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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23화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밑바닥 전이자는 다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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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명부의 빈칸

연무장 계단을 다 올라오기도 전에 카시안이 서준의 손에 든 무쇠 패를 흘겨봤다.

"이제 패도 있으니 내 뒤에 붙어 있을 이유는 없겠지. 다음에 길에서 쓰러지면 시험 감독관은 안 불러 준다."

그는 어깨에 검집을 걸치고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르네가 서준의 걸음을 막았다.

"손부터 씻어. 독가스가 묻었을 수도 있어."

서준은 벽에 붙은 물통에서 손과 얼굴을 닦았다. 굳어 있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조금 전 받은 패의 푸른 인장은 물에 젖어도 번지지 않았다.

세리아가 그가 손을 털 때까지 기다렸다.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열린 복도에서는 안 됩니다."

그녀의 손에는 접힌 양피지가 들려 있었다. 서준은 아까보다 좁아진 그녀의 입술을 보고 묻고 싶은 말을 삼켰다.

명부가 있다면 이름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그곳에 적혀 있는지도.

그녀가 앞장서자 르네가 뒤를 따랐다. 길드 기록실 옆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드는 대조실이 있었다. 세리아는 문을 닫고 탁자 위에 양피지 두 장을 펼쳤다.

한 장은 길드의 푸른 선이 그어진 장부 사본이었다. 다른 한 장은 끝이 비뚤게 잘려 있었고 숫자 옆에 둥근 기호가 반복되어 있었다.

서준의 손이 안주머니로 갔다. 빈 봉투와 그 안의 인계표가 잡혔다.

"원본입니까?"

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상단이 길드에 보낸 대금 청구서에 운송 목록 일부가 붙어 있었어요. 그 부분을 베낀 겁니다. 원본 장부를 가져올 권한은 없지만 청구 번호는 길드 기록과 대조할 수 있죠."

세리아는 두 장의 아래쪽 모서리를 나란히 맞췄다. 운송 목록에는 세 갈래로 찍힌 작은 표식이 있었고 길드 사본에는 같은 표식 옆에 지불액이 적혀 있었다. 글을 몰라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돈이 넘어간 모양은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운송 장부의 첫 줄을 짚었다.

"마라 텐. 잡역장에 배정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번째 줄을 짚었다.

"오르덴. 하역 노동자로 인계됐고요."

세 번째 이름 앞에서 세리아의 손이 잠깐 멈췄다.

"리안 포르. 이 사람도 외부인입니다. 셋 다 이후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푸른 줄이 그어진 장부를 서준 앞으로 밀었다. 앞의 두 줄은 사람 이름과 숫자가 빽빽했다. 세리아가 짚은 자리부터는 빈칸이 이어졌다.

"길드의 정식 작업 기록에는 이 번호들이 없어요. 상단은 셋을 길드 하역장에 넘겼다며 대금을 청구했는데 정작 출입 장부에는 들어온 흔적이 없습니다."

세리아는 마라 텐의 번호 끝에 붙은 두 획을 손톱으로 긁었다. 오르덴과 리안 포르의 줄에도 같은 두 획이 있었다.

서준은 세리아가 보여 준 길드 장부의 날짜 칸을 따라 손가락을 옮겼다. 앞뒤 날짜에는 잉크가 빽빽했다. 세 사람이 들어왔어야 할 자리만 종이의 바탕색 그대로였다.

"다른 문은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사본만으로 실종을 확정해 고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받은 쪽 기록과 사람이 들어온 기록이 안 맞는 건 확실해요."

서준은 숫자를 읽지 못했다. 대신 세리아가 접은 종이의 세 군데에 같은 둥근 표시가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 봉투를 펼쳐 인계표의 둥근 기호를 그 옆에 놓았다.

크기는 달랐다. 하지만 원 안에서 끝이 꺾이는 짧은 선은 같은 모양이었다.

자기 봉투의 외부인 관리 번호에도 두 획이 붙어 있었다. 서준은 그것을 세 사람의 번호 옆으로 밀었다. 세리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같은 분류예요. 같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고요. 당신 이름이 저 세 줄에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서준은 봉투를 제자리로 당겼다. 안도하기에는 봉투가 너무 얇았다. 분류만 같아도 자신을 어디에 넣으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전부 사람이에요?"

