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시계가 모이는 집

1화: 열 시 십칠 분의 멈춤
가게 셔터를 올리자 안쪽에서 초침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이재하는 문을 반쯤 연 채 멈춰 섰다. 작업대 위 작은 시계 하나가 똑, 똑,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졌던 시계였다. 벽에 걸린 시계들은 대부분 멈춰 있었지만, 작업대 위 것만 혼자 시간을 세고 있었다.
재하는 앞치마를 걸고 전원을 켰다. 조명 아래에는 할아버지의 돋보기 안경과 십자 드라이버가 놓여 있었다. 나무 벽시계의 접수표에는 ‘최복자, 오차 확인, 열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하는 접수표를 한 번 더 읽었다. 시계가 멈추지 않았으니 고장이라고 보기 어려웠지만, 의뢰인은 시간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열지 말 것”은 이상한 요청이었다. 오차를 측정하려면 최소 며칠 동안 움직임을 확인해야 했다. 내부를 열지 않아도 가능했지만, 먼저 시계를 작동한 상태로 두고 기준 시각과 비교해야 했다. 재하는 시계 뒷면을 열지 않고 벽에 걸었다. 접수 시간은 오전 열 시 십칠 분이었다. 그는 기준 시각을 맞춰 두고 하루 뒤 다시 확인하기로 메모했다.
이모 이정미가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가게 안을 둘러본 뒤 임대료 고지서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다음 달 계약 갱신을 결정해야 했고, 연체된 공과금과 부품비도 있었다. 재하는 지난주 할아버지가 맡아 둔 시계부터 처리하겠다고 했다. 정미는 어떤 시계가 수리 대상인지, 비용을 누가 내는지 장부에 다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네가 맡아도 되는 일인지부터 확인해야 해. 할아버지 가게를 이어받았다는 말만으로 계약이 바뀌지는 않아.”
“일단 열어 보고 고쳐 놓을게요.”
“고장 원인도 모르는데 어떻게 고쳐?”
재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시계 수리 견습으로 1년을 보냈지만, 독립 작업을 맡은 건 많지 않았다. 정미는 가게를 계속 운영할지 한 달 안에 정하자고 했다. 매각 문의가 들어왔지만 아직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재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가게가 자신을 기다려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최복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갈색 손목시계를 차고, 천으로 감싼 회중시계를 가방에 넣어 왔다. 먼저 벽시계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재하는 접수표에 적힌 요청을 그대로 읽었다.
“열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할아버지가 열지 않기로 했어. 시계는 멈추지 않지만, 시간이 맞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
“오차를 재려면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기다리지 뭐.”
복자는 시계를 왜 확인하려는지 말하지 않았다. 정미는 수리비를 받을 수 없는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재하는 의뢰 내용을 확인하고 비용이 드는 작업과 단순 측정을 구분하겠다고 했다. 복자는 측정비를 내겠다고 했지만, 오차가 있다는 이유로 부품을 갈지는 원하지 않았다.
재하는 벽시계 아래에 낡은 기준시계와 시간을 맞췄다. 시계는 움직였지만 초침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아주 조금씩 늦어졌다. 그는 계산을 서두르지 않고 십 분 동안 간격을 기록했다. 측정 결과만으로는 하루 오차를 확정할 수 없었다. 최소 이틀간 같은 위치에서 확인해야 했다. 재하는 시계를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벽으로 옮기고, 위치를 바꿔도 괜찮은지 복자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늘 창가에 뒀는데요.” 복자가 말했다.
“온도 차이가 오차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요. 원래 위치에서 측정할까요, 아니면 조건을 일정하게 둘까요?”
복자는 잠시 생각한 뒤 원래 위치를 원한다고 했다. 시계를 쓰던 자리에서 얼마나 늦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재하는 조건을 바꾸면 실제 사용 환경을 기록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그는 시계를 창가에 다시 걸고, 햇빛이 닿는 시간과 온도를 함께 적었다.
“이 시계는 오래됐죠. 정확하게 맞출 수 있나요?” 복자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오차가 어디서 생기는지 확인해야 해요. 내부 부품이 닳았을 수도 있고, 추의 길이나 벽의 기울기가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고치지 않는 게 낫겠네요.”
“고치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다만 오차를 측정한 뒤 결정하셔도 됩니다.”
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거실 벽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그 시각에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재하는 물어보지 않았다. 의뢰서는 시계의 상태만 확인하도록 적혀 있었다.
점심 직후 초등학생이 작은 알람시계를 종이봉투에 넣어 들고 왔다. 시계는 아침에 울리지 않았고, 아이는 내일 수학 시험이 있어 꼭 고쳐야 한다고 했다. 함께 온 아버지는 새 제품을 사는 게 더 싸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재하는 뒷판을 열기 전에 외부 충격 흔적과 배터리 상태를 확인했다. 시계는 플라스틱 기어가 깨져 있었고, 제조사 부품은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다.
