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시계가 모이는 집

3화: 보류표에 적힌 이름
최복자는 아침에 전화해 회중시계를 맡기겠다고 했다. 다만 수리 전 견적을 받고, 원래 부품을 교체하지 않는 조건을 원했다. 이재하는 시계를 직접 가져와 달라고 했다. 시계가 지금까지 누구의 손에 있었는지, 태엽과 뒷판에 외부 손상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복자는 천으로 감싼 시계를 들고 가게에 왔다. 이정미는 접수표를 새로 만들고, 의뢰 범위와 보관 기간을 적었다.
복자는 할아버지가 10년 전 시계를 열었다가 닫았다고 설명했다. 재하는 뒷판의 나사를 살펴봤다. 한 나사에는 드라이버 자국이 남아 있었고, 다른 세 개는 마모가 심했다. 그는 시계를 열기 전에 자국을 촬영하고 복자에게 보여 주었다. 원형 나사는 더 손상될 수 있어 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복자는 원본 부품을 보존하는 일이 수리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 오늘은 외부 점검만 하고, 분해는 따로 동의를 받겠습니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했을까?”
“기록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어요.”
재하는 그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을 상상해 복자에게 돌려주는 건 정확하지 않았다. 복자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며, 기억을 확인하는 대신 현재 시계 상태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재하는 뒷판을 열기 전에 기계식 회중시계용 받침에 고정했다. 나사를 강제로 돌리지 않고, 표면에 맞는 드라이버를 골랐다. 첫 나사는 풀리지 않았다. 재하는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고, 접수표에 ‘나사 마모로 개방 위험’이라고 기록했다. 복자는 시계를 그대로 가져갈지, 추가 개방 절차를 맡길지 선택해야 했다. 그는 비용과 손상 가능성을 안내했고, 작업을 계속하려면 별도 도구와 시간이 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왜 멈췄을까?” 복자가 물었다.
“그때도 나사가 마모돼 있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상태만으로 당시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나는 그냥 멈춘 시계를 맡긴 사람이 아니네. 열어 보려다가 더 다칠 수 있어서 멈춘 건지도 모르니까.”
재하는 시계를 열 수 있다는 보장을 하지 않았다. 복자는 본인이 원본 부품을 지키는 범위에서 개방을 시도해도 좋다고 서명했다. 재하는 나사 머리에 맞는 작은 공구를 사용해 조금씩 힘을 주었다. 금속이 미세하게 돌아가는 순간 소리가 났다. 그는 즉시 멈추고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나사는 손상되지 않았다. 복자는 그가 더 서두르지 않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뒷판이 열리자 내부에는 먼지와 굳은 윤활제가 보였다. 태엽은 풀려 있었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기어 하나의 축 주변이 마모되어 흔들렸다. 재하는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세척·윤활만 하면 잠시 작동할 수 있지만, 오차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모 부품을 새 부품으로 바꾸면 작동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원형 부품이 바뀐다. 복자는 작동보다 보존을 택했다. 세척과 윤활을 하고, 기존 기어는 별도 보관해 달라고 했다.
작업 동의서에는 수리 후 예상되는 오차 범위와 보증이 어렵다는 점을 적었다. 정미는 복자에게 부품을 돌려주고, 수리 후에도 상태가 변하면 재점검 비용이 생길 수 있다고 안내했다. 복자는 조건을 읽고 서명했다. 재하는 곧바로 분해하지 않았다. 먼저 작업대와 공구를 닦고, 시계의 부품이 놓일 순서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할아버지의 수리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 대신, 자신이 확인한 상태를 기준으로 작업했다.
점심 무렵 정미는 가게의 한 달 운영안을 가져왔다. 임대료, 공과금, 부품 비용, 재하의 견습 수업료가 적혀 있었다. 매각 문의자는 이번 주까지 답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공구 보관 조건은 여전히 불명확했다. 정미는 한 달 동안 운영하면 비용이 얼마나 더 들지 계산했다. 재하는 하루 접수 가능한 시계 수와 한 건당 작업 시간을 적었다. 모든 의뢰를 받으면 수리 품질을 보장할 수 없었다.
“하루 두 건 이상은 받지 말자.” 재하가 말했다.
“그럼 매출이 부족할 수 있어.”
“점검과 수리 시간을 구분하고, 부품이 없는 시계는 접수 전에 안내할게요. 교육일에는 접수를 닫고요.”
정미는 입구 안내문에 작업 범위와 예약 가능 시간을 적자고 했다. 재하는 가게 문을 닫는 날에도 전화 문의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정미는 예약을 자신이 대신 관리할 수 있지만, 실제 수리 가능 여부는 재하가 판단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둘은 매주 금요일에 접수량과 지출을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한 달 뒤 매출이 부족하면 운영 연장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재하는 같은 계열의 폐기 부품을 꺼내 윤활제를 얼마나 사용할지 시험했다. 지나치게 많이 바르면 먼지가 붙고, 마모된 축의 움직임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시험한 흔적을 닦아 내고 새 천으로 공구를 정리했다. 정미는 작업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고 알려 주었다. 재하는 견적서에 적힌 공임 범위 안에서 마무리하고, 추가 작업은 다시 동의를 받기로 했다. 고객의 시계가 작업대 위에 있다고 해서 시간을 무제한으로 쓸 수는 없었다.
