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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22화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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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합격의 선

접수실 문을 나서자 복도의 거친 소음이 끼쳐왔다.

가죽 옷을 걸친 사내들이 통로를 메우고 있었다. 벽에는 분필로 쓴 선발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서준은 안주머니를 눌렀다.

조금 전 챙긴 빈 봉투와 접수 사본이 만져졌다. 봉투 안에는 상단 보관소 B열 3번 칸이라는 단서가 있었다. 손안에는 사건 번호 금속패와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이 쥐여 있었다.

상단 보관소는 신분 확인이 엄격한 구역이었다. 목덜미에 푸른 무신분 표식을 단 외부인은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다. 출입 자격을 얻지 못하면 B열 3번 칸은 손에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어물거리다간 문 닫힌다."

벽에 기대어 있던 카시안이 검집으로 바닥을 툭 쳤다.

"상단 보관소든 어디든 패가 없으면 쫓겨난다. 저기 문 닫히는 소리 안 들리냐?"

복도 안쪽 접수대 뒤에서 서기관이 쇠도장을 찍고 있었다.

"하급 용병 선발 마감이다! 짝 없는 놈은 뒤로 빠져!"

서기관의 고함에 르네가 서준의 앞을 막아섰다.

"시험장 바닥은 하역장보다 거칠어. 몽둥이에 맞아 뼈가 부러져도 길드는 치료비 안 준다. 남은 동전마저 날리고 싶어?"

서준도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았다. 굶주림 끝에 폐광 찌꺼기 밥으로 버텨 온 몸이었다. 칼을 휘두르는 시험에 나섰다가는 버티기 어려웠다.

서준은 빈손을 들어 보였다. 무기를 쥘 힘도 검술도 없다는 뜻이었다.

카시안이 비웃었다.

"누가 너더러 칼 잡으래? 주 전투원이 접수하면 보조원은 덤으로 묶여 들어간다. 모의 구간에서 바닥이나 긁으라는 소리지."

그는 서준의 가슴을 검집 끝으로 밀었다.

"짐짝으로 밟히든 눈치껏 길을 찾든 네 선택이다. 하지만 내 뒤에서 발을 헛디디면 네 모가지부터 찬다."

세리아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품에서 사건 접수 표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공식 사건 조사를 보조하는 인원으로 기재하면 접수비는 면제됩니다. 주 전투원의 보증만 있으면 규정상 하자는 없어요."

서기관이 서준의 목덜미를 찌푸린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카시안이 은전 한 닢을 던지고 세리아의 서류 옆에 손도장을 찍자 서기관은 더 따지지 않았다.

쾅 소리와 함께 먹물이 묻은 나무 패가 놓였다.

서준은 주머니 속의 동전 한 닢을 단단히 쥐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시험장 안으로 들어갈 틈이 열렸다.

"따라와."

카시안이 돌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아래는 축축한 지하 연무장이었다. 바닥에는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었고 사방 벽면에는 철창이 둘러쳐져 있었다. 공기 중에 쇠 녹슨 냄새와 유황 찌꺼기 냄새가 엉겨 붙어 있었다.

중앙에는 훈련용 목인 다섯 개가 쇠사슬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첫 번째 판정이다! 전투원들은 제한 시간 안에 세 개의 목인을 제압해라!"

감독관의 신호가 떨어지자 지원자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목인의 움직임은 거칠었다. 쇠사슬이 회전할 때마다 무거운 통나무 팔이 허공을 갈랐다. 한 지원자가 방패로 버티려 했으나 타격음에 밀려 바닥을 굴렀다.

연무장 한가운데로 카시안이 걸어 들어갔다.

그의 걸음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카시안은 검을 완전히 뽑지도 않았다. 검집을 쥔 왼손을 비스듬히 세우더니 정면에서 날아오는 목인의 관절을 검집 모서리로 정확하게 찔러 올렸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목인의 회전축이 꺾였다.

카시안은 반동을 이용해 몸을 돌리며 칼날을 뽑아냈다. 은빛 궤적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목인의 목덜미에 박혀 있던 마력 쐐기가 단번에 두 동강 났다.

첫 번째 목인이 모래바닥에 처박혔다.

카시안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사슬을 보지도 않은 채 팔뚝의 보호대로 빗겨 튕겨 냈다. 튕겨 나간 사슬이 두 번째 목인의 다리를 휘감았다.