세리아는 대답 대신 운송 사본 위에 작은 돌 세 개를 놓았다. 한 개씩 이름 옆에 올렸다. 그리고 인계표의 외부인 관리 번호 옆에는 네 번째 돌을 놓았다.

서준은 돌을 내려다봤다. 자기 몸에 붙은 번호도 저 자리에 적힐 뻔했다. 아니, 어딘가에는 이미 적혀 있을지도 몰랐다.

르네가 그의 손목을 툭 쳤다.

"종이 구기지 마. 네가 화낼 얼굴은 저 종이를 쓴 놈한테 보여."

서준은 움켜쥔 인계표를 폈다. 모서리가 구겨졌지만 글씨는 남아 있었다.

세리아는 다른 줄을 가리켰다. 세 사람의 이름 앞에는 둥근 기호가 있었고 뒤에는 검은 네모 안에 짧은 사선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앞은 모집과 출발을 확인하는 표시예요. 마르코 딜렌의 이름이 그 아래에 붙어 있습니다. 뒤의 네모는 물건을 받아 처리한 쪽의 승인이고요."

서준은 르네를 돌아봤다. 르네도 네모를 처음 보는 눈이었다.

"마르코는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적어도 이 장부에는 그렇게 돼 있어요. 마르코는 넘긴 사람입니다. 받은 쪽의 이름은 없어요."

세리아는 인계표 뒷면을 뒤집었다. 서준의 계약서가 옮겨진 경로에도 수령 확인란이 비어 있었다.

"마르코가 셋의 출발을 확인했는데 받은 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아요. 당신 계약도 받았다는 서명이 비었습니다. 같은 수령자라고 아직 말할 수는 없어요."

서준은 다른 네모 표시를 다시 봤다. 네모 속 두 사선이 셋 모두 같은 각도로 기울어 있었다. 누가 그 도장을 들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의 실수로 빠진 이름은 아니었다.

서준은 둥근 기호 조각을 꺼냈다. 토반이 돌려준 조각의 마모된 테두리와 봉투의 인장을 겹쳐 봤다. 완전히 같은 크기는 아니었지만 꺾인 선의 방향이 같았다.

마르코의 단추. 하수인의 단추. 버려진 고정편. 사람의 이름이 적힌 운송 기록.

그가 미워하던 한 사람에게 이어지는 길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지나 더 멀리 뻗은 길이었다.

서준은 네모 표시를 손끝으로 눌렀다.

"이건 누굽니까?"

"아직 몰라요. 상단의 정식 인장과도 달라요. 누가 이 표식을 찍었는지 원본을 봐야 합니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알펜 기록관. 대조실 쓰고 있습니까?"

세리아는 재빨리 종이를 덮지 않았다. 먼저 서준의 봉투와 자기 사본을 갈라 놓았다. 그런 뒤 잘린 사본만 접어 품에 넣었다.

"사건 접수 번호를 대조하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문밖의 사람은 불만스러운 기침을 남기고 멀어졌다.

서준이 낮게 물었다.

"저 사람도 알면 안 되는 겁니까?"

"누가 알 수 있는지는 제가 정합니다. 아직 원본 확인도 못 했으니까요."

그녀는 문 쪽을 보며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서준도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세리아는 서준의 사건 금속패를 인계표 옆에 놓았다.

"당신이 직접 본 일과 이 명부를 연결하려면 원본 계약을 확인해야 해요. B열 3번 칸에 그게 남아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요."

서준은 무쇠 패를 들어 보였다.

"복도는 갈 수 있죠."

"복도까지만요. 그래도 가서 확인할 건 있습니다."

상단 보관소는 길드 본관 뒤쪽 하역장과 맞붙어 있었다. 짐수레 바퀴가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꺼운 철문 옆에서 담당자가 출입패를 확인했다.

르네가 먼저 나섰다가 길을 막혔다.

"길잡이는 여기까지입니다."

르네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담당자는 문 옆에 붙은 허가 명단만 가리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 질러. 안 들리면 내가 문을 두드릴게."

르네는 서준에게 말하고 벽에 등을 붙였다.

서준은 자신의 무쇠 패와 사건 번호 금속패를 내밀었다. 담당자는 목덜미의 푸른 표식을 확인한 뒤 패의 새 인장을 손톱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출입 기록의 빈칸에 세리아의 이름을 쓰게 했다.

