사진은 수리 기록입니다. 공개할 자료는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관객에게는 복원 과정을 보여 줘야 합니다.” 도윤이 홍보 담당자에게 말했다. “리원 씨 동의 없이 작업을 찍지 마세요.”

“그러면 어떤 영상도 못 찍잖아요.”

“공개하기로 한 자료만 찍으세요.”

그는 리원의 도구를 가리지 않고, 촬영선 바깥으로 작업대를 옮겼다. 리원은 고개로 고마움을 표한 뒤 작업을 계속했다. 태엽통을 안전 고정대에 고정하자 안쪽에서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을 멈췄다.

“이 안에 뭔가 있습니다.”

“금속 파편인가요?”

“종이일 수도 있어요. 소리만으론 확정 못 합니다.”

태엽통의 안쪽은 둥근 축 주위로 좁은 빈 공간이 있었다. 누군가 작은 물건을 넣고 뚜껑을 닫을 수는 있었다. 리원은 외부 상태를 촬영하고, 구조 기술자에게 비금속 내용물이 끼었을 가능성을 알렸다. 기술자는 안전 고정이 확인된 뒤 열어 보라고 했다. 그 사이 관객 설명이 시작됐다.

도윤은 홀 바깥 회의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공연은 취소합니다. 구조 안전 점검 결과가 아직 없고, 기계식 악단은 태엽 고착이 확인됐습니다. 무대에 균열이 있다는 의심도 조사 중입니다. 확정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추정은 구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관객이 물었다. “그럼 이 공연장은 철거되나요?”

“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복원 사업과 별도로 내부 공간을 상업시설로 바꾸는 사전검토 문서가 발견됐습니다. 제가 계약을 확인하면서 그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말순이 입장권을 쥔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문서가 무대 밑에 있었다는 것도 말해요.”

도윤은 잠시 멈췄다. “무대 관리 문서함에서 발견했습니다. 또 다른 단서는 악단 태엽통 내부에서 들려, 안전 조치 뒤 확인할 예정입니다. 개인이나 회사가 문서를 숨겼다고 지금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오늘은 공연을 포기하고 자료만 보여 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춤추는 바닥이 안전하지 않은데 음악만 틀 수는 없습니다.”

그는 사전에 준비한 발표 슬라이드를 모두 닫았다. 대신 주민들에게 구조 점검 결과를 받는 공개 일정을 제안했다. 소유 법인에 자료를 요청하는 서명 용지도 돌렸다. 일부 관객은 서명하지 않고 나갔다. 한 아이는 단 한 번도 기계식 악단을 보지 못했다고 울었다. 말순은 그 아이와 보호자에게 무도회장 입장권 한 장을 건넸다.

“오늘은 못 춰도, 안전한 날 다시 올 수 있어.”

아이의 어머니가 도윤에게 물었다. “그날이 언제인지 누가 정하죠?”

“구조 기술자와 주민대표가 함께 확인한 뒤 정하겠습니다.”

“당신 혼자 날짜를 정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네. 그게 맞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기술자가 태엽통을 열어도 된다고 확인했다. 리원은 기록 카메라를 켜고, 말순과 도윤에게 옆에서 지켜봐도 되는지 물었다. 둘 다 동의했다. 태엽통의 안쪽을 분리하자 오래된 얇은 종이가 납작하게 말려 있었다. 종이에는 건물 구조 검토 날짜와 내부 공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옆줄에는 ‘안전 판정 전에는 철거 계획을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말순은 종이를 보자 눈을 감았다. “내가 주민설명회에서 철거 얘기를 들은 건 두 달 뒤였어요.”

도윤은 문서 하단의 결재란을 살폈다. 결재자는 법인 시설팀이었고, 날짜는 악단의 마지막 정비 기록과 같았다. 이름은 가려져 있지 않았다. 그 문서만으로 악단을 일부러 고장 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철거 일정과 안전 검토가 같은 날 묶여 있었고, 누군가 계획을 숨기려 했다는 흔적은 분명했다.