카시안이 바닥을 차며 도약했다. 칼끝이 세 번째 목인의 흉통 중심부를 꿰뚫었다.

완벽한 제압이었다.

사슬의 무게와 회전의 반동 그리고 관절의 약점을 모조리 꿰뚫어 보고 궤적 자체를 비틀어 버린 결과였다.

서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카시안의 전투력은 실전에서 뼈와 살을 부딪치며 체득한 냉혹한 기술이었다. 저것이 이 세계에서 힘을 가진 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저렇게 될 수 없었다. 당장 칼을 쥔다 해도 쇠사슬을 쳐낼 완력도 속도도 없었다.

하지만 절망할 시간은 없었다. 자신의 시험은 그 뒤에 있었다.

"전투 합격자들은 보조원을 대동하고 복합 함정 통로로 이동한다!"

두 번째 구역은 좁고 긴 암석 통로였다. 바닥은 부서진 석판으로 덮여 있었고 천장에서는 붉은 찌꺼기가 스며 나오는 배수 홈들이 얽혀 있었다.

"던전 하층 모의 구간이다. 바닥에는 압력식 쇠창살과 잔류 폭발석이 묻혀 있다. 보조원은 안전한 디딤돌을 찾아 전투원을 인도해라. 함정을 밟는 순간 실격이다."

보조원들이 움직였다. 어떤 이는 청동 나침반을 꺼냈고 다른 이는 푸른 마력 결정을 쥐었다.

그러나 나침반 바늘은 제멋대로 돌기만 했다. 연무장 지하의 난방관과 철골 탓에 마력 흐름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이다! 안전해!"

나침반을 든 보조원이 넙적한 석판을 가리켰다.

그의 파트너였던 전사가 석판을 밟았다.

철컥.

바닥에서 시커먼 철창 세 개가 솟구쳤다. 전사는 뒤로 물러섰지만 갑옷 옆구리가 찢겨 나갔다.

"실격! 끌어내!"

감독관이 매정하게 선을 그었다.

카시안이 서준을 돌아봤다.

"도구도 없는 놈이 뭘로 볼 거냐. 눈이라도 뜨고 있어라."

서준은 대답 대신 신발 끝으로 흙을 긁어냈다.

가슴 한가운데가 찌릿하게 떨려 왔다.

비어 있던 마력 회로가 주변의 찌꺼기를 감지하며 가늘게 요동쳤다. 폐광 깊은 곳에서 벽면을 더듬을 때 느꼈던 그 텁텁하고 비린 감각이었다.

통로 앞쪽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오른쪽 길은 반듯한 석판이 깔려 겉보기에 안전해 보였다. 왼쪽 길은 잡석과 그을음이 널려 있었다.

가슴의 떨림은 오른쪽을 향해 강하게 당겨졌다.

'오른쪽인가?'

서준의 발이 움직이려던 순간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하역장에서 오판으로 동료를 다치게 했던 날이 떠올랐다. 카시안이 검집으로 바닥을 찍으며 가르쳐 주었던 원칙이 귓전을 때렸다.

'감각만 믿지 마라. 주변의 흔적을 대조해라.'

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석판을 살폈다.

겉은 멀쩡했다. 하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석판 모서리에 닿는 순간 치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공기 중에 아지랑이 같은 왜곡이 일렁였다.

회로가 강하게 떨린 것은 안전해서가 아니었다. 압축된 화염계 잔류 찌꺼기가 석판 밑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것을 밟았다가는 불길이 치솟을 게 뻔했다.

서준은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잡석과 그을음이 널려 있었지만 바닥 구석에는 쥐똥과 마른 흙먼지가 쌓여 있었다. 천장의 붉은 찌꺼기도 바닥에 닿기 전에 차갑게 식어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회로의 반응은 희미했지만 폭발할 위험이 없다는 신호였다.

서준은 카시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카시안이 미간을 좁혔다.

"오른쪽이 넓잖아."

서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오른쪽 석판을 가리킨 뒤 자갈 하나를 집어 석판 위로 던졌다.

자갈이 닿는 순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유황 연기가 천장을 때렸다.

지원자들의 눈이 커졌다.

카시안의 시선이 불타는 석판에서 서준의 손가락으로 내려앉았다.

"왼쪽이군."

카시안이 나서려 하자 서준이 앞을 막아섰다. 자신이 먼저 발을 내디뎠다.