철문이 열렸다.

서준은 자신이 걸어서 들어간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아무에게도 끌려가지 않았다. 패를 되찾아 손에 쥐고 복도로 들어섰다.

담당자가 문 옆 장부에 시간을 적었다. 창고 안의 인부 둘이 새 패를 보더니 다시 수레를 밀었다. 푸른 표식을 보고도 누구도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B열은 안쪽 철망 너머에 있었다. 칸마다 쇠고리가 달린 작은 보관함이 줄지어 있었다.

서준은 세리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숫자를 따라갔다. 셋째 칸의 구석에는 접수실에서 본 둥근 기호가 작게 찍혀 있었다.

그는 손등에 눌러 외웠던 세 줄을 눈으로 다시 세었다. 첫 칸에는 찢어진 천 조각이 매달렸고 둘째 칸에는 오래된 밀랍이 흘러 있었다. 셋째 칸에 이르자 손등의 자국과 보관함 번호가 맞아떨어졌다.

서준은 망에 손을 대려 했다.

"거기까지."

담당자가 열쇠꾸러미를 몸 뒤로 숨겼다.

"보조원 패는 통로 출입만 허가합니다. 칸을 여는 건 사건 당사자 열람 청구가 접수된 뒤예요."

세리아가 사건 금속패를 들어 보였다.

"접수 사건입니다. 보존 상태만 확인하게 해 주세요."

"상자에 봉인이 붙어 있는 건 보이시잖습니까. 그 이상은 정식 진술서가 붙은 청구서가 필요합니다."

서준은 말의 절반만 알아들었다. 그래도 담당자가 두 종류의 패를 돌려주고 빈손을 내미는 뜻은 분명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종이가 필요했다.

그는 철망 너머를 살폈다. 셋째 칸의 끈은 비교적 새것이었다. 끈 아래에 끼운 작은 작업표도 새 종이였다.

서준은 표의 붉은 테두리를 가리켰다.

"저건 뭡니까?"

담당자가 세리아를 봤다. 세리아가 작업표를 읽자 얼굴이 굳었다.

"오늘 해 질 무렵 이송 예정이에요."

"어디로요?"

세리아는 종이 끝을 살폈다. 목적지 칸은 접혀 철망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담당자가 대답했다.

"청구서를 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송 작업을 막을 근거도 있어야 하고요."

세리아가 담당자에게 이송 시각을 되물었다. 담당자는 작업표의 붉은 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해가 기우는 창을 가리켰다.

새 종이의 가장자리에는 방금 붙인 듯 마르지 않은 풀이 남아 있었다. 서준은 종이 아래의 오래된 먼지가 그 자리에서만 끊긴 것을 확인했다. 누군가 오늘 바꾼 표였다.

그가 열쇠꾸러미를 짤랑거리며 몸을 돌렸다.

서준은 철망을 붙잡은 손을 내려놓았다. 억지로 열면 무쇠 패부터 빼앗길 것이다. 접수실에서 남긴 기록도 자신의 난동 뒤에 묻힐 수 있었다.

철문 밖으로 나오자 르네가 먼저 물었다.

"있어?"

"칸은 있어요. 안은 못 봤습니다."

르네가 세리아의 얼굴을 보고 턱을 굳혔다.

"기다릴 시간이 없군."

세리아는 품속에서 명부 사본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사건 금속패를 서준에게 돌려주었다.

"내가 청구서를 쓸 수는 있어요. 하지만 당사자의 정식 진술이 없으면 오늘 이송을 멈출 수 없습니다."

서준은 금속패의 차가운 모서리를 쥐었다. 또 손도장이 필요하다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무심코 목덜미의 푸른 표식을 만졌다.

"종이를 먼저 보여 주세요."

세리아의 눈이 그를 향했다.

"진술서. 청구서. 둘 다요."

서준은 손바닥을 펴서 양쪽에 종이를 놓는 시늉을 했다.

"한 장씩 읽어 주세요. 붉은 인주는 안 됩니다."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느 종이가 빚을 인정시키고 어느 종이가 자기 물건을 찾게 해 주는지는 물을 수 있었다. 손을 어디에 올릴지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세리아가 대답하기 전 보관소 안에서 짐수레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바퀴가 철문 앞에 멈췄다. 해가 지기까지는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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