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오르는 사람들

2화: 떨어지는 대신 내려오기
이태호는 병원 진료를 받고 체육관에 왔다. 발목 인대가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며칠간 점프와 강한 착지를 피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태호는 대회까지 열흘 남았다고 했다. 오재원은 대회 출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의사 안내를 따르면서 할 수 있는 훈련이 무엇인지 같이 정하자고 했다.
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학 추천에 대회 기록이 필요하다고 들었고, 이번 대회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고 했다. 부모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학원비와 장비 비용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태호는 재원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대회 루트만 연습했다. 그는 대회에 나가 완등 수를 늘리는 일이 집안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발목을 쉬게 하면 대회 기록이 없어져요.”
“지금 오르면 대회까지 못 나갈 수 있어.”
“대회가 끝나면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요.”
재원은 태호에게 대회가 중요한 이유를 다시 물었다. 태호는 체육 특기자 추천을 받고 싶다고 했지만, 학교 성적이 기준에 맞는지 몰랐다. 추천서가 나오면 부모도 계속 지원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재원은 성적 조건을 먼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대회 완등 기록과 진학 요건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양숙희는 초록색 테이프를 붙인 쉬운 문제 앞에 섰다. 그녀는 손가락 관절이 아침에는 뻣뻣하고, 오후엔 조금 풀린다고 했다. 재원은 오늘 손가락을 강하게 당기는 루트를 피하고, 큰 홀드에 손을 얹은 채 발 위치를 바꾸는 연습을 하자고 했다. 숙희는 누군가가 자기를 다칠까 봐 아예 벽에 오르지 못하게 할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아픈 날은 쉬면 돼요. 그런데 오늘 괜찮은 동작까지 막으면 계속 배우기 어렵잖아요.”
재원은 숙희가 할 수 있는 동작을 직접 말하게 했다. 그녀는 손끝을 접지 않고 손바닥으로 큰 홀드를 잡고, 발을 옆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재원은 그 동작을 루트 옆에 시범 표시했다. 숙희는 첫 시도에서 몸을 벽에 가까이 붙이고, 오른발을 바깥쪽에 두었다. 손에 힘을 덜 쓰며 세 홀드 더 올라갔다.
태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발목을 쓰지 않고 손만으로 올라가 보겠다고 했다. 재원은 그런 시도를 막았다. 발목을 쉬게 하려면 벽에 오르지 않는 편이 나았다. 태호는 숙희는 오르게 해 주면서 자기는 왜 안 되느냐고 따졌다. 재원은 숙희의 목표와 통증, 의료진 권고가 다르다고 했다. 태호는 자신도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심한지 아닌지는 내가 정하지 않아. 진료 안내가 점프를 피하라고 했고, 네가 체중을 실을 때 아프다고 했어.”
태호는 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는 재원이 자신을 대회에서 빼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재원은 태호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착지 위험 때문에 등반을 멈추게 한 거라고 말했다. 이번 주에 대회 주최 측에 출전 기준과 대체 종목이 있는지 문의해 보겠다고 했다. 태호는 그 문의를 부모에게도 알려 달라고 했다.
“내가 말할게요. 엄마한테는 아직 대회가 확정됐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네가 직접 설명하고 싶으면 기다릴게. 하지만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보호자와 공유해야 해.”
재원은 태호의 부상 사실과 훈련 중단만 보호자에게 알리고, 진학 걱정은 허락 없이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태호는 그 범위를 이해했다. 그는 재원이 자기를 대회에서 빼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그날 벽에 오르지 않기로 했다.
체육관 운영 설명회에는 회원 여섯 명이 왔다. 재원은 임대료 미납, 홀드 교체 비용, 방음 공사 견적을 각각 나눠 보여 줬다. 회원들은 체육관이 다음 달까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한 회원은 재원이 비용 문제를 늦게 공개한 게 불만이라고 했다. 재원은 혼자 해결하려 했고, 이제는 운영 조건을 같이 논의할 생각이라고 인정했다.
회원 한 명이 설명회 도중 정기권 해지를 요청했다. 체육관이 석 달 안에 닫을 수 있다면 남은 이용권을 계속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재원은 환불 규정과 잔여 횟수를 확인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은 환불이 늘면 체육관이 더 빨리 어려워질 거라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회원은 자기 돈을 위험에 걸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숙희는 그가 나쁜 회원이 아니라 계약 조건을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재원은 잔여 횟수 환불을 개인의 호의로 미루지 않겠다고 했다. 회계표를 공개하고, 해지 요청은 규정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민석은 운영비를 모으려면 환불 요청도 예상해야 한다고 했다. 체험 수업 수익은 해지 비용을 빼고 계산해야 했다. 재원은 체육관을 살리려고 회원에게 손실을 떠넘길 수 없다는 점을 처음 인정했다.
