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오르는 사람들

3화: 탑 홀드까지 세 걸음
지역 볼더링 대회는 토요일 아침에 열렸다. 오재원은 체육관 회원들과 함께 짐을 꾸렸다. 양숙희는 쉬운 난이도에만 참가했고, 이태호는 발목 진료 뒤 대회 출전이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았다. 태호는 첫 루트를 볼 때부터 최고 난이도 벽으로 가려 했다. 재원은 참가자들이 루트를 미리 만지거나 연습하면 안 된다는 대회 규칙을 알려 주었다. 선수들은 정해진 관찰 시간 동안만 홀드와 동작을 살펴야 했다.
숙희의 첫 루트는 파란색 홀드로 시작해 큰 볼륨을 돌아 탑 홀드에 닿는 문제였다. 스타트는 두 손으로 잡고 양발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벽 앞에 서서 시작 홀드와 첫 발 디딤을 확인했다. 손가락 관절이 뻣뻣한 아침이라 재원은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숙희는 손가락을 펴고 접은 뒤 오늘은 해 보겠다고 했다.
“손으로 끌어올리는 루트가 아니네요.”
“발을 옮기면서 골반을 벽에 가까이 두면 돼요. 부담이 오면 내려와도 됩니다.”
숙희는 첫 시도에서 두 번째 홀드까지 올라갔다. 볼륨 아래 작은 발 홀드를 찾지 못해 오른팔에 힘이 들어갔다. 팔이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매트로 내려왔다. 점수는 시작 홀드와 두 번째 홀드에만 표시됐다. 숙희는 재원에게 정답 동작을 묻지 않았다. 대신 볼륨의 왼쪽에 발을 대면 몸을 돌릴 수 있을지 물었다. 재원은 루트 중간에 심판이 지정한 홀드 외에는 손으로 잡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발로 볼륨을 딛는 건 허용됐다.
두 번째 시도에서 숙희는 오른발을 볼륨 옆에 두고 무게를 실었다. 손가락으로 몸을 끌어올리지 않고 왼손을 위쪽 홀드로 옮겼다. 두 손이 볼륨을 돌아 탑 홀드에 닿았지만, 몸이 벽에서 빠져 한 손이 떨어졌다. 완등은 아니었다. 숙희는 매트에 착지한 뒤 손가락이 괜찮다고 확인했다. 그녀는 손을 쓰기보다 발을 놓는 위치를 알게 된 것이 성과라고 말했다.
태호는 남자부 중급 문제 앞에서 관찰 시간을 보냈다. 루트에는 멀리 뛰어야 잡을 수 있는 주황색 홀드가 있었다. 발목 진료 결과 점프 동작을 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태호는 시작 홀드에서 손을 바꾸면 점프 없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원은 대회 심판에게 규정상 같은 색 홀드의 순서를 바꿔 잡아도 되는지 확인했다. 심판은 가능하지만, 양손이 시작 홀드를 통제한 뒤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점프하면 발목에 부담이 갈 거야.” 재원이 말했다.
“안 점프해도 잡을 방법을 찾으면 되잖아요.”
“그래. 네가 찾은 방법이 안전한지 몸 상태와 함께 판단해.”
태호는 첫 시도에서 시작 홀드에서 손을 바꾸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착지할 때 양발을 매트에 대고 넘어지지 않았지만, 발목이 약간 당겼다. 그는 바로 다음 시도를 하려다 재원을 봤다. 재원은 통증이 올라갔는지 물었다. 태호는 1이라고 했고,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대회 완등 수를 걱정했지만, 진료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시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회장은 다른 참가자들의 응원으로 시끄러웠다. 숙희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손가락을 쉬었다. 태호는 출전하지 않는 회원들과 함께 루트 영상을 찍고, 관찰 시간 동안 본 발 디딤을 기록했다. 그는 재원에게 자기 시도만큼 다른 선수의 루트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원은 선수 역할과 기록 보조 역할을 모두 맡을 수 있지만, 응원하려고 착지 공간을 막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
숙희의 세 번째 시도 시간이 왔다. 그녀는 탑 홀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가 다시 내렸다. 발을 먼저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세를 바꾸어 오른발을 볼륨 아래에 놓고, 왼쪽 무릎을 벽 쪽으로 밀었다. 왼손이 다음 홀드를 잡았다. 오른손이 탑 홀드에 닿고, 두 손이 안정적으로 고정됐다. 심판은 완등을 선언했다. 숙희는 초급부에서 완등 하나를 기록했다. 그녀는 손가락이 불편해지기 전에 내려와 쉬었다.
“이 루트는 쉬운 편이었어요?” 숙희가 물었다.
“본인한테 맞는 동작을 찾은 거예요. 등급이 쉬워도 완등은 직접 만든 결과죠.” 재원이 답했다.
숙희는 메달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동작을 기록해 두고 싶다고 했다. 회원은 대회 전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원은 루트 홀드 배치를 말해 줄 수 없었다. 숙희는 대신 발을 어디에 두었을 때 손가락 힘이 덜 들어갔는지 기억을 적었다.