복자는 작업대 옆 의자에 앉아 수리 중인 회중시계를 바라봤다. 그녀는 시계가 어느 순간 멈췄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젊었을 때 역무실에서 시간을 확인하던 습관은 있었지만, 회중시계를 매일 들고 다니지는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수리점에 남겨 두자고 했을 때, 복자는 그 말을 귀하게 간직했다. 이제 와서 그 약속이 실제로 수리하겠다는 뜻이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그날 할아버지는 시계를 그냥 두고 가라고 했어요. 나는 그 말을 기다리라는 뜻으로 들었지.”
“기다리라는 말이었는지 보관하라는 말이었는지는 기록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되겠네.”
복자는 시계가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지만, 맡겨 둔 물건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재하는 수리 후 작동 여부와 오차를 보여 주고, 원본 부품을 함께 돌려주겠다고 했다. 복자는 정확한 시각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대신 작업한 곳과 남겨 둔 곳을 분명히 표시해 달라고 했다.
재하는 시계를 분해해 세척했다. 먼지를 제거하고, 부품을 하나씩 검사했다. 마모된 기어는 따로 보관하고, 기존 부품은 세척 후 재장착했다. 윤활제는 필요한 지점에만 소량 도포했다.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태엽을 감자 초침이 움직였지만, 일정한 속도로 가는지 확인하려면 더 긴 측정이 필요했다. 재하는 바로 완료라고 쓰지 않고 ‘작동 확인, 오차 측정 중’이라고 표시했다.
정미는 수리점 운영 기간을 한 달로 한정해 임대인에게 통지했다. 계약 갱신이 아니라 단기 연장 가능 여부를 묻는 서면이었다. 임대인은 한 달 단위 연장은 어렵지만, 보증금 조건을 유지한 채 두 달 시험 운영을 허락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재하는 두 달이라는 기간이 교육과 수리 실적을 확인하기에 충분한지 생각했다. 정미는 그 선택을 재하에게 맡기면서, 계약금과 관리비를 누가 부담하는지 먼저 합의하자고 했다.
재하는 수리 수입에서 고정 비용을 뺀 금액을 주간으로 계산했다. 적자가 날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견습 과정과 가게 운영을 병행할 수 있는 최소 일정을 만들었다. 그는 정미에게 두 달 시험 운영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미는 가족의 돈을 추가로 빌려 주지는 않겠지만, 계약 확인과 장부 관리는 맡겠다고 했다. 재하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운영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모가 무조건 책임을 나눠야 하는 건 아니었다.
퇴근 전 회중시계는 네 시간 동안 3분 느려졌다. 재하는 오차를 숨기지 않고 복자에게 설명했다. 기계가 움직이지만 정확한 시간 측정용으로 쓰기엔 불안정했다. 복자는 예상한 결과라며, 완벽하게 맞추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했다. 재하는 작업한 부품과 보존한 부품을 나란히 작은 봉투에 넣었다. 복자는 회중시계를 가지고 가기 전에 보증 범위와 추가 점검 비용을 확인했다.
그녀는 시계를 손목에 감지 않았다. 천에 다시 감싸 가방에 넣었다.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다음 달에 다시 오차를 재기로 했다. 재하는 접수표에 다음 방문 날짜를 적었다. 복자는 다음 번에는 비용을 미루지 않겠다고 했다. 정미는 장부에 미수금을 적지 않고, 이미 지불받은 점검·작업비만 기록했다.
정미는 임대인에게 보낼 답을 쓰기 전에 재하에게 가게를 왜 이어 가고 싶은지 물었다. 재하는 할아버지가 남긴 수리대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배운 기술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다르다고 말했다. 둘 중 하나만 이유라면 운영을 오래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정미는 자기가 가게를 정리하자고 한 건 돈이 걱정돼서였고, 재하가 어떤 준비를 했는지 묻지 않은 건 미안하다고 했다. 재하는 이모가 돈을 대신 부담할 거라고 가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두 달 동안 실제 지출을 보고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가게를 닫기 전에 재하는 할아버지의 보류표를 정리했다. 수리 보류, 고객 미접수, 부품 대기 세 가지로 나누어 목록화했다. 그중 고객에게 보내지 않은 통지서가 한 장 나왔다. 봉투 앞면에는 이름이 없었고, 내용에는 ‘부품 주문을 취소하고 시계를 돌려드리겠다’고 적혀 있었다. 날짜는 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일주일 전이었다.
정미는 그 편지가 누구에게 갈 예정이었는지 몰랐다. 재하는 봉투를 열어 안쪽에 적힌 접수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는 최근 장부에서 지워진 한 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시계의 종류와 주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답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재하는 다음 날 오래된 접수표를 대조하기로 했다.
수리점은 두 달 더 문을 열기로 잠정 결정됐고, 회중시계는 제한 수리를 거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끝내 돌려보내지 못한 시계의 주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재하는 보류표를 접지 않고 작업대 위에 두었다. 그 이름을 찾는 일은 다음 수리의 일부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