“이걸 공개하면 법인이 소송을 걸 수 있어요.” 도윤이 말했다.

“문서 원본을 가져가진 않겠습니다.” 리원이 말했다. “발견 장소와 상태를 기록하고, 사본 공개 범위를 주민과 확인하세요.”

“사본을 만들면 내용은 퍼질 텐데요.”

“이미 공개된 복합개발 검토안과 날짜가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내용이 불리해도 검증받아야 해요.”

도윤은 문서를 놓지 않은 채 망설였다. 그의 휴대전화에 법인 담당자의 전화가 떴다. 그는 스피커를 켰다.

“문서에 대해 외부 발언하지 마십시오. 공연 취소 공지만 하세요.”

“그 문서가 태엽통 안에서 나왔습니다. 주민대표가 함께 확인했습니다.”

“원본은 법인 소유입니다. 가져오십시오.”

“원본은 무도회장 기록으로 보관해야 합니다. 복사본을 요청하고, 발견 사실을 공개하겠습니다.”

“계약을 유지하고 싶다면 신중하게 행동하세요.”

도윤은 리원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저어 보이지도 않았다. “신중하게 하겠습니다. 침묵하는 게 신중함이라면 따르지 않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그는 법인 담당자에게 문서 상태 확인을 요청하는 메일을 작성했다. 말순은 주민대표 세 명의 서명을 받아 자료 열람을 요구하기로 했다. 리원은 태엽통과 종이의 사진을 각각 촬영하고, 원본을 다시 넣지 않은 채 보관 봉투에 밀봉했다.

무대는 안전 점검을 기다리며 닫혔다. 관객은 춤을 추지 못했지만, 회의실 한쪽에서 오래된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은별이 리듬을 손으로 두드렸다. 말순은 의자에 앉아 박자를 맞췄다. 그들은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 몸을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 다른 속도로 무릎을 움직이며 노래를 이어갔다.

도윤은 그 모습을 보다가 리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먼저 물었다. “여기서 같이 박자를 세어도 될까요?”

“손은 잡지 않는 조건으로요.”

“알겠습니다.”

둘은 한 발 간격을 두고 서서 음악을 들었다. 도윤의 박자는 조금 빨랐고, 리원의 박자는 늦었다. 둘은 억지로 맞추지 않았다. 노래가 끝난 뒤 도윤이 말했다.

“공연장을 지키는 일은 원래의 박자를 되찾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고장 난 걸 그대로 반복하면 또 고장 나요.”

“그럼 새 박자를 함께 만들어야겠네요.”

“주민들과요.”

“네. 주민들과.”

그는 그녀의 말을 고쳐 받았다. 리원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함께 춤을 추자는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의 속도를 물어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 구조 기술자는 무대 보강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당분간 관객 출입은 제한하지만 건물 전체를 철거할 근거는 없었다. 주민들은 공개 점검 협의회를 꾸렸고, 법인에 안전 자료와 개발 검토안을 함께 요구했다. 공연은 중지됐지만, 복원 사업의 다음 일정은 주민의 참관 아래 진행하기로 했다.

리원은 악단 작업 기록에 ‘태엽통 내부에서 개발 검토 메모 발견. 작동 시험 중지 유지’라고 적었다. 도윤은 그 옆에 이름을 적었다. 그가 처음으로 기록의 책임을 함께 지겠다고 나선 순간이었다.

“다음 리허설은 언제일까요?” 그가 물었다.

“무대가 안전하다고 확인된 다음입니다.”

“그럼 개인적으로 춤을 배우는 건요?”

리원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박자를 듣는 데까지만 했어요.”

“그 다음은요?”

“다음에 다시 물어보세요.”

그는 웃었다. 악단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그러나 리원은 다음에 태엽을 감을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도윤은 공연을 취소한 뒤에도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걸 배웠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