“접착해서 붙일 수는 없어요?” 아이가 물었다.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버틴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 안에 접착제가 들어가면 다시 고치기 더 어려울 수도 있어.”
재하는 부품을 복제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실패 가능성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시험 전날이라 수리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새 알람시계를 사러 가겠다고 했다. 아이는 깨진 시계를 버리지 말고 집에 가져가고 싶어 했다. 재하는 깨진 기어를 작은 봉투에 넣어 시계와 함께 돌려주었다. 그 물건은 쓰임을 잃었어도, 수리점이 정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후에는 손목시계를 가진 손님이 들어왔다. 배터리를 교체했는데도 시계가 멈춘다고 했다. 재하는 뒷판을 열기 전에 의뢰인에게 작업 범위를 설명했다. 배터리 누액 흔적이 있으면 회로까지 손상됐을 수 있고, 추가 분해에는 별도 동의가 필요했다. 손님은 오늘 안에 무조건 고쳐 달라고 했다. 재하는 먼저 배터리 전압과 접점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뒷판을 열어 보니 안쪽에 하얀 부식물이 조금 있었다. 재하는 사진을 찍고, 세척을 더 진행하기 전에 손님에게 보여 줬다. 부식이 회로까지 번졌다면 수리비가 새 시계 값보다 높을 수 있었다. 손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오늘은 점검만 해 달라고 했다. 재하는 배터리를 제거하고 회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시계를 돌려주었다. 수리를 끝내지 못했지만, 고객은 추가 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
정미는 그 손목시계 손님이 나간 뒤 계산대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 점검비만 받으면 부품 판매 수익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하는 손님이 동의한 범위까지만 작업했다고 답했다. 정미는 그 원칙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점검 시간도 작업 시간에 포함해 주간 장부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재하는 접수 건수뿐 아니라 고객이 수리를 포기한 이유와 사용한 시간을 표시하기로 했다. 그 기록은 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자료가 될 터였다.
재하는 점검비를 받았고, 작업 동의서에도 점검만으로 적혀 있었다. 정미는 그것으로 월세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재하는 자기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모든 시계를 고쳐 수익을 내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다. 아직 기술을 배우는 중이었고, 할아버지가 보류해 둔 시계들은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재하는 벽시계를 두 시간 간격으로 확인했다. 오후 측정값은 오전보다 18초 늦었다. 하루 오차로 환산하기에는 관찰 시간이 짧았고, 시계의 진자 길이와 벽의 수직 상태도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기준시계를 창가로 옮기지 않고, 벽시계가 걸린 위치에 별도 온도계를 두었다. 작업 기록에는 측정 시각과 실내 온도를 함께 적었다. 시계가 늦어진 사실은 관찰됐지만,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복자가 다시 가게에 들렀다. 벽시계는 하루가 지나야 오차를 계산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게에 놓인 회중시계를 꺼내지 않고, 접수표만 확인했다. 할아버지는 이 시계도 한 번 열어 봤지만 부품이 약해 다시 닫아 두었다고 했다. 정미는 그 수리비가 장부에 없다고 말했다. 복자는 아직 돈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왜 맡기고 결제를 안 하셨어요?” 재하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고치지 말라고 했어. 내가 맡긴 건 아니고, 먼저 물어봐 달라고 한 거지.”
“누구한테요?”
복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회중시계를 가지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재하는 접수 기록을 확인해 보니 실제로 맡긴 물건이 아니라 견적 문의만 받은 것이었다. 그는 시계를 꺼내 보여 달라고 권하지 않았다. 복자가 보여 주지 않겠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맞았다.
가게 문을 닫기 전, 정미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음 달까지 가게를 열면 월세와 기본 공과금을 낼 수는 있지만, 부품비와 재하의 생활비는 부족했다. 재하는 견습 급여를 따로 받고 있지 않았다. 정미는 한 달 시험 운영을 하더라도 수입과 지출을 매주 공개하자고 했다. 재하는 수리 접수 건수와 예상 시간을 함께 기록하겠다고 답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숫자를 보고 결정해야 해.”
“한 달 뒤에 같이 보죠.”
정미는 계약 갱신 서류를 책상에 놓고 갔다. 재하는 벽시계의 시작 시각과 창가 온도를 기록했다. 시계는 계속 초침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기준 시각과 맞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정상’이나 ‘고장’이라고 쓰지 않고 ‘측정 중’이라고 적었다.
그날 밤 재하는 가게 불을 끄고도 한동안 유리문 밖에 서 있었다. 시계 수리는 멈춘 것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잘 가는 시계를 열지 않는 것도, 고장 난 부품을 무리하게 살리지 않는 것도 기술의 일부일 수 있었다. 그는 접수 장부를 닫으려다, 할아버지 글씨로 적힌 보류표 한 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최복자, 회중시계, 원형 부품 확인 후 결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아래에는 날짜가 십 년 전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