태호의 두 번째 시도에서 그는 시작 홀드에서 손을 바꾼 뒤 왼발을 옆 볼륨에 걸었다. 점프하지 않고 주황색 홀드에 손끝이 닿았다. 몸이 흔들렸지만, 오른발로 낮은 홀드를 밀었다. 그는 다음 홀드를 잡기 전에 멈춰 균형을 찾았다.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해 마지막 홀드까지 가지 못했지만, 첫 시도보다 한 구간 더 올라갔다. 착지 뒤 발목 통증은 2였다. 태호는 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완등하지 못한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진학 추천에 기록이 필요하다고 했고, 부모도 결과를 궁금해할 터였다. 재원은 태호가 점프를 피하고도 난이도 구간을 통과한 사실은 결과표에 남는다고 했다. 태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추천 조건을 학교 상담 교사와 확인한 뒤 다음 대회를 정하기로 했다. 이번 결과가 나쁘다고 운동을 그만두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재원은 본인도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회원이 대회 코칭을 요청했지만, 그는 왼쪽 어깨가 아파 고난도 동작을 시범 보일 수 없었다. 코치가 직접 오르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영상 분석과 구두 설명으로 대신했다. 수진에게 받은 재활 일정도 달력에 적었다. 대회 종료 뒤 체육관 회원들이 그의 어깨 상태를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재활 중이에요. 그래서 무리해서 오르지 않을 겁니다.”
숙희는 재원에게 무리하지 않아도 코치라고 말했다. 태호는 코치가 대회에 나오지 않은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재원은 대회 출전과 지도는 다른 역할이지만, 자기가 선수로 돌아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대회가 끝난 뒤 체육관 운영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회원들은 체험 수업 수익과 정기권 환불을 빼고 남은 금액을 공개했다. 홀드 수리 비용 일부는 마련됐지만, 밀린 임대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임대인은 체육관의 운영 계획과 수리 일정을 보고 계약을 두 달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단, 회원 수가 늘지 않으면 다음 갱신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회원 민석은 임대인의 두 달 연장 제안을 듣고, 월세를 더 내면서도 체육관이 문을 닫을 수 있다면 왜 계속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회원은 가까운 체육관이 없어서 초보 수업이 사라지면 자신은 운동을 그만둘 수 있다고 했다. 숙희는 자기 반찬가게 손님 중 몇 명이 체험 수업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지만, 그들이 정기 회원이 될지는 약속할 수 없었다. 체육관의 필요와 실제 수입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태호는 자기가 대회에서 완등했으면 후원이 쉽게 들어왔을 거라고 말했다. 재원은 대회 성적이 운영비를 해결한다고 기대하지 말자고 했다. 회원들이 체육관을 쓰는 이유와 월별 유지비를 비교하고, 그 숫자가 맞지 않으면 닫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석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재원이 무조건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했다. 회원들은 지출을 한 달 동안 관찰한 뒤 각자 계속 이용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재원은 회원들에게 한 달 시험 운영을 제안했다. 전문 점검이 끝난 벽만 사용하고, 주말 체험 수업은 회원 두 명이 운영을 보조한다. 청소년 훈련 시간과 일반 회원 시간을 분리해 수익과 이용률을 함께 본다. 숙희는 초보 강습의 보조를 맡겠다고 했다. 태호는 발목이 회복될 때까지 안내와 영상 기록을 돕겠다고 했다. 누구도 운영비를 무조건 후원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회원들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임대료와 세팅 비용을 확인할 날짜를 정했다. 재원은 빌린 돈과 개인 대출을 공개했고, 매달 갚아야 할 금액도 운영표에 넣었다. 회원들은 대출을 대신 갚지 않겠지만, 체육관 운영에 참여해 더 지속 가능한지 시험할 수 있다고 했다. 재원은 그 차이를 받아들였다. 혼자 빚을 지며 체육관을 지키는 것만이 책임은 아니었다.
체육관으로 돌아온 뒤 재원은 숙희의 완등 기록을 게시판에 붙였다. 태호의 기록도 그의 동의를 받아 걸었다. 둘의 결과는 비교 순위로 묶지 않았다. 숙희는 탑 홀드까지 올랐고, 태호는 점프 없이 어려운 홀드에 닿았다. 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숙희는 체육관 게시판에 붙일 완등 기록을 직접 썼다. 그녀는 단순히 ‘완등’이라고 쓰지 않고, 손가락 통증을 확인한 뒤 세 번째 시도에서 오른발을 볼륨에 놓았다고 적었다. 태호는 자신의 결과표에 점프 없이 높은 홀드에 닿았다는 사실을 표시했다. 둘은 서로의 기록을 보며 축하했지만, 상대의 결과를 자기 목표와 비교하지 않았다. 재원은 두 기록을 나란히 붙이되 난이도 순서로 정렬하지 않았다.
재원은 벽에 걸린 초크백을 정리하고, 재활 예약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다음 달까지 선수로 복귀할지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어깨 치료를 받고 체육관 운영을 평가할 계획이었다. 숙희는 다음 강습에서 발 디딤을 이어 가고 싶다고 했고, 태호는 학교 상담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임대인은 두 달 연장 조건을 서면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체육관이 살아남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한 달 운영 시험과 전문 수리 일정이 생겼고, 회원들은 자기 선택으로 역할을 나눴다. 재원은 다음 루트의 홀드를 배치하기 전에 느슨해진 벽의 점검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곳에서 오르는 사람은 혼자 정상에 도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