서준은 그을음 묻은 바닥을 한 발씩 디뎠다. 발바닥의 진동을 느끼고 벽면의 균열을 확인하며 마력 잔류가 약하게 흩어지는 틈새만을 밟았다.

통로 중반에 다다랐을 때였다.

벽면 안쪽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 회로가 팽창했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카시안의 허리춤을 붙잡고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엎드려!"

한국어로 튀어나온 외침이었지만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슈우우욱!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독무 섞인 압축 가스가 허공을 갈랐다. 천장의 암석이 가스에 닿자 하얗게 녹아내렸다. 1초만 늦었어도 얼굴 전체가 상할 뻔한 함정이었다.

가스가 잦아들자 서준은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손끝이 떨렸지만 가슴 안쪽의 회로는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카시안은 옷의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그는 녹아내린 천장을 보더니 서준의 어깨를 툭 쳤다.

"죽지는 않았군."

두 사람은 통로 끝의 철문을 지나 반대편 출구로 걸어 나왔다.

감독관의 채점 탁자 앞에는 소수의 합격자만이 남아 있었다.

감독관은 장부를 적어 내려가다가 카시안과 서준을 바라봤다.

"카시안 로반. 전투 부문 최상급 합격이다."

감독관은 카시안의 이름 옆에 붉은 인장을 눌렀다. 그리고 서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쪽은 곤란하군."

감독관이 펜대를 탁탁 두드렸다.

"전투력 전무. 정식 감지 도구 없음. 게다가 목덜미에는 무신분 전이자 표식까지 붙어 있어. 요행으로 함정을 피했다고 해서 보조원 패를 내줄 수는 없다."

무신분 외부인을 밀어내려는 노골적인 거부였다.

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기서 패를 얻지 못하면 상단 보관소 출입은 물거품이 된다.

그때 카시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집째로 탁자 위에 쾅 내려놓았다.

"요행?"

카시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도구 든 놈들은 바닥에 처박히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그런데 이놈은 화염석도 피하고 독가스 분출구도 읽었다. 덕분에 내 옷자락 하나 안 탔지. 결과가 나왔는데도 뒷말을 붙이는 게 베르단 길드의 방식인가?"

감독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건방 떨지 말게! 이 자는 신분 보증도 없는—"

"신분 보증은 이미 제출되었습니다."

뒤편에서 세리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탁자 위에 사건 번호 금속패를 올려놓았다.

"해당 인원은 길드 기록실에 정식 접수된 채무 사기 사건의 핵심 참고인입니다. 임시 보조원 패를 거부할 합당한 사유가 없다면 상부 감사실에 절차 위반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카시안의 거친 압박과 세리아의 서류 공세에 감독관은 혀를 찼다. 그는 서랍에서 무쇠 패 하나를 꺼냈다.

탁자에 쇠도장을 쾅 찍은 뒤 그는 무쇠 패를 서준에게 던졌다.

"최하위 등급이다! 정식 용병단 가입 불가에 단독 전투 구역 출입 불가다. 허가된 창고와 하역장 그리고 보조 구역만 드나들 수 있는 임시 패다. 헛짓거리하다 걸리면 즉시 회수야!"

서준은 날아온 무쇠 패를 두 손으로 받았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표면에는 거칠게 파인 보조원이라는 글자와 길드의 푸른 인장이 찍혀 있었다.

가장 낮은 밑바닥의 임시 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상단 보관소가 있는 창고 구역의 문을 두드릴 자격이 생겼다.

안주머니의 동전 한 닢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돈을 빼앗기지도 않고 누군가의 노예로 전락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눈과 발로 얻어낸 첫 번째 공적 증명이었다.

"숨은 붙어 있네."

연무장 밖으로 나오자 르네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서준의 손에 쥔 무쇠 패를 보는 시선만큼은 달라져 있었다.

세리아가 서준의 곁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보조원 패가 생겼으니 상단 보관소 B열 복도까지는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세리아는 품 안에서 얇게 접힌 양피지를 살짝 내보였다.

"마르코의 장부에서 나온 인계 번호를 대조해 봤습니다. 그가 넘긴 것은 단순한 화물이 아니었어요. 길드 공문서 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실종자들의 명부가 그 뒤에 있습니다."

서준은 무쇠 패를 꽉 쥐었다.

마르코의 하수인은 잡혔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상단 보관소 깊은 곳에 숨겨진 원본 계약과 그 뒤에 도사린 어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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