회원 대표 민석은 안전 점검과 청소를 회원이 돕되, 구조물 점검은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재원은 그 구분에 동의했다. 한 회원은 임대료를 모금하면 체육관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재원은 필요한 금액과 앞으로의 월 운영비를 계산한 뒤 답하겠다고 했다. 일회성 모금으로 임대료가 해결되어도 다음 달 적자가 반복될 수 있었다.
“그럼 우리가 뭘 할 수 있죠?” 숙희가 물었다.
“이번 주말에 체험 수업을 열어 회원이 늘어나는지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후원을 요구하진 않을 거예요.”
회원들은 체험 수업 수익 일부를 홀드 교체에 쓰는 방안을 검토했다. 강습을 맡을 사람과 안전 안내를 담당할 사람을 나누고, 대관료와 재료비를 먼저 빼고 남는 금액을 공개하기로 했다. 숙희는 초보 회원에게 낙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태호는 참가하겠다고 했지만, 벽에 오르지 않고 등록 안내와 영상 촬영을 맡겠다고 했다.
재원은 체험 수업에 쓸 쉬운 문제를 만들었다. 빨강·노랑·파랑 홀드를 섞지 않고, 시작과 끝을 분명히 표시했다. 홀드 몇 개는 나사 점검이 필요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루트를 조립한 뒤 회원에게 먼저 테스트를 부탁했다. 숙희는 두 번째 홀드에서 손을 바꾸려다가 멈췄다. 재원은 왼발을 먼저 옮기는 방법을 말로 설명했고, 숙희는 그 동작을 성공했다.
그날 저녁 태호는 체육관 책상에서 진학 요강을 검색했다. 클라이밍 대회 기록 외에 내신 기준과 출석 조건이 있었다. 그는 수학 성적이 기준보다 낮았다. 대회 완등만으로 추천을 받을 수 있는지 불분명했다. 태호는 부모에게 말하기 전 재원에게 자신이 요강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재원은 학교 상담 교사와 진학 조건을 확인해 보자고 했다. 태호는 자기 성적을 숨기지 않는 일이 더 무서웠다.
태호는 체육관 밖 계단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회 완등 기록을 챙기고 있지만 내신 기준은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클라이밍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라, 진학 경로를 함께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태호는 부모가 자기 성적을 보고 운동을 금지할 거라고 미리 생각해 왔다. 어머니는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대회 참가비와 장비비를 계속 지원할지 가족의 형편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대회에서 잘하면 돈을 더 받을 줄 알았어요.”
“기록 하나로 정하지 말고 상담 선생님하고 조건을 보자. 네가 원하는 것도 말해.”
통화를 마친 태호는 체육관으로 돌아와 재원에게 학교 상담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대회 성적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성적 문제를 등반으로 덮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무릎을 아끼는 일도 진학 준비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재원은 운영비 계산표를 다시 펼쳤다. 회원들의 체험 수업 수익은 예상보다 적었지만, 홀드 교체 비용 일부는 마련할 수 있었다. 임대료 미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회원들은 다음 주 회의에서 정기 회원권의 기간과 가격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재원은 이 계획이 체육관을 살린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다만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함께 계산했다.
수진이 마지막으로 체육관에 남아 있던 재원에게 어깨를 물었다. 그는 테이프를 풀다가 통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은퇴 전에는 통증을 말하면 선발에서 밀릴까 봐 재활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지금은 학생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계속 벽에 오르고 있었다. 수진은 재원이 세팅을 맡을 때 몸 상태를 기록하고, 강습 시범은 회원이나 보조 코치에게 넘기라고 했다. 재원은 자기 부상을 이유로 운영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침묵했다고 털어놓았다.
“부상 때문에 그만둔 게 아니라, 쉬면 돌아올 자리가 없을 것 같았어요.”
수진은 지금도 그 자리를 혼자 지키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재원은 다음날 병원 재활 예약을 하겠다고 말했다.
마감 직전 재원은 폐쇄 구역의 홀드를 모두 분리했다. 벽 뒤 인서트 일부가 망가져 있어 전문 수리가 필요했다. 수리 견적은 월세와 별개였고, 한 번에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임대인은 수리 전에 계약 연장 의사를 알려 달라고 했다. 재원은 일단 견적서를 회원 대표와 공유하기로 했다.
숙희는 초보 루트 연습 뒤 손가락 상태를 확인했다. 통증은 1이었고, 그녀는 다음 수업에서도 발 디딤을 이어 가고 싶다고 했다. 태호는 벽에 오르지 않은 대신 진학 요강과 대회 규정을 출력했다. 재원은 자신의 왼쪽 어깨에 테이프를 다시 붙였다. 그는 회원들에게 자신의 부상을 아직 말하지 않았다.
체육관은 대회를 앞두고 있었고, 태호는 그 대회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른 채 있었다. 회원들은 운영비를 함께 계산하기로 했지만, 계약 갱신은 확정되지 않았다. 재원은 다음 수업에서 어깨 재활을 숨기지 않고 말할 생각이었다. 혼자 벽을 지키려면 자기 몸과 가게의 한계를